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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츄라이 2차주둔지(1966.9.19~1968.1.6)' 에 관한 정보 총 4 개

  1. 2017.03.20 츄라이지역 자료
  2. 2015.04.23 베트남 광나이성 해병대 여단본부및 중대 주둔지
  3. 2014.12.23 해병168기 전적지 방문
  4. 2013.12.21 츄라이 여단본부

아래글은

츄라이 전선의 기억들 ~ 자료사진모음 |

 월남전의 추억,전우사진,군사사진모음(http://blog.daum.net/debtorcjs/15866163)

에서 옮긴글입니다

혹 저작권관련 문제가 있으시면 이병장 메일 2kiking@hanmail.net으로 연락주시면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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츄라이 전선의 기억들 !!



역사가 인간사를 제시해 주는지
인간이 역사를 만들어 가는지

전쟁이 인간을 악하게 만드는지
인간이 전쟁을 무섭게 만드는지

월남전이 청룡을 불러들였는지
청룡이 월남전으로 달려 왔는지

응전의 츄라이 전선으로 가는
길고 긴 1번 국도 ~ 버스에서
그 모든 의문의 답은 침묵이었다.

단 하나 ~ !!!

조국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자유니 ~ 평화니 ~ ~ ~
그런것은 지휘자의 몫이고...


응전의 츄라이 전선으로 버스에서의
한 말씀의 대답은

조국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였읍니다.




바닷가 물결은 일년 동안 220 만번 가량을 밀려온다고 한다.
청룡이 떠난지 어언 40년 쌓이고 쌓인 사연을 40년 억만 물결도
다 덮지 못해서 츄라이 전선으로 가는 전야 퀴논의 그날 밤도
남지나해의 물결은 수없이 끝없이 밀려오고 있었읍니다.




인간의 뇌는 하루 24시간동안 29만 6천번의 다른생각을 할수있다고한다.
청룡이 돌아온지 어언 40여년 그러나 그러나 수억만번의 생각이 변해도
잊을수없는 츄라이전선의 기억은 선배님의 눈을저렇게도 빛나게하였읍니다.

앞쪽좌,검은 해병티를 입은 사람이 다낭에 거주하는 안내인 탄 (?) 입니다.




그 깊은 눈빛으로 40년의 기억을 추리하신 그 츄라이 전선




바탄강을 건너면서 선배님들의 40년 ~ 기억 ~ 악몽 ~ 추억은
그렇게 바짝 다가왔다.




용두 작전시 여단 G.P 가 자리했던 그 자리는
한 손으로 찾아내고 말았읍니다.

 손짓으로 얘기하는 이기원선배, 호치민에 거주하는 이남원전우, 윤원옥후배.




춘.하.추.동 마져 잊어버린 타국의 전장터에
40년만에 돌아와 처음으로 대하는
해발 108 미터 그 ~ 전선의 그 ~ G.P
저 산너머로 해안을 따라 바탄강반도로 올라가면 청룡으로부터 지역을 인계받은 미1사단의

월남전사의 비극현장인 미라이가 나온다



얼마나 ~얼마나 더 많은 날이 지나야




우측 해안가중간쯤에  My Lai (미라이)가 보인다.




그날의 그 자취는 현실적으로는 이미 없어진지 오래다.

울산의 권용학선배와 등을 보이고있는 이남원전우 (백마출신)




현재는 없지만 과거는 없어지지 않는다.




없어진다 손 치더라도 잊지는 못한다.




츄라이 여단 본부 해병대 앙카가 든든하게 서있던




그 자리에 기초석을 찾고서야 쏟아지는 초조함을 떨칠수 있었읍니다.
이제와 다시 ~ 그날 ~ 그 자리에 서서보니 초목은 푸르러도
추억은 더 푸르르다.




뜨거운 먼지가 휘날리던 츄라이 연병장에
40년만에 발자욱 깊게 깊게 남기며




포로 수용소가 있던 빈숀 시가로 들어서니




40년 풍우를 견뎌낸 기둥 중간에 총탄 구멍이 숭숭 뚫여있고




그 구멍속에 월남의 뱀이 또아리를 틀고 들어있었읍니다.




3대대 터로 가지전에 비극의 목다리 현장이 나타나고




그 다리 밑으로 그날의 비극을 아는지 모르는지
(메복 1개분대 근무태만으로 1명재외 전원 목이따저 전사)



강태공의 낙시대가 보기싫어 서들러 츄라이를 벗어났지만




츄라이의 기억은
지금도 단번에 그려낼수있는
잊을수 없는 기억이었읍니다.(이기원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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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해병 6중대가 주둔한 지역은 프랑스가 베트남을 지배할 당시 프랑스군이 주둔했다고 한다 건축물들도 프랑스 군인들이 만들어 놓은것이다
                             www.vietnamgo.co.kr  베트남갑시다.한국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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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해병 168기 이희상 전우는 1966년 추라이2대대 소속으로 미군헬기장에 근무하면서 짜빈동11중대 전투을 직접보았고 짜빈동전투가 끝난다음날 헬리콥타을 타고 11중대에 전사한 해병전우들과 베트남 정규군의 시체을 수습차 짜빈동에 가서 전사한 해병전우들의 시체을 직접 수습하였다 살아 가면서 전사한 전우들과 짜빈동 미군헬기장을 살아생전 한번 가보고 싶었으나 갈길이 막막하여 포기하던중 방송국에 근무하는 작은며누리가 추리이 미군헬기장과 짜빈동 지역을 아는 사람을 인테넷으로 찿아다면서 아버님이 50년전에 참전하신지역을 구경시켜준다고 헤서 모든가족 10명이 다낭으로 출동하였다

 

추라이 여단지역을 찿아왔으나 넓은 여단본부는 나무가 무성히 자란 장글로 변해있고 어디가 어디인지 기억이나질않는다

드디어 내가 생할했던 미군헬기장을 찿아와서 중학생 손녀 딸에게 당시에 상항을 자세히 설명해주고있다

 

 

내가 50년전에 참전했던 헬기장이 그대로 장글속에 남아있다니 신기하고 너무도 고맙다 중학생 두손녀딸이 할아버지가 참전 했던지역을 돌아보면서 무척관심을같는다

 

이곳헬기장으로 얼마나 많은 전사한 해병전우들의  시체들이 실려왔는지? 어느날은 해병전우들의 시체가 두곂으로 쌓아서 실려오기도 했다

비행장을 한바퀴 돌아보고 나서 이희상 전우는 갑자기 목이메인면서 눈물을 흘리신다 고맙다고 살아생전에 이곳을 올줄 상상도 못했는데 너희들때문에 50년만에 이곳찿아와보니 전사한 전우들 생각에 눈물을 흘리시며 목이메이신다  현제 시의원으로 할동하고  계시는 이희상 부인께서도 같이눈물을 흘리신다 작은며누리가 시어머님의 눈물흘리신 모습을 보고 멋젓게웃고있다

 

방송국에 근무하는 작은 며누리가 아버님이 참전했던 당시시항을 아버님으로 부터 설명듣고있다

50년만에 이곳 참전지역을 구경시켜준 자식들에게 너무도고맙다면서 작은며누리하고 대화을나누고있는 이희상 전우 이희상 전우는 헬기장에서 해병으로서는 단둘만이

근무한 김기영 하사을 보고싶다고한다 당시에고향이 포항인것 같은데 자세히는 몰르겠다고 한다 www.vietnamgo.co.kr 이남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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