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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로 호이안 추라이로 참전하신 분들은 다낭 대리석산 천연동굴과 대리석 조각품 쟈큐성당 6중대지나서 1.000년전에 건축된 참파왕국 미숀 유적지을 구경해보세요

 

세계전쟁사에 길이빛나는 1967년  북베트남 정규군 1개대대 병력이 청용11중대을 야간에 공격했으나 7시간동안 전투끝에 북베트남군 420 명을 사살하고 승리한 전투지역지금 11중대그자리에 베트남 전승비가 서있다 비문에는 1967년 베트남군이 남조선 군대 병역 420명을 사살하고 승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어는쪽 기록이 맞는지 의문이남는다

 

                                  1966년-1967년 참전 해병 168기 이희상 전우와 짜빈동 11중대 에서 베트남군 전승비앞에서

 

                      남쪽 베트남군인 중사출신 12년전부터 알게된 다낭에 탄 이 짜빈동 11중대에 서있는 베트남 전승비 내용을 설명해주고있다

 

호이안 여단본부 자리는 전채가 두곳의 고급리죠트가 들어서서 흔적도없이 사라지고없다 6살때부터 호이안 여단본부 근처에서 살고있는 말못하는 벙어리가 여단장 사무실앞에 서있던 해병 앵카 세멘트 구조물만 자기집에다 가저다 놓고 보관중이다 경비중대가 주둔한 공동묘지근처는 그대로남아 있다 앵카앞에서 이희상 전우 당시 사진과대조해본다

 

                                                         미숀유적지 정문앞에서 가족과 같이 구경온 우주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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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해병194기 전적지 탐방 2014년2월

           1967년과196819.69년도에 참전한 해병대원들이 베트남전적지 방문

              기  간:2014년2월22일~2014년 2월27일

              지  역: 호이안 여단본부,츄라이 여단본부,자큐6중대 방석 등

              참가자: 해병194기

 

                                               방문지역 지도

큰 지도에서 월남전 한국군 주둔지 및 작전지역 보기

 


                         호이안 여단본부 앞에서



해병대 앵카가 서있던 세멘구조물앞에서




여단본부앞 해변 모래사장은 다낭까지 길게연결되어있다


디안반 군청 작은호수가있는곳은 변함없이 그대로 있다 이곳 에 1개중대가 주둔했다


추라이 여단본부에 도착하여 전쟁당시 전사한 해병전우들과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베트남군인 전사자 들의 명복을빌기위해 제사상을 차리고있다




 

 

 

 

추라이 여단본부 장글속에 남아있는 헬리콥타장 45년전 모습그대로 장글속에 남아있다

 

 

호이안 들어가는삼거리 이곳에 근무당시 13살 꼬마 어린이가 해병대 추럭을 폭파하여 많은사망자와 해병대 추럭이 산산조각이 나고 일부해병대원은 폭발후폭풍으로 논바닥으로 날아가 버린곳이다 당시사항을 설명하는 참전해병대원 

 

  

 

http://vietnamwarstory.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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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과거의 호이안 여단본부 연병장


            

                                    

아래:호이안 청룡여단 2009년1월 현재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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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명 ~ 百年 靑龍 - (5부) - 사라지는 호이안.

後 靑龍 

 

 

-- 나를 지나가면 슬픔의 거리가 있고

-- 나를 지나가면 영원한 괴로움이있고

-- 나를 지나가면 절망의 백성이 있네 



다낭항에 상륙한 청룡 용사들 께서

호이안 여단 본부로 
월남전 적응 훈련을 받으러 가시던

다낭의 다리에 서니
바람이 몹시 불었다.



바람 부는 다낭 다리에 서니

단테의 신곡 지옥편 제 3가의 유명한 구절이 떠올랐다.



월남 전선에 첫발을 디딘 후
이 다리를 건너서

여단 본부로 가시던 님들의 심사가 어떠하셨을까 ??????



요즘은 차이나 비치 앞으로 해서

대리석 산과 ~ 바닷가 사이로 ~ 

새길이 뚫려서 단숨에 호이안까지 갑니다.


(오승일 선배님의 차이나 비치 자료사진)

호된 작전이 끝나고
잠시 휴식을 취하며

미제 맥주를 마셨다는 차이나 비치는 ---


(현재의 차이나 비치)

인적은 끊어지고

드센 남지나 물결만이

그 시절 이야기를 전하려는듯 ~ 끊임없이 밀려 왔읍니다.



호이안 ~ !!!

청룡 부대 본부 ~ !!!

그 자리를 1년만에 다시 찾으니

골프장을 건설한다고 위병소 앞으로 큰길을 뚫고있고



대형 해병 앙카와
참모장 실은



무엇으로 개조하려는지
망이 쳐저있어서

참으로 안타까웠읍니다.



여단 본부 법무감으로 근무하신
200자 청룡 선배님께서는

앙카 우측 ~ 위 건물을 ~ 여단장실로 기억하시고



좌측 위 건물을 ~ 
군수 참모실로 기억을 하시며



앙카 뒷 건물을 

참모장실로 기억을해 주셨읍니다.



여단 본부 통신

지하 상황실 터를 확인하시는 
선배님은 감회에 젖어 마지 않으셨읍니다.



점점 부서지고
쓰러져가는

청룡 부대의 터를 뒤로하고



구정 공세때
여단 본부를 직접 노린 적들과
치열한 전투를 치룬 

공동묘지터를 찾아서 

아껴 두웠던 술한잔 올리니



그 시절의 --- 
스무살 얼굴로 떠오르는 ----

전우들이 생각나시는
청룡 선배님의 안경이 딱아도 딱아도 흐려지는것을
어쩌지 ~ 어쩌지 못했읍니다.



전우여 ~ 청룡 용사여 !!

님들이 피흘려 시들어간 산하에 오늘와 다시보니

여기는 여전히 거치른 타국이구려



뜨거운 전선에 님들을 두고 돌아갔던  수 십년

이제라도 찾아와 속죄의 음복 한 사발로 통곡하노니

님 이여 ~ 청룡 전우여 ~ 



살아 남은, 
살아서 돌아온 우리들의 변명이 모자라거든

우리를 인도한 후 청룡의 정성으로 그 죄를 탕감해 주시구려.



그날 그 자리에 

타국의 이름모를 풀들이 무성히도 자라고

님들의 선혈 자국이 풍우에 씻겨 갔지만




가난했던 조국이 님들을 잊지않고 영원히 기억토록

우리의 발길을 끊지 않으려니 님이여

이제 ~ 이제라도 편히 쉬시라.

2006년 3월 살아남은 청룡





님들을 
만나느라

해지는줄도 모르다가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릴때

호이안을 건너다 보는 개활 습지에

그렇게

그렇게

어둠이 찾아왔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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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단장 집무실 앞엔 늘 커다란 앙카를 세워 놓았었다.


지금의 여단장 집무실 앞 ~.
앙카는 없어 지고
어지러운 전선이 거미줄처럼 ~ 거미줄이 전선처럼 엉켜있다.





그 당시의 여단 본부 -- 

해병 앙카가 있는 곳이 여단장 집무실. 



현재의 여단 본부 -- 
마방 ~ 말들의 놀이터로 변해있다.




좌측 ~ 그러니까  ~ 지점은 교회 건물로 추측되며 ~ 

~ 국기 계양대가 선명히 남아있다.


(분홍색 빗금친 지점의 병사들)

여단장 집무실을 지나 ~ .
바다 쪽으로 가는길에 아직도 선명히 남아있는 건물들.



천막을 치고 지낸 ~ 초창기의 호이안 시절 ~ 

이기원 선배님의 사진첩은 수 십 년을 지나면서도

차마 ~ 차마 바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병사는 비록 허물어 졌지만 ~ 바닷가 쪽을 향해 걸어가는  靑龍 눈에는 지금이라도 성난 눈을 부릅뜬 호이안의 청룡들이  완전 무장을 하고 뛰쳐 나오실 것만 같아 그렇게 든든 할 수가 없었다.



~ 지점.

여단 본부 가운데 길을 따라 ~ 바닷가 쪽으로 가다보면
우측이 연병장인데 ~ 지금은 휴양지 콘도가 들어서고있다.



여단 본부를 가로질러 바다 쪽으로 가는길에
어느새 동네 꼬마들이 

친구가 되어 따라와 주었다.


(154기 이기원 선배님의 사진 첩)

"




여기가 무엇을 하시던 곳일까 ? 세멘장 같기도 하고 --- 



해군 병원으로 기억 하시는 분도 계신다.본부 병원에서 응급 처치를 하시고중환자는 필리핀 미 해군 병원으로 후송을 가셨다고 하신다.



청룡이 철수하고 월맹 군이 이곳에 와서 무슨 무슨 소리들을 했을까 ????



바람 부는 연병장뜨거운 연병장엔 어느새 차이나 비치 휴양소가 들어서고 있었읍니다.



연병장 -- 
이곳 쯤에선 무엇을 하셨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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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낭 차이나비치 해변과 청용 여단본부앞 해변  

 

다낭 차이나 비치 해수욕장은 다낭해변에서-마블마운틴 (오행산)거처  호이안 1968년에 한국군

해병여단 본부가 자리잡은 해변까지 수십키로 미터달하는 아름다운 해변이 길게 펼처 있다

날씨가 맑은날이면 호이안 여단본부 해변에서 다낭 시내가  육안으로도 보인다

불과 2005년도에 만해도 해변이 이렇게 반듯히 정리되지 않았으나 

지금은 세계적인 관광 해변을 만들기 위해 대형카지노장과 하이트호텔

리죠트 세게적이 유명 호텔체인점이 한참공사중이고 또 건설되어 관광객을 받고있다

 

다낭해변에서 멀리 산밑에 대형 불상이 서있다 

 

지난번 태풍으로 해수욕장이 엉망이였으나 군인들을 동원해서 해변을 치우고

부서진 방파제도 한참보수중에 있다

 

다낭해변 차이나 비치에서 마불마운틴 산이 선명이 보인다 

 

 

태풍으로 부서진 도로을 보수중이다 

 

 

해변가에는 바구니 배들이 많이 보인다

바구니배는 대나무로 역어서 둥굴게 만들고 물이못들어오게 물소 똥으로

방수처리을 했으나 지금은 방수페인트로 해변에서 작업중이다 

 

 

바구니 배들이 많은 오른쪽지역 해변은 다낭에서 유명한  고급 식당가들이

많이 들어서있다 이곳에는 비둘기부대로 참전하신 전우분도 이곳에

한국식당을 새로짖고 영업중에있다

 

오른쪽이 식당가 거리다 

 

시원하게 뻗은 해변 4차선 도로가 한가롭다 

 

아침6시 다낭시민들이 해변에서 수영과 운동을 즐기고있다 

 

 

아침시간 시민들이 운동하는 시간 멀리 바다에 그물을 앞으로 치고 그물을새우채

배들이 때지어 지나간다 무슨고기을 잡을 배인지 궁굼하다?

 

이지역은 태풍으로 정비가 끝나지않아 수영금지표시판이 서있다

   

이곳은 1968년도에 청용부대 여단본부가 자리한 해변이다

날씨가 좋아서 바다가운데 산이 선명이보인다 

 

다낭해변에서 이곳 호이안 랑키 캄안지역까지 수십키로미터에 해변이 펼처있다 

 

청용 여단본부앞 해변 멀리 다낭해변 끝자락 산에 불상이 히미하게 보인다

 

호이안 청용여단 본부 해변에서 다낭 오행산과 다낭 시내가 히미하게 보인다

 

여단본부앞에서 바라본 바다가운데 산 옛날에는 이곳 산을 청용부대원들은 원숭이 산이라 불럿다고 한다 

 

인적이 없는 여단본부앞 해변에  웬 베트남 꽁까이두사람이  나타나서 바다로 향하고있다

 

여단본부가 있어던 해변에는 지금도 유명 리죠트와 골프장이 들어서있다 

 

오늘처럼  파란바다와 잔잔한 파도 구름한점없는 날씨는 많지 않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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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안 여행 미손 참파 유적지  

 

호이안 미손 참파 유적지는 6세기부터 12세기 까지 베트남중부지방으로 참파족이지배하던 지역이다 12세기에 참파족은 베트족 에게 멸망하고 지금의 참파족은 베트남 소수 민족으로 살아 가고 있다. 6세기부터12세기까지 번성하던 참파.유적이 호이안 미숀.지역 깊은.산속 장글속에

부서진채 그대로 방치되어있다

참파유적지

 

 

많은 서양 관광객이 오전 이면 찾아 온다 

 

해병 정찬영 병장 호이안1대대을 방문하고 참파 유적지 관광 

 

  

미군과 한국해병대가 사용하던 케네디 찝차 유적지 손님을 실어 나른다

  

운전수에게 물으니 1965년도에 생산 된 것이라고 한다. 내부는 녹이 슬고 고철이다 그리나 아직도 잘 굴러 다닌다고 한다

이곳 산속 다리를 건너야 유적지 입구다. 입구에서부터 또2키로미터을케네디찝차로 실어 나른다

 

 

 

 

 

 

 

 

 

 

 

 

 

 

 

 

 

 

참파 왕국 시대 문자로 예상되나 아직까지 베트남에서 해석이 안 된다고 한다

 

 

 

 

 

 

 

 

삼면이 높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있고 계곡과 산길을 따라 들어 가면 넓은 분지가 나온다

 

 

왕에 무덤으로 추측되는  돌로 만든 형태 두개가 나란히 있는데 한 개는 도굴 된 상태로 흔적만 남아있다

 

 

 

정찬영 해병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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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안 청룡여단본부 2009년1월 현제모습  

 

정찬영 해병은 1969년도에 참전하여 여단본부 포대에서2개월 참전하고 1대대에서 1년동안 참전하고 1971년 귀국하였다. 현재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교직에 있으면서 겨울방학을 이용해서 부인과같이 7박8일동안전적지 여행과 베트남여행을 하고 귀국했다

   

여단 본부 국기봉과 여단 본부 부속 건물은 방치된 채 40년전그대로이다

청룡여단앞 청룡기지 앵카가 서있던 시멘트 구조물과 정찬영 해병

                      40십년전 청룡기지앵카

청룡 여단장 집무실 건물은 페가가 된 채 공사장인부들의 임시식당으로 이용되고 있다

현재 여단본부 지역은 대규모 리죠트들이 들어서고 일부는 9홀 골프장으로 개발되었다

40년전의 기억을 더듬고 있는 정찬영 해병

여단본부 앞 바다가 해변 지금은 리죠트가들어서 해변 앞 모래 사장까지 개발해 놓았다

40십년전 여단본부와 차이나비치 미군 비행장

해병 여단본부 앞 연병장과 부대자리와 해변가는 프랑스에서 투자한 대형 리죠트 건물로 변했다

68년도 여단본부 진지 구축작업 중 베트공의 습격으로 수십명을 매장하고 콘크리트 표시을 해놓은 장소는 프랑스리죠트 정원으로 변해서 정학한 위치을 찿을수가 없다

(2005년구정무렵사진 해병 군기반장 구본갑해병이 위치확인촬영중)

[진지구축작업중 적의 저격으로 산화한 전우 앞에 명복을 비는 이동호부대장과 김치현대대장]

[먼저간 전우의 명복을 비는 전장의 용사모습]
68년 호이안 여단본부 진지 구축 작업 중 전사한 전우를 매장하고 거수 경례을 하는 이동호

방학기간을 이용해서 한국에 역사선생님 들이라고 하는 분들이 (30대초.중반 정도)해병대들이 민간인들을 확살 했다는 지역을 찿아 왔다고 저보고 알려달라고 하기에 이 젊은 선생들이 베트남전쟁을 이해하지 못하고 온 것 같아서 알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해서 베트남전쟁은 전면전이 아니고

전국토 마을이 마을마다 적게는 수명에서 많게는 수십명씩 마을사람들로 위장해서 살고 있으면서 수많은 한국군인들을 사살했다 고 알려주니 일부 선생님들은 이해를 한것도

선생님들과 많은 얘기를 했으나 다음 기회에 하겠습니다

30대초.중반 선생님들의 얼굴사진은 공개를 하지 못함을 양해 바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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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엔반 1대대로 참전한 정찬영해병 호이안 관광  

 

호이안은 베트남의 중부 다낭에서 남동쪽으로 30km 떨어진 15∼19세기의 조그만 항구도시다. 15세기 이후 동중국해의 해상 무역중개지로 크게 융성했던 이곳에는 일본, 중국, 베트남, 프랑스, 포르투갈 상인들이 세운 다양한 건축들이 남아 있다. 17세기 말에는 약 6000명의 중국인, 1000명의 일본인이 베트남인과 함께 밀착되어 살면서 여러 문화가 공생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 당시 쓰인 중국과 인근 국가들의 역사서적에는 이곳을 파이포 혹은 카이포라고 불렸음을 알 수 있다. 이곳 호이안이 15세기경 베트남에 의해 정복된 이후에도 많은 서양의 상선이 도착하면서 서양문물이 들어오는 창구 역할을 하게 된다. 16세기경 포르투갈 상인들이 선교사와 함께 들어오면서 기독교가 전파되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서 응우옌 왕조가 외국 세력을 봉쇄하는 쇄국정책을 쓰게 됨에 따라 이곳 경제는 큰 타격을 받게 되었고 인근에 있는 다낭이 크게 커지자 19세기 말부터 이곳은 성장을 멈춘 도시가 되어 오늘날까지 고대의 모습을 간직하게 됨으로써 동남아시아에서도 아주 독특한 중세 도시구조와 목조 건축물들이 파괴되지 않고 남아 있다.
 현재 호이안에는 목조로 된 고가구와 화교가 세운 복건회관(福建會館) 등의 844개의 역사적인 중국식 건물들이 있다.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유네스코)는 동남아시아에서 몇 안 되는 중요한 중세 무역항구라는 역사적 가치, 그리고 일본 중국 베트남 등의 다양한 목조 건축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희귀성을 들어 1999년 호이안 역사지구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였다.

현재 유산 등재가 된 곳은 투봉 강 북쪽 강안을 따라 형성된 중세 촌락지역으로 이곳에는 사원, 고택, 묘당, 민가, 회당 등 1000여 점 이상의 고대 건축물이 밀집되어 있고 강가를 따라 형성된 마을뿐 아니라 강 자체도 보존지역으로 묶어 자연환경에 대한 절대 보존정책을 함께 실시하고 있다

1967년부터 한국군 해병여단에 참전한 지역 이기도 하다

 

 

시간이 멈춰버린 영화 세트장 같은 호이안 구시가지 500년전 도로가 그대로 보존 된 곳이다

 

 

200년전에 건축된 목조건물 내부에서는 다양한 호이안 특산물을 팔고 있다

 

 

 

목제로 깎아 만든 손이24개달린 힌두교상 위에 청년이 4개월에걸처서 완성 했다고 한다USD1.000

 

 

정찬영 부부가 호이안 구 도시를 시클로로 관광 중이다

 

 

220년전에 건축된 일본사람들이 만든 목조다리 다리를 건너면 일본인 마을이 나온다

 

이곳 다리는 베트남 돈 2만동짜리에 인쇄 될 정도로 유명한 건축양식이다

 

 

 

복건회관에 내부에 조각된 머리가 여려게 달린 용모습

 

 

중국무역 상인들의 회관으로 사용하던 220년전에 건축된 복건회관

 

 

 

투본강변의 호이안 구시가지

 

 

목조다리 일본교 내부모습

 

 

목조다리을 건너면 일본인들이 거주하던 동래가나온다

 

 

투본강 을 가로지르는 다리

 

 

투본강 변에 많은 열데나무가많은  포호이리죠트

 

 

포호이 리죠트 실내수영장 앞에서 정찬영 부부 20대부부포즈을 취하고 한컷

 

 

투본강과 리죠트수영장이 잘어울리는 포호이 리죠트수영장 1월은 중부지방 날씨가 추워서

 

수영은 할수없고 사진에만 담아왓습니다

 

 

투본강변의 리죠트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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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안 청용부대 여단본부와 헌병대 경비중대터  

베트남 고도 호이안 베트남전쟁당시 해병대 청용부대가 1967년부터 주둔한 여단터와 헌병대

경비중대 터가 지금도 옛날건물 그대로남았다 몇개월전에 이곳을 방문했을때  여단본부건물일부을 철거중이었으나  문작만 철거되고 건물차채는 그대로 남아있다 이곳은 베트남 군인들 자산이라 리죠트건설 회사와 아직 완전하게 타협을 보지못햇다고 한다 이곳도 곳 철거될거라고한다




청용여단 본부 사무실 건물 문짝이 철거된채 흉물스럽게 40년새월을

버티고있다 

여단본부 부속건물들  

최종상 황목 해병 67년도 68년도에 이곳에서 참전했다 

68년도에 여단본부 통신병으로 참전하여 이자리에서 군인복장으로

찍은 사진을 가저와서 똑같이 제현해본 황목 해병 

68년도에 이자리에서 찍은 사진을  마을주민과 보고있다

문짝은 철거되고 페인트는 벼켜지고 흉물스런 여단본부건물 

한국에 해병대가왔다고 마을사람들이 나와서  서로가 설명을 해주고있다

1968년도 호이안 탑앞에서 황목해병 오른쪽 

2009년도 10월7일 같은 장소에서 황목해병 과 최종상해병 안내이남원 

중국사람들의 절터라 지금도 변함없이 그자리에 그대로다 

9월30일 태풍으로 여단본부앞 해변은 완전쓰레기장으로 변해있다 

해변에서 릴낙시로 낙시질하는 주민 

여단본부 해변에는 주의마을주민들이 태풍으로 밀려온 온갓 나무들을

땔감으로 쓰기위해  주어가고있다

바로해변가 카페에서

여단본부 연병장과 해변모래사장은 프랑스 고급리죠트로 변해있다 

여단 본부 건물이있던 뒤는 해변으로 도로가 새로나고 헌병중대와

경비중대가 주둔지역은 공터로 남아있다 

헌병 중대가 있던 곳에서 바라본 여단본부건물 

경비중대터 

여단본부앞 해변 밀려들어온 쓰래기더미에 묻혀잇다

5일동안 많이 치워 진것이라고 한다 

헌병중대가 있던 빈터 건너편 십자성 군수부대가 있던 자리도 공터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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