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SS FEED
  • <--!테스트-->

    나라를 위해, 가족을 위해...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싸웠다!

  • 아들아! 내 소중한 아들아! 반드시 살아돌아와야 한다.

  • 둘째야! 잘 댕겨오니라~ 건강해야 한다!

  • 파병... 그 힘찬 발걸음!

  • 승리를 위하여...

  • 조국를 위하여...

  • 민주주의를 위하여...

  • 전쟁의 끝을 향하여...

  • 돌아온 사람들...

  •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 베트남전쟁...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잊혀지기전에...

 

저작자 표시
신고
ⓒ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저작자 표시
신고
ⓒ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1969년 임영석 전우는 백마부대 29연대로 참전하였다 사회에서부터 운전병의 경력으로 29연대에 배속받고 있던중 1개소대병력이 닌호아에서 60키로 떨어진 보온 마투온

가는 1500미터 고지 산골짜기에 운전병으로 배속받고 참전했다 이지역은 달랏성에 속하는 보온 마투온에 아주큰 미군부대가 있었다고 한다 미군들이 보급품을 운반하기위해서는 오직첩첩산중 길을 구비구비 달려서 1500미터 고지에 올라서면 이곳 부터는 평지가 끝없이 이어지고 산길 주변에는 몬타나 족들만이 마을을 형성하고 살았다

미군들의 보급로을 지키기위해서 매일 아침이면 산길 중간중간에 1개소대 병력을 배치하고 오후 5시면 철수하기을 반복했다고 한다 워낙 깊숙한 산속이라 산에사는 베트공은

많아 보이지않아서 큰위험에 노출 되지는 않았으나 대장글로 이루어진 길옆에는 수백미터 낭떨어지가 많아서 무척 위험한 운전이었다 1개소대원들의 식량과 보급품 탄약까지 임영석 전우가 책임지고 보급품을 산속깊숙히 있는 소대까지 운반하다보니 항시 위험에 노출되었다고한다  이지역은 군대이면서 워낙 멀리 떨어저있는 산속이라 헌병도없고 오직 파견된 소대장이 이지역 대장 노릇을 했다고한다 과연 이곳은 어떻게 변했을까? 주의에 사람이라고는 몬나나 족들의 마을만 있어고 유일하게 1500미터 고지 평지에에 아주큰 주택이한채 있어서 매일 미군부대에서 휴발유을 실고와서 이집에서 하루에도 두번씩 쉬다가곤 했다 당시에 친절하게 대해주던 그집 아주머니는 지금도 살아계신지

궁굼하다 유일 하게 이곳 외딴집에는 당시에도 맥주며 잡동사니을 파는 곳이였다 군대서 나오는 군용품과 휴발유 등도 사고 차량까지 가추고 사는집이였다

 

 

 

닌호아 삼거리에서 달랏방향으로 가다보면 드넓은 닌호아 벌판이나온다 벌판을 약40키로 달리다보면 중간중간에 베트남 군이들이 주둔한 군부대가 두군대 나온다

부대을지나서 들판이 끝나는지점에서부터 산악지역으로 연결된다

 

 

산정상을 올라오면 산속에 더이상 산으로 오르는 길은 끝나고 양쪽이 산이면서 평지길이 나온다 앞에보이는 작은산이 소대가주둔했던지역이다

지금은 몇채에 집들이 들어서있고 산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생필품을 파는 오토바이 아주머니가 길가에 서있다

 

 

 

소대가 주둔했던 산은 울창하게 열대나무가 우거저있고 몬타나 사람들이 살던 집은 버러진채 방치되어있다

 

 

임영석 전우께서 참전당시 수없이 오고가던 길에 서있다

 

 

 

이지역은 전쟁 당시에 몬타나 족이 집단으로 살던지역이다 지금은 베트남정부정책으로 몬타나 족들이 길가옆으로 이전하여 살고있다

전쟁당시에 이곳마을 몬타나 촌장과 주민들에게 서로가 협력하며 지내고했다 당시에 몬타나 족들은어디에서 총을 구햇는지 몰르나 동래을 교대로 총을 들고 지키고있었고 이곳으로 흘르는 작은개울물을 먹고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에마을 자리는 작은 다락논으로 변하여 몬나나 족들의 식량을 보급하는곳으로 변해있다

 

 

부인과 같이 참전지역에 오셨다

 

 

 

 

 

 

 

전쟁당시에 하루에 두번씩 들려서 쉬고가던 산속에 가게는 46년전 집그대로 있고 넓은추차장도 그대로다 그러나 당시에 집주인 아주머니는 없고

빈집에 아주머니에 영정사진만 모셔저있고 주인아들들은 도시에서 살고있다고 주의에 몬타나 주민들이 말해준다

 

 

46년전 주택은 그대론데 보고싶은 아주머니는 없고 주택과 넓은 땅도 방치된채 버려저있다

 

 

 

 

 

소대원을 실고 가던중 베트공의 포공격을 받고 낭떨어지로 차량이 굴러 떨어 졌으나 워낙 숲이 많이 우거저서 단한명의 부상자도없이 살아 난것이 가장 기역에

남는다 그러니 워낙 오래된 세월이고 숲이우거저있어 그지역은 어디인지 기억하지 못 하겠다

www.vietnamgo.o.kr  이남원 촬영

 

 

 

저작자 표시
신고
ⓒ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백마사령부와 29연대 휴양소 동하이 휴양소 휴양소자리에 베트남 리죠트가 들어와 있다

 

44년전에 동하이 휴양소에서 이상필전우가 동래 어린이들과 찍은사진

신고
ⓒ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올해로 파월53주년이 되는해입니다.

 

"이병장의 베트남전쟁......." 관리자 이병장입니다!

2013년부터 베트남 전쟁 자료를 수집하여 베트남전쟁의 WEB DOCUMENTARY의 틀을 잡아가고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자료를 발굴 업로드하도록하겠습니다.

선배님들의 피와땀으로 얼룩진 1960년대의 그 노고를 자료로 접할때마다

늘 숙연해지고 있습니다.

더욱더 자료발굴에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곤합니다.

 

 

파월당시 주인공이시거나 혹은 그 가족분들께서 전적지 자료(파월주둔지 등)가 필요하신분들은

이병장 이메일(2kiking@hanmail.net)로 연락주시면 도움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해당부대 주월사 맹호 백마 십자성 청룡 백구 공지단 포함하여 파월 근무 기간 및 중대단위명만 주시면 됩니다.

당시 사진자료도 있으시면 꼭 챙겨주셔서 보내시면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2017년3월23일

 

이병장 올림

 

이메일:2kiking@hanmail.net

신고

'공지사항 > 공지사항'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트남 전적지 문의 관련  (0) 2017.04.05
베트남 전적지 자문  (0) 2017.03.23
이병장 블로그 개편 안내  (0) 2017.03.22
ⓒ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이정훈일병은68년도 나트랑 해변 으로 상륙하여 백마28연대9중대 로 참전했다 일등병으로 69년도 도깨비작전에 첨병으로 작전에 참가 하여 단독으로 산중에서 베트공일당 6명이 점심을 먹고휴식을취하고있는 베트공6명을발견하고 조심스럽게접근 하여m16소총으로 자동발사 하여 베트공 6명 을사살 하고 Ak 와 k무지 기관총을습득한 전과을 올리고 인현무공훈장과 미국정부훈장 월남정부훈장믈 받았다 딸만3명을둔 이정훈전우 3명의 딸의 주선으로46년만에 전적지방문

2016년1월 5일 작성

 

 

 백마 사단 사령부연병장은 고삐 없는 소때들이 휴식을 취하고있다

 

 

 

 6몀의 베트공을 사살하고 백마사령부 연병장에서 훈장을 받았던 장소 연병장과 사열대가 그대로 남아있다

신고
ⓒ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주노복 전우께서는 1968년도에 맹호기갑연대 1대대 2중대 보병으로 참전하여 수많은 매복작전과 전투에 참전하였다 큰아들 주원석군이 아버님을 모시고 아버님 참전지역을 찿아왔다 주노복 전우님은 보병으로 전투에만 참전하다 귀국해서  참전지역이 48년전 허술한가부촌과 당시에 기억만 남아있는듯하신다 처음에는 부대주둔지도

틀인것같고 빈케지역도 않인것 같고 다리에서 경계근무을 서던 다리도 새로운다리로 건설되어 기역이 잘나지 않은신듯하다

퀴논 지역은 11월까지 우기철이라 아침부터 하늘이 비구름으로 덥혀있다 호텔9층에서 내려다본 퀴논 해수욕장은 아름답다

아들 원석군이 인천공항 한진에서 근무한관계로 한진과 맹호부대에서 건축해준 퀴논 문화 쎈타을 찿아왔다

퀴논 문화 쎈타에는 내가15년전에 박물관 창고에서 찍었던  문화 쎈타 동판을 지금은 전시을 해놓고있다

1969 맹호사단 윤필영 잔군이 기증하것이라고 동판에 써있다

 

맹호 기갑연대 1대대 지역은 지금도 출입금지 간판이 붙어있다

맹호기갑연대 1대대지역은 지금도 군인들이 관리지역이라 출입금지지역이다 이사실을 몰르고 대대지역을 돌아보고 나오는데 군인경찰 4명이 오토바이을 타고

찾아와서 길을 잘못들었다고 변명하고 간신히 빠져나올수가 있었다 다음 맹호기갑연대 1대대 지역을 찾아가면 조심해서 여행해야겠다

위건물은 1대대가 사용하던 건물 그대로 남아있다

 

 

맹호 기갑연대 1대대가 주둔했던 빈케지역

 

 

 

 

 

 

 

 

12중대가 참전했던 무명고지이래 가부촌은 지금은 이지역 초등학교가 들어서있다 마침 30년째 이곳초등학교에서 근무하신 여자선생님이 2중대 에서 전사한 한국사람

위령제을 지내기위해 작년에 왔다가 갔다고알려준다

 

 

 

한국부대가 참전했던 지역은 위와같이 열대나무로 심어저있다

 

 

 

 

2중대가 주둔했던 무명고지는 열대나무로 심어저있고 고지에는 큰안테나가 서있고 관리하는듯한 집이있어서 혹시군인들이 주둔하고있지 않나 싶어서 그냥내려왔다

 

 

 

 

 

1968년도에 참전당시에는 지금서있는 길로 다리가 연결되었고 2중대 소대원이 다리건너편에 막사을 짖고 경계을 섰던 곳인데 위로 새로운 다리가 건설되어있다

이곳 다리근처에서 1대대장이 베트공의뷰비츄랩으로 전사했다고한다

 

 

68년 19번도로 16번 다리 근처 이곳에서도 2중대 1개소대가 나와서 경계근무을 섰다고한다

맹호부대가 최초로 퀴논 백사장으로 상륙하는 사진이 남아있다

                www.vietnamgo.co.kr  베트남갑시다 이남원 촬영

신고
ⓒ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투이호아 28연대 전적지를 가는길 이지역은 일행중 이경우 씨가 포병으로 966포병 알파 포대에 근무한지역이다

백마사단 사령부에서 투이호아를 갈려면 유명한 접전지역인 혼바산을 넘는다

혼바산(Nui Hon Ba)은 월남의 중심핵인 안남산맥의 남쪽중추로 뻗어 내려온 다비아(Da Via)산과 연결된

천험의 산악지대이다.

앞뒤 급경사 지역에는 온통 화강암으로 되어있는 큰바위가 많고 천연동굴이 끝없이 연결되어 있는 데다가

울창한 관목과 가시덤풀로 뒤덮혀 있는 밀림이 서로 엉켜서 한발자욱 접근조차도 어려운 곳이다.

사이공에서 하노이간 남북으로 이어진 월남에서 제일 중요한 1번도로 및 철도는 여러 험산을 끼고 돌다가

칸호아성 최 북단인 닌호아를 거치면서 백마28연대와 십자성 12군수지원대대가 있는 푸옌성으로 들어서는

이곳 혼바산에서는 그 험준한 산허리를 행중구비구비끼고 직접 넘어야만 했다.

그 아래에는 투이호아 비행장(Air Base) 의 미군들에게 군수물자를 보급하는 붕노(Vung Ro)만 항구 선착장

이 있어서 아군들에게도 너무도 중요한 지역이다.

월맹군 전승탐이 세워젓다 날씨가흐려 청룡바위는 보이지않는다

평화협정 발효 1시간전 29연대 1대대장 유재문중령이 적의기습으로 전사한다리

9사단 29연대 1대대장 류재문 중령은 1973년 1월 28일 아침 파월 한국군의 마지막 전투에서 전사했다

. 그 전날 조인된 베트남평화협정이 발효되기 직전이었다.

그에 앞서 68년부터 시작된 평화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주월사령부는 이미 하달된 철군계획을 1월 27일 12시부로 시행하게 했다.

대부분의 철군 준비는 차질 없이 수행됐다. 그러나 28연대의 뚜이호아 지역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 연대가 공항으로 이동하기 위해 필요한 1번 도로상의 호아선교가 27일 23시쯤 베트콩에 의해 폭파되고 교량을 경계하던 남베트남군 소대진지가 피탈된 것이다.

베트콩의 공격은 “휴전 발효 당시의 지배지역을 휴전 후에도 인정한다”는

협정조항에 따라 지배지역에 해방전선(NLF)의 깃발을 게양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역 책임을 담당하고 있던 류중령은 날이 밝자 3중대에서 차출한 1개 분대(11명)를 자신이 직접 인솔, 현장으로 향했다

. 평화협정 발효가 불과 1시간밖에 남지 않은 오전 7시쯤, 현장에 도착한 류중령은 교량에 꽂혀 있는 해방전선의 기를 발견했다.

“깃발을 뽑아오라”는 대대장의 지시에 따라 교량에 접근한 심재철 중사가 그 중 1개를 뽑아 왔다.

그때 교량 부근에는 베트콩이 매복해 있었다. 베트콩의 매복을 알지 못했던 대대장은 교량 주변 수색을 명령했다.

수색대가 교량을 향해 나가던 7시 40분쯤, 은거하고 있던 베트콩들은 수색대를 향해 기습사격을 퍼부었다.

무방비상태에 있던 지휘부는 대대장을 포함 6명이 전사했다.

수색대의 요청에 따라 포병이 집중포격을 가했으나 동굴 속에서 응사하고 있는 베트콩을 제압하지 못했다. 전사자의 유해 2구도 회수하지 못했다.

그러나 8시부로 평화협정이 발효됨에 따라 “포격을 멈추고 더 이상의 전투도 금지하라”는 상급부대 명령이 접수됐다. 결국 연대장이 나서 장갑차에 설치된 확성기를 이용 베트콩에게 협상안을 제시했다. “아군의 유해가 회수되면 전투를 종료하고 즉각 본국으로 철군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방송과 협상은 2일 동안 계속됐다. 그 결과 29일 오후 백색기를 든 베트콩이 도로 위에 아군의 유해를 가져다 놓고 돌아간 다음 유해를 회수함으로써 상황은 끝났다.

유해가 회수된 후인 2월 1일 남베트남군이 29연대의 지원 하에 수색작전을 계속해 베트콩에 점령된 소대진지를 탈환하고 교량을 복구했다. 그 후 한국군의 철군은 차질 없이 진행됐다. 본대가 3월 14까지, 후발대가 23일 철수를 완료함으로써 8년 6개월간에 걸친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이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백마 28연대 1대대본부와 966포대가위치한 지역에 투이호아 짭짜이산 이보인다

일행중 이경우씨가 근무한 966포대 자리에 ....빈터가 그대로

투이호아 호탤숙소로 가는길 에 짭짜이산 측면 바위산이보인다

당시는 적군지역이라 접근이어려워 이쪽에선처음 본다는 이경우씨 말이다

투이호아 평야지대

혼바산에서 바라본 붕로만

투이호아 시내

 


신고
ⓒ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