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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Looking for Blue Dragon Marine Vietnam Veterans   

Dear Sirs,

My name is Huong Ly, Vietnamese currently live and work for the British Broadcasting
Corporation in London, United Kingdom. I am writing to you with a personal request
after reaching out to Mr Kim Poong.

I am trying to locate some South Korean Marines of the Blue Dragon Brigade also called
2nd Marine Division, ROK, who were taking part in the Vietnam War and stationed  near or
in Duy Xuyen district of Quang Nam province, central Vietnam,  in early March 1969.

The reason I would like to look for them is because they might have some information
about what happened to my mother, Duong Thi Xuan Quy, a war journalist/writer for
North Vietnam, who was killed on the evening of 8 March, 1969, during a cordon and
search operation by the South Korean Blue Dragon Marine Brigade in Thi Thai hamlet of  
Xuyen Tan village, Duy Xuyen district ( south of Da Nang).  

According to the information we gathered after the war from local paramilitary and Viet Cong
personnel whom my mother was accompanying on 8 March,  1969, she had been in an
underground bunker with  them for a few days hiding since the Blue Dragon Marines moved
into the area around 4 March 1969. They soon realised that it was a cordon and search
operation, and that the marines would stay for days, possibly weeks, assaulting and bulldozing
the area in order to find enemy arms cache and fighters. So between 8 and 9 pm on 8 March,
1969, the group, including my mother, decided to break out of their underground bunker,
attempting to escape.

We were told that one person in the group stumbled on an illumination mine, which exposed
them immediately. The South Korean Marines saw them and chased after them. My mother
with two Viet Congs jumped into a nearby dry well and then got shot from above.
She fell at the foot of one Viet Cong, who then lobbed a grenade to the marines to hold
them off. He then lifted the other Viet Cong who was injured, out of the well and escaped,
leaving my mother behind assuming that she was already dead.  As a journalist, she was
unarmed. The only belonging she had with her was a blue colour notebook and a pen.
We understand that since she was with Vietcongs, it was not necessary that the Blue Dragon
Marines would be able to distinguish her as a journalist.

The Blue Dragons remained in the area for days and when they finally left, a local Viet Cong
paramilitary unit moved in. The head of the unit said he had received information of two people
killed there during the operation, one female journalist (my mother), and the other was a local
Viet Cong official. He and his unit found the grave of the local official straight away because
it was marked with a cross sign made of twigs. They assumed the South Korean marines had
buried the official by the way the grave was done and marked, and also there were no villagers
living in the area at the time. They then searched for my mother. After digging up an area
nearby where they saw human blood abuzz with flies, they found nothing.  

Since the end of the war, my father, my mother’s family and I have come back to the area
numerous times and dug the whole area up with hope to find her remains but we have not
been successful.  We have been trying to access the Northern Vietnamese Army archive but
were told no one knew where the local army archive is or indeed, if there is such a thing.

Therefore I am appealing to you for any infomation. If you know any Blue Drangon Marine
serving in Vietnam at that time ( March 1969), could you please introduce him to me.

I have also written to the US Vietnam War veteran organisations and am pursuing official
routes with the same request, in case anyone might know someone who holds the information
that would help me to establish what actually happened to my mother. Maybe it would also
help me to find her remains one day.

I know this task is extremely difficult and painstaking. And I might not be able ever to find out
the truth. But for now I just would like to give it my best try possible. I will exhaust all avenues
I can find as the doors to people’s memories become closed with time.

I thank you in advance for your help.
Kind regards,

Huong Ly

Senior Broadcast Journalist
Planning Editor
Newsday
New Broadcasting House Zone 3B 3rd Floor
Portland Place
W1A 1AA
Tel: + 44 203 614 1152▶김 풍: 글 올린 베트남 출신 영국 여성 후옹 리 씨는 BBC 방송기획 편집자로 활동 중이며
베트남 전쟁 당시 1969년 3월 8일에 행방불명된 어머니 두옹 티 쑤안 키 여사에 관하여
작은 단서라도 알기 원하여 이 곳을 찾았습니다.

그녀의 가족들은 장기간에 걸쳐 베트남 정부와 미군당국의 관계자들에게 문의하였지만
문서 기록에 전혀 나타나지 않고 마지막으로 직접 관련이 있는 한국군에게 문의 하기로
결심하였습나다.

그분(모친)은 북베트남 편의 전쟁 취재 작가로서 활동했으며 1969년 3월 4일 부터 다낭 남쪽
광남성 두이 쑤엔 지방 쑤엔탄 마을 티 타이 부락에서 지역 차단 및 탐색 작전을 실시한 한국군
청룡에 의해 희생당한 것으로 조사되었읍니다.

며칠 간 지하 벙커에 베트콩들과 함께 숨어 지내던 일행은 3월 8일 밤 8시에서 9시 사이에
탏출을 시도했으나 조명불빛에 노출되어 추격당하던 중 마른 우물에 두명의 베트콩과 함께
말흔 우물에 피신 하였습니다,

그러나 총격을 받고 다른 한명과 그녀는 부상당하였으며 또 다른 한 베트콩은 수류탄을 던져
지연작전을 쓰면서 부상이 심한 어머니는 남겨두고 도망쳤습니다.
작전이 끝나서 한국군이 철수한 후에 베트콩 지역 조직의 조사에서 두명의 희생자가 나왔는데
하나는 지역 베트콩 임원이고 또 하나는 그녀(모친) 이었습니다.
그 베트콩 임원은 한국군이 매장하고 나뭇가지로 십자가 표시를 해 주어서 쉽게 시체를 찾았지만
그녀는 핏자국 외에는 흔적이 없었습니다.

알고 싶은 것은 한국군이 그 지역 어딘가에 매장해 주었는지 아니면 부상당한 몸으로 헤메다니다
어딘가 토굴에 묻혔는지 모두 궁금합니다.
상세한 내용을 한국군이 공식적으로 기록해 남기기는 어려웠겠지만 현장에 있었던 분은
개인적으로 기억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베트콩들과 함께 있었던 여성이 취재 기자(작가)라고 생각했던 분은 없었을 것 같습니다.

이 가족의 불행이 어두운 전쟁의 한 단면을 보여 주어서 가슴이 아픕니다.
이제 화해의 시대에서 함께 살고 있으니 협조할 수 있으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혹시 당시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신 전우나 비슷한 이야기를 들으신 전우가 계시면
010-7629-0275 (김풍)에게 연락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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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위 동영상은 다낭항이 보이는 한국인 식당에서,
 
백형배 춤 제대로 춘다, ㅉㅉㅉ

 

베트남 전적지 탐방 4일 째 되는 날 저녁 식사는 다낭항구가

바라보이는 한국인 식당에서 술잔을 돌리면서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그 옛날 베트남 격전지로 떠날 때 부산항 제3부두에

찾아오셨던 어머니, 아버지 연세보다도 훨씬 더 많은

나이에 다시 다낭항에 상륙한(?) 해병 194기 동기들의 마음속에는

희,비 쌍곡선이 머리를 스쳐가면서 만감이 교차했으리라!

 

반세기 전 다낭항에 처음 상륙했을 때에는 내가 과연

저 항구에서 귀국선을 탈 수 있을까? 아니면 영원히

다시 못 볼 항구로 남을 것인가! 두려움과 갈등으로

전우들의 손을 꼭 잡고 " 우리는 살아서 꼭 귀국선에 오르자"

이렇게 보장없는 약속을 했던 우리들이 아니였던가! 

 

그로부터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이 흘러 다시 찾은 베트남,

며칠간의 격전지를 탐방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생각해보니

 전쟁의 흔적은 간데없고 사상과 이념은 수구세력들만의

골동품으로 남아  옛 이야기로나  들을 수 있을 것 같으며

또한 변화의 속도도 (남북 관계는 빼고) 우리나라 '70년 대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활기 넘치는 거리마다 젊은이들의 일하는 모습에서

전쟁은 까맣게 잊혀져 감을 알 수 있었고 

새롭게 발전하는 모습만 보이는데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하던가!

그래서 우리는 다낭항을 다시 찾은 기념으로

술잔을 기울이며 여흥을 즐겼노라!

 

옛 월남과 월맹을 생각하니 이런말이 생각나네요

" 용서란 과거의 상처가 남은 삶을 지배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진 탁회장 뒤 바다 건너편에 육지가 아련히 보이는데

그 육지 앞
바다가 다낭 외항이다,

부산항에서 떠난 파월장병 수송선은 (업셔호 25,000톤급) 

1주일 만에 이 외항에 도착하는데

해병 장병들은 이곳에서 1박 후 새벽에 다낭항에 상륙한다 

 

탁회장아 사진을 보니 모습이 좀 거시기하다 ㅎㅎㅎ

 

사진 오른쪽이 다낭 시내 방향이고, 보이는 산 왼쪽 끝자락이

그 옛날 우리가 상륙하던 다낭항이다.

우리가 상륙하기 전날 밤에는 계속 함포소리가 들려왔고 

조명탄이 하늘을 밝게했으며,

상륙할 때 하늘에는 굉음을 울리며 전폭기가  날아 다녔는데 ~~

 

위 사진 1매, 아래 사진 7매는  다낭 앞 바다

조명균 부회장님

김두한과 한 판 벌려도 승산 있겠는데 ~~

사진 뒤, 다낭시내 고층 건물들이 보인다.

 

아래 사진 8매

다낭항 왼쪽 모퉁이 해수욕장에서

멀리 다낭항 외항이 보인다.

 

이곳에는 베트남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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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 주둔지 위치
 

큰 지도에서 월남전 한국군 주둔지 및 작전지역 보기  
 




신문기사 바로위 1대대2중대 3소대 박..소대장기사가 있습니다만 잘려서..어느신문인지...








 

    
 
http://vietnamwarstory.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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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동영상은 다낭항이 보이는 한국인 식당에서,
 
백형배 춤 제대로 춘다, ㅉㅉㅉ

 

베트남 전적지 탐방 4일 째 되는 날 저녁 식사는 다낭항구가

바라보이는 한국인 식당에서 술잔을 돌리면서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그 옛날 베트남 격전지로 떠날 때 부산항 제3부두에

찾아오셨던 어머니, 아버지 연세보다도 훨씬 더 많은

나이에 다시 다낭항에 상륙한(?) 해병 194기 동기들의 마음속에는

희,비 쌍곡선이 머리를 스쳐가면서 만감이 교차했으리라!

 

반세기 전 다낭항에 처음 상륙했을 때에는 내가 과연

저 항구에서 귀국선을 탈 수 있을까? 아니면 영원히

다시 못 볼 항구로 남을 것인가! 두려움과 갈등으로

전우들의 손을 꼭 잡고 " 우리는 살아서 꼭 귀국선에 오르자"

이렇게 보장없는 약속을 했던 우리들이 아니였던가! 

 

그로부터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이 흘러 다시 찾은 베트남,

며칠간의 격전지를 탐방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생각해보니

 전쟁의 흔적은 간데없고 사상과 이념은 수구세력들만의

골동품으로 남아  옛 이야기로나  들을 수 있을 것 같으며

또한 변화의 속도도 (남북 관계는 빼고) 우리나라 '70년 대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활기 넘치는 거리마다 젊은이들의 일하는 모습에서

전쟁은 까맣게 잊혀져 감을 알 수 있었고 

새롭게 발전하는 모습만 보이는데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하던가!

그래서 우리는 다낭항을 다시 찾은 기념으로

술잔을 기울이며 여흥을 즐겼노라!

 

옛 월남과 월맹을 생각하니 이런말이 생각나네요

" 용서란 과거의 상처가 남은 삶을 지배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진 탁회장 뒤 바다 건너편에 육지가 아련히 보이는데

그 육지 앞
바다가 다낭 외항이다,

부산항에서 떠난 파월장병 수송선은 (업셔호 25,000톤급) 

1주일 만에 이 외항에 도착하는데

해병 장병들은 이곳에서 1박 후 새벽에 다낭항에 상륙한다 

 

탁회장아 사진을 보니 모습이 좀 거시기하다 ㅎㅎㅎ

 

사진 오른쪽이 다낭 시내 방향이고, 보이는 산 왼쪽 끝자락이

그 옛날 우리가 상륙하던 다낭항이다.

우리가 상륙하기 전날 밤에는 계속 함포소리가 들려왔고 

조명탄이 하늘을 밝게했으며,

상륙할 때 하늘에는 굉음을 울리며 전폭기가  날아 다녔는데 ~~

 

위 사진 1매, 아래 사진 7매는  다낭 앞 바다

조명균 부회장님

김두한과 한 판 벌려도 승산 있겠는데 ~~

사진 뒤, 다낭시내 고층 건물들이 보인다.

 

아래 사진 8매

다낭항 왼쪽 모퉁이 해수욕장에서

멀리 다낭항 외항이 보인다.

 

이곳에는 베트남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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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지도에서 월남전 한국군 주둔지 및 작전지역 보기






글쓴이 : 안다고
조회 : 68  

 

 

위 동영상 화면에 나오는 지역은 청룡부대가 추라이에서

호이안으로 이동 (1967, 12월) 후, 교대로 1중대 (1969, 1월까지)

 3중대 (1969, 3월까지)

1대대가 (1973, 2월까지)  주둔 하였던 디엔반이다

동영상에 나오는 건물 앞 도로에서 12시 방향 50여 m 지점에

디엔반 군청이 있는데 이번 전적지 탐방팀이 방문코자

하였으나 군청 공무원 중에는 당시 베트콩 또는 월맹군

출신들이 공무원으로 재직 중인바, 사정에 따라서는

봉변을 당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문 앞에서 방문을 

포기해야하는 아쉬움이 ~~,    

 

청룡 6중대 방석

 

                                          위 사진, 디엔반 입구                  

 

                                   위 사진 1매, 아래사진 4매 , 디엔반 군청 앞을 지나는 도로

 

청룡 1중대, 3중대, 1대대가 교대로 주둔하고 있을 때

이 도로는 비포장 1차선으로  차량 교행이 어려울 정도로

협소한 도로였는데 지금은 편도 2차선으로 비교적 깨끗하였지만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차량 통행은 드물었다

안다고 (사진) 가 서 있는 도로 50여 m 뒤에

디엔반 군청이 있음

 

 

 

사진 위 1매 , 아래 1매.  

사진 왼쪽 건물 앞에 청룡 3중대 정문이 있었으며,
 
하천은 그때와 달라지지 않았으나

수량은 그때보다 좀 많은 것 같았다.

경관 조성을 위하여 물 흐름을 억제한 듯

사진 왼쪽으로 건물이 여러체 보이는데 이 자리에 청룡 3중대 1소

대 벙커들이 있었으며, 안다고는 건물 끝 부분에

지하 벙커를 구축하고 그곳에서 생활했다..
  

추 신
1969년 3월초순 사진 뒷쪽 하천 건너편에 대규모 월맹군이
3중대를 기습 공격하고자 접근 중이었는데 우리가  이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고 중무기를 동원 하천건너에서 기다리던 중
이들이 나타나자 일격에 섬멸한 기억이 나는구나
이로 인하여 한 달 동안 적의 시체 썩는 냄새가
3중대 방석으로 날라와 코를 막고 다닐정도 ~

 

위 사진, 다낭 차이나비치

 

다낭 차이나비치 해수욕장은 청룡부대가 호이안으로

이동 후에 휴양지로 활용하였던 곳이다.

안다고도 1968년 10월 1일부터 이곳에서 1주일을 보냈는데

46년 만에 다시 찾은 차이나비치는 카지노, 호텔, 리조트 등

많은 위락 시설이 들어서 있거나 축조 중이었으며

, 그때는 없었던 4차선의
해변 도로가 시원하게

뻗어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었기에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발전하는데  손색이 없었다. 

 

위와 아래 사진

다낭에서 후에로 가는 중간쯤에 위치한 농촌인데

빼어난 경관이 이방인의 발길을 멈추게 하였다.  

 

 

 

아래 사진 4매

다낭 북쪽 후에로 가는 하이반 고갯길에 설치되어 있는

전쟁 때 군시 시설물인데 아직도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이곳에는 미군을 포함한 몇 나라의 군인들이

합동 검문을 실시하던 곳인데, 적의 기습 공격으로

수많은 아군이 전멸하였다는 무시무시한 고갯길

우리가 갔을 때도 그때의 악몽이 서려 있는 듯 음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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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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