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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일: 1967-04-28

오작교 작전 성공후 서로 만난 백마와 맹호 부대.
-백마, 맹호 부대 1번도로를 연결하기 위한 오작교 작전 성공후 상봉.
-M16 소총으로 무장한 우리 국군.
-월남의 일본 도로 완전 장악.
-650여정 무기 노획, 821명의 적 사살의 눈부신 전과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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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39년만에 극적으로 상봉한 비둘기부대 참전 태권도제자들  

 

1966년부터1969 년까지 150명이 넘는 제자들을 가리키고

 1969년도 제자들이 일일이 써준 감사편지와 사진을들고 귀국 했던 최동호씨 언제가는

꼭찾이가서 만나 보겟다는 생각으로 39년세월을

보내다가 당시써준 제자들의 감사 편지와 수십장의 빚바란 사진을들고 베트남 디안을 와보니

150명 제자중에는 베트남 남부장교로 근무하다 총살당한 제자도있고 파이롯트로 근무하다

디안지역에서 장사을 하고있는제자도 나을반겨주고

1975년 해방당시 미국으로 피신하여 지금은 성공하여 살고있는여려명의

제자들 단발머리 여자제자는 디안중학교 교장선생님 되어 성공하여 나을반겨주고

당시에도 코메디처럼 웃음을 주고 태권도도 무척잘하던

제자는 디안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 되어 한걸름이 달려와서 거수경례로 반겨주고

얌전하기만 하던이쁜 여자제자는 디안지역에서 호텔을 운영하고있으면서

 선생님이 오셨다고 연락을 받고 한걸름에 달려와 선생님을

껴안고 눈물을 흘리고 기관사로 근무하고있는제자도있고 수많은 태권도 제자들이

39년전 선생님이 왔다는 연락을 받고 모여들고있다

 

1969년당시 최명신 주월사령관이 최동호씨 제자들에게 주었던 태권도  단증 지금까지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제자들이 고맙기만하다

멀리떨어져있는 제자들한테서 걸려오는 전화을 받고있는 최동호씨 전화을 받고나서야 39년전에

사용하던 베트남말이 한마디씩 기억나는지 어설푼 베트남말이 뛰어나오기 시작한다

한명한명 HAI(하이) 제자들과 만나면서 옛날사진으로 확인 하고 사진을 보여주고 있는 최동호씨

위제자는 (HAI 하이)

당시 제자사진   지금은 베트남유명 우유회사 사장으로 제직중인 (hai 하이)

당시 코메디같이 웃기던 제자는 디안고등하교 교장선생님 되어 

한걸름에 달려와서 태권도 선생님을 반겨주고 (위사진은 디안교등학교 교장(phe 페)

어릴적 최동호 선생님이 가저온 사진을 보고 놀라기도 하면서 신기한듯 바라보고 있다

당시 디안시장에서 장사을 하면서 친절하게 대해주던 홍생씨 는  미국에서 살고있고

당시 5살짜리 꼬마는 40대로 변하여 최동호씨 가 왔다고 옛날 꼬마사진을 바라보고 있고

(사진이름 LE 레)

당시 너무이뻐서 태권도 도복을 만들어 입혀주고 태권도 도장으로 대리고 다니던  꼬마 지금은   

40대초반으로 변해서 선생님을 반겨주고 있다

                       당시디안중학교 태권도부 제자들 모습

베트남 남부군 파이롯트로 근무하다 지금은 가구 도매상을 하고있는 제자 (KY 키)

                 당시에 비둘기 부대는 베트남 철도제작창 으로 사용되고 있다

선생님 39년만에 뵙고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디안고등학교 교장선생님

제자들이 초청으로 디안에서 가장큰 식당에서 점심겸 파티가 벌어지고있다

얌전하기만 하던 단발머리 여자제자는 백발이 햐얀 할머니가 되어서 선생님을 맞아주고있다

           소식을 듣고 한사람 한사람씩 식당으로 모여든 태권도 제자들

              디안중학교 교감 선생님으로 근무고있는 여자제자 (NGA 야)

          당시 디안중학교 여자제자 사진 (현제디안중학교 교감선생님)

              또한제자가 �아와서 선생님을 부둥켜안고 즐거워 하고있다

선생님과 제자들이 40년만에 불러본  아리랑 아직도 잊지않고 한국의 아리랑을 부르고있다

마이는 현제 디안지역에서 호텔 운영하고있다 당시에도 복스럽고 얌전했다고한다 (BAY바이)

늦게 도착한 여자제자는 호텔사장으로 성공하여 옛날사진을 보고있다

제자들이 급히마련한 금반지 두돈과 선물을 선생님에게 전달하고 있다

                   함께 모인제자들과 같이기념사진 을찍었다

                                               여자들과 기념사진

              www.vietnamgo.co.kr     베트남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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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글은 이병장에게 2017년4월5일enffl 님이 (mydreamxxxxxx@xxxxxxxx)보내온 메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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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 많으십니다.

학군단이 베트남 전적지 답사를 가는데.. 호이안 지역의 벙커.헬기장 위병소. 맹호사령부3주둔지. 푸캇맹호1연대주둔지 추라이 청룡2사전적지. 호이안 청룡3사전적지등 설명자료나 사진 좀 받아볼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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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ffl님 메일로 제 휴대폰 번호를 보내드렸습니다

 

메일 확인하시고 연락부탁드립니다

 

이병장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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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룡2대대 6중대 방석 및 자큐성당 위치



큰 지도에서 월남전 한국군 주둔지 및 작전지역 보기

 








사진 아래:2014년2월22일~27일헤병194기 청룡2대대 6중대 방섬및 자큐성당 일대 전적지 탐방





 

 

해병6중대 지역 쟈큐성당 쟈큐성당은 산꼭대기에 성당이있어서 5중대 6중대원들이 항시보면서  근무했던 지역이다

 

 

쟈큐성당앞 6중대원들이 마시고 목욕하던 우물터도 45년전그대로 남아있다

 

 

 

해병6중대가 주둔한 쟈큐성당앞 산속에 6중대원이 사용하던 방카가 그대로 쟝글속에 방치되어있다

 

 

 

 

전사한 해병전우들과 베트남 참전군인 참전자 들에게 명복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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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월 한국군 사령부’는 1965년 10월 20일, 당시 남베트남 수도 사이공(Saigon, 현호치민市)에 141명의 합동군 참모 기능으로 편성하여 연합 및 합동작전을 수행했다. 그리고 중대전술기지 개념으로 작전 성과 를 극대화시켰으며, 군물자 조달, 민간인 지원 문제 등 해외 파병부대 통합사령부로서 다원화된 임무와 기능을 수행했다.

주월 한국군 사령부 창설

베트남전쟁 파병 당시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은 유엔군사령부에 있었는데, 주월한국군은 유엔군사령관의 작전통제를 벗어나 대통령의 통수권 행사 및 국방장관의 지휘·감독권이 직접 미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독자적인 중대전술기지 개념으로 작전 성과를 극대화시키는데 주월 한국군 사령부의 역할은 매우 지대했다. 그리고 작전 지휘 및 통제뿐만 아니라 군수물자 조달, 민간인 지원 문제 등 해외 파병부대 통합사령부로서 다원화된 임무와 기능을 수행했다. ‘주월 한국군 사령부’는 1965년 10월 20일, 당시 남베트남 수도 사이공(Saigon, 현 호치민市)에 141명의 합동군 참모 기능으로 편성하여 연합 및 합동작전을 수행했다.

야전 사령부 창설

다음해 1966년 8월 15일, 원활한 작전 통제를 위해 냐짱에 야전사령부를 창설했다. 즉 제9사단의 증파에 따라 효과적인 작전 통제와 제100군수 사령부에 대한 협조가 필요했다. 제9사단의 배치와 운용에 관해서 미군과 견해차가 컸으나 1번 도로를 연하여 해안선 지역을 따라 전략적 핵심 지역 배치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야전사령관은 주월 한국군 사령관이 겸임을 하고 행정 부사령관은 사이공에서, 작전부사령관은 냐쨩 현지에서 참모 요원을 구성하여 예하부대 작전 통제를 위한 전방 지휘소 역할을 했다. 당시 냐짱에는 미 제1야전군사령부가 있어 월 1회 개최된 한,미,남베트남군과의 연합작전회의와 미군으로부터 지원받았던 공중 및 해상작전 지원 등은 연합작전 능력을 배양하는 중요한 기회가 되었다. 1973년 3월 23일 남베트남에서 한국군이 철수할 때까지 파병된 연병력 324,864명을 지휘하는 남베트남 주둔 한국군의 최고사령부였다.

주월한국군사령부 및 야전 사령부 운용 결과

기간 중 한국군은 577,487회의 대,소규모 작전을 통해 한국군 전술책임지역 7,000㎢를 평정하고, 남베트남 난민 120만 여명의 거주를 지원했으며, 태권도 보급과 대민 지원활동을 통하여 양국의 선린 우호관계를 증진시켰다.

주월 한국군사령부의 작전 지휘 및 통제 경험은 철수 후 1973년 7월 1일부로 제3군사령부 창설의 원동력이 되었다. 즉 자국의 방위는 자국이 책임진다는 닉슨독트린의 영향으로 1971년 3월 주한 미 제7사단의 철수에 따른 서부전선지역의 방어상 공백과 한·미 제1군단의 임무 종결에 대비한 지휘체제의 조정이 불가피했다. 따라서 주월한국군사령부를 모체로 한 새로운 군사령부 창설 계획에 의거, 예하의 수도사단 및 제9사단을 비롯한 부대들이 존속됐고 초대사령관에는 이세호 중장이 임명됐다. 이처럼 주월 한국군은 철수 후에도 실전 경험을 갖춘 병력과 휴대해 온 신형 장비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국군 현대화 계획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또한 미국과의 안보협력 파트너십이 더욱 공고해 지고 연합 방위 체제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다.

주월 한국군사령부(당시)
                                                               주월 한국군사령부(당시)




                            ▣ 주월사 (주월 한국군 사령부) ▣

                            The Head quarters Republic of Korea forces in Vietnam

주월 한국군사령부(이하 주월사령부) 1965 9 25 국방부 일반 명령16호에 의거,

서울 필동 합동참모본부에서 창설, 초대 사령관에 채명신 육군소장(수도사단장 겸임), 

부사령관 이훈섭 육군준장이 부임하였으며국방부 지령 제12호에 의거, 사령부 선발대 

16명이월남[사이공]으로 출발하였으며뒤를 이어 10 20일 사령부 94, 수도사단 지휘 

본부40 134 월남 [사이공]으로 이동하여 주월 사령부 지휘소를개소하였다.당시의 예

하부대로는 전투부대인 수도사단(맹호), 해병 제 2 여단(청룡) 동외과병원, 태권도 교관단

건설지원단(비둘기) 및 해상수송분대(백구)  지휘하게 된다.

1966 416일 수도사단의 보충부대로 보병 제 26연대가 증파 되었고,뒤를 이어

19666월11100군수사령부(십자성) 창설하였고,그리고 815일 전투부대의 효과적인 

지휘와 연합군과의 밀접한 협조를 위하여[나트랑]에 야전 사령부를 창설하였다.

1966 9 5일 전투부대로서 병 제9사단(백마)이 파월되었고, 1967 410일 한국군 

최초로 11항공중대가창설되어 710 사령부 및 직할부대가 증개편 되어 

공군 지원단(은마), 군악대가 창설되었고,태권도 교관단 및 해병여단의 증강으로 

 한국군 사령부는 총 병력 4 8천명을 지휘하게 되었다.주월한국군 사령부는 

월남의 수도 사이공 한복판에서 '초롱'쪽으로 가는 길 옆에 자리 잡고 있다.'트란ㆍ콕톤' 12번가

7천평이 넘는 넓은 땅에 2천평의 5층 건물에는 월남전의 오늘과 내일을 주름잡는 한국군

비롯하여 호주, 뉴질랜드, 월남 리고 미군을 망라한 작전 연락장교단이 함께 있다.

한국군 사령관 채명신 장군은 '퀴논'사단본부에서  맹호부대가 상륙한 후 작전지휘를 직접 맡고 

있음으로 사령부는참모장  이훈섭준장이 거의 통솔하였다


부대창설 :1965. 9. 25 .서울 필동 (채명신 소장

참전기간 :1965. 9. 25 - 1973. 3. 2

참전군인 :13,133 ( 4,064, 사병 9,069

    :전사 45 (장교 18, 사병 27)부상 54 (장교 9, 사병 45)

:초대 중장 채명신 , 2대 중장 이세호

부대지휘 :주월사를 비롯하여 3개 전투부대(맹호, 백마, 청룡)1개 군수지원부대(십자성), 

                1개군사원조단(비둘기)2개 수송 전대 (백마, 은마) 8개 부대

      :1964. 7. 18부터 1973. 3. 23까지 대부대 작전 1,174회와  

                소부대 작전 576,302회등  577,476회의 작전을 실시

                한국군 전술책임 지역 7,000평방Km를 평정하고 

                월남 난민 120만 여명에 대한 거주를 정착시켰다.

대민사업 :진료 3,523,364, 식량 19,640, 의류 461,764, 농기구 6,406,  

                가옥  및 교실 3,319, 교량 132도로 394Km, 태권도 보급 902,060

                경로 및 어린이 잔치  6,848연예공연 2,304자매결연 3,364곳 등 

                끈끈한 정으로 평정사업과 대민사업을 병행 실시, 진정한 우정을 심었던 

                결과로 월남국민들이 따이한을 믿고 따르며 잊지 못하게 했다.

 

                   

                                          주월사 전경 과거와 현재

                                                            40여년전 주월사


                                             2013년9월 현재의 주월사 

                                                    2013년10월의 주월사 전경



큰 지도에서 월남전 한국군 주둔지 및 작전지역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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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저는 행정구역으로 호치민으로 편입되어있다 야베 항구에서 차량과같이 바지선을타고 사이공강을 건너면 거대한 건저섬이 나온다 지금은 4차선으로 정비된 신도로를 1시간씀달리면 원숭이들이 많은 원숭이섬에 도착한다 이곳원숭이섬에서 모타보트을랜트해서 맹글로브장글지역 꾸불꾸불한 작은수로을 20분쯤 달리면 맹글로브 숲속에 베트남 전쟁당시 베트남 지방 군인들이 사용하던 지방군 사령부가나온다 이곳은 온통 맹글로브나무가 하늘을 가려서 비행기로도 찿기힘든 장글속에 자리잡고있다

먹는 물도없고 주의에 먹는양식을구할수 없는곳에 무기제작소 병원 식당 회의실등이 가추어진 장글속에 사령부가나온다



이곳은 베트남정부 여행사 사이공 투어리스에서 운영하는 관광지로 개발되어 입장요금을 받고 운영중이다 이곳은 수천마리의 원숭이때들이 숲속에 살면서 관광객들의

모자와 카메라을 훔처 달아나다가 먹을것을 던저주면 훔친물건을 돌려주기도한다

이곳에서 모타보드6명1조로 1대을빌려서 작은수로을 꾸불꾸불 달려서 가야한다

맹글로브 장글지역 작은 수로을 모타보드로 달려서 한참을 가야한다

맹글로브 장글지역 수로을 달리다보면 수백년동안 우거진 맹글로브 장글지역이 무척아름답다

맹글로브 나무는 유일하게 바다물에서 자라는 나무로 몸통에서 뿌리가나와서 뻘속에 뿌리을내리고 자라고있다

모타보드 운전사가 곡애을하듯 운전해서 지방군사령부가있는곳에 도착했다

장글속 사령부 중앙에 당시에 전사자들의 위령비가 서있다

형사과장을 마직막으로 봉사하고 퇴직하신 송호근님께서 장글속 지방군사령부을보고 놀라워하고있다

프랑스에서 으ㅟ사로 유학을 하고 돌아온 아가씨가 이곳장글속에서 전사들을 치료해주고 상주했다고한다 사진속 여인이 상당한 미인이다

당시에 베트남지방군인들의 특수부대원들의 할동사항을 모형으로 만들어놓아 전시해놓았다

유성훈전우님은 부인과같이 가저온 망고을 장글속에서 먹고있다 장글속에서먹는망고맛은 어떨지궁굼하다

이곳은 물도없고 주의에 양식도구할수없는곳이다 물은 나무에 판초우의을 걸어놓고 비가오면 물을 받아 저장해서 먹었다고한다

전사들을 위해 술을내려먹는 시설도 가추어저있다

이곳은 바다물이 드나들은 곳이라 생선은 쉽게구해서 전사들에게 공급했다 생선요리하는것을 재현해놓았다

여자의사가 부상당한 전사을 치료중이다

전쟁당시에는 이곳에 악어들이 많앗다고한다 전사을공격하는악어 지금은 악어을 한곳에 모아놓고 전시하고있다

전쟁당시 특수부대원들의 할동모습

모타보드운전사가 곡애하듯운전하고 장글속을 달리는 기분 상쾌하다

맹글로브 장글지역을 구경하고 지방군사령부에서 바다족으로 10키로쯤 달려나오면 붕타우가 건너다보이는 특이한 리죠트가 있다 바다가운데 집을짓고 호텔을 운영중이며 1층 식당에서하는 바다게요리가 맛잇는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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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청룡 월남수기-(30부) 최종보고서  


後 靑龍의 월남 수기 -(30부) - 최종 보고서.
後 靑龍 

당연한 일이지만
월남 전선으로 떠나기 전에

월남 전사자 묘역을 돌아 보고 갔읍니다.

월남전의 ~ 그 어느 ~ 승리보다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신 분들의 

울분을 ~ 뿌려 드리고 오겠다 ~ 고 ~ 고하였읍니다.



오랜 세월 더불어 
긴역사 추억을 반추하는

애틋한 기억의 편린들이
그리움을 동반하는
이 깊은 고뇌를

당신은 아십니까

사랑아 너는
깊은산속 아침이슬 에
가없이 솟아나는 샘물처럼

시리도록 가슴적시는
전율이 온몸을 떨게하는 아픔

핏줄을 타고
흐르는 고통이어라


국립 묘지 ~ 추모의 집 ~ 벽에 걸린
헌시 한편을 단단히 외우며 갔읍니다.



파월 용사들이 돌아 오시던 ~ 부산항.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 ~ 

그때 그 분들은 ~ 초로의 노병이 되셨지만

그 전선의 분노와 슬픔
귀국선 부산항의 감동도 잊지 못 하신다.



섭씨 25도의 후끈한 바람이 부는
호치민 타손누트 공항 ~ 휘황한 전깃 불 아래서

불과 몇일 만에 조국으로 돌아 가 건만

정든 집,정든 고향,내가 다니던 그 길이며
늘 보던 ~ 앞 뒷 산이 ~ 어이 그리 그리웠기로

행여 ~ 아직도 못가신 ~ 님들의 영혼이 없으시길
간구 하는 마음이 너무나 ~ 초조 하였다고 보고 드립니다.



"Historians tell the story of the past,
novelists the story the present"


콩쿠르 형제가 말했던가.

"역사는 과거의 이야기를 하고
소설가는 현재의 이야기를 한다"
 --고.

캄란의 동바틴 해변 -- 그 최초의 상륙 지점에 서면

-- 역사,과거,현재,미래를 연결해 주는 몫은
-- 자유를 찾은 우리 모두의 몫임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독일의 역사 학자 ~ 랑케는

"역사는 과거를 판단하고
미래의 세계를 예언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글은 역사가 왜 실제로 발생 했는가를 말할 뿐이다"
 --라고 말했다.

준비 기간 5년 동안 ~ 많은 파월 선배님들은 만나 뵈었지만

-- 왜 월남에서 총칼들고 싸우셨냐는 질문은 한번도 하지않았다 --

*** 조국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것을 이미 알고 있기 떄문이다 ***



아 ~ 투이호아 ~ 투이호아여 !!!!

서러운 땅 ~ 투이호아를 떠나던  ~ 나의 뒷통수로

독일의 장군 발렌시타인의 호령이 떨어졌다.

"우리 생애는 전투와 진군
질풍과 같이 휴식도 없고 집도 없었다
우리는 전투로 전율하는 히드의 광야를 폭풍우 처럼 달렸다"


호령 소리에 ~ 

아 ~ 투이호아 ~ 투이호아여 !!!!

서러운 땅 ~ 투이호아를 다시 한번 돌아 보고 떠나왔다.



그러고 보니 ~ 짜빈동 편을 쓸때

배경 음악으로 ~ 존베리의- 늑대와 함께 춤의 테마뮤직을 썻읍니다.

황량했다는 짜빈동 언덕에 --
월맹군들은 그들의 실패한 작전을 감추기 위해 ~ 
나무를 일부러 심어 그 악몽을 잊고자 했던 --  

지명 까지 바꾸어 놓은 --

검 푸르게 우거진 열대림 밑에 서서 --

눅진 눅진한 땀방울을 씻지도 못한채
육박전을 치루던 짜빈동 선배님들의 기상이 ---

광활한 대평원의 버펄로 떼들의 거침없는 기운으로 
눈앞에 펼쳐져 ---

언제들어도 뭉쿨하게 순화되는  ~ 
존베리의- 늑대와 함께 춤의 테마뮤직 으로
그 날의 감격을  가슴으로 느껴 보았읍니다.




산에 내린 이슬처럼
강에 뜬 거품 처럼
샘물에 솟은 물 방울 처럼
가을 강가의 안개 처럼

인간사 짧은 생애가 ~ 찰나지만

님들이 남기신 ~ 충성의 뜻만은 이제 ~ 
後 靑龍의 하드에 영원히 저장 보관 될것입니다.



"기억하라 !!
해병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라.

남국의 정글은 푸르더냐
청룡으로 가고 청룡으로 죽어간
해병이 나의 이름으로 남는구나.



그리도 그립던 이름
어머니 어머니
그리도 사랑했던 누이 누이

살아서 돌아 가겠다고
전쟁의 참혹을 백지위에 썼던 시절
시절은 갔지만

기억하라
해병의 이름으로 기억하라"




당연한 일이지만
월남 전선을 다녀와서

월남 전사자 묘역을 다시 돌아 보았읍니다.

영화 사하라의 마지막 멘트가 떠오릅니다.

"우리가 늙어도 그들은 늙지 않을것아며 ~ 세월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을것이다"



조국의 명령 만으로
사선을 넘나 드셨던 파월 선배님 ~ !!

세월이 흘러 몸은 늙어 가드라도,
선배님들의 혼 만은 늙지않고 

영원 하리라 굳게믿으며
우리가 ~ 그리고 ~ 다음 세대가 지켜 갈것입니다.



월남 수기를 쓰는 동안 
파월 선배님들께서

저희에게 주신

뜨거운 격려 ~ 추억의 눈물 
분노와 ~ 화해의 말씀 ----- 

그리고
부족한 글 ~ 월남전과 한국 게시판에 올려
많은 성원을 받게 해주신

최진현님과 이남원님 ------
직접 사무실 까지 찾아 주시는 등

뜨거운 격려와 도움을  주신 여러분께

흰 옷의 천사 ~ 나이팅게일이 
마지막 임종의 순간에 
훈장을 받으며 남기신 말을 빌어 ~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과분 합니다 ~ 과분 합니다 ~ !!


필씅 ~ 충성 ~ !!






언젠가 ~ 아주 먼 옛날
문학도 지망생인 내 친구가

신춘 문예에 당선되면 ~ 만약에 당선되면

-- 당선 소감만은 지상 최고의 걸작으로 쓰겠다 - 고 했읍니다.

지난 2월에 5년 여를 벼르다가 ~ 월남 전선을 다녀와
부족한 글빨과 게으름으로
8개월을 보내고 서야 

1차 30부 ~ 최종 보고서를 올립니다.

최종 보고서 만은 ~ 부족함 없이 써보고 싶었읍니다
그러나 ~ 부족한 글 ~ 끝까지 성원해 주신 점에 감사 드릴 뿐입니다.

나머지 ~ 베트남의 ~ 정치 ~ 문화 ~ 역사 ~ 민족 편은 
나보다 ~ 해박한 414기 해병혼이 ~ 교양 편으로

잘 편집하여 올리게 되겠읍니다.



베리아 선배님...... !!!!!!

베리아 전선에서 ~ 자신의 내장을 토해 놓고도
구조의 신호탄을 ~ 쏘아 대셨던 베리아 선배님.

30부 마지막 보고서의 음악은 ~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 로 예정이었지만

차마 차마 ~ 선배님 얼굴이 떠올라

-- 나를 베리아로 불러 달라 -- 에 넣었던 아리랑을 놓었읍니다.

다시한번 ~ 아주 크게

그동안 격려 해주시고 ~ 성원해 주신

멀리 해외를 포함한 ~ 선배님 그리고 후배님
저희를 아시는 모든 친구,동기며

무조건 ~ 그 모든 분께 ~ 최종 보고서를 올리고
내일은 일요일 ~ 

푹 쉴까 합니다.

충성 ~ 필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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