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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파월53주년이 되는해입니다.

 

"이병장의 베트남전쟁......." 관리자 이병장입니다!

2013년부터 베트남 전쟁 자료를 수집하여 베트남전쟁의 WEB DOCUMENTARY의 틀을 잡아가고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자료를 발굴 업로드하도록하겠습니다.

선배님들의 피와땀으로 얼룩진 1960년대의 그 노고를 자료로 접할때마다

늘 숙연해지고 있습니다.

더욱더 자료발굴에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곤합니다.

 

 

파월당시 주인공이시거나 혹은 그 가족분들께서 전적지 자료(파월주둔지 등)가 필요하신분들은

이병장 이메일(2kiking@hanmail.net)로 연락주시면 도움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해당부대 주월사 맹호 백마 십자성 청룡 백구 공지단 포함하여 파월 근무 기간 및 중대단위명만 주시면 됩니다.

당시 사진자료도 있으시면 꼭 챙겨주셔서 보내시면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2017년3월23일

 

이병장 올림

 

이메일:2kiki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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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해병194기 전적지 탐방 2014년2월

           1967년과196819.69년도에 참전한 해병대원들이 베트남전적지 방문

              기  간:2014년2월22일~2014년 2월27일

              지  역: 호이안 여단본부,츄라이 여단본부,자큐6중대 방석 등

              참가자: 해병194기

 

                                               방문지역 지도

큰 지도에서 월남전 한국군 주둔지 및 작전지역 보기

 


                         호이안 여단본부 앞에서



해병대 앵카가 서있던 세멘구조물앞에서




여단본부앞 해변 모래사장은 다낭까지 길게연결되어있다


디안반 군청 작은호수가있는곳은 변함없이 그대로 있다 이곳 에 1개중대가 주둔했다


추라이 여단본부에 도착하여 전쟁당시 전사한 해병전우들과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베트남군인 전사자 들의 명복을빌기위해 제사상을 차리고있다




 

 

 

 

추라이 여단본부 장글속에 남아있는 헬리콥타장 45년전 모습그대로 장글속에 남아있다

 

 

호이안 들어가는삼거리 이곳에 근무당시 13살 꼬마 어린이가 해병대 추럭을 폭파하여 많은사망자와 해병대 추럭이 산산조각이 나고 일부해병대원은 폭발후폭풍으로 논바닥으로 날아가 버린곳이다 당시사항을 설명하는 참전해병대원 

 

  

 

http://vietnamwarstory.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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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 靑龍의 월남수기- (22부)- 짜빈동 가는길.

天子峰 

 

 

1953년 6월 1일.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식을 하루 앞둔 영국 왕실에 전보가 날아들었다.

영국 등반대 에베레스트 등정 성공 ~ !!!!

이 소식은 버킹검 궁전은 물론,
여왕의 황금 마차 행렬을 보러나온 시민들을 흥분과 열광속에 빠트렸다.

북극과 남극 정복 이후 ~ 에베레스트는 제 3의 극지이자 ~ 지구상 마지막 목표였다.

그것은 ~ 꿈 ~ 같은 일이었다 ~ !!

지구 최고봉에 오른 영국 원정대의 쾌거를 타전하는
세계 언론은 ~ 일제히 흥분속에 빠졌다.



일본군 2만여명의 자결 옥쇄와,
미 해병대 2만 4천8백명의 사상자를 기록한 제 2차세계대전 최대의 격전지...

해안에 쌓인 시체는 약 육 킬로미터가 넘었고,
2차 세계 대전 중 ~ 전사한 ~ 미국 해병대 전사자 가운데 3분의 1 이 죽음을 당한

최고의 전략 요지 ~ 유황도의 수리비치 산 꼭대기에
성조기 꽂고 만세 부른 

미 해병대의 환희는 ~ 아직도 ~ 제 1강국 미국을 하나로 묶는 힘으로 존재 한다.

짜빈동 ~ !!!

그곳을 찾아가는 後 靑龍의 마음은 

그렇게 ~ 그렇게 고조 되어 있었다.


(154기 이기원 선배님의 츄라이 시절)

늘 커다란 앙카를 세워 놓았던 청룡 사령부.

츄라이 여단 본부 터를 지나면서 ~ 
마음이 부쩍 바빠졌다.



베트콩 패전사에 ~ 치욕으로 간주한다는 
짜빈동 그 전정터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을까 ???

그날의 ~ 긴박한 순간들
그날의 ~ 대 감격의 승전에 함성 소리는 

짜빈동 거기 ~ 아직 남아있을까 ???



수없이 ~ 공부를 하고 왔건만 ~ 
짜빈동 대첩 ~ 35년이 지나니 ~ 묻고  또 물어본다 ~ 길을 묻는다.

짜빈동 가는 길을 묻는다 ~ !!



짜빈동 ~ 거기가 어딘가 ???

1 개 중대의 병력이 ~ 월맹 정규군 연대급 공격을
육탄으로 물리쳐 ~ 전원 1 계급 특진의 영광을 얻은

거기를 짜빈동 이라 한다.



1975년 ~ 월남 공산화 이후
남측 월남의 지명은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국방부 전사 편찬실의 도움으로 ~ 
짜빈동의 바뀐 지명을 펴들고 ~ 묻고 또 묻는다.

짜빈동 가는 길을 묻는다 ~ !!



지성이면 감천인가 ???

드디어 짜빈동을 기억하는 촌노를 만나 
짜빈동 들어가는 입구를 찾았다.



"추라이 남쪽 쾅나이성 손틴군 짜빈동 마을 
짜빈동의 신화를 만든 11 중대의 동쪽 1km 지점에는 
한국군이 전력을 다해 방어하던 베트남 제1번 국도가 지나가고 있었다" ~ 는 ~ 

전사의 기록을 맞추어보고



"중대의 북쪽 6km 지점에서 청룡부대 여단본부가 있었고
11중대 기지가 위치한 지역은 당시 해병 청룡부대 주둔 지역의 서남쪽 모퉁이였다" ~ 는 

기록과도 맞는다.



여기를 잊지않으려 십여장을 찍고 찍는다.
월남의 지명은 바뀌어도 짜빈동의 전설은 바뀌지않아야 한다고 ~ 절규 하면서  ---



B - 지점의 1번 국도에서 1키로쯤 철길을 지나 들어 오면
A - 지점의 저 오래된 고목 나무를 기억해야 한다.

저 나무를 끼고 우회전하여 들어 가다가 ---



다시한번 노친을 만나 

월남 전때 한국군에 월맹군이 대패한 Tra Binh Dong 에 대해
세세히 여쭈니

천만 다행으로 그 당시에도 이곳에서 살았다며
자신있게 가르킨다.



월남인 운전 기사와 무슨 말을 주고 받던 노파가
갑자기 발 걸음이 빨라 지더니

돌아 서서 ~ 목을 따는 시늉을 한다.

-- 한국 해병대 후배들이 짜빈동 전적지를 찾아 왔다고 하니
-- 아직도 해병대가 무섭다고 한단다.

다행히 바삐 가던 길을 멈추고
할머니가 ~ 다시한번 ~ 짜빈동을 가르킨다.



아 ~ 짜빈동 !!

그 ~ 뜨거웠던 육박전의

한국인의 위대한 전서로 길이 빛날 짜빈동이

저기란 말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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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 靑龍의 월남수기- (21부)- 용서하라,그러나 잊지는 마라

後 靑龍 

 

 

그러니까 ~ 몇 년전에 ---
태국으로 가는 방콕행 비행기를 탓다.

떠나는 서울이 겨울인데 ~ 비행기가 점점 실내 온도를 높인다.
현지 기온에 적응을 시키기 위해서란다.

이코노미 좌석 증후군이 첫 번째로 온다는 5시간이 지나간다.
그러고도 한시간 ~ 

후끈한 밤 공항을 나와서 120키로를 달려간다.
무슨 고생인가 ????

거기 ~ 방콕에서 서쪽으로 미얀마 국경 쪽 
거기 ~ 칸차나 부리에 ~ 콰이강의 다리를 보러 갔었다.

전쟁 영화로서는 ~ 서부 전선 이상 없다 ~  이후 
처음으로 아카데미상 7개 부문을 휩쓸었던 ~ 주제곡 

콰이마치의 음률이 ~ 거칠게 흐르는 ~ 강물 따라 흐르는 ~ 그 강 언덕에
30바트를 내면 들어갈수 있는 ~ 콰이강의 다리 기념관이 있다.

수 천명의 생명이 죽어간,콰이강의 다리와 ~ 죽음에 철도 ~ 의 현장 그림이 끝나고
음습한 냄새가 나는 ~ 마지막 벽면에 박힌

굵직한 글씨가 무슨 뜻이냐고 ~ 일행이 나에게 물었다.

"Forgive, But Not Forget" 

거기 인간 고통의 ~ 무한 표현이 끝나는 벽면엔 ~ 그렇게 써있었다.

"Forgive, But Not Forget" ~ "용서하라,그러나 잊지는 마라"



바람불고 ~ 파도치고 ~ 별도 빛나는 
그러고도 ~ 웬지 모를 ~ 무언가에 가슴 저이던 호이안을 떠나면서

월남으로 떠나기 전에 ~ 
자신의 젊은 살점과 핏 자욱이 배어있는 베리아 반도를 보고 와 달라시던
베리아 선배님을 생각하면서 ---

아직도 ~
전쟁의 아픔은 ~ 죽어간 어린 딸이되고 ~ 남편이 된다는 
호이안 풍물 시장의 어느 노파의 주름진 얼굴을 떠올리며 ---

츄라이 ~ 다시 ~ 츄라이 전선 ~ 짜빈동을 찾아가는 길에 ~ 
전쟁과 죽음의 

인간 자의에 의한 전쟁으로 ~ 타의에 의한 죽음에 대해
눈을 시퍼렇게 뜨고는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눈을 감았다.



아들을 보내는 고향의 어머니는
용서 할 일도 ~ 잊어야 할 일도 ~ 생기지 말기를 

오직 ~ 몸 성히 돌아와야 한다고 ~ 아들에게 ~ 단디 ~ 단디 타 이르셨다.

아들아 ~ 용서 할 일도 ~ 잊어야 할 일도 ~ 만들지 말고 무사히만 돌아오거라 



그러나 ~ 전장터에는
용서 못할일도 생기고 ~ 잊지 못할일이 ~ 더 ~ 많이 생겨났고

용서 할수 없는 ~ 잊을수 없는 일들이 ~ 남아있다.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새벽 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노을 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 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아름 다웠다고 말하리라 ....."

천상병 시인은 그런것을 ~ 귀천으로 노래하였고 ----



" ~ ~ ~ ~ ~ ~ 
갈매기로 하여금
구름이 되게 하였다.

기꺼운 듯
푸른 바다의 이름으로
흰 날개를 하늘에 묻어 보내어

이제 파도도
빛나는 가슴도
구름을 따라 먼 너라로 흘렀다" ~ 갈매기로 위로하였다.



"죽은 자가 산 자의 목을 잡고
발목을 잡고
어깨에 매달려 등에 업혀
일년이라 열 두달
편할날 없다 나무라는구나

우리들이 
구지레한 산동네 떠나지 못함은
~ ~ ~ ~ ~ ~ 
원통한 죽음 빚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천년이 백년이 하루 같은
너희 사는 꼴이 안타까워서이니

~ ~ ~ ~
~ ~ ~ ~ 

우리들 훨훨 털고 일어나
구만리라 머나먼 구천 길
편하 가게 하려거든

허구헌 날 굿거리 세마치로 뛰지말고
발고 빛나는 횃불을 들라" -- 신경림 (횃불)



"한 사람의 울음이
온 마을에 울음을 불러 오고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고을에 노래를 몰고 왔다

구름을 몰고 오고
바람과 비를 몰고 왔다
꽃과 춤을 불러 오고
저주와 욕설과 원망을 불러왔다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노래를 몰고 오고
한 사람의 죽음이
온 나라에 죽음을 불러왔지만 ...."-- (신경림 - 그여름)



"빗줄기가 흐느끼며 울고 있다
울면서 진흙 속에 꽂히고 있다
아이들이 빗줄기를 피하고 있다
울면서 강물 속을 떠돌고 있다

강물은 그 울음소리를 잊었을까
총소리와 아우성소리를 잊었을까
조그만 주먹과 맨발들을 잊었을까

바람이 흐느끼며 울고 있다
울면서 강물 위를 맴돌고 있다
아이들이 바람을 따라 헤매고 있다
울면서 빗발 속을 헤매고 있다" -- (신경림 - 江)



"동녁하늘 불붙던
어느 새벽에
내 생면의 계고가 있었다

유성이 튕기는 하늘을 보고
어느 날인가
전대화가 익어가던 날
외상의 창가에서
잊어버린 음성과의 재회

화려한 계절들의 마지막 숨결까지 미소로 다듬어



내 재생의 날엔
무의미의 뜻을 다시는 새기지 말자고
목마름을 참고 달린다

정글은 말이 없는데ㅡ

여기 
십자성이 지던

어느날 아침
내 생면의 계고가 있었다" -- (청룡 상병 윤신행)



"외치고 싶었던 노래가 있습니다
이것이 자유의 노래입니다
우리는 붉게 물들은
이국의 전선에서 자유의 노래를
불러주고 싶었습니다

빛을 잃은 산하에 광명을 주고
퇴색한 대지에 아름다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뛰었습니다
성난 노도와 같이 쉴줄 모르고
뛰었습니다

그리하여 공포와 불안에 헤매는
그들에게 용기와 신념을 주었습니다" -- (병장 강한호) 



로마시대 철학자 ~ 에피 쿠르스는 말했다.

-- 죽음은 우리와 무관하다
-- 왜냐 하면 ~ 우리가 살아있을때 죽음은 존재하지 않고
-- 죽음이 왔을땐 ~ 우리는 존재하지않기 때문이다.



피타고라스와 그의 제자들은 

영원한 것 ~ 그것을 추구하다가 ~ 철학을 내놓았다.
그리고는 영원을 정리하였다.

-- 영원의 세계는 시간이 없다 -- 고 ---



다시는 이 땅에 
이런 일이 없어서 ---



다시는 이땅에
용서 할일도 ~ 잊어야 할일도 없기를 

그렇게 간구 하였다.



"얼룩진 철모에다
첫.......숙원의 울음을 고하고
10여년의 푸른 제복 속에서
커다란 육성보다
조용한 감정으로 울고있는 나!

시원으로부터 쌓여 온
나의 욕망을........

탄식으로 묶여진 한 아름을
잡초로 띄워 보낼 때.......

한숨은 타다남은 잿더미가 된다

모....든.....영광도 부귀도
훨ㅡ훨 내버리고 ---- 

훨 - 훨 내 버리고" -- (중사 유재정)



이럴 줄 알았으면 ~ 이렇게 슬픔을 위로할 일이 많았으면
이쁘니 곱뿐이 ~ 한 눈 안 팔고

서러움도 표현하고 ~ 괴로움도 알아주는 ~ 詩나 몇편 더 외워 올것을 ---

때 늦은 후회의 몸부림에 눈을 뜨고

이국영 선배님이 찾으시던 지큐 마을을 찾아보며
마지막 절규를 토하고 ~ 짜빈동으로 향했다.



"기억하라 !!
해병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라.

남국의 정글은 푸르더냐
청룡으로 가고 청룡으로 죽어간
해병이 나의 이름으로 남는구나.

그리도 그립던 이름
어머니 어머니
그리도 사랑했던 누이 누이
살아서 돌아 가겠다고
전쟁의 참혹을 백지위에 썼던 시절
시절은 갔지만
기억하라
해병의 이름으로 기억하라"


마지막 절규를 토하고 ~ 짜빈동 가는 길을 묻고 또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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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봉 장한우 해병 베트남전적지 방문수기(제12부)  

 

 

後 靑龍의 월남수기- (12부)- 전선의 달밤.

天子峰 

 

 

해병 269기 ~ 나 천자봉도 ~ 
해병 414기 ~ 그 해병혼도 ~ 어쩔수 없는 인간인가.

시련의 땅 ~ 투이호아를 지날때 ~ 그렇게 마음이 무겁더니
응전의 땅 ~ 츄라이를 벗어나며 ~ 마음이 좀 가벼워 졌다.

길고 긴 ~ 1번 국도가 ~ 츄라이를 벗어나 ~ 다낭이 가까워지며
군데 군데 ~ 포장이 끊기고 ~ 차는 털털거리기 시작한다.



그나마 ~ 월남전때 휴양의 도시였던 다낭으로 가까워 오니
그제야 ~ 길가의 상점에 들려 베트남 음료수로 목을 축인다.



그제서야 ~ 긴장을 좀 풀고 ~ 가이드 이남원님의 구수한 입담에
해병혼의 걸진 해설을 들으며 ~ 훠이 훠이 ~ 1번 국도를 올라간다.

츄라이를 벗어나는 길가에 ~ 그 옛날의 츄라이 비행장이
지금은 베트남 군사기지로 ~ 그나마 ~ 남아있다.



이때쯤에 ~ 이인호 대위를 잃으면서 ~ 청룡부대에는

특공중대 ~ 후에 해병 수색중대의 근간을 이루는 특공중대가 만들어 져서
언제나 5분 대기로 ~ 상황이 붙으면 출동하곤 했다고

특공 중대 ~ 181기 정기효 선배님은 알려 주신다.

6.26때 쓰던 엠원(M-1) 구식 병기를 
엠 십육(M-16) 신식 병기로 대체된것도 이즈음이다.



긴장과 막연한 두려움 ~ 그리고 불 분명한 미래와 지독한 향수.
전선의 딜레마를 풀어주는것은 ~ 그나마 ~ 조국의 몫이었다.

스릴속의 여유 ~ !!

월남 스키 부대 ~ 그 가공할 구라에 ~ 뜨거운 1번 국도가 지루하지않다.

하여간 월남 전선에서 가장 용맹을 떨치고
한명의 전사자도 없으며
영화같은 특수 작전을 수없이 치뤄낸 부대가 ~ 월남 스키 부대라 ~ 한다.

그 ~ 전설의 스키 부대는

맹호 스키 부대 ~ !!
백마 스키 부대 ~ !!

청룡 스키부대 간에 긴밀한 유대를맺으며 ~ 특히 ~ 밤에 강했다 ~ 고 하신다.



좌우간에 ~ 고국에서 위문을 온 여자 연예인들이
월남 스키 부대가 ~ 달라고 하면 전부 주었다 한다.

따뜻한 마음 ~ 정다운 손길 ~ 심지어
여자 속옷을 지니면 ~ 죽지않는다 하여
수십장의 속옷을 사다가 ~ 용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한다.



언젠가 ~ 월남을 다녀온 내 또래 여자 연예인에게
월남 스키 부대가 달라고 하면 ~ 정말 ~ 다 주었냐고 
짖궂게 세세히 물어보니
알듯 모를듯한 대답을 하고 사라진다.

월남이 ~ 눈이 오지않는 나라인데 ~ 스키 부대가 어디있느냐 ~ 고
참 ~ 너무 순진 하다고 ~ 웃더니 ~ 그냥 가버린다.


(츄라이 전선의  청룡 ~ 울산의 권용학 선배님)

"어여쁜 소녀 ~ 날 찾거든
전선으로 떠났다 ~ 말 전해 주오.

남긴 말 없느냐 ~ 묻거든
아무말 없이 떠났다 ~ 말 전해 주오

그녀의 눈에 ~ 눔물이 맺히거든
그도 울며 떠났다 ~ 말 전해 주오"


(호이안의 212기 우태성 선배님)

"술아 ~ 원망 말아라.

나는 조국을 지키는 병사가되었고
나는 자유를 지키는 청룡이 되었다"




지천으로 널린 야자수와 과일나무 ~ 그러면서도
과일을 파는 가게가 많다는것이 참 ~ 신기하다.

집집마다 야자수 나무가 있는데도 ~ 또 야자수를 판다.



도대체 이나라가 얼마나 긴가 --- ???

츄라이를 벗어나 몇시간을 왔는데도 아직 멀었단다.
그러니까 ~ 사이공 저밑에서 ~ 하노이 위 북쪽 까지
나라의 길이가 장장 ~ 2,300 키로다.

우리나라 ~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 ~ 3천리 금수강산 
그러니까 ~ 우리나라 보다 길이로 치면 두배나 길고 길다.



이렇게 지루한 길에는 ~ 가공할 무용담을 듣는게 최상책이다.

"키우 대통령과 키 수상이 짜빈동 전투후 격려차 청룡부대를 방문했을 때 
"한국 해병대는 태권도를 잘하여 상대방 갈빗대를 부러뜨려 버린다는데 사실이냐"라고 물었다. 

청룡부대 여단 작전참모 오윤진 중령은 "사실이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한 후 
인지와 중지를 내밀어 굽히면서 "이 손가락으로 눈알도 쑤셔 뽑는다"고 대답했다. 

대통령과 수상은 오윤진 중령의 대답에 경악했다.



이것으로 마쳤으면 탈이 없었는데 비슷한 발언이 
주월한국군사령부 공식 기자회견장에서도 나왔다. 

한 외신기자가 "한국군은 총검술이 아닌 태권도로 육박전을 한다는데 사실이냐"라고 물었다. 

이 자리에서 짜빈동의 영웅 ~ 정경진 11중대장과 동행했던 
청룡부대 여단 상황장교 이 모 대위가 ~ 오윤진 중령과 똑같은 포즈를 취하면서 

"우리는 육박전때 이 두 손가락으로 눈알을 빼버린다"고 대답했다. 

외신기자들이 경악했음은 물론이다. 

당시 주월한국군사령관 채명신 장군은 

"한국군이 잘 싸우지만 적들에게 지나치게 잔인하다"는 소문을 걱정하고 있던 터였다. 

육군 출신인 채명신 중장은 해병대 장교들에게 
"잔인하다는 소문이 도는 마당에 그런 식의 답변은 조금 지나친 것 같다"고 주의를 줬다. 



나중에 짜빈동의 전설 ~ 11중대장 정경진 대위가 국내에 돌아왔을 때 
국방부 장관이 정경진 대위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도  "눈알을 빼버린다"는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다. 

해병대 출신 국방장관이었던 김성은 장관은 

"아무 문제없어 ~ 죽기 아니면 살긴데 까짓것 눈알이 아니고 불알을 빼버리면 어때!"~  라면서 

해병대 후배들을 칭찬했다고 한다"



해병대 ~ 도대체 유별난 단체 ~ !!
세파에 찌들려 살다가도 ~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것은 

참 ~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지휘관인 장교들의 입담이 그러했을진대
월남을 다녀온 선배님들 밑에서 군 생활을 한 ~ 
그것도 파월 출신 사고자 선배님들 모신 ~ 

천자봉의 구라가 쎌수 밖에 더 있는가 ~ !!

그런 저런 구라를 듣자 보니 ~ 그나마 포장 도로가 끝났다 ~ 이어졌다 한다.



청룡의 이름으로 월남 전선을 누빈 기간이 6년이나 된다.

그 ~ 많은 세월에 선배님들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그 ~ 얼마나 넘치고 ~ 흘러 넘치는가.

아픔의 전쟁터에 ~ 고통을 견뎌줄 ~ 추억 만들기 무용담은 끝이없다.

"추억이라 써 놓고 보나
글제가 너무나 데리킷하게 되었다.
아무튼 지나간 날들이요
만화적이나마 잊혀짖 않는 
그리운 날들이다" 

상허 이태준님에 추억 산문 첫 줄이 떠올라랐다.



아리랑 선배님,왕자식당 선배님,강영근 선배님,그리고 백령도의 박춘병 선임하사님
우태성 선배님,우주인 선배님,베리아 선배님,박순갑 선배님 ----

무언의 성원을 보내주시고 계신
여러 선배님들의 추억을 대신 더듬으며

호이안을 우측으로 두고 ~ 다낭 ~ 그 ~ 화려한 항구를 향해 계속 올라간다.



누가 그랬던가 ~ ?

역사란 아름다운 인류의 강물이라고 ---
좀더 정확하고 
좀더 구체적이고
좀더 아름다운 기록을 위해 우리가 부단히 노력 해야 한다 ~ 고 ---

누가 그랬던가 ~ ?

인류의 귀중한 깨달음이나 
중요한 통찰도 결국은 기록이라는 역사를 통해 얻어 진다 ~ 고 --



그렇다면 ~ 월남 전을 통해
인류가 깨달은 귀중함은 무엇이고
인류가 느낀 중요한 통찰은 무엇인가 ~ ~ ~ ~ 

늦은 ~ 점심을 먹기로 한 ~ 다낭 항이, 
멀리 다낭항이 다가오는데

끝 간데 없는 번민이 갑자기 밀려왔다.



지금 내가 지나는 1번 국도 양 옆은 ~ 사철 푸른 논이다.
3모작이 익어가는 ~ 쌀 수확량 세계 3위의 ~ 천혜의 땅.

그러나 ~ 그 시절엔 ~ 
1번 국도 양옆이 거의 황토빛 날리는 ~ 황무지 였다 ~ 고 한다.

다시는 이 땅에 ~ 
언제나 이 땅에 ~ 늘 푸른 3모작의 평화와 행복이 있기를 간구하였다.




하이얀 아오자이를 입고 
시원하게 오토바이를 타는 남국의 여인들.

바람에 휘갈려 날리는 까맣고 긴 머리카락 사이로
살짝 살짝 들어나는 가는 허리 ~ 그 ~ 밑으로 이어지는 현란한 곡선.

묘한 설레임으로 다가오던 ---

이 세상 모든 정기를 빨아 들일것 같은 ~ 깊은 눈동자.

그들의 앞날에 ~ 
무한 전쟁을 이겨낸 그들의 앞날에 ~ 

이제는 무한 행복의 날이 계속 되기를 
고픈 배를 참으며 기도함을 잊지 않았다.



호치민과 하노이에는 ~ 
AD 39년 부터 43년까지 베트남의 왕으로 군림했던 ~ 
쯩 짝과 쯩 니라 자매를 기리는 ~ 쯩 거리~ 가 있다.

베트남을 최초로 침략했던 중국 한나라에 맞서
베트남 국민을 동원하여 65개 성을 빼앗으며
위대한 지도자로 남아있는 두 자매의 이야기를 들으며



베트남의 여인들이 ~ 이제는 

영원히 자유인이기를 

다낭 항을 깊이 접어 들때까지 기원해 마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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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룡 5대대로 참전한 전우들 오행 산여행  

 

1968년 청룡 5대대로 참전한 전우들이 5대대 본부 근처에 있는 오행산을 여행했다

오행산은 42년이나 지난 지금도 옛날 모습 그대 로다

 

 

오행산은 산 전체가 대리석 산이고 천연동굴이 많은 곳이다

역사 깊은 절도 이곳 작은 산에 2곳 이나 있다 

 

청룡 5대대 참전 용사들 

 

오행산 정상에서 바라 본 다낭 시내 일부 

 

오행산 정상 대리석 바위로 울퉁 불퉁 해서 무척 위험한 지역이다 

 

 

절에 있는탑 

 

오행산을 오르려면 계단이 무척 가파르다. 베트남 더운 날씨에 많은 땀을 흘리고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산정상으로 바로 올라 갈 수 있는 야외승강기 공사를 하고 있다 승강기 공사가 완공되면 쉽게 오행산 정상으로 올라갈 것이다

 

정상에서 바라본 차이나비치 해변 

 

 

산정상 에서 음료수를 마시고 있는 5대대 참전 청룡 전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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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부대 추라이 지역 여단본부 청룡부대는 베트남 전쟁 당시 처음에 캄란 동바틴에 상륙하여

카투산 전투에 참전했고 투이호아 모래벌판으로 이동하여 투이호아 지역을 평정한 다음 투이호아를 
백마부대에 인수인계하고 추라이 공군기지를 통하여 추라이로 공수된 다음 추라이에 처음여단본부가주둔했다 
방기호대령께서 1967년까지 추라이 지역에서 잠시 참전했던 추라이 여단 본부를 부하 장병들과 찾아왔다

베트남 마을 아줌마 안내로 추라이 여단본부에 들어서다 

 

43년전 기지 안 아스팔트 도로가 남아있다 

 

이곳에서 살고 있는 베트남 아줌마 안내로 여단본부에 들어왔다

43년이 지났으나 기지 안은 나무가 심어졌고 잡초만 우거진 채 남아있다

 

베트남 사람들은 어디를 가나 친절하다!! 하던 일을 멈추고 여단본부를 안내해주신

오토바이 탄 아줌마 

 

 

 

당시에 사용하던 트레일러(츄레라)가 녹슨 채 지금까지 방치되어있다 

 

당시에 사용하던 건물도 그대로 일부가 남아있다 

 

 

당시에 사용하던 장비에 USA 글씨가 선명하다 

 

 

안충환 해병이 43년전을회상하며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있다.

 

 

여단본부 일부는 농수로 가 되어있다 

 

 

 

방기호 대령과 부하해병 왼쪽은 25중대로 참전하여 전사한 안이기 해병의

조카 안영진씨가 전남도청에 근무하면서 휴가를 내서 삼촌에 발자취를

보기 위해 이번 여행에 같이 동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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