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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지여행 3일째 백마부대 30연대  3대대가 참전했던 판랑공항 지나치고 닌주 리죠트에서 휴식을취했다 최수진 전우가 1966년 30연대 파월되어 으나 66년도에는 판랑에 3대대가 주둔하지않았고 67년이후 판랑 비행장근처에 3대대가 주둔하여 판랑3대대을 가보지않았다 .백마최초 파월당시 30년대 3대대는 연대본부와 같이있었다

   

사이공 린주리죠트에 도착하여 아침 건너편  돌산위에 절을 찍어보았다

   

1966년도 해병대가 캄란에 최초 상륙하여 첫 전투로 유명한 카투산에도착했다 지금도돌산으로 유명한 카투산에서 우리해병대 1개소대가  많은손실을 입었다

캄란에 처음도착하여 첫전투을 돌산으로 천연동굴이 많은 산이라 작전에 실패한것같다 지금은 카투산 바로및에 베트남 판랑지역에서 태어산 베트남 전사군인들의 영웅묘지가 들어서있다



출처: http://vietnamwarstory.tistory.com/40 [이병장의 베트남전쟁과 남겨진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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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마30연대 지역 수진 마을 위치

큰 지도에서 월남전 한국군 주둔지 및 작전지역 보기





      수진마을 원래 지명은 SOJIN

        백마30연대 지역 한국 간판 상회

                                                        수진마을 김하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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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 맹호 전우들 부부동반 전적지여행

1967년 68. 70년도에 백마부대와 맹호부대로 참전하신 참전전우 분들이 부부동반 하여 참전지역여행과 베트남여행을 왔다

호치민시에있는 주월사령부 건물 45년전 건물 그대로 잘보죤되어있다 백마 사령부에 참전하신 이상필 전우께서 서울에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을 퇴직하시고 부인과같이

45년만에 전적지여행을 오셨다 (전 주월 사령부건물 앞에서)

판랑에있는 카투산 1965년도 한국해병대가 최초로 작전을했던 험준한바위산이다 지금은 산밑에 베트남 판랑지역에서 태어나서 프랑스 전쟁과 미국과의전쟁에서 전사하신 베트남 영웅들을 모셔놓은 국립묘지로 변해있다 이곳에서 전사하신 베트남 전사자분 들을위해 명복을 빌어들였다

캄란에 있는 백마 30연대 30연대지역 정문지역은 현제베트남공군들이 새로운건물로 주둔중이라 다른길로 들어가서 촬영했다

캄란미군기지 정문 45년이흘른 지금도 그대로 보죤되고있다 7년전이곳에서 멋몰르고 사진촬영을 하다가 베트남해군들이 쫓아와서 혼난적이있다 지금은 캄란국제공항으로 들어가는입구로 사용중이라 사진촬영을해도 별문제가 없다

캄란기지로 들어가는 고무다리을 배경으로 사진을찍었다 미군기지가있을 당시에는 2개의다리로 왕복운행 되었으나 지금은 한곳 다리만 사용중이다

캄란기지안 언덕넘어 해변에 가보았다 오염되지않은 바다물이 무척깨끗하다 이곳은 지금 세계유명 호텔체인들이 리죠트건설을 하고있다

백마 부대원들이 이곳 해변으로 상륙한 지점이다 같이오신 일행들과 기념촬영

이상필 전우님이 참전당시 나트랑에 나와서 45년전에 참파탑에서 찍은사진

이상필 전우가 45년전에 찍은 그자리에서 부인과 같이 추억을 남긴다 전쟁으로 부서진탑을 복원하면서 모습이많이 변한것같다

지금은 베트남에 소수민족으로 살고있는 참파족후손들이 관광객을위해 참파족 춤을 공연중이다

참파탑에서 바라본 나트랑으로 들어가는두개의다리 전쟁당시에는 앞에보이는 다리옆에 2차선 작은 다리가 있던곳이다 지금은 다리흔적만 남아있다

해마다 다르게 변하는 나트랑 해변가 대형 호텔들이 나트랑에 발전모습을 보여주고있다

나트랑 십자성 사령부 정문기둥과 방카는 지금도변함없이 그대로다

www.vietnamgo.co.kr 베트남갑시다.한글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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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전적지여행 3일째 백마부대 30연대  3대대가 참전했던 판랑공항 지나치고 닌주 리죠트에서 휴식을취했다 최수진 전우가 1966년 30연대 파월되어 으나 66년도에는 판랑에

3대대가 주둔하지않았고 67년이후 판랑 비행장근처에 3대대가 주둔하여 판랑3대대을 가보지않았다 백마최초 파월당시 30년대 3대대는 연대본부와 같이있었다

   

사이공 린주리죠트에 도착하여 아침 건너편  돌산위에 절을 찍어보았다

   

1966년도 해병대가 캄란에 최초 상륙하여 첫 전투로 유명한 카투산에도착했다 지금도돌산으로 유명한 카투산에서 우리해병대 1개소대가  많은손실을 입었다

캄란에 처음도착하여 첫전투을 돌산으로 천연동굴이 많은 산이라 작전에 실패한것같다 지금은 카투산 바로및에 베트남 판랑지역에서 태어산 베트남 전사군인들의 영웅묘지가 들어서있다

캄란 미군기지 부교다리및에는 지금은 가두리양식장이 들어서있다

66년도에는 고무보드위에 임시다리로 부교였으나 67년이후 현제의 철다리로 교채되고 지금까지 사용되고있는 캄란 부두와 비행장으로가는 다리

캄란공으로 가는 길목에서 67년도에 미군이 놓아논 다리을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백마 30년대 2대대 8중대가 참전했던 감계고지 지금도 고지은 선명하게 그대로 남아있고 베트남 통신탑이서있다

박남수 전우는 1968년도 맹호사령부로 참전하고70년대 2번째 파월하여 백마30연대 감계고지8중대에서 참전하였다 옛날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8중대자리을보고 이제야 소원을 풀었다고 한다

백마 부대 십자성 부대가 이곳 나트랑해변으로 참전한 전우가있어서 나트랑 상륙 지점에서 추억을 남긴다(주월사와 십자성 참전 박경식 전우부부)

   

   

   

나무가 많이 우거진 지역이 십자성 사령부와 102병원 237수자대 2단본부 5통신대대  보충대 등 사병휴양지다 장교휴양소는 건물이많은 끝지역에 있었다

백마 십자성 상륙지점에서 참전전우들의 사진

상륙지점을 떠나 십자성 사령부 정문에서 박경식 김영옥 부부

백마 29연대 1호차을 운전했던 임소춘 전우가 십자성 사령부 정문 빵카안으로 들어가서 빵카을 점검중이다

1번국도 언덕길에서 바라본 십자성 102병원 지역모습

박경식 전우가 102병원뒷산 넘어 11항공대와 십자성 방송국이 같이있었다고 1번국도 언덕에서 기록을 남긴다

백마사령부 정문 총탄맟은 정문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고 사령부 연병장으로 떠난다

백마사령부 연병장에서 바라본 호네호산 과 앞에 백마사령부 극장터 백마사령부 극장터는 지금은 공장이들어서고 일부는 공터로남아있다

   

백마사령부 연병장 앞에서 기념사진

박석준  임소춘  박남수전우

이곳은 29연대 터  양쪽으로 열대우림 이우거지고 당시에 다이던 차량길만 남아있다

임소춘 전우는 이곳 29 연대에서 전두환 연대장 1호차을 운전했다고 숙소을 찿아볼려고왔으나 연대장숙소는 열대장글로 변해 있어서 무척아쉬어한다

   

   

   

임소춘 전우 아들과 같이 29연대 이곳저곳을 찿아본다

저곳 산밑에 연대장 관사가 있었다고 작은 봉우리 산을 가리킨다

날씨가 맑아서 닌호아 현대조선이 가깝게 한하게보인다

백마 휴양소 40년전이나 지금도 푸른바다는 변하지 않고 깨끗하다 40년만에 찿아본 동하이휴양소 임소춘전우

박경식전우는 연애인 위문단을 인솔하고   이곳 백마부대 극장을 찿아 와 보았다고한다

바다물에 잉크물을 풀어놓은듯 파랗고 깨끗하다

   

깨끗한 휴양소 바다가 아름답다

   

   

   

   

닌호아 현대조선 앞으로 대형 정유 저장소들이 손에잡힐듯이 가깝게보인가

   

                                www.vietnamgo.co.kr  베트남갑시다.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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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後 靑龍의 월남수기- (21부)- 용서하라,그러나 잊지는 마라

後 靑龍 

 

 

그러니까 ~ 몇 년전에 ---
태국으로 가는 방콕행 비행기를 탓다.

떠나는 서울이 겨울인데 ~ 비행기가 점점 실내 온도를 높인다.
현지 기온에 적응을 시키기 위해서란다.

이코노미 좌석 증후군이 첫 번째로 온다는 5시간이 지나간다.
그러고도 한시간 ~ 

후끈한 밤 공항을 나와서 120키로를 달려간다.
무슨 고생인가 ????

거기 ~ 방콕에서 서쪽으로 미얀마 국경 쪽 
거기 ~ 칸차나 부리에 ~ 콰이강의 다리를 보러 갔었다.

전쟁 영화로서는 ~ 서부 전선 이상 없다 ~  이후 
처음으로 아카데미상 7개 부문을 휩쓸었던 ~ 주제곡 

콰이마치의 음률이 ~ 거칠게 흐르는 ~ 강물 따라 흐르는 ~ 그 강 언덕에
30바트를 내면 들어갈수 있는 ~ 콰이강의 다리 기념관이 있다.

수 천명의 생명이 죽어간,콰이강의 다리와 ~ 죽음에 철도 ~ 의 현장 그림이 끝나고
음습한 냄새가 나는 ~ 마지막 벽면에 박힌

굵직한 글씨가 무슨 뜻이냐고 ~ 일행이 나에게 물었다.

"Forgive, But Not Forget" 

거기 인간 고통의 ~ 무한 표현이 끝나는 벽면엔 ~ 그렇게 써있었다.

"Forgive, But Not Forget" ~ "용서하라,그러나 잊지는 마라"



바람불고 ~ 파도치고 ~ 별도 빛나는 
그러고도 ~ 웬지 모를 ~ 무언가에 가슴 저이던 호이안을 떠나면서

월남으로 떠나기 전에 ~ 
자신의 젊은 살점과 핏 자욱이 배어있는 베리아 반도를 보고 와 달라시던
베리아 선배님을 생각하면서 ---

아직도 ~
전쟁의 아픔은 ~ 죽어간 어린 딸이되고 ~ 남편이 된다는 
호이안 풍물 시장의 어느 노파의 주름진 얼굴을 떠올리며 ---

츄라이 ~ 다시 ~ 츄라이 전선 ~ 짜빈동을 찾아가는 길에 ~ 
전쟁과 죽음의 

인간 자의에 의한 전쟁으로 ~ 타의에 의한 죽음에 대해
눈을 시퍼렇게 뜨고는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눈을 감았다.



아들을 보내는 고향의 어머니는
용서 할 일도 ~ 잊어야 할 일도 ~ 생기지 말기를 

오직 ~ 몸 성히 돌아와야 한다고 ~ 아들에게 ~ 단디 ~ 단디 타 이르셨다.

아들아 ~ 용서 할 일도 ~ 잊어야 할 일도 ~ 만들지 말고 무사히만 돌아오거라 



그러나 ~ 전장터에는
용서 못할일도 생기고 ~ 잊지 못할일이 ~ 더 ~ 많이 생겨났고

용서 할수 없는 ~ 잊을수 없는 일들이 ~ 남아있다.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새벽 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노을 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 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아름 다웠다고 말하리라 ....."

천상병 시인은 그런것을 ~ 귀천으로 노래하였고 ----



" ~ ~ ~ ~ ~ ~ 
갈매기로 하여금
구름이 되게 하였다.

기꺼운 듯
푸른 바다의 이름으로
흰 날개를 하늘에 묻어 보내어

이제 파도도
빛나는 가슴도
구름을 따라 먼 너라로 흘렀다" ~ 갈매기로 위로하였다.



"죽은 자가 산 자의 목을 잡고
발목을 잡고
어깨에 매달려 등에 업혀
일년이라 열 두달
편할날 없다 나무라는구나

우리들이 
구지레한 산동네 떠나지 못함은
~ ~ ~ ~ ~ ~ 
원통한 죽음 빚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천년이 백년이 하루 같은
너희 사는 꼴이 안타까워서이니

~ ~ ~ ~
~ ~ ~ ~ 

우리들 훨훨 털고 일어나
구만리라 머나먼 구천 길
편하 가게 하려거든

허구헌 날 굿거리 세마치로 뛰지말고
발고 빛나는 횃불을 들라" -- 신경림 (횃불)



"한 사람의 울음이
온 마을에 울음을 불러 오고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고을에 노래를 몰고 왔다

구름을 몰고 오고
바람과 비를 몰고 왔다
꽃과 춤을 불러 오고
저주와 욕설과 원망을 불러왔다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노래를 몰고 오고
한 사람의 죽음이
온 나라에 죽음을 불러왔지만 ...."-- (신경림 - 그여름)



"빗줄기가 흐느끼며 울고 있다
울면서 진흙 속에 꽂히고 있다
아이들이 빗줄기를 피하고 있다
울면서 강물 속을 떠돌고 있다

강물은 그 울음소리를 잊었을까
총소리와 아우성소리를 잊었을까
조그만 주먹과 맨발들을 잊었을까

바람이 흐느끼며 울고 있다
울면서 강물 위를 맴돌고 있다
아이들이 바람을 따라 헤매고 있다
울면서 빗발 속을 헤매고 있다" -- (신경림 - 江)



"동녁하늘 불붙던
어느 새벽에
내 생면의 계고가 있었다

유성이 튕기는 하늘을 보고
어느 날인가
전대화가 익어가던 날
외상의 창가에서
잊어버린 음성과의 재회

화려한 계절들의 마지막 숨결까지 미소로 다듬어



내 재생의 날엔
무의미의 뜻을 다시는 새기지 말자고
목마름을 참고 달린다

정글은 말이 없는데ㅡ

여기 
십자성이 지던

어느날 아침
내 생면의 계고가 있었다" -- (청룡 상병 윤신행)



"외치고 싶었던 노래가 있습니다
이것이 자유의 노래입니다
우리는 붉게 물들은
이국의 전선에서 자유의 노래를
불러주고 싶었습니다

빛을 잃은 산하에 광명을 주고
퇴색한 대지에 아름다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뛰었습니다
성난 노도와 같이 쉴줄 모르고
뛰었습니다

그리하여 공포와 불안에 헤매는
그들에게 용기와 신념을 주었습니다" -- (병장 강한호) 



로마시대 철학자 ~ 에피 쿠르스는 말했다.

-- 죽음은 우리와 무관하다
-- 왜냐 하면 ~ 우리가 살아있을때 죽음은 존재하지 않고
-- 죽음이 왔을땐 ~ 우리는 존재하지않기 때문이다.



피타고라스와 그의 제자들은 

영원한 것 ~ 그것을 추구하다가 ~ 철학을 내놓았다.
그리고는 영원을 정리하였다.

-- 영원의 세계는 시간이 없다 -- 고 ---



다시는 이 땅에 
이런 일이 없어서 ---



다시는 이땅에
용서 할일도 ~ 잊어야 할일도 없기를 

그렇게 간구 하였다.



"얼룩진 철모에다
첫.......숙원의 울음을 고하고
10여년의 푸른 제복 속에서
커다란 육성보다
조용한 감정으로 울고있는 나!

시원으로부터 쌓여 온
나의 욕망을........

탄식으로 묶여진 한 아름을
잡초로 띄워 보낼 때.......

한숨은 타다남은 잿더미가 된다

모....든.....영광도 부귀도
훨ㅡ훨 내버리고 ---- 

훨 - 훨 내 버리고" -- (중사 유재정)



이럴 줄 알았으면 ~ 이렇게 슬픔을 위로할 일이 많았으면
이쁘니 곱뿐이 ~ 한 눈 안 팔고

서러움도 표현하고 ~ 괴로움도 알아주는 ~ 詩나 몇편 더 외워 올것을 ---

때 늦은 후회의 몸부림에 눈을 뜨고

이국영 선배님이 찾으시던 지큐 마을을 찾아보며
마지막 절규를 토하고 ~ 짜빈동으로 향했다.



"기억하라 !!
해병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라.

남국의 정글은 푸르더냐
청룡으로 가고 청룡으로 죽어간
해병이 나의 이름으로 남는구나.

그리도 그립던 이름
어머니 어머니
그리도 사랑했던 누이 누이
살아서 돌아 가겠다고
전쟁의 참혹을 백지위에 썼던 시절
시절은 갔지만
기억하라
해병의 이름으로 기억하라"


마지막 절규를 토하고 ~ 짜빈동 가는 길을 묻고 또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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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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