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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동영상은 다낭항이 보이는 한국인 식당에서,
 
백형배 춤 제대로 춘다, ㅉㅉㅉ

 

베트남 전적지 탐방 4일 째 되는 날 저녁 식사는 다낭항구가

바라보이는 한국인 식당에서 술잔을 돌리면서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그 옛날 베트남 격전지로 떠날 때 부산항 제3부두에

찾아오셨던 어머니, 아버지 연세보다도 훨씬 더 많은

나이에 다시 다낭항에 상륙한(?) 해병 194기 동기들의 마음속에는

희,비 쌍곡선이 머리를 스쳐가면서 만감이 교차했으리라!

 

반세기 전 다낭항에 처음 상륙했을 때에는 내가 과연

저 항구에서 귀국선을 탈 수 있을까? 아니면 영원히

다시 못 볼 항구로 남을 것인가! 두려움과 갈등으로

전우들의 손을 꼭 잡고 " 우리는 살아서 꼭 귀국선에 오르자"

이렇게 보장없는 약속을 했던 우리들이 아니였던가! 

 

그로부터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이 흘러 다시 찾은 베트남,

며칠간의 격전지를 탐방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생각해보니

 전쟁의 흔적은 간데없고 사상과 이념은 수구세력들만의

골동품으로 남아  옛 이야기로나  들을 수 있을 것 같으며

또한 변화의 속도도 (남북 관계는 빼고) 우리나라 '70년 대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활기 넘치는 거리마다 젊은이들의 일하는 모습에서

전쟁은 까맣게 잊혀져 감을 알 수 있었고 

새롭게 발전하는 모습만 보이는데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하던가!

그래서 우리는 다낭항을 다시 찾은 기념으로

술잔을 기울이며 여흥을 즐겼노라!

 

옛 월남과 월맹을 생각하니 이런말이 생각나네요

" 용서란 과거의 상처가 남은 삶을 지배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진 탁회장 뒤 바다 건너편에 육지가 아련히 보이는데

그 육지 앞
바다가 다낭 외항이다,

부산항에서 떠난 파월장병 수송선은 (업셔호 25,000톤급) 

1주일 만에 이 외항에 도착하는데

해병 장병들은 이곳에서 1박 후 새벽에 다낭항에 상륙한다 

 

탁회장아 사진을 보니 모습이 좀 거시기하다 ㅎㅎㅎ

 

사진 오른쪽이 다낭 시내 방향이고, 보이는 산 왼쪽 끝자락이

그 옛날 우리가 상륙하던 다낭항이다.

우리가 상륙하기 전날 밤에는 계속 함포소리가 들려왔고 

조명탄이 하늘을 밝게했으며,

상륙할 때 하늘에는 굉음을 울리며 전폭기가  날아 다녔는데 ~~

 

위 사진 1매, 아래 사진 7매는  다낭 앞 바다

조명균 부회장님

김두한과 한 판 벌려도 승산 있겠는데 ~~

사진 뒤, 다낭시내 고층 건물들이 보인다.

 

아래 사진 8매

다낭항 왼쪽 모퉁이 해수욕장에서

멀리 다낭항 외항이 보인다.

 

이곳에는 베트남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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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조회 : 86  

 

위 동영상은 다낭항이 보이는 한국인 식당에서,
 
백형배 춤 제대로 춘다, ㅉㅉㅉ

 

베트남 전적지 탐방 4일 째 되는 날 저녁 식사는 다낭항구가

바라보이는 한국인 식당에서 술잔을 돌리면서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그 옛날 베트남 격전지로 떠날 때 부산항 제3부두에

찾아오셨던 어머니, 아버지 연세보다도 훨씬 더 많은

나이에 다시 다낭항에 상륙한(?) 해병 194기 동기들의 마음속에는

희,비 쌍곡선이 머리를 스쳐가면서 만감이 교차했으리라!

 

반세기 전 다낭항에 처음 상륙했을 때에는 내가 과연

저 항구에서 귀국선을 탈 수 있을까? 아니면 영원히

다시 못 볼 항구로 남을 것인가! 두려움과 갈등으로

전우들의 손을 꼭 잡고 " 우리는 살아서 꼭 귀국선에 오르자"

이렇게 보장없는 약속을 했던 우리들이 아니였던가! 

 

그로부터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이 흘러 다시 찾은 베트남,

며칠간의 격전지를 탐방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생각해보니

 전쟁의 흔적은 간데없고 사상과 이념은 수구세력들만의

골동품으로 남아  옛 이야기로나  들을 수 있을 것 같으며

또한 변화의 속도도 (남북 관계는 빼고) 우리나라 '70년 대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활기 넘치는 거리마다 젊은이들의 일하는 모습에서

전쟁은 까맣게 잊혀져 감을 알 수 있었고 

새롭게 발전하는 모습만 보이는데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하던가!

그래서 우리는 다낭항을 다시 찾은 기념으로

술잔을 기울이며 여흥을 즐겼노라!

 

옛 월남과 월맹을 생각하니 이런말이 생각나네요

" 용서란 과거의 상처가 남은 삶을 지배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진 탁회장 뒤 바다 건너편에 육지가 아련히 보이는데

그 육지 앞
바다가 다낭 외항이다,

부산항에서 떠난 파월장병 수송선은 (업셔호 25,000톤급) 

1주일 만에 이 외항에 도착하는데

해병 장병들은 이곳에서 1박 후 새벽에 다낭항에 상륙한다 

 

탁회장아 사진을 보니 모습이 좀 거시기하다 ㅎㅎㅎ

 

사진 오른쪽이 다낭 시내 방향이고, 보이는 산 왼쪽 끝자락이

그 옛날 우리가 상륙하던 다낭항이다.

우리가 상륙하기 전날 밤에는 계속 함포소리가 들려왔고 

조명탄이 하늘을 밝게했으며,

상륙할 때 하늘에는 굉음을 울리며 전폭기가  날아 다녔는데 ~~

 

위 사진 1매, 아래 사진 7매는  다낭 앞 바다

조명균 부회장님

김두한과 한 판 벌려도 승산 있겠는데 ~~

사진 뒤, 다낭시내 고층 건물들이 보인다.

 

아래 사진 8매

다낭항 왼쪽 모퉁이 해수욕장에서

멀리 다낭항 외항이 보인다.

 

이곳에는 베트남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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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지도에서 월남전 한국군 주둔지 및 작전지역 보기






글쓴이 : 안다고
조회 : 68  

 

 

위 동영상 화면에 나오는 지역은 청룡부대가 추라이에서

호이안으로 이동 (1967, 12월) 후, 교대로 1중대 (1969, 1월까지)

 3중대 (1969, 3월까지)

1대대가 (1973, 2월까지)  주둔 하였던 디엔반이다

동영상에 나오는 건물 앞 도로에서 12시 방향 50여 m 지점에

디엔반 군청이 있는데 이번 전적지 탐방팀이 방문코자

하였으나 군청 공무원 중에는 당시 베트콩 또는 월맹군

출신들이 공무원으로 재직 중인바, 사정에 따라서는

봉변을 당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문 앞에서 방문을 

포기해야하는 아쉬움이 ~~,    

 

청룡 6중대 방석

 

                                          위 사진, 디엔반 입구                  

 

                                   위 사진 1매, 아래사진 4매 , 디엔반 군청 앞을 지나는 도로

 

청룡 1중대, 3중대, 1대대가 교대로 주둔하고 있을 때

이 도로는 비포장 1차선으로  차량 교행이 어려울 정도로

협소한 도로였는데 지금은 편도 2차선으로 비교적 깨끗하였지만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차량 통행은 드물었다

안다고 (사진) 가 서 있는 도로 50여 m 뒤에

디엔반 군청이 있음

 

 

 

사진 위 1매 , 아래 1매.  

사진 왼쪽 건물 앞에 청룡 3중대 정문이 있었으며,
 
하천은 그때와 달라지지 않았으나

수량은 그때보다 좀 많은 것 같았다.

경관 조성을 위하여 물 흐름을 억제한 듯

사진 왼쪽으로 건물이 여러체 보이는데 이 자리에 청룡 3중대 1소

대 벙커들이 있었으며, 안다고는 건물 끝 부분에

지하 벙커를 구축하고 그곳에서 생활했다..
  

추 신
1969년 3월초순 사진 뒷쪽 하천 건너편에 대규모 월맹군이
3중대를 기습 공격하고자 접근 중이었는데 우리가  이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고 중무기를 동원 하천건너에서 기다리던 중
이들이 나타나자 일격에 섬멸한 기억이 나는구나
이로 인하여 한 달 동안 적의 시체 썩는 냄새가
3중대 방석으로 날라와 코를 막고 다닐정도 ~

 

위 사진, 다낭 차이나비치

 

다낭 차이나비치 해수욕장은 청룡부대가 호이안으로

이동 후에 휴양지로 활용하였던 곳이다.

안다고도 1968년 10월 1일부터 이곳에서 1주일을 보냈는데

46년 만에 다시 찾은 차이나비치는 카지노, 호텔, 리조트 등

많은 위락 시설이 들어서 있거나 축조 중이었으며

, 그때는 없었던 4차선의
해변 도로가 시원하게

뻗어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었기에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발전하는데  손색이 없었다. 

 

위와 아래 사진

다낭에서 후에로 가는 중간쯤에 위치한 농촌인데

빼어난 경관이 이방인의 발길을 멈추게 하였다.  

 

 

 

아래 사진 4매

다낭 북쪽 후에로 가는 하이반 고갯길에 설치되어 있는

전쟁 때 군시 시설물인데 아직도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이곳에는 미군을 포함한 몇 나라의 군인들이

합동 검문을 실시하던 곳인데, 적의 기습 공격으로

수많은 아군이 전멸하였다는 무시무시한 고갯길

우리가 갔을 때도 그때의 악몽이 서려 있는 듯 음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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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지도에서 월남전 한국군 주둔지 및 작전지역 보기
글쓴이 : 안다고
조회 : 61  

 

동영상, 추라이로 가는 중에 전용 차량에서 한마디씩   

 

                        베트남 전적지 탐방 2일 째 뇌는 날 동기들은  전용차량으로 

우리 직전 기수에 가까운 선배들의 격전지였던 추라이로 향했다.

촉박한 시간으로 우리 대선배들의 격전지였던 캄란과 투이호아는

갈 수 없지만, 호이안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추라이

탐방은 시간이 충분하기에 선배들의 발자취를 현장에서 보고자 베트남 1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달렸다. 이동중에 차창밖으로 전개된 베트남은

우리나라 6,70년 대 처럼 고속도로 개설, 마을안길 포장, 주거환경 개선 등

발전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고, 특히 우리나라 기술진과 중장비가

베트남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것에 뿌듯한 감정으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으며,  또한 지난 날에는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민주와 공산 진영으로
나뉘었던  사상과 이념이 사그러지고 이에 걸맞게

대한민국과 베트남이 동반자 적 관계로 발전한다는 것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탐방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래서 안다고는 베트남을 사랑하노라!!!  

 

 

 

                                                                                  사진 위, 아래

                               선배들의 피와 땀이 범벅 되어 진하게 베어있는 추라이에서

 피지도 못한 고귀한 젊은 넋을 위로하고자 제례를 올렸다.

제례상 옆에는 이름모를 한송이 들꽃이 선배들이 환생한 듯 반겨 주었다.

 

 

 

 

 

 

 

사진 위, 추라이 헬기장

  추라이 전투에 참여했던 선배 해병들은 누구나 이 헬기장을 한번 이상은

타고 내렸으리라! 배속받은 중대로 가기 위하여,  선혈이 낭자한 전우가 후송을 위하여,

심하게 다친 전우가 조기 귀국을 위하여, 그리고 불귀의 객이 된 전우의 시신

이송을 위하여 ~~   좁은 헬기장이 지금은 쓸모없이 방치되어 있지만,

 청룡부대가 주둔하고 있을 때에는 (1966년 8월? ~ 1967년 12월 23일)

얼마나 북적댔을까?

고개숙여 그날의 애환을 떠 올려 봅니다.  

 

사진, 위로 5매

추라이 탐방을 마치고 다낭으로 이동 중에

도로 옆 구멍가게에 들려 시원한 야자 열매 물로 음료를 대신했다.

한 개에 500원 정도인데 예상치 못한 이방인 방문으로

수입이 짭짤하자 가게집 딸이 기분이 좋아

함께 사진 찍기로 고마움을 대신했다.

결혼할 때 안내장 보내라 축의금 들고 갈 사람 있다.

누구냐고? 조효선 ㅋㅋㅋ 

 

 

 사진 위,

 이 철도는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호치명(사이공)시로 연결되어 있는 철길이다.

단선 궤도로 선로가 놓여 있어서 기차 교행은 역에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기차 선로에서 5m 도 안 되는 바로 옆에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들은 잠을 제대로 잘 수 있을까?  

   우리나라 같으면 철길 옮기라고 데모와 보상을 요구할 텐데 ~,

 
    잠을 못 자니 아이들은 많겠더라 ㅎㅎㅎ 

    예전의 우리나라도 기찻길 옆 집에는 유독 아이들이 많았다는데~, 
   

 

 

 

 

사진 위, 4매

추라이 탐방을 마치고 다낭으로 향하던 중

중간 쯤에서 도로옆 식당에 들려 점심 식사를 ~ 

메뉴는 베트남 토속적인 식단으로 했는데

약간의 향내가 났지만 현지식으로 먹는다는 거 때문인지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술까지 곁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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