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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일: 1965-09-24

월남에 파견될 한국 전투부대 청룡부대의 결단식.
-파월 해병 제2여단 결단식이 동해안에서 거행.
-해병 장병들의 열병받는 박정희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여단장 김봉출 준장에게 부대기를 수여.
-해병대 분열식.
-김성은 국방부장관 참석, 연단위의 조상호씨.
-가족들 꽃다발 전달.

저작자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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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제작일: 대한뉴스 제597호 1966년11월21일 제작
M16 최신형 장비로 무기 교체.
-M16 소총은 1분간 700에서 900발 실탄 사격을 할 수 있음.
-가볍고 성능 좋아 밀림전에 적합.
-사격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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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後 靑龍의 월남수기- (20부)- 나를 ~ 베리아 라 불러달라.

後 靑龍 

 

 

아리랑  아리랑 ~ 해병 아리랑.

1970년 2월 26일  ~ 포항역.

제 33제대 교대 병력의 어머니께서 부르신 노래는
간절한 ~ 간절한 아리랑 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살아서 돌아오라"

아리랑 ~ 아리랑 ~ 해병 아리랑.



멀어지는 부산 항
그곳의 어머니의 노래도 아리랑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다치지말고 몸 성히만 돌아오라"

아리랑 ~ 아리랑 ~ 청룡 아리랑.



제 33제대 209기 박영준 선배님은 
(특별 소대) ~ 대대장님 전선 시찰시에만 출동하는
안전한 보직을 뿌리치시고

베리아 중대 1 소대로 자원해 전선으로 달려 가셨다.



주월사에서 배워 온 ~ 지뢰 매설을 하며 지내던 차에
귀국 3개월을 남겨 놓고
모든 작전에서 열외되어 ~ 안전을 보장 받고 있었다.




"1970년 11월 18일 ~ !!

소대 본부 상황실을 지키던 박영준 상병은 
1분대장으로 부터 실탄을 보급해 달라는 전통을 받았다.

갓 투입된 일등병 두명이 길을 나서는것이 불안해
귀국 3개월을 남겨 놓고 ~ 
모든 작전에서 열외되어 있으시던 박영준 상병이 따라나섰다.

조심 스레 언덕을 넘던 일등병이

악,내다리 ~ 하는 소리와 함께 폭음이 울렸고
중간에 가던 박 상병은 터지는 폭탄을 가슴으로 안았고
뒤 따라 오던 일등병은 두다리가 절단 되었다.

일등병들이 ~ 내다리 ~ 내 다리를 찾으며 울부짖었다.
박 상병은 ~ 베트콩들이 곧 쫒아 올테니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고
약속된 구조 신호를 허공에 쏘아댔다.

그때 ~ 베트콩들이 세명이 나타났다.
확인 사살을 하려고 하였다.



그때 ~ 미군 헬기가 기적 처럼 나타났다.
베트콩들은 확인 사살을 미쳐 못하고 도망갔다.

생과 사의 긴박한 찰나가 뜨겁게 지나가고
소대장님이 지원 병력을 끌고 와서

판쵸를 피더니 ~ 잘려나간 일등병의 다리를 싸고 있었다.

그때 ~ 박상병은 자신의 내장이 밖으로 나와 있음을 알았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


(소대 본부 벙커가 있었던 근처는 낚시터가 되어있다)

다낭항에 정박 중이던 미 의료함에서 긴급 처치를 하고
필리핀 미군 기지 병원으로 옮겨진 

박영준 선배님은 ~ 조국에서 죽게 해달라고 매일 떼를 쓰셨다.

사지 멀쩡히 부산항을 떠났던 ~ 박 선배님은
찬 바람 쌩썡 부는 김포 공항에 들것에 실려 내리셨다.

조국은 ~ 무슨 무슨 준비가 덜 되었다고
차가운 활주로에 30분을 누워있게 하였다.



대방동 해군 병원에서
길고 긴 투병 생활을 하던 중에
전선에서 같이 있던 213기 후배께서 찾아오셨다.

-- 박 선배님이 살아있을것 같아
-- 박 선배님이 만들어 놓고 ~ 미쳐 가져오지 못한 것 중에
-- 앨범 2권을 혹시나 하여 가지고 귀국 하였다.



그 앨범 
마지막 장에 이렇게 씌여있다.

"나, 청룡은
자유의 월남인이 안정되고 평화롭게 살수 있게 하기 위해서
조국과 민족이 명을 받들어
나의 최선을 다 했다고 ~ 자부 한다.


그 앨범 
마지막 장에 그렇게 씌여있었다.


(합천의 171기 불도자 선배님과 우측의 베리아 선배님)

해병 209기 박영준.

그 분은 ~ 이제 이름을 잊고 사신다.

그날 ~ 베리아 전선 ~ 그 능선에서 ~ 창자를 토해 놓고
베트콩의 확인 사살을 기달릴때 ~ 박영준은 이미 죽었다고 하신다.



지금은 ~ 베리아 ~라 ~ 불러 달라고 하신다.

해병 209기 ~ 그 선배님의 이름은 ~ 

그래서 "베리아 ~ 그래서 ~ 베리아 선배님 이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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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작전명 ~ 百年 靑龍 - (5부) - 사라지는 호이안.

後 靑龍 

 

 

-- 나를 지나가면 슬픔의 거리가 있고

-- 나를 지나가면 영원한 괴로움이있고

-- 나를 지나가면 절망의 백성이 있네 



다낭항에 상륙한 청룡 용사들 께서

호이안 여단 본부로 
월남전 적응 훈련을 받으러 가시던

다낭의 다리에 서니
바람이 몹시 불었다.



바람 부는 다낭 다리에 서니

단테의 신곡 지옥편 제 3가의 유명한 구절이 떠올랐다.



월남 전선에 첫발을 디딘 후
이 다리를 건너서

여단 본부로 가시던 님들의 심사가 어떠하셨을까 ??????



요즘은 차이나 비치 앞으로 해서

대리석 산과 ~ 바닷가 사이로 ~ 

새길이 뚫려서 단숨에 호이안까지 갑니다.


(오승일 선배님의 차이나 비치 자료사진)

호된 작전이 끝나고
잠시 휴식을 취하며

미제 맥주를 마셨다는 차이나 비치는 ---


(현재의 차이나 비치)

인적은 끊어지고

드센 남지나 물결만이

그 시절 이야기를 전하려는듯 ~ 끊임없이 밀려 왔읍니다.



호이안 ~ !!!

청룡 부대 본부 ~ !!!

그 자리를 1년만에 다시 찾으니

골프장을 건설한다고 위병소 앞으로 큰길을 뚫고있고



대형 해병 앙카와
참모장 실은



무엇으로 개조하려는지
망이 쳐저있어서

참으로 안타까웠읍니다.



여단 본부 법무감으로 근무하신
200자 청룡 선배님께서는

앙카 우측 ~ 위 건물을 ~ 여단장실로 기억하시고



좌측 위 건물을 ~ 
군수 참모실로 기억을 하시며



앙카 뒷 건물을 

참모장실로 기억을해 주셨읍니다.



여단 본부 통신

지하 상황실 터를 확인하시는 
선배님은 감회에 젖어 마지 않으셨읍니다.



점점 부서지고
쓰러져가는

청룡 부대의 터를 뒤로하고



구정 공세때
여단 본부를 직접 노린 적들과
치열한 전투를 치룬 

공동묘지터를 찾아서 

아껴 두웠던 술한잔 올리니



그 시절의 --- 
스무살 얼굴로 떠오르는 ----

전우들이 생각나시는
청룡 선배님의 안경이 딱아도 딱아도 흐려지는것을
어쩌지 ~ 어쩌지 못했읍니다.



전우여 ~ 청룡 용사여 !!

님들이 피흘려 시들어간 산하에 오늘와 다시보니

여기는 여전히 거치른 타국이구려



뜨거운 전선에 님들을 두고 돌아갔던  수 십년

이제라도 찾아와 속죄의 음복 한 사발로 통곡하노니

님 이여 ~ 청룡 전우여 ~ 



살아 남은, 
살아서 돌아온 우리들의 변명이 모자라거든

우리를 인도한 후 청룡의 정성으로 그 죄를 탕감해 주시구려.



그날 그 자리에 

타국의 이름모를 풀들이 무성히도 자라고

님들의 선혈 자국이 풍우에 씻겨 갔지만




가난했던 조국이 님들을 잊지않고 영원히 기억토록

우리의 발길을 끊지 않으려니 님이여

이제 ~ 이제라도 편히 쉬시라.

2006년 3월 살아남은 청룡





님들을 
만나느라

해지는줄도 모르다가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릴때

호이안을 건너다 보는 개활 습지에

그렇게

그렇게

어둠이 찾아왔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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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지도(청룡 상륙주둔지:1965.10.9~1965.12.25)
큰 지도에서 월남전 한국군 주둔지 및 작전지역 보기

                                       지도(청룡 1차주둔지:1965.12.6~1966.9.18)


큰 지도에서 월남전 한국군 주둔지 및 작전지역 보기

                              

                             지도(청룡 2차주둔지:1966.9.19~1968.1.6)


큰 지도에서 월남전 한국군 주둔지 및 작전지역 보기

           

                            지도(청룡 3차주둔지:1968.1.7~1972.1.29)


큰 지도에서 월남전 한국군 주둔지 및 작전지역 보기





 

해병대의 주둔지역

1965년 10월 9일 아침 베트남 중남부 깜란항에 첫 발을 내딛었던 해병대 청룡부대(제2여단)는 즉각 항구 일대의 평정작전에 돌입했다. 이어 그해 12월 말 미군의 요청에 따라 남베트남의 곡창지대 뚜이호아 평야지대를 평정했다. 그리고 1966년 8월 세 번째의 주둔지역으로 이동했는데 그 곳이 바로 짜빈동전투가 수행됐던 쭈라이(Chu Lai)지역이었다. 남베트남 제1군단의 책임지역이다. 이어 1967년 12월 네 번째로 호이안(Hoi An)에 진출해 1972년 철수할 때까지 주둔했다.

그 중에서도 세 번째의 쭈라이지역은 어느 곳보다도 베트콩의 활동이 왕성한 지역이었다. 군사분계선과 근접해 있어 북베트남 정규군의 침투도 용이했다. 따라서 그 곳의 베트콩과 북베트남군은 언제, 어느 곳이라도 청룡부대의 기지를 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해병대의 주둔지역

④ 비룡작전(67.12.22 ~ 68.1.29)
  • - 미군의 케산전투 병력공백 보안
  • - 호이안시 전투(68.4.30 ~ 2.7)
  • - 베리아 상륙작전(69.9.5 ~ 9.28)
③ 북극성 작전(66.8.16 ~ 9.23)
  • - 미 해병 제3상륙군과의 연합작전을 위한 작전지역 이동
  • - 짜빈동 전투(67.2.14 ~ 15)
② 청룡1호 작전(65.12.16 ~ 66.1.16)
  • - 빈딘성 뚜이호아로 이동
  • - 한국군 최초의 연대급 작전
  • - 곡창지대, 1번 도로 개통
① 깜란항 상륙(65.10.3 ~ 10.9)
  • - 최초 3개대대로 편성
  • - 제2대대 5중대 까두산전투(11.4)
  • - 판랑 비행장 감제고지 장악

해병대의 주요 전투

깜란지역(65.10. 3-12. 15)
  • ① 부산항 출항과 깜란항 상륙 : 1965. 10. 2일, 미 해군 수송선 ‘가이거’호와 ‘엘 틴저’호에 승선하여 10. 3일 부산항 제3부두를 출항했다. 10. 8일 캄란 만에 도착 한 후 10. 9일부터 14일까지 상륙을 완료했다. 최초 주둔지는 여단 본부 와 제2·3대대는 Thon Hoa Da 일대에(CP0222), 제1대대는 깜란 반도 Ao Ho 산 서측(CP 0715)에서 각종 보급 및 지원시설을 경계 임무를 수행했다. 여단 주둔지는 차후 제9사단 30연대에게 인수하였다.
  • ② 까두산(Nui; 山 Ca Du) 작전 : 1965. 11. 4일, 제2대대 5중대는 캄란으로부터 남쪽으로 70km떨어진 판랑에서 부숑비행장 건설을 위협하는 까두산 일대의 적 을 공격하여 정상을 점령하였다.
뚜이호아지역(65.12. 15-66. 10. 9)
  • ① 뚜이호아 : 남베트남 중부의 요충지인 퓨연 성의 성도이면서 남베트남 3대 곡 창지대 중 하나로 중부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적의 식량 보급 기지 역할이었다.
  • ② 청룡 1호 작전(65. 12. 16∼66. 1. 16) : 제2대대가 뚜이호아 북쪽지역을 장악 한 후, 여단(-1)은 남쪽 및 서쪽을 장악하였다.
  • ③ 해풍작전(66. 7. 22∼8. 17) : 66. 8. 11일, 제3대대 정보장교 이인호 대위가 미테마을의 동굴진지 작전 수행시 적이 투척한 수류탄을 막고 산화하였다.
추라이지역(66. 8. 18-67. 12. 21)
  • ① 추라이 : 남베트남 제2의 도시인 다낭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지역
  • ② 강구작전(66. 1. 31-2. 3) : 제1대대 3중대 3소대가 바딴간 반도의 수로 탐색 작전시 적의 포위망을 탈출시 위생하사관이었던 지덕칠하사가 분대를 구출하고 본인은 전사(태극무공훈장 수여)
  • ③ 짜빈동 전투(67. 2. 14∼2. 15) : 짜빈동 전투 참조

    ※ 해병대 증파 : 1967. 7월, 제5대대

호이안지역(67. 12. 21-72. 1. 21)
  • ① 호이안 : 1967년 말 케산전투 준비를 위해 다낭 남쪽 지역의 방어태세 보강을 위해 이동(호이안을 중심으로 북쪽에 제1, 5대대, 남쪽에 제2, 3대대를 배치)
  • ② 괴룡작전(68. 1. 30-3. 13), 승룡 7-21호 작전(69. 1. 10-1. 21), 베리아 상륙 작전(69. 9.5-9. 30), 황룡 2호 작전(70. 4. 1-4. 15) 등

    ※ 철수 완료 : 1972. 2. 19

해병대의 전과

파병기간 6년 5개월 동안 여단급 작전 66회와 대대급 작전 109회를 비롯하여 소 부대 작전 151,347회를 통해 적 사살 9,619명, 포로 및 귀순 1,256명 등 혁혁한 전 과를 올렸다. 또한 8,810톤의 구호 활동 및 대민 진료, 403,729명에 대한 교육 지 원, 1,593동의 건설 지원, 450,064명의 친선 활동 등 대민 봉사활동을 전개함으로 써 3회의 대통령 부대표창을 비롯하여 1회의 미 대통령과 남베트남 대통령의 표창 을 받았다. 그러나 청룡 부대 또한 전사자 1,156명, 부상자 2,702명의 손실이 있었다

 


청룡부대 (해병 제2여단)
The 2nd Marine Brigade

1965년 6월28일 국방부 지령 8호에 의하여 해병 제2연대를 기간으로 하는 해병 제2여단을 편성하였으며 초대 여단장에 이봉출 준장이 임명되었다. 65년 9월20일 경북 포항에 위치한 해병기지에서 제 2여단 결단식을 거행되고,
1965년 10월9일 파월 전투부대로써 최초로 월남 캄란만에 상륙하였다.1965년 12월16일 투아호아 지역으로 이동하였고1966년 8월17일에는 추라이 지역으로 이동, 67년 12월22일에는 호아안 지역으로 다시 이동하여 전투 임무를 수행하였다.해병 제2여단은 한국군 최초 전투부대로 파월된 다음 여러 지역을 전전하면서 수많은 대소작전을 전개하였다. 이중 주요작전으로는 Tuy Hoa에서 청룡작전을, Chu Lai지역에서는 Tra Binh Dong 전투를, 그리고 Hoi An 지역에서는 괴룡작전, 승룡작전, 황룡 작전을 수행하면서 지역내에서 암약,출몰하는 적을 섬멸하여
Quang Nam 성 지역들을 평정하였다.

파  월 :

1965. 9. 20 경북 포항에서 출범, 1965. 10. 3 한국을 떠나
1965. 10. 9 캄란에 상륙.
1967. 12. 12부터는 호이안에 주둔.

사 령 관  :이봉출 여단장의 뒤를 이어 김연상, 이동호, 이동용, 허홍 준장

참전기간 : 1965. 10. 9 - 1972. 2. 24

참전군인 :37,340명 (장교 2,166명, 사병 35,174명)

희  생 : 전사 1,202명 (장교 42명, 사병 1,160명) 부상 2,904명 (장교 99명, 사병 2,805명)

전 투 :

151,522회 (대부대 전투 175회, 소부대 전투 151,347회)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으로써 귀신잡는 해병의 맹위를 베트남에서 보여 주었다.1967년 2월14일 밤부터 15일까지

사투를 벌인 짜빈동 전투는 세계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신화중에 신화로써 한국 해병의 이미지를 부각하는데 큰 몫을 했다. 치열한 전투의 와중에서도 따이한로라고 불리는 다낭에서 호이안간의 도로건설과 많은 대민 지원사업을 실시하여 한월간 친선을 도모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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