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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로 호이안 추라이로 참전하신 분들은 다낭 대리석산 천연동굴과 대리석 조각품 쟈큐성당 6중대지나서 1.000년전에 건축된 참파왕국 미숀 유적지을 구경해보세요

 

세계전쟁사에 길이빛나는 1967년  북베트남 정규군 1개대대 병력이 청용11중대을 야간에 공격했으나 7시간동안 전투끝에 북베트남군 420 명을 사살하고 승리한 전투지역지금 11중대그자리에 베트남 전승비가 서있다 비문에는 1967년 베트남군이 남조선 군대 병역 420명을 사살하고 승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어는쪽 기록이 맞는지 의문이남는다

 

                                  1966년-1967년 참전 해병 168기 이희상 전우와 짜빈동 11중대 에서 베트남군 전승비앞에서

 

                      남쪽 베트남군인 중사출신 12년전부터 알게된 다낭에 탄 이 짜빈동 11중대에 서있는 베트남 전승비 내용을 설명해주고있다

 

호이안 여단본부 자리는 전채가 두곳의 고급리죠트가 들어서서 흔적도없이 사라지고없다 6살때부터 호이안 여단본부 근처에서 살고있는 말못하는 벙어리가 여단장 사무실앞에 서있던 해병 앵카 세멘트 구조물만 자기집에다 가저다 놓고 보관중이다 경비중대가 주둔한 공동묘지근처는 그대로남아 있다 앵카앞에서 이희상 전우 당시 사진과대조해본다

 

                                                         미숀유적지 정문앞에서 가족과 같이 구경온 우주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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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위: 과거의 호이안 여단본부 연병장


            

                                    

아래:호이안 청룡여단 2009년1월 현재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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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작전명 ~ 百年 靑龍 - (5부) - 사라지는 호이안.

後 靑龍 

 

 

-- 나를 지나가면 슬픔의 거리가 있고

-- 나를 지나가면 영원한 괴로움이있고

-- 나를 지나가면 절망의 백성이 있네 



다낭항에 상륙한 청룡 용사들 께서

호이안 여단 본부로 
월남전 적응 훈련을 받으러 가시던

다낭의 다리에 서니
바람이 몹시 불었다.



바람 부는 다낭 다리에 서니

단테의 신곡 지옥편 제 3가의 유명한 구절이 떠올랐다.



월남 전선에 첫발을 디딘 후
이 다리를 건너서

여단 본부로 가시던 님들의 심사가 어떠하셨을까 ??????



요즘은 차이나 비치 앞으로 해서

대리석 산과 ~ 바닷가 사이로 ~ 

새길이 뚫려서 단숨에 호이안까지 갑니다.


(오승일 선배님의 차이나 비치 자료사진)

호된 작전이 끝나고
잠시 휴식을 취하며

미제 맥주를 마셨다는 차이나 비치는 ---


(현재의 차이나 비치)

인적은 끊어지고

드센 남지나 물결만이

그 시절 이야기를 전하려는듯 ~ 끊임없이 밀려 왔읍니다.



호이안 ~ !!!

청룡 부대 본부 ~ !!!

그 자리를 1년만에 다시 찾으니

골프장을 건설한다고 위병소 앞으로 큰길을 뚫고있고



대형 해병 앙카와
참모장 실은



무엇으로 개조하려는지
망이 쳐저있어서

참으로 안타까웠읍니다.



여단 본부 법무감으로 근무하신
200자 청룡 선배님께서는

앙카 우측 ~ 위 건물을 ~ 여단장실로 기억하시고



좌측 위 건물을 ~ 
군수 참모실로 기억을 하시며



앙카 뒷 건물을 

참모장실로 기억을해 주셨읍니다.



여단 본부 통신

지하 상황실 터를 확인하시는 
선배님은 감회에 젖어 마지 않으셨읍니다.



점점 부서지고
쓰러져가는

청룡 부대의 터를 뒤로하고



구정 공세때
여단 본부를 직접 노린 적들과
치열한 전투를 치룬 

공동묘지터를 찾아서 

아껴 두웠던 술한잔 올리니



그 시절의 --- 
스무살 얼굴로 떠오르는 ----

전우들이 생각나시는
청룡 선배님의 안경이 딱아도 딱아도 흐려지는것을
어쩌지 ~ 어쩌지 못했읍니다.



전우여 ~ 청룡 용사여 !!

님들이 피흘려 시들어간 산하에 오늘와 다시보니

여기는 여전히 거치른 타국이구려



뜨거운 전선에 님들을 두고 돌아갔던  수 십년

이제라도 찾아와 속죄의 음복 한 사발로 통곡하노니

님 이여 ~ 청룡 전우여 ~ 



살아 남은, 
살아서 돌아온 우리들의 변명이 모자라거든

우리를 인도한 후 청룡의 정성으로 그 죄를 탕감해 주시구려.



그날 그 자리에 

타국의 이름모를 풀들이 무성히도 자라고

님들의 선혈 자국이 풍우에 씻겨 갔지만




가난했던 조국이 님들을 잊지않고 영원히 기억토록

우리의 발길을 끊지 않으려니 님이여

이제 ~ 이제라도 편히 쉬시라.

2006년 3월 살아남은 청룡





님들을 
만나느라

해지는줄도 모르다가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릴때

호이안을 건너다 보는 개활 습지에

그렇게

그렇게

어둠이 찾아왔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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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단장 집무실 앞엔 늘 커다란 앙카를 세워 놓았었다.


지금의 여단장 집무실 앞 ~.
앙카는 없어 지고
어지러운 전선이 거미줄처럼 ~ 거미줄이 전선처럼 엉켜있다.





그 당시의 여단 본부 -- 

해병 앙카가 있는 곳이 여단장 집무실. 



현재의 여단 본부 -- 
마방 ~ 말들의 놀이터로 변해있다.




좌측 ~ 그러니까  ~ 지점은 교회 건물로 추측되며 ~ 

~ 국기 계양대가 선명히 남아있다.


(분홍색 빗금친 지점의 병사들)

여단장 집무실을 지나 ~ .
바다 쪽으로 가는길에 아직도 선명히 남아있는 건물들.



천막을 치고 지낸 ~ 초창기의 호이안 시절 ~ 

이기원 선배님의 사진첩은 수 십 년을 지나면서도

차마 ~ 차마 바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병사는 비록 허물어 졌지만 ~ 바닷가 쪽을 향해 걸어가는  靑龍 눈에는 지금이라도 성난 눈을 부릅뜬 호이안의 청룡들이  완전 무장을 하고 뛰쳐 나오실 것만 같아 그렇게 든든 할 수가 없었다.



~ 지점.

여단 본부 가운데 길을 따라 ~ 바닷가 쪽으로 가다보면
우측이 연병장인데 ~ 지금은 휴양지 콘도가 들어서고있다.



여단 본부를 가로질러 바다 쪽으로 가는길에
어느새 동네 꼬마들이 

친구가 되어 따라와 주었다.


(154기 이기원 선배님의 사진 첩)

"




여기가 무엇을 하시던 곳일까 ? 세멘장 같기도 하고 --- 



해군 병원으로 기억 하시는 분도 계신다.본부 병원에서 응급 처치를 하시고중환자는 필리핀 미 해군 병원으로 후송을 가셨다고 하신다.



청룡이 철수하고 월맹 군이 이곳에 와서 무슨 무슨 소리들을 했을까 ????



바람 부는 연병장뜨거운 연병장엔 어느새 차이나 비치 휴양소가 들어서고 있었읍니다.



연병장 -- 
이곳 쯤에선 무엇을 하셨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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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우 해병 베트남전적지 방문수기(제14부)호이안에 부는 바람  

 

 

後 靑龍의 월남수기- (14부)- 호이안에 부는 바람..

天子峰 

 

 

Agrement  ~ !!

오대양 육대주를 내 품에 안고 ~ 작은 조국을 거인으로 만들고 싶었다.

못나게 시리 ~ 이쁜 여학생들 등쌀에 주저앉고 말았지만 ---
내 소년기의 꿈은 외교관이었다.

대사가 부임하기전에 ~ 주재국에 미리 통보하는것을
프랑스 명사로 ~ 아그레망 ~ 이라한다.

내가 외교관은 못되었지만 ~ 아직도 이론엔 충실하다.

이기원 선배님 ~ 이국영 선배님 ~ 아리랑 선배님께서 허허 벌판에 투하되어
여단 본부 방석을 만드시던 호이안 땅에 ---

베리아 선배님~우주인 선배님~우태성 선배님께서 현지 적응 훈련을 받으시던
호이안 여단 본부 ~ 그 옛터에

後 靑龍의 임무를 띄고 들어가겠다고 ~ 미리 미리 보고를 드렸다.

호이안이 가까워 온다고 ---
거기 아직도 ~ 청룡의 자취가 그대로 남아있다고 --- 하여

차마 ~ 차마 한번에 입성치 못하고
마블 마운틴에 내려서 ~ 한숨 돌리며
빤히 보이는 호이안 하늘에 ~ 後 靑龍의 ~ 아그레망을 타전했다.



"별을 보고 길을 묻던 나그네들 다 어디로 갔나"

끝없는 오토바이 행렬이 꽉 찬 ~ 호이안으로 가는 따이한 도로를 지나며
흘러 가 버린 30년 세월의 ~ 그 때에
이길을 따라 임무를 교대하시던 님들의 심사가 떠올라

체코의 소설가 밀란 쿤데라의 ~ 한탄 ~ 을 메모장에 적고 말았다.

까만 밤 하늘에 ~ 불 보다 환한 ~ 조명탄이 뜨며는 ~ 

조국의 하늘이며
고향의 어머니도 ~ 다 잊고

전우의 죽음에 분노하여 ~ 거침없는 응사를 하시곤 했다는
선배님들의 발자욱 따라 ~ 그렇게 ~ 밀란 쿤데라의 ~ 한탄을 메모장에 적고 말았다.

"별을 보고 길을 묻던 나그네들 다 어디로 갔나"



반환점을 돌았다.

파월 청룡이,마지막으로 월남을 떠난 다낭 항을 뒤로 두고
남하하면서 ~ 
나는 ~ 내가 내려온 길을 ~ 파랗게 칠하기 시작하였다.

언제 다시 오랴만 ~ 온다손 치더라도
행여 이길을 찾을까 싶어 ~ 파랗게 ~ 파랗게 칠하고 말았다.

가늘고 디테일하게 파란선을 그리고 싶건만
어이 ~ 어이 그리 손이 떨리는지 

다낭에서 호이안으로 파란 선을 긋는 
나의 손은 ~ 수억 천만의 떨림이 계속 되었다.



"벌새는 1초에 90번이나
제 몸을 쳐서
공중에 부동 자세로 서고
파도는 하루에 70만번이나 제 몸을 처서 소리를 낸다

나는 하루에 몇 번이나
내 몸을 쳐서 시를 쓰나" ~ 천양희 누님에 독백을 내가 따라했다.

나는 ~ 천자봉은 ~ 
우리는 ~ 後 靑龍은 ~ 수없이 우리 몸을 두드렸다.

어떻게 ~ 어떻게 두 눈 말짱히 뜨고 ~  호이안의 잔경을 담아낼 것인가 ~ ??

우리를 슬프게 해 달라고 --
우리를 감동시켜 달라고 --
우리를 포복 절도케 해 달라고 --
우리를 전율케 해 달라고 --
우리를 사색케 해 달라고 --


우리는 ~ 後 靑龍은 ~ 수없이 우리 몸을 두드렸다.

그리고 ~ 우리를
우리를 위로해 달라고-- ~ 모파상의 어느 단편 서문을 주문 처럼 외우며
우리는 ~ 後 靑龍은 ~ 수없이 우리 몸을 두드렸다.

수없는 자학의 두두림이 있고나서
그제서야 ~

호이안 ~ 그 역사의 주둔지 ~ 호이안으로 들어가는 하미 마을 삼거리가 나타났다.



하미 마을 ~ !!

어느날인가  ~ '구수정'이라는 ~ 한겨레21  베트남 객원 리포트가
청룡의 대 학살 만행 ~ 이라는 보도로

역전의 청룡 선배님들이
살아 남기위한 정당방위의 거친 표현으로 ~ 세상을 떠들석 하게 했던

아 ~ 하미 마을 삼거리를 지나 
호이안 여단 본부 자리로 들어갔다.


(호이안 주둔 선배님들의 고증으로 그려본 당시 여단 본부 배치도)

言則是也 ~ !!

다낭에서 호이안으로 가는 따이한 도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G ~ 지점 삼거리를 겨우 찾아서
H ~ 지점의 여단 본부 검문소 자리를 통과해

여단 본부 정문인 L ~ 지점으로 가면서
보고 느낀 그대로 ~ 부끄럼없는 수기를 남기기로

언즉시야 ~ 言則是也 ~ 사리에 맞는 말만 쓰자고 중얼거리며

호이안 지구 ~ 청룡부대
그 본부 앞에 내려섰다.


(전쟁 당시 월남군 장교 출신 ~가이드를 앞 세우고도 어렵게 찾은 여단본부 입구)

1967년 12월 22일 ~ 비봉 작전을 전개하며
츄라이에서 호이안으로 청룡이 이동해 올때

K ~ 지점 ~ 검문소 바로 앞에 살면서
헌병대 구두를 딱아 주며 귀염을 받았던 벙어리 소년이 ~ 나이 50의 중년이 되어 
아예 ~ 집을 L ~ 지점으로 옮겨 살면서

추억을 찾아오는 청룡들을 안내해 주고있으며
우리가 도착하자 ~ 10년 지기처럼 반가이 뛰어 나왔다.



보인다 ~ !!

30 몇년이 흘렀다 ~ !!

그러나 ~ 너무나 ~ 생생히 호이안 여단본부가 살아있었읍니다.



호이안 여단 본부의 위병소.

그 자리에 ~ 서니

13살짜리 소년이었던 현지인과 ~ 
지금도 13살 소년의 기억으로 사는 ~ 벙어리 현지인과 ~ 그 자리에 서니

30 몇년전에 불던 바람이
30 몇년만에 다시 불어왔읍니다.

그 바람을 맞으며 ~ 

주월 청룡 호이안 여단 본부 건물로 들어서니 ---

들어섰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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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낭 차이나비치 해변과 청용 여단본부앞 해변  

 

다낭 차이나 비치 해수욕장은 다낭해변에서-마블마운틴 (오행산)거처  호이안 1968년에 한국군

해병여단 본부가 자리잡은 해변까지 수십키로 미터달하는 아름다운 해변이 길게 펼처 있다

날씨가 맑은날이면 호이안 여단본부 해변에서 다낭 시내가  육안으로도 보인다

불과 2005년도에 만해도 해변이 이렇게 반듯히 정리되지 않았으나 

지금은 세계적인 관광 해변을 만들기 위해 대형카지노장과 하이트호텔

리죠트 세게적이 유명 호텔체인점이 한참공사중이고 또 건설되어 관광객을 받고있다

 

다낭해변에서 멀리 산밑에 대형 불상이 서있다 

 

지난번 태풍으로 해수욕장이 엉망이였으나 군인들을 동원해서 해변을 치우고

부서진 방파제도 한참보수중에 있다

 

다낭해변 차이나 비치에서 마불마운틴 산이 선명이 보인다 

 

 

태풍으로 부서진 도로을 보수중이다 

 

 

해변가에는 바구니 배들이 많이 보인다

바구니배는 대나무로 역어서 둥굴게 만들고 물이못들어오게 물소 똥으로

방수처리을 했으나 지금은 방수페인트로 해변에서 작업중이다 

 

 

바구니 배들이 많은 오른쪽지역 해변은 다낭에서 유명한  고급 식당가들이

많이 들어서있다 이곳에는 비둘기부대로 참전하신 전우분도 이곳에

한국식당을 새로짖고 영업중에있다

 

오른쪽이 식당가 거리다 

 

시원하게 뻗은 해변 4차선 도로가 한가롭다 

 

아침6시 다낭시민들이 해변에서 수영과 운동을 즐기고있다 

 

 

아침시간 시민들이 운동하는 시간 멀리 바다에 그물을 앞으로 치고 그물을새우채

배들이 때지어 지나간다 무슨고기을 잡을 배인지 궁굼하다?

 

이지역은 태풍으로 정비가 끝나지않아 수영금지표시판이 서있다

   

이곳은 1968년도에 청용부대 여단본부가 자리한 해변이다

날씨가 좋아서 바다가운데 산이 선명이보인다 

 

다낭해변에서 이곳 호이안 랑키 캄안지역까지 수십키로미터에 해변이 펼처있다 

 

청용 여단본부앞 해변 멀리 다낭해변 끝자락 산에 불상이 히미하게 보인다

 

호이안 청용여단 본부 해변에서 다낭 오행산과 다낭 시내가 히미하게 보인다

 

여단본부앞에서 바라본 바다가운데 산 옛날에는 이곳 산을 청용부대원들은 원숭이 산이라 불럿다고 한다 

 

인적이 없는 여단본부앞 해변에  웬 베트남 꽁까이두사람이  나타나서 바다로 향하고있다

 

여단본부가 있어던 해변에는 지금도 유명 리죠트와 골프장이 들어서있다 

 

오늘처럼  파란바다와 잔잔한 파도 구름한점없는 날씨는 많지 않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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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안 청용부대 여단본부와 헌병대 경비중대터  

베트남 고도 호이안 베트남전쟁당시 해병대 청용부대가 1967년부터 주둔한 여단터와 헌병대

경비중대 터가 지금도 옛날건물 그대로남았다 몇개월전에 이곳을 방문했을때  여단본부건물일부을 철거중이었으나  문작만 철거되고 건물차채는 그대로 남아있다 이곳은 베트남 군인들 자산이라 리죠트건설 회사와 아직 완전하게 타협을 보지못햇다고 한다 이곳도 곳 철거될거라고한다




청용여단 본부 사무실 건물 문짝이 철거된채 흉물스럽게 40년새월을

버티고있다 

여단본부 부속건물들  

최종상 황목 해병 67년도 68년도에 이곳에서 참전했다 

68년도에 여단본부 통신병으로 참전하여 이자리에서 군인복장으로

찍은 사진을 가저와서 똑같이 제현해본 황목 해병 

68년도에 이자리에서 찍은 사진을  마을주민과 보고있다

문짝은 철거되고 페인트는 벼켜지고 흉물스런 여단본부건물 

한국에 해병대가왔다고 마을사람들이 나와서  서로가 설명을 해주고있다

1968년도 호이안 탑앞에서 황목해병 오른쪽 

2009년도 10월7일 같은 장소에서 황목해병 과 최종상해병 안내이남원 

중국사람들의 절터라 지금도 변함없이 그자리에 그대로다 

9월30일 태풍으로 여단본부앞 해변은 완전쓰레기장으로 변해있다 

해변에서 릴낙시로 낙시질하는 주민 

여단본부 해변에는 주의마을주민들이 태풍으로 밀려온 온갓 나무들을

땔감으로 쓰기위해  주어가고있다

바로해변가 카페에서

여단본부 연병장과 해변모래사장은 프랑스 고급리죠트로 변해있다 

여단 본부 건물이있던 뒤는 해변으로 도로가 새로나고 헌병중대와

경비중대가 주둔지역은 공터로 남아있다 

헌병 중대가 있던 곳에서 바라본 여단본부건물 

경비중대터 

여단본부앞 해변 밀려들어온 쓰래기더미에 묻혀잇다

5일동안 많이 치워 진것이라고 한다 

헌병중대가 있던 빈터 건너편 십자성 군수부대가 있던 자리도 공터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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