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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안 해병제2여단' 에 관한 정보 총 2 개

  1. 2013.11.04 (제20부) 장한우 해병 참전수기
  2. 2013.11.02 호이안 여단본부를 찾아서

後 靑龍의 월남수기- (20부)- 나를 ~ 베리아 라 불러달라.

後 靑龍 

 

 

아리랑  아리랑 ~ 해병 아리랑.

1970년 2월 26일  ~ 포항역.

제 33제대 교대 병력의 어머니께서 부르신 노래는
간절한 ~ 간절한 아리랑 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살아서 돌아오라"

아리랑 ~ 아리랑 ~ 해병 아리랑.



멀어지는 부산 항
그곳의 어머니의 노래도 아리랑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다치지말고 몸 성히만 돌아오라"

아리랑 ~ 아리랑 ~ 청룡 아리랑.



제 33제대 209기 박영준 선배님은 
(특별 소대) ~ 대대장님 전선 시찰시에만 출동하는
안전한 보직을 뿌리치시고

베리아 중대 1 소대로 자원해 전선으로 달려 가셨다.



주월사에서 배워 온 ~ 지뢰 매설을 하며 지내던 차에
귀국 3개월을 남겨 놓고
모든 작전에서 열외되어 ~ 안전을 보장 받고 있었다.




"1970년 11월 18일 ~ !!

소대 본부 상황실을 지키던 박영준 상병은 
1분대장으로 부터 실탄을 보급해 달라는 전통을 받았다.

갓 투입된 일등병 두명이 길을 나서는것이 불안해
귀국 3개월을 남겨 놓고 ~ 
모든 작전에서 열외되어 있으시던 박영준 상병이 따라나섰다.

조심 스레 언덕을 넘던 일등병이

악,내다리 ~ 하는 소리와 함께 폭음이 울렸고
중간에 가던 박 상병은 터지는 폭탄을 가슴으로 안았고
뒤 따라 오던 일등병은 두다리가 절단 되었다.

일등병들이 ~ 내다리 ~ 내 다리를 찾으며 울부짖었다.
박 상병은 ~ 베트콩들이 곧 쫒아 올테니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고
약속된 구조 신호를 허공에 쏘아댔다.

그때 ~ 베트콩들이 세명이 나타났다.
확인 사살을 하려고 하였다.



그때 ~ 미군 헬기가 기적 처럼 나타났다.
베트콩들은 확인 사살을 미쳐 못하고 도망갔다.

생과 사의 긴박한 찰나가 뜨겁게 지나가고
소대장님이 지원 병력을 끌고 와서

판쵸를 피더니 ~ 잘려나간 일등병의 다리를 싸고 있었다.

그때 ~ 박상병은 자신의 내장이 밖으로 나와 있음을 알았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


(소대 본부 벙커가 있었던 근처는 낚시터가 되어있다)

다낭항에 정박 중이던 미 의료함에서 긴급 처치를 하고
필리핀 미군 기지 병원으로 옮겨진 

박영준 선배님은 ~ 조국에서 죽게 해달라고 매일 떼를 쓰셨다.

사지 멀쩡히 부산항을 떠났던 ~ 박 선배님은
찬 바람 쌩썡 부는 김포 공항에 들것에 실려 내리셨다.

조국은 ~ 무슨 무슨 준비가 덜 되었다고
차가운 활주로에 30분을 누워있게 하였다.



대방동 해군 병원에서
길고 긴 투병 생활을 하던 중에
전선에서 같이 있던 213기 후배께서 찾아오셨다.

-- 박 선배님이 살아있을것 같아
-- 박 선배님이 만들어 놓고 ~ 미쳐 가져오지 못한 것 중에
-- 앨범 2권을 혹시나 하여 가지고 귀국 하였다.



그 앨범 
마지막 장에 이렇게 씌여있다.

"나, 청룡은
자유의 월남인이 안정되고 평화롭게 살수 있게 하기 위해서
조국과 민족이 명을 받들어
나의 최선을 다 했다고 ~ 자부 한다.


그 앨범 
마지막 장에 그렇게 씌여있었다.


(합천의 171기 불도자 선배님과 우측의 베리아 선배님)

해병 209기 박영준.

그 분은 ~ 이제 이름을 잊고 사신다.

그날 ~ 베리아 전선 ~ 그 능선에서 ~ 창자를 토해 놓고
베트콩의 확인 사살을 기달릴때 ~ 박영준은 이미 죽었다고 하신다.



지금은 ~ 베리아 ~라 ~ 불러 달라고 하신다.

해병 209기 ~ 그 선배님의 이름은 ~ 

그래서 "베리아 ~ 그래서 ~ 베리아 선배님 이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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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작전명 ~ 百年 靑龍 - (5부) - 사라지는 호이안.

後 靑龍 

 

 

-- 나를 지나가면 슬픔의 거리가 있고

-- 나를 지나가면 영원한 괴로움이있고

-- 나를 지나가면 절망의 백성이 있네 



다낭항에 상륙한 청룡 용사들 께서

호이안 여단 본부로 
월남전 적응 훈련을 받으러 가시던

다낭의 다리에 서니
바람이 몹시 불었다.



바람 부는 다낭 다리에 서니

단테의 신곡 지옥편 제 3가의 유명한 구절이 떠올랐다.



월남 전선에 첫발을 디딘 후
이 다리를 건너서

여단 본부로 가시던 님들의 심사가 어떠하셨을까 ??????



요즘은 차이나 비치 앞으로 해서

대리석 산과 ~ 바닷가 사이로 ~ 

새길이 뚫려서 단숨에 호이안까지 갑니다.


(오승일 선배님의 차이나 비치 자료사진)

호된 작전이 끝나고
잠시 휴식을 취하며

미제 맥주를 마셨다는 차이나 비치는 ---


(현재의 차이나 비치)

인적은 끊어지고

드센 남지나 물결만이

그 시절 이야기를 전하려는듯 ~ 끊임없이 밀려 왔읍니다.



호이안 ~ !!!

청룡 부대 본부 ~ !!!

그 자리를 1년만에 다시 찾으니

골프장을 건설한다고 위병소 앞으로 큰길을 뚫고있고



대형 해병 앙카와
참모장 실은



무엇으로 개조하려는지
망이 쳐저있어서

참으로 안타까웠읍니다.



여단 본부 법무감으로 근무하신
200자 청룡 선배님께서는

앙카 우측 ~ 위 건물을 ~ 여단장실로 기억하시고



좌측 위 건물을 ~ 
군수 참모실로 기억을 하시며



앙카 뒷 건물을 

참모장실로 기억을해 주셨읍니다.



여단 본부 통신

지하 상황실 터를 확인하시는 
선배님은 감회에 젖어 마지 않으셨읍니다.



점점 부서지고
쓰러져가는

청룡 부대의 터를 뒤로하고



구정 공세때
여단 본부를 직접 노린 적들과
치열한 전투를 치룬 

공동묘지터를 찾아서 

아껴 두웠던 술한잔 올리니



그 시절의 --- 
스무살 얼굴로 떠오르는 ----

전우들이 생각나시는
청룡 선배님의 안경이 딱아도 딱아도 흐려지는것을
어쩌지 ~ 어쩌지 못했읍니다.



전우여 ~ 청룡 용사여 !!

님들이 피흘려 시들어간 산하에 오늘와 다시보니

여기는 여전히 거치른 타국이구려



뜨거운 전선에 님들을 두고 돌아갔던  수 십년

이제라도 찾아와 속죄의 음복 한 사발로 통곡하노니

님 이여 ~ 청룡 전우여 ~ 



살아 남은, 
살아서 돌아온 우리들의 변명이 모자라거든

우리를 인도한 후 청룡의 정성으로 그 죄를 탕감해 주시구려.



그날 그 자리에 

타국의 이름모를 풀들이 무성히도 자라고

님들의 선혈 자국이 풍우에 씻겨 갔지만




가난했던 조국이 님들을 잊지않고 영원히 기억토록

우리의 발길을 끊지 않으려니 님이여

이제 ~ 이제라도 편히 쉬시라.

2006년 3월 살아남은 청룡





님들을 
만나느라

해지는줄도 모르다가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릴때

호이안을 건너다 보는 개활 습지에

그렇게

그렇게

어둠이 찾아왔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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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