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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장의 베트남전쟁과 남겨진 이야기들...

호이안 청룡 1대대 주둔지 호이안 본문

청룡/호이안 3차주둔지(1968.1.7~1972.1.29)

호이안 청룡 1대대 주둔지 호이안

Sergeant Lee 2013. 10. 11. 07:57

디엔반 1대대로 참전한 정찬영해병 호이안 관광  

 

호이안은 베트남의 중부 다낭에서 남동쪽으로 30km 떨어진 15∼19세기의 조그만 항구도시다. 15세기 이후 동중국해의 해상 무역중개지로 크게 융성했던 이곳에는 일본, 중국, 베트남, 프랑스, 포르투갈 상인들이 세운 다양한 건축들이 남아 있다. 17세기 말에는 약 6000명의 중국인, 1000명의 일본인이 베트남인과 함께 밀착되어 살면서 여러 문화가 공생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 당시 쓰인 중국과 인근 국가들의 역사서적에는 이곳을 파이포 혹은 카이포라고 불렸음을 알 수 있다. 이곳 호이안이 15세기경 베트남에 의해 정복된 이후에도 많은 서양의 상선이 도착하면서 서양문물이 들어오는 창구 역할을 하게 된다. 16세기경 포르투갈 상인들이 선교사와 함께 들어오면서 기독교가 전파되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서 응우옌 왕조가 외국 세력을 봉쇄하는 쇄국정책을 쓰게 됨에 따라 이곳 경제는 큰 타격을 받게 되었고 인근에 있는 다낭이 크게 커지자 19세기 말부터 이곳은 성장을 멈춘 도시가 되어 오늘날까지 고대의 모습을 간직하게 됨으로써 동남아시아에서도 아주 독특한 중세 도시구조와 목조 건축물들이 파괴되지 않고 남아 있다.
 현재 호이안에는 목조로 된 고가구와 화교가 세운 복건회관(福建會館) 등의 844개의 역사적인 중국식 건물들이 있다.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유네스코)는 동남아시아에서 몇 안 되는 중요한 중세 무역항구라는 역사적 가치, 그리고 일본 중국 베트남 등의 다양한 목조 건축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희귀성을 들어 1999년 호이안 역사지구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였다.

현재 유산 등재가 된 곳은 투봉 강 북쪽 강안을 따라 형성된 중세 촌락지역으로 이곳에는 사원, 고택, 묘당, 민가, 회당 등 1000여 점 이상의 고대 건축물이 밀집되어 있고 강가를 따라 형성된 마을뿐 아니라 강 자체도 보존지역으로 묶어 자연환경에 대한 절대 보존정책을 함께 실시하고 있다

1967년부터 한국군 해병여단에 참전한 지역 이기도 하다

 

 

시간이 멈춰버린 영화 세트장 같은 호이안 구시가지 500년전 도로가 그대로 보존 된 곳이다

 

 

200년전에 건축된 목조건물 내부에서는 다양한 호이안 특산물을 팔고 있다

 

 

 

목제로 깎아 만든 손이24개달린 힌두교상 위에 청년이 4개월에걸처서 완성 했다고 한다USD1.000

 

 

정찬영 부부가 호이안 구 도시를 시클로로 관광 중이다

 

 

220년전에 건축된 일본사람들이 만든 목조다리 다리를 건너면 일본인 마을이 나온다

 

이곳 다리는 베트남 돈 2만동짜리에 인쇄 될 정도로 유명한 건축양식이다

 

 

 

복건회관에 내부에 조각된 머리가 여려게 달린 용모습

 

 

중국무역 상인들의 회관으로 사용하던 220년전에 건축된 복건회관

 

 

 

투본강변의 호이안 구시가지

 

 

목조다리 일본교 내부모습

 

 

목조다리을 건너면 일본인들이 거주하던 동래가나온다

 

 

투본강 을 가로지르는 다리

 

 

투본강 변에 많은 열데나무가많은  포호이리죠트

 

 

포호이 리죠트 실내수영장 앞에서 정찬영 부부 20대부부포즈을 취하고 한컷

 

 

투본강과 리죠트수영장이 잘어울리는 포호이 리죠트수영장 1월은 중부지방 날씨가 추워서

 

수영은 할수없고 사진에만 담아왓습니다

 

 

투본강변의 리죠트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