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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장의 베트남전쟁과 남겨진 이야기들...

장한우 해병 베트남전적지 방문수기(제11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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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우 해병 베트남전적지 방문수기(제11부)

Sergeant Lee 2013. 10. 30. 08:22

장한우해병 베트남전적지 방문수기(제11부)  

 

 

後 靑龍의 월남수기 (11부)- 응전의 츄라이 전선.

天子峰 

 

 

세월이 흘러간다.
시간은 흘러간다.

삼라 억겁에 헤아릴수 없는 찰나가 있고
인간사 한 평생에 이루지 못한 꿈이 헤아릴수 없건만

기다려 주지않는 ~ 세월은 흘러간다.
멈추어 주지않는 ~ 시간은 흘러간다.



민족의 빚으로 유장하게 흐르는 
광주의 아픔이 올해도 어김없이 

5.18 ~ 오늘의 상처로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 남녁에 ~ 
자운영 여린 꽃이 지천으로 피어 내리는 비를 맞고 있단다.



베트남에가서 이름모를 꽃들을 많이 보았다.
짜빈동으로 들어가는 쟝글 앞에도
격전의 츄라이 전선으로 가는 길가에도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 ~ 요즘이 꽃피는 계절인가 물으니
일년 내내 꽃이 핀다 한다.

이름을 알거나 모르거나 ~ 일년 내내 꽃이 피는 곳.

츄라이 ~ 츄라이 전선을 들어설떄 ~ 주의 사항이 하달된다.



한국 해병대가 ~ 가장 용맹을 떨친곳이 츄라이 전선이며 ~ 그리하여
한국 해병대가 ~ 가장 원한을 산 곳이 츄라이 전선이다 ~ 그리므로

조용히 ~ 가능하면 조용히 ~ 지나가야 한다.
잘못하면 ~ 아직도 봉변을 당할수 있는곳이 ~ 츄라이 전선이다.


(퀴논 시내를 벗어나면 ~ 맹호부대 주둔지( 좌측)로 가는 삼거리가 나온다)

"소설가는 ~ 우리 행위의 ~

"왜" ~ 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 를 나타냄으로써 ~ 인간과 사회의 법칙을 세운다"

거의 모든 전쟁 영화도
마지막 자막 정도에 그 전쟁의 ~ "왜" ~ 를 짧게 멘트한다.

하물며 ~ 
실전의 전쟁 터에서 ~ "왜" ~ 는 ~ 무슨 무슨 지휘부의 몫이고

전장의 일선에 용사들에게는

오직 ~ !!

"어떻게" ~싸워 ~ 어떻게 살아남느냐 ~  하는 문제만이 우선한다.


(맹호 부대 최대의 격전지 ~ 안케 패스의 현장에 전적비는 지금도 잘 보존되어있다 ~ 십자성부대참전 가이드 이남원님)

"적들이 감옥 문을 잠시 연날
두 살배기 ~ 다섯 살배기 꼬마 수인 들이 햇빛 속으로 엉금 엉금 기어나왔다.

감옥 담장 밖,풀을 뜯는 물소 한 마리,
아이들이 서로 다툰다.

저건 코끼리다 
아니야 물소다 ~ 아이들이 서로 다툰다.

감옥 담장에 기대앉은 여자 수인들,
저마다 웃음이 터지더니

끝내 볼에 눈물이 흐른다"

현재 호치민에 살고있는 월맹군 출신 반레는

1973년 미국과 베트남의 평화 협정이 진행 되면서
정치범이 감방 밖으로 잠시 나와 햇빛을 보는 장면을

"꼬마 수인들" 이라는  詩로 써 놓았다.

임신한채 감옥으로 간 여자 죄인들이 감옥에서 아이를 낳아
그 아이들이 감방 밖으로 엉금 엉금 기어나오는 ----

"왜" ~ 가 ~ 아닌


"어떻게" ~살아 남았냐는 ~ 詩를 거치른 손으로 써 놓았다.



호치민 ~ 하노이 간 1 번 국도.
맹호부대 주둔지로 가는 삼거리를 지나면

짜빈동 ~그 광고판의 이름만으로도 가슴 울렁거리는

츄라이 ~ 츄라이 ~ 대한 해병대 응전의 전선,

광나이성 ~ 손틴군군 ~ 츄라이 지역으로 들어선다.


(투이호아에서 츄라이로 올때와 ~ 츄라이에서 호이안으로 갈때 청룡부대가 수송기를 탓던 츄라이 비행장 터)

"육지의 하롱만으로 불리는
북부의 아름다운 난빈의 자탄에서 태어나
1966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반레는 17세의 나이로 자원 입대해

호지명 루트를 타고 3개월을 걸어 사이공에 도착했을때
이미 그의 부대원은 3분의 1로 줄어 있었다.

전투 한번 해보지 못하고 ~ 
굶어서 죽고 ~ 말라리아에 걸려서 죽고 ~ 미군 폭격에 죽고 ~ 부비 츄랩 걸려 죽고 ---

전쟁이 끝났을때 같이 자원 입대했던 
반레의 고등학교 동기 300 명중에 살아 남은 사람은 5명이었다" ~ 고 ~ 

소설가 방현석은 ~ "하노이에 뜨는 별" ~ 책 속에 ~ 적고 있다.



츄라이 --- 츄라이 전선 ~ !!

월남 전선을 다녀와 내 나름대로
월남전을 크게 4단계로 분류해 보았다.

최초 상륙지점인 캄란을 ~ 1 단계 ~ 현지 적응기이고
피해를 크게 입은 투이호아를 ~ 시련의 2 단계,
월남을 익혀 복수에 나선 츄라이는 ~ 3 단계 ~ 응전기
자제와 보호를 우선한 호이안을 ~ 4 단계로 크게 나누어 보았다.

응전 ~ 응전의 츄라이 전선.

그곳에 서면 ~ 
아직도 가슴 섬뜩한 원한에 찬 ~ 비문들이 곳곳에 서있다.


(마을 증오비 앞의 해병 170기 도공식 선배님)

츄라이 지역 ~ 빈선 ~ 쭈을래 마을엔 시멘트로 월남인이 만든 증오비가 서있다.

"1966년 12월5일 남쥬띤(한국)군대가 서른 여섯명의 마을 주민을
이 자리에 있던 구덩이에 몰아 넣고 몰살 시켰다.

이 구덩이는 1965년 8월 미군 전투기의 폭격에 의해 생겨 났다"

고 ~ 적혀 있다.



투이호아에서 수많은 전우를 잃은 ---

사랑하는 부하를 잃고 ~ 
분대장님이 부비 츄랩에 찢어져 죽어가고
이인호 대위가 적의 수류탄에 산화 하는 ~ 슬픔을 겪고

츄라이로 이동해온 청룡 부대는
그야 말로 독기가 오를 대로 올라 있었다 ~ 고 ~ 하신다.

쭈을래 마을 ~ 마을 사람들이 먹는 유일한 공동 우물에
베트콩으로 의심되는 수명이 산채로 던져져서 우물에서 죽어갔다 ~ 한다.

마을 사람들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우물 물을 먹지 못하고
삼십분 거리의 이웃 동네에서 물을 길어다 먹는다 ~ 한다.

길을 안내하던 가이드가 ~ 가급적 ~ 조용히 ~ 빨리 츄라이를 벗어나자고 한다.



"해병대 171기는 ~ 
월남전이 한창이던 시절에 ~ 600명이 입대를 하였다.

지금 해병대 사령부 기록에 ~ 
171기 전역자 명단은 180명만이 기록되어 있다.

훈련소 끝나고 거의 월남 전선으로 떠났으니
아마도 거기서 죽었을것이야"

해병 171기 박영규 선배님은 그렇게 추측 하신다.

험한 세파를 헤쳐오신 선배님도
아직도 

"왜" ~ 동기들이 죽어 갔는지 명쾌한 설명을 못 하신다.

"어떻게" ~살아 남았고 ~ 어떻게 고통 받고있는지만 알고 계신다.



세월이 흘러간다.
시간은 흘러간다.

멈추지 않는 시간과 세월속에 ~ 인간사 ~ 희노애락도 변해간다.

지구상 마지막 개척지 ~ 무한 자원 베트남에 ~ 
한국 정부가 ~ 
월남전떄 한국군에 원망이 심했던 곳마다 학교를 세워기증했다.

격전의 츄라이 ~ 응전의 츄라이 현장에 가장 먼저 학교를 세워 주었다.


(빈손 츄라이 지역에 한국이 세워준 학교를 둘러 보고 바삐 걸어나오는 해병혼)

우리의 청룡 선배님들은 

 ~ 보다는 ~ 
어떻게 ~ 에 ~ 충실 하였기에 

현지인들도 당시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너무 호들갑 떨지 않고 지나가면

이제는 덤덤히 보내 준다.



먼 훗날 ~ 이곳에서 교육을 받은 베트남 어린이들이
먼 훗날 ~ 이곳에서 목숨을 빼앗긴 사람들을 어떻게 교육할지 --




서둘러 ~ 서둘러 츄라이를 벗어나면서도
이제는 ~ 다시는 인류에게 이런 비극이 없기를 ---



이제라도 ~ 명령에 따라 책임을 다하시다 ~ 가신 님들과
언제라도 ~ 다시 또 오라는 ~ 슬픔을 같이 간직한 월남인들에게도

모두 모두 ~ 서로 서로 용서할수 있었으면

그랬으면 하는 ~ 웬지 모를 ~ 서글픈 바램을 안고

서둘러 ~ 서둘러 ~ 츄라이를 벗어날때 ---



짜빈동 ~ !!

아 ~ 역사의 땅 ~ 전설 같은 신화가 있는 짜빈동이

기찻길 너머 ~ 저 너머 ~ 멀리 보였읍니다.

그 ~ 신화의 격전지를 ~ 차마 미리 보지 못하고

다낭을 거쳐 ~ 호이안을 거쳐 

내려 오는길에 ~ 서두르지않고 ~ 찬찬히 

그렇게 보야야만 하는 땅 ~ 짜빈동이라고 

고개가 아프도록 쳐다보며

응전의 현장 츄라이를 벗어나 ~ 다낭으로 향하였읍니다.



충성 ~ 필씅 !!

멀리 남아프리카 공화국 ~ 요하네스 버그에서
175기 이국영 선배님 께서 ~ 따님 결혼식 참석차 무사히 귀국 하셨읍니다.

가끔은 조국이 생소하실때도 있다시는 선배님꼐
사령부 의장대 그 화려한 보직을 뿌리치고 ~ 피어린 월남 전선을 지원하여
호이안 전선에서 분투하셨던 이국영 선배님께 안부 전화 한통 올리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