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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장의 베트남전쟁과 남겨진 이야기들...
한국군 장교와 사이공 여대생과의 사랑이야기 본문
2008년 7월미국에서 한통의 국제전화가 걸러온다
여 보세요 이남원 씨 되십니까?
예 제가 이남원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미국에서 살고 있는 이명우 라고 합 니다
저는 70년도에 월남에서 민사심리전 부대에서 근무했습니다
당시 한국군 초급장교로 세번 파병했습니다 1973년 3월20일 사이공
롱빈기지 공항에서 마지막 철수했니다
아~그렇습니까 반갑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제 전화 번호 을 알고 전화 을 하셨습니까?
다름이 아니고 미국 에 계신 정우진씨 하고 가깝게 지내고 미국 동부와 남부로
멀리 떨어저 살고 있습니다 만은 같이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전우로써
자주전화연락을 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얼마전 정 우진씨가 저한테 38년만에 베트남 다녀온 이야기 을 너무도 감동 깊게
해줘서 이남원 전우님 전화 번호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예 그렇군요
그런데 부탁 있어서 전화 했습니다
다름 아니고 1970부터 1973년까지 주월사 민사심리대 파견대장 으로
근무할 당시 알게된 사이공대학 법과대학에 다이던 베트남 여대생을 찾고
싶어서 전화 했습니다
꼭 찾아서 만나보고 싶습니다
35년전 사이공대학에 다니던 여대생을 찾을수 있을까요?
당시에 살고 있던 동래와 지역을 기억하십니까?
예 기억 합니다 이름은 뚜익입니다 당시에 찍은 사진이 있습니다
살던 곳은 베트남 동나이성 빈증 지역으로 기억 합니다
사실 미국에서 살면서 뚜익 을 찾기 위해 15년전 과 10년전에 미국에 살고있는
사이공 출신 베트남 태권도 제자들을 보내서 몇번 찾아보앗으나
베트남이 북으로 통일되면서 행정구역이 많이 바뀌어서 찾지을 못 했습니다
포기하고 있던중 정우진 씨가 투이호아 지역에서 근무할 당시 부대근처 마을이장님을
살아생전 만나 보려고 미국에서 베트남 로 가 이남원 씨 도움으로 이장님
아들과 마을사람들 로 부터 환영과 큰대접도 받고 왔다고 자랑을 하는데
감동 적이였습니다
그래서 이남원씨 연락처을 알게되어 습니다
지금 씀 50대 중반씀 되었고 남편도 있을거고 자식들도 있을줄압니다 그러나
꼭한번 만나고 싶습니다
미국에서 살면서도 월남만 생각하면 항시 여대생 뚜익 이 생각나고 사이공과
닌호아 지역이 생각납니다
35년 동안 투익 을 한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1973년 3월20일 마지막으로 철수당시 투익이 롱빈기지 공항까지 오토바이 로
타고 군용차 뒤을따라와서
롱빈기지에서 마지막 슬피 울면서 한국에 가시거던 꼭돌아 오세요 기다리겠습니다
하고 울던모습이 평생을 잊지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사이공과 닌호아 지역은 제가 초급장교시절 월남 전쟁에 참전했던 지역입니다
이명우 씨 알았습니다 한번 찾아 보 겟습니다
예 알았 습니다 부탁 합니다 사진과 이름은 메일로 보내게 습니다
태권도 교관단으로 월남 전선으로 파병
월남전선으로 부산항을 떠나는 미국수송선
1967년 이명우 소위는 태권도 교관단 소속으로 월남전쟁에 파병되어 닌호아
월남군 특수부대에 태권도 교관으로 부임한다
월남군 특수부대 원들을 상대로 태권도 을 전수시키고 69년도 1차 귀국한다
1970년 대위로 진급하여 월남에 2번째 파월하여 주월사 민사심리대 파견대장으로
근무하고 1971년도에 한국으로 귀국한다
1972년 3번째 파병되여 나트랑 야전사령부 강원채 장군이 지위하는 부대소속으로
비둘기 부대 민사 심리대 파견대장으로 참전하게 된다
민사 심리대 파견대장으로 근무당시 이명우 대위
뚜익과 이명우대위의 첫만남
1972년 월남의 따가운 열대지방 햇살이 내려쬐는 일요일 오후 사이공 럴러이 와
동커이 거리는 미군과 연합군 한국군이
외출을 즐기고 있었다 근처에는 미군전용 호텔이 있고 2키로 후방에는
주월 사령부가 있으며 일요일이면 동거이거리와 럴러이 거리는 외출나온
군인들로 붐비고있다
이명우 대위도 쩔렁에 있는 주월사 장교숙소을 나와 야시카 카메라을 메고
동거이 거리에 있는 노천카페에서 월남어름 커피을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있다
잠시후 햐얀 아오자이 을 입고 피부색이 유난히 희고 예쁘게 생긴
월남 아가씨가 왼손에 두툼한 책을 들고 긴머리을 찰랑이며 노천 카페에 들어온다
카페에 들어와서 이명우 대위 옆자리 앉는다 20대 후반의 젊은 장교는 잠시
전류에 감전되듯 멍하니 아오자이 입은 아가씨를 처다보다가 서로 눈이 마주친다
아오자이 아가씨는 생끗 미소 을 지으며 안녕 하세요 하고 한국말로 인사를 한다
아니 어떻게 한국말을 할줄 아세요
네 저는 비둘기 부대 PX 선물 쎈타에서 낮이면 일하고 있습니다
한국군인 같이서 한국말로 인사 했습니다
아~그러세요 그런데 학생 입니까? 두툼한 책이 학생같아서요
예 사이공대학 법과대학 학생입니다
이렇게 이명우 대위와 투익은 동커이 거리 노천카페 에서 첫 만남이 있었다
사이공 법과 대학 시절 뚜익 22세
사이공 법과 대학생 뚜익
1972년 뚜익은 사이공대학 법과 야간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이고 어머님은
돌아가시고 월남군 장교로 있는 오빠와 언니 1살짜리 조카 아버지가 동나이성
작은 마을에살고있다
낮이면 투익은 동나이 디안면에 있는 비둘기부대 내 PX 선물 쎈타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밤이면 오토바이로 사이공 대학 법과대학에 다니고있다
35년전 이명우 대위가 처음 만나서 찍어준 뚜익 22세 칼라사진
비둘기부대 PX 선물 쎈타에서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말을 배우게 된다
3번째 월남 전쟁에 파병된 이명우 대위는 아직 보직을 못받고 쩔렁 에 있는 주월사
장교 숙소에서 대기 하던중 1972년 주월 사령부 민사심리전 부대 비둘기부대
파견대장으로 발령을받는다
민사심리전대 비둘기 부대 파견대장으로 근무 하게된 이명우 대위와 뚜익은
비둘기부대에서 다시만나서 자연스럽게 서로가 사랑을 나누게된다
부대원들이 알까봐 조심스럽게 일요이면 사이공시내와 담샘 공원 에서
데이트 을 즐기고 뚜익 집에 찿아 가서 부모님에게 인사을 하고 장래 까지
약속한게된다
이명우대위 마지막 월남에서 철수
1973년 3월20일 한국군인을 태우고갈 미군 군용기가 롱빈 보급창 기지에
대기 중이다
이명우 대위는 주월사 마지막 철군요원으로 비둘기부대에서 뚜익과
작별인사을 하고있다
뚜익은 오토바이로 롱빈 기지창 까지 군용차량을 따라와서 이대위와 마지막
작별 인사을 한다
몇년이 되어도 기다리 겠습니다 사랑 합니다 꼭 돌아오세요 알았소 한국에
돌아 가서 전역을 하고 찾아오겠소 전쟁도 곳끝날것이요
군용기가 롱빈기지 할주로을 요란한굉음을 울리며 하늘위로 날아간다
뚜익은 군용기가 지평선으로 사라질 때까지 눈물을 흐르며 배웅 을 한다
73년 이명우 대위는 한국에 도착하여 육군 본부에 전역신청을 하게된다
전역을 기다려도 육군본부에서는 특수요원으로 3번이나 월남전선에 파병된
유능한 장교라고 전역을 시켜주지않는다
1974년 베트남 전쟁은 중부지방까지 월맹군에 함락되고 전세가 무척
불리 하다는 소식이다
74년 다시 전역 신청을 하고 전역을 하고 미국으로 떠난다 뚜익은 미국에서
자리잡으면 연락할 생각이다
미국 시애틀에 도착한 이명우 씨는 태권도 9단의 실력으로 시애틀 에서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며 성공하게된다
1975년 월남은 월맹군에게 완전 함락되고 투익과 영원히 이별 하게된다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면서 월남출신 제자들도 많이 생겨서 15년전부터
월남출신 제자들을 사이공으로 보내서 뚜익을 찾아 보았지만 찾지를
못하게된다
뚜익을 찾아나서다
뚜익씨 22세 대학시절사진
메일로 받은 35년전 사진한장 달랑들고 3일동안 호치민시내와 동나이 지역 빈증
지역 수소문하고 돌아다녔지만 허탕만 치고 마지막으로 디안지역을 찿아가서
수소문하던중 드디어 현지인 할머니가 아는 사람같다고 알려준다
할머니의 도움으로 뚜익을 극적으로 찾을수 있었다
뚜익을 찾아서 만나 보니 이명우 씨와는 첫사랑을 한 남자며 지금도 무척보고
싶다고한다
그렇게 오랜세월 기다렸는데 이제야 만나게 되는군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라고 한다
첫사랑의 한국군 대위가 다시 베트남으로 자신을 찿아올 희망을 갖고
꼬박 10년을 기다렸으나
찾아 오지 않아서 34세가 되는해에 베트남 남자와 결혼을 해 22세된 딸을 두고
있고 결혼한 베트남 남자는
15년전에 행방불명 되었다고 한다
1975년 베트남이 북으로 통일되면서 베트남군 장교인 오빠는 전사하고
같이살던 언니도
어린 조카만 나두고 세상을 떠나 77년부터 어린조카딸을 친딸처럼 돌보며
결혼시켜서 지금도 같이 살고 있다
오빠가 월남군 장교이고 투익역시 한국군 부대에 근무경력 때문에 직장도
잡을수 없었고 목슴만 연명할수 있는
배급으로 살아가면서 배고품으로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베트남이 도이모이 정책으로 한국과 베트남이 수교를 하고 한국공장들이
베트남으로 들어오면서
한국말 통역을 구한다는 광고을보고 한국공장에 이력서을 제출하고
한국공장에서 통역관으로
2005년까지 10년동안 근무을 하게된다
몸이 아파서 3년전부터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쉬고있는 중이라고 한다
몇 년째 몸이 아파 직장도 없이 고생을 하면서 나에게 한국말 통역자리을
소개시켜달라고 한다
미국 이명우씨 에게 뚜익을 찾았다고 연락하고 현제 직장도 없이 여자혼자
가장으로 어렵게 살고있다고
전해준다 투익은 한국말을 아주 잘합니다 전화 해보세요
뚜익 전화 번호을 알려주니 고맙다며 호치민에 빠른 시일에 오겠다고 한다
이명우씨가 감사의 메일
이 사장님께
보내주신 e-mail 과 사진 잘받았읍니다. 정말 수고 하셨읍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쉽게 찾을줄 몰랐읍니다. 역시 실력이 대단 하십니다.
뚜익 하고 한시간 이상 통화했읍니다. 무어라고 표현할수 없는 감격의 순간
이었읍니다.
보내주신 사진을 보니 35년 이라는 세월이 너무나 많은것들을 변화 시켰음을
실감케 하는군요. 다음달 11월 20일 쯤 한국에 들렸다가 베드남에
방문 할 예정입니다 이사장님을 만날 생각하니 기대가 되는군요
제 e-mail 주소가 변경 되었으니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미국에서 이 명 우 전우 드림
이명우씨는 하루에 한번씩 뚜익과 전화 통화을 하면서 22세 딸아이가
대학교 2학년이고 현제 투익이
몸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투익씨 딸 학비와 병원비에 보태 쓰라며 usd 5.000을
송금 해주었다고 한다
35년전 사진의 사진보고 있는 투익씨
이명우씨는 베트남에 2008년 11월22일 아세아나 비행기로 호치민에 도착
예정으로 비행기 예약 를 해놓고
뚜익씨 와는 하루에 한번 씩 미국에서 베트남으로 전화통화 을 하면서 11월22일
13시20분 사이공 탄산루트
공항에서 서로가 만나기로 약속이 되 었다
2시간 전에가서 공항에서 기다리겟습니다
35년전 이명우 대위 씨사진을 보고 즐거워하는 뚜익씨
2008년 11월11일 낯12시 울먹인 목소리의 베트남 아가씨의 전화 목소리
이남원 씨입니까?
예 제가 이남원입니다 명함을 보고 전화 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 하셨나요? 저는 뚜익씨 딸 되는 사람인데요
my mother die yesterday night 우리 엄마가 어제 밤에 죽었습니다
my mother die my mother die
계속 우리 엄마가 죽었다고 반복하면서 울고있는 전화 목소리
전화 통화를 끊고 베트남 통역관을 시켜서 왜 무슨 일로 어머님이 죽 어느냐 고
자세히 물으니 어머님이 평소에 유방암으로 고생하고 있던중 35년 만에
이명우씨 소식을 듣고 만날 날만 기다리다
이명우씨를 만나기전에 유방암 수술을 받고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 볼려고 수술을 했으나 ............. 죽었다고 합니다
잠시후 미국에서 이명우씨 전화 이남원씨 지금 뚜익한테 전화을 하니까
뚜익 딸이 전화을
받으면서 우리엄마가 어제저녁 죽었다고 울면서 애기을 하는데 무슨 사연인지
알아봐 주세요
예 저도 지금 막 딸한테 연락 받았습니다
베트남 통역관이 그러는데 어제 저녁 갑자기 죽었다고 하네요
뭐요 사실입니까 ?
예 자세히 알아 보았는데 사실입니다
아~이것이 무슨 운명이 이렇습니까?
몇일만 기다리고 있으면 10일후면 내가 베트남에 들어가는데 나을 만나보고
가든지 ...........
후~말문이 막힌니다
그러나 예정대로 호치민에 들어가서 뚜익 영원이라도 만나 보겠습니다
뚜익씨 딸 22세 대학생이 어머님이 사랑하던 한국군 장교의 사진을 들고
이명우씨를 기다리고있다
처음보는 분이지만 엄마를 대신해서 꽃다발을 전해주는 뚜익씨딸
35년전 22세된 사이공 대학교 학생을 만나서 사랑을했고 지금은 투익은
저세상으로 가고
엄마의학생시절과 똑같은 나이에 사이공 대학교 여학생인 뚜익 딸이
엄마의 옛 애인을 맞이하고있으니 세상에는 이런 사연도 있을까?
35년전 찍은 육군대위 사진을 들고 엄마대신 이명우 씨을 기다리고 있다
건장한 체격의 노신사가 공항문을
나서는 순간 투익씨 딸은 어떻게 이명우 씨을 알아보았는지 꽃다발을 들고
이명우 씨에게 달려가서 돌아가신 엄마대신 꽃다발을 전해드린다 공항에는
뚜익씨 조카 와 가족들 같이 나와서 이명우씨을 반갑게 맞이하고있다
투익씨 조카딸가족과 통역 미스쫍
비둘기 부대가 주둔 했던 디안면 지역 비둘기 부대 예하 부대가 주둔했다는
부대자리는 지금은 공동 묘지로 변하고 뚜익도 그 자리에 묻혀있다
현재 단장중인 뚜익묘소에서 이명우씨
35년만에 수만 키로를 날아왔는데 싸늘한 세멘바닥 밑에 잠들다니 믿어 지지가않는다
11월9일 미국에서 전화 했을때 우리만나서 동커이 거리도 가보고 담샘 공원도
가보고 닌호아 와 나트랑도 같이 여행하기로 약속까지 했는데....
그때 그 목소리 그것이마지막 유언이었을까?
송금 해준 돈으로 딸 앞으로 2년 동안 대학 학비도 해결 했고 딸이 대학들어 갈때 은행에서 받은 융자도 해결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여보 사랑해요 저는 이제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한국말로 또렷이 들러오는 전화 목소리 그날 전화가 이명우씨와 뚜익씨에 마지막 대화내용이다
이명우씨는 한창 단장중인 뚜익 묘지에 찿아서 천국에 가서라도 행복하게 살라고 우리의 이생에 인연은 여기까지가 끝인것같다 천국에가서 다시만나자
뚜익집에 모셔져있는영정
뚜익이 이명우 대위을 기다리던 집에 들려 뚜익영정 앞에 35년동안 이루지못한
사랑을 잎마춤으로 대신한다
35년전에 뚜익과 같이 데이트을 했던 럴러이 거리와 동커이 거리을
다시한번 찿아보고 이명우씨는 한국을 거처서 12월2일 미국으로 돌아갑니다
35년전 럴러이거리 뚜익과 이곳분수대 앞에서 만나서 데이트을 즐기던곳은
지금도 변함없이 그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다
베트남 전쟁이 만들어낸 한국군 장교와 미스사이공 여대생과 의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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