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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장의 베트남전쟁과 남겨진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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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월사/주월사 현황

주월사 현황

Sergeant Lee 2013. 11. 30. 11:26

주월 한국군 사령부’는 1965년 10월 20일, 당시 남베트남 수도 사이공(Saigon, 현호치민市)에 141명의 합동군 참모 기능으로 편성하여 연합 및 합동작전을 수행했다. 그리고 중대전술기지 개념으로 작전 성과 를 극대화시켰으며, 군물자 조달, 민간인 지원 문제 등 해외 파병부대 통합사령부로서 다원화된 임무와 기능을 수행했다.

주월 한국군 사령부 창설

베트남전쟁 파병 당시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은 유엔군사령부에 있었는데, 주월한국군은 유엔군사령관의 작전통제를 벗어나 대통령의 통수권 행사 및 국방장관의 지휘·감독권이 직접 미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독자적인 중대전술기지 개념으로 작전 성과를 극대화시키는데 주월 한국군 사령부의 역할은 매우 지대했다. 그리고 작전 지휘 및 통제뿐만 아니라 군수물자 조달, 민간인 지원 문제 등 해외 파병부대 통합사령부로서 다원화된 임무와 기능을 수행했다. ‘주월 한국군 사령부’는 1965년 10월 20일, 당시 남베트남 수도 사이공(Saigon, 현 호치민市)에 141명의 합동군 참모 기능으로 편성하여 연합 및 합동작전을 수행했다.

야전 사령부 창설

다음해 1966년 8월 15일, 원활한 작전 통제를 위해 냐짱에 야전사령부를 창설했다. 즉 제9사단의 증파에 따라 효과적인 작전 통제와 제100군수 사령부에 대한 협조가 필요했다. 제9사단의 배치와 운용에 관해서 미군과 견해차가 컸으나 1번 도로를 연하여 해안선 지역을 따라 전략적 핵심 지역 배치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야전사령관은 주월 한국군 사령관이 겸임을 하고 행정 부사령관은 사이공에서, 작전부사령관은 냐쨩 현지에서 참모 요원을 구성하여 예하부대 작전 통제를 위한 전방 지휘소 역할을 했다. 당시 냐짱에는 미 제1야전군사령부가 있어 월 1회 개최된 한,미,남베트남군과의 연합작전회의와 미군으로부터 지원받았던 공중 및 해상작전 지원 등은 연합작전 능력을 배양하는 중요한 기회가 되었다. 1973년 3월 23일 남베트남에서 한국군이 철수할 때까지 파병된 연병력 324,864명을 지휘하는 남베트남 주둔 한국군의 최고사령부였다.

주월한국군사령부 및 야전 사령부 운용 결과

기간 중 한국군은 577,487회의 대,소규모 작전을 통해 한국군 전술책임지역 7,000㎢를 평정하고, 남베트남 난민 120만 여명의 거주를 지원했으며, 태권도 보급과 대민 지원활동을 통하여 양국의 선린 우호관계를 증진시켰다.

주월 한국군사령부의 작전 지휘 및 통제 경험은 철수 후 1973년 7월 1일부로 제3군사령부 창설의 원동력이 되었다. 즉 자국의 방위는 자국이 책임진다는 닉슨독트린의 영향으로 1971년 3월 주한 미 제7사단의 철수에 따른 서부전선지역의 방어상 공백과 한·미 제1군단의 임무 종결에 대비한 지휘체제의 조정이 불가피했다. 따라서 주월한국군사령부를 모체로 한 새로운 군사령부 창설 계획에 의거, 예하의 수도사단 및 제9사단을 비롯한 부대들이 존속됐고 초대사령관에는 이세호 중장이 임명됐다. 이처럼 주월 한국군은 철수 후에도 실전 경험을 갖춘 병력과 휴대해 온 신형 장비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국군 현대화 계획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또한 미국과의 안보협력 파트너십이 더욱 공고해 지고 연합 방위 체제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다.

주월 한국군사령부(당시)
                                                               주월 한국군사령부(당시)




                            ▣ 주월사 (주월 한국군 사령부) ▣

                            The Head quarters Republic of Korea forces in Vietnam

주월 한국군사령부(이하 주월사령부) 1965 9 25 국방부 일반 명령16호에 의거,

서울 필동 합동참모본부에서 창설, 초대 사령관에 채명신 육군소장(수도사단장 겸임), 

부사령관 이훈섭 육군준장이 부임하였으며국방부 지령 제12호에 의거, 사령부 선발대 

16명이월남[사이공]으로 출발하였으며뒤를 이어 10 20일 사령부 94, 수도사단 지휘 

본부40 134 월남 [사이공]으로 이동하여 주월 사령부 지휘소를개소하였다.당시의 예

하부대로는 전투부대인 수도사단(맹호), 해병 제 2 여단(청룡) 동외과병원, 태권도 교관단

건설지원단(비둘기) 및 해상수송분대(백구)  지휘하게 된다.

1966 416일 수도사단의 보충부대로 보병 제 26연대가 증파 되었고,뒤를 이어

19666월11100군수사령부(십자성) 창설하였고,그리고 815일 전투부대의 효과적인 

지휘와 연합군과의 밀접한 협조를 위하여[나트랑]에 야전 사령부를 창설하였다.

1966 9 5일 전투부대로서 병 제9사단(백마)이 파월되었고, 1967 410일 한국군 

최초로 11항공중대가창설되어 710 사령부 및 직할부대가 증개편 되어 

공군 지원단(은마), 군악대가 창설되었고,태권도 교관단 및 해병여단의 증강으로 

 한국군 사령부는 총 병력 4 8천명을 지휘하게 되었다.주월한국군 사령부는 

월남의 수도 사이공 한복판에서 '초롱'쪽으로 가는 길 옆에 자리 잡고 있다.'트란ㆍ콕톤' 12번가

7천평이 넘는 넓은 땅에 2천평의 5층 건물에는 월남전의 오늘과 내일을 주름잡는 한국군

비롯하여 호주, 뉴질랜드, 월남 리고 미군을 망라한 작전 연락장교단이 함께 있다.

한국군 사령관 채명신 장군은 '퀴논'사단본부에서  맹호부대가 상륙한 후 작전지휘를 직접 맡고 

있음으로 사령부는참모장  이훈섭준장이 거의 통솔하였다


부대창설 :1965. 9. 25 .서울 필동 (채명신 소장

참전기간 :1965. 9. 25 - 1973. 3. 2

참전군인 :13,133 ( 4,064, 사병 9,069

    :전사 45 (장교 18, 사병 27)부상 54 (장교 9, 사병 45)

:초대 중장 채명신 , 2대 중장 이세호

부대지휘 :주월사를 비롯하여 3개 전투부대(맹호, 백마, 청룡)1개 군수지원부대(십자성), 

                1개군사원조단(비둘기)2개 수송 전대 (백마, 은마) 8개 부대

      :1964. 7. 18부터 1973. 3. 23까지 대부대 작전 1,174회와  

                소부대 작전 576,302회등  577,476회의 작전을 실시

                한국군 전술책임 지역 7,000평방Km를 평정하고 

                월남 난민 120만 여명에 대한 거주를 정착시켰다.

대민사업 :진료 3,523,364, 식량 19,640, 의류 461,764, 농기구 6,406,  

                가옥  및 교실 3,319, 교량 132도로 394Km, 태권도 보급 902,060

                경로 및 어린이 잔치  6,848연예공연 2,304자매결연 3,364곳 등 

                끈끈한 정으로 평정사업과 대민사업을 병행 실시, 진정한 우정을 심었던 

                결과로 월남국민들이 따이한을 믿고 따르며 잊지 못하게 했다.

 

                   

                                          주월사 전경 과거와 현재

                                                            40여년전 주월사


                                             2013년9월 현재의 주월사 

                                                    2013년10월의 주월사 전경



큰 지도에서 월남전 한국군 주둔지 및 작전지역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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