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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고 장한우해병 전적지여행 답사기(2005년촬영)

後 靑龍의 월남 수기 -(27부) - 베트남 전쟁 기념관
後 靑龍 

나를 아시는 ~ 수많은 분들이 ---

해병대 국문과를 ~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것으로 알고 계시는 ---

내가 ~ 天子峰이 ~ 
갑자기 ~ 혼돈에 빠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티우궁을 나와서 ~ 다음 갈곳이 

베트남 전쟁 기념관 ~ 이란다.

전쟁도 기념을 하는가 ???

창립 기념 ~ 졸업 기념 ~ 창사 기념 ~ 개교 기념 ~ 독립 기념
이렇게 쓰여지는 낱말이어야 할 기념 아닌가 하고 ~ 혼돈에 빠졌다.

머릿 속에 든 ~ 수만권의 책을 넘겨 ~ 기념의 정의를 
지금의 현실에 맞게 정리하고 서야

나는 ~ 전쟁 기념관으로 향할수 있었다.

記念 ~ 紀念 ~ "지난 일을 상기하여 기억을 새롭게 함"

티우궁에서 멀지 않은  

베트남 전쟁 기념관 ~ 그곳으로 갔다.



북쪽 월맹군에 점령된 사이공은
이름 마져 ~ 승자의 지도자 이름인 ~ 호치민 시로 바뀐지 오래 ---

1964년 8월 2일.

월맹 군함이 ~ 미국 군함에 ~ 어뢰를 쏘았다는 ~ 통킹만 사건을 계기로 ~ 
거대 미국이 ~ 
인도지나 반도에 ~ 찢어지고 갈라지는 포탄을 퍼 부운지 몇해.

전쟁은 끝나고 ~ 승자에 의한 기념관이
호치민시 중심 ~ 알짜배기 땅에 ~ 자리잡고 ~ 대대적인 증축 공사가 한창이다.



그리스 수니온 곶 ~ 언덕배기에서
지중해 사나운 해풍을 맞으며 서있는

포세이돈 신전을 떠올랐다.

"수니온 절벽 대리석 위에 나를 세워라
그곳에 있는 것은 나와 파도뿐
나와 파도와 서로의 속삭임을 들어라"


낭만파 시인 ~ 바이런이 슬픈 노래가 더욱 외로움을 더 하는곳.

아테네 시를 두고 ~ 
아테나와의 경쟁에서 밀린 ~ 바다의 신 포세이돈.

그 패배의 설움은 ~ 무궁한 세월을 세찬 해풍을 맞으며 
멀리서 보면 ~ 성냥 개비 처럼 ~ 허전하게 서있고 ---

전쟁에서 이긴 호치민 전쟁 기념관은 
시내의 양지 바른 명당에 ~ 

양양하게 ㅡ서 ~ 있다.


(전쟁 당시 ~ 미군 사령부가 있었던 렉스 호텔)

"four freedomes"

강국 미국의 32대 프랭크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1941년 1월 6일 의회교서 에서 4 가지의 자유를 주장했다.

1) - 언론 및 표현의 자유
2) - 신앙의 자유
3) - 가난에서의 자유
4) - 공포에서의 자유.

그 미국이 ~ 연인원 230만명을 투입하고
85만대의 폭격기를 출격시켰으며

세계 제 2차 대전때 투하된 폭탄의 2배인 600만 톤을 월남 땅에 퍼부었다.

미군 만도 ~ 5만 6천명이 전사 했으며 ~ 35만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들이 ~ 미국이 ~ 찾아 주겠다 던 ~ 
자유가 무엇인지 ~ 여기 전쟁 기념관에오면 ~ 다시금 ~ 묻고 또 묻게 된다.



전쟁은 끝났고 ~ 용서와 화해도 끝났지만
그들은 

지워지지 않는 글씨로 ~ 그 당시를 ~ 이렇게 기록 보관 하고 있다.



전후 세대 ~ 안내원 아가씨도 
어찌나 세세히 교육을 받았는지  ---- ----

질문을 해 보려다가 ~ 말았다.



다시는 ~ 

이 땅에 ~ 다시는 ~ 어떠한 이유로도 
전쟁이 없기를 기원해 본다



이기고 ~ 지는것 ~ 
그 ~ 모두가 ~ 불행한 역사이기 때문이다.



포로들을 산 채로 목을 잘랐다는
끔찍한 고문 도구들은 

차마 ~ 사진으로 이것 밖에 올리지 못한다.



무너진 동네 그림 배경 앞에 ~
수북히 쌓아놓은 불발탄 -------- 들.



그 옆에 ~ 월남전 당시 아이들이 그렸다는
그림이 

강렬하다.



지금은 40대 장년이 되었을 
그 당시의 아이들은 

미술 시간에 이런 그림을 그려냈다.



한국군 참전의 증표가 
호치민 전쟁 기념관 벽면에 생생히 붙어있고



그 전쟁 기념관 가까운 곳에

한국 대기업이 지은 
최 일류 백화점은 

한류 풍을 타고 ~ 현지인 발길이 그득하다.



자유 ~ 평화 ~ 용서 ~ 화해

오늘의 베트남은 약진하고 있다.



그들의 앞날에
전쟁에서 겪은 상처들이 아무는 날까지 --



우리의 ~ 겸손한 ~ 화해의 몸짓은 계속 되어야 한다 ~ 고

생각하며 ~ 



유난히 ~ 내가 
극단적인 장면을 싫어하여

별로 가보고 싶지 않았던 곳 ~ !!

서둘러 ~ 

전쟁 기념관을 빠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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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後 靑龍의 월남 수기 - (26) - 티우궁의 겨울.
後 靑龍 

인간의 삶 ~ 인생이라는 것이 ----

인생이라는 ~ 인간의 삶에 ~ 
반전이 없다면 ~ 얼마나 지루할까 ?????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슬플때가 있음을 ~ 너무나 고맙게 생각한다
슬플때가 있어야 ~ 기쁠때 기쁨이 더 하기 때문이다.

실패를 해봐야 ~ 성공의 기쁨이 더크고

패전뒤의 승전이 ~ 더욱 값지다고 한다.



後 靑龍 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

우리의 청룡 선배님들이 ~ 조국의 명령이라는 이유로 ~ 
생사를 하늘에 맡긴채 ~ 물설고 ~ 말설은 

월남땅에서 남기신 발 자취가 없어져 간다하여

우리는 ~ 과연 ~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월남 전선 전 지역을 발로 밟으며 ~ 

더 ~ 없어지기 전에
더 ~ 잊혀 지기 전에

님들의 자취를 ~ 보고 ~ 적고 ~느끼고 왔다.



"The mountain is passed,now we shall get on better"

1786년 칠년 전쟁에서 유렵 전체를 상대로 싸우고
전쟁으로 황폐해진 국토를 부흥하는데 
전쟁 이상의 노력을 했던

프로시아의 프리드리히 대왕은

"The mountain is passed,now we shall get on better"

--"산은 넘었다 ~ 이제 부터 쉽게 갈수 있을 것이다" -- 라는 유언을 남겼다.



계절은 2월.

後 靑龍은 2500 키로를  달려
2월 겨울의 티우궁에서 

겨우 

"산을 넘었다" ~ 는 안도와 함께 ~ 피곤한 몸을 잠시 쉬었다.



1975년 4월 30일 오전 7시 55분.

11명의 미 해병 대원이 마지막 성조기를 내리고 ~ 
베트남을 떠난 후 3시간후

반쯤 열린 대통령궁 을 밀치고 들이 닥쳤던 
탱크 2대는 

겨울의 티우궁 우측 ~ 고목 나무밑에

그날을 뽐내며 서있다.



1975년 4월 20일.

이미 월맹군 15개 사단 ~ 15만명이
전의를 상실한 사이공의 포위망을 좁히며

비엔 호아 공군 기지와
캄보디아 국경에서 사이공을 진격할때

쿠엔카오 키 월남 수상은
티우 대통령을 제거할 쿠테타를 준비하는등

이미 전쟁의 승패는 갈려 있었다.



월맹군이 붕타우 항을 점령하고
사이공의 새벽이 화염속에 밝아오고 있을때

쿠엔 카오키 수상과,
미 국방 차관보 그리고 군사 고문 스티분은

미국 대사관에서
무너져 가는 사이공을 바라고 있었다.

그때 ~ 쿠엔 카오 수상은 --

---"미국이 월남의 국민성,지리,문화,전통과 역사를 이해 못하여 패 하였다" -- 고 탄식했다.

그러나 그때 ~ 티우 월남 대통령은 
이미 

가족들을 데리고 ~ 외국으로 도망간 후였다.

  

"호지명 루트 ~!!

하노이의 호치민 군대는 미군의 폭격을 피해
호지명 루트라는 험준한 산길을 통해

남부 전선까지 보급품을 전달했다.

한사람이 쌀 한가마를 지고 떠나면
남부에 도착 할때 쯤엔 

오면서 밥을 해 먹느라 ~ 두홉 정도의 쌀을 전달할수 있었다고 한다.

-- 반면 남쪽의 월남 지도자들은 
-- 세계 각지에서 보내 주는 원조품을 빼내 
-- 개인 비리를 채우는데 ~ 눈이 멀어 있었다 ~ 한다



티우 대통령이 

어두운 돈으로 사들여 타고 다녔다는

고급차가 ~ 지금도 ~ 티우궁에 전시되어있다.



오늘의 베트남 젊은이들은 
그시절의
월남 지도자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



1973년 1월 25일.

우여 곡절 끝에

-- 연합군이 월남에서 완전 철수 한다 -- 는 

파리협정이 조인되었다.



그해 3월 29일.

개입 12년 만에 미군이 완전 철수한 후에도
티우 대통령은 

이미 ~ 도망 갈 궁리에 바쁜 관리들을 이 자리에 모아놓고
새로이 374회의 공중 폭격을 포함해

조금이라도 영역 확대를 닥달 했다.



그러나,

티우궁 지하 벙커의 상황판은 

점점 붉은 선이 좁혀져 그려지고 ---

이미 월맹군에 투항을 결심한 
남부의 월남 공군 폭격기는

1번 국도로 쏟아져 나온 아군을 폭격했다 ~ 고 한다.



1975년 4월 21일.

트란 반 후옹에게 군력을 넘겨주고

축재한 달러를 ~ 커다란 가방 5개에 가득 담아

월남의 티우 대통령은 ~ 티우궁 옥상에서

대만으로 도망가고 말았다.

그때 그가 타고갔던 헬기가 ~ 티우궁 옥상에 엔진을 끊채 서있다.



그렇게 전쟁이 끝난지 ---

종전 30년 ---

이 나라 대통령 ~ 티우가 버리고 떠난 ~ 사이공은 ~ 

호치민으로 이름마져 바꾸고

빠르게 세계 속에 합류 하고자 ~ 노력하고 있다 ~ 고 ~ 한다.



영상 25도 ~ !!

2월 ~ !!

겨울의 티우궁을 떠나 ~ 

후 청룡은 전쟁 기념관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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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後 靑龍의 월남수기- (25부)- 쉬어 가는 꾸멍 고개 --월남의 달밤.
後 靑龍 

꾸멍 고개 ~ !!

그 후미진 고갯길을 올라서니

애쓰신 ~ 이남원 선생께서 ~ 

쉬어 가자 ~ 하신다.



그렇다 ~ !!

열띈 ~ 발걸음.

후 청룡의 ~ 적적지 탐방은 일단 끝났다.

해냈다는 안도의 한숨 쉬면서 ~ 꾸멍 고개 휴게소에 내린다.



장 장 2000키로를 달렸다.

첫 상면 ~ 캄란만의 설렘과
투이호아의 증오

츄라이 전선의 추억
호이안의 그 많은 이야기

짜빈동을 들려 ~ 後 靑龍의 1 차 장도는 끝나 간다.



이제 사이공에 가서

티우궁과 전쟁 기념관을 들러 보고

두고온 조국으로 ~ 귀국행 비행기를 타면 되는것이다.



긴장이 풀린 탓이지 --

그동안 못했던 ~ 파월 선배님들의 에피 소드며
짬짬이 ~ 숨어있는

러브 스토리도 들어가며

잠시 피곤한 몸을 휴게소에서 쉬어본다.



우리 나라 세차장 허가 기준은
정비 공장 허가 기준과 맞 먹는다.

꾸멍 고개에서 대강 차를 딱아주는
모습이 낭만 스럽다.



대충 ~ 볼일을 보는 
꾸멍 고개 ~ 휴게소.

얼른  최신식 휴게소를 지어야 할텐데 ---



"구름더러 물어보네
나그네 심정을

바람더러 물어보네
나그네 발길을

떠나 온 
고향이기에 
수구초심 서린 뜻을

지금쯤 고향엔
밭갈이에 분주하겠다



산승은 산을 닮아
탄재같이 고요하지만

도지는 
그리움 너머
타오르는 석양일레

그리운 저 산 넘어
소중한 님이 있어

낳은 정 기른은혜
어디에다 비기리까

생각은 
주마등가의
속절없는 달님일레"
 -- 청학

쉬어 가는길에 ~ 마음 팍 놓고
그당시의 선배님들에 향수나 떠올려 보았다.


(후숑 군청앞의 158기 이장원 선배님)

잠시 쉬는 여유에 ~ 
언젠가 158기 이장원 선배님이 가르쳐 주시던
60년대 해병대 응원가가 떠올랐다.

"산과 같은 파도와 같은 물결에 

철같이 단결된 해병 용사! (엇, 둘, 셋, 넷) 

빙산도, 폭풍도 두렵지 않아 

그 정신 그 힘으로 이겨 나가자! 

용맹스럽게 싸워라, 마지막까지"


그렇게 ~ 그렇게 
우리의 선배님들은 조국의 명령에
마지막 까지 ~ 용맹을 떨치고 가시니

오늘의 後 靑龍이 이렇게 여유를 가질수 있다.



"환한 달빛 속에서
갈대와 나는
나란히 소리 없이 서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안타까움을 달래며
서로 애터지게 바라보았다.

환한 달빛 속에서
갈대와 나는 
눈물에 젖어 있었다"
   --- 천상병



"살아서 세월가면
한도 풀릴까

빌어서 원을 세우면
소원도 풀릴까

마음 속
지고 지순한
생각을 그려다 본다


세상사
탐욕 속에
길들어진 나를 본다

진실인가
거짓인가
생각는 나를 본다

마음 문 
경계 속에서
곡차를 든 나를 본다"
 -- 청학



"서러워말자 
나는 늘 경계만 헤맨다 

넘어가지는 않는다 
너를 드나들지는 않은다

넘어가면 내 집으로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음을 나는 안다

너 또한 그러하리 우리는 위험하다 
이미 오래 전부터 나는 이별을 익혀왔다

간절해지면 겨우 경계까지 가기는 간다 
경계만 해맨다 해질 때까지 가기는 간다

경계만 헤맨다 해질 때까지 
거기서 놀다가 돌아온다 그래, 
나는 경계를 가지고 논다 

그것이 나를 지켜주고 있다 
경계는 이어진 곳이 아니라, 
넘어가는 다리가 아니라 나를 지켜주고 있는 극단이다"
 -- 정진규



"처음 서쪽에 들어섰을 때,
서천과 서토가 나를 원하지 않으므로
해질녘이면 맞붙어서 붉었다.

서쪽은 막막한 나를 숲길로 인도하지만,
거미의 포층망에 얼굴이 잡히고
나는 미물에게조자 
겁을 먹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서쪽은 하루 중에 
가장 오래 해를 기다려야 하는 곳,
젊음을 지났으나 
늙음에 이르지 못하여 나는 깨달음이 없다.

~ ~ ~ ~
~ ~ ~ ~

내 코에 피비린내 노을 비린내
나는 이미 서쪽에 들었다.

먼저 온 것은 서풍도 있고 서로도 있다.
아직 도착하지 못한 새때들은 
그래서 바람과 길을 찾을 수 없나 보다"
 --하종오



"내가 머문 서쪽, 집에 너는 없지만
그리워할 세월은 아직 많이 흐르지 않았다.

네가 어디선가 
나 때문에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동안은
인간의 일이므로.....

나는 너를 기다린다.

오늘 폭풍 속에서 나는 살아난다.

바람이 불어간다.
나는 네가 있는곳까지 흔들릴 수는 없을까.
산이 흔들린다.
산줄기가 흔들린다.

애증이여

시여"
 --하종오



"애욕에 
물이들면
눈가에 그리움이 가볍고

재물에
탐심이 들면
모든 것이 제것으로 보인다

분수령 
넘어가는 바람
회자정리 뿐일레"
 --청학



"들끓는
파도 속에
숨 죽인 고요를 딛고

떠오르는 
저 신열
나는 차마 못 볼레라

운명의 
신은 널 깨워 
여명을 밝히누나"
 --청학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나 낳을 적 고추라고
춤추시던 아리랑달

두둥실
어머님 모습
아리랑 사랑달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나어릴적 달님 속에
옥토끼가 있다시던

쿵더쿵 
그리운 모습
아리랑 사랑달"
 --청학



"어머님 그리움이 
낮달로 뜨는 날은

떠 가는 저 구름에 
한 소식 전하려니

눈물이 
내 안을 가려
속세 밖을 거닐다

곡찻잔 속에 잡은
불효자의 목메임은

님 그리워 불러보는
사모의 노래이건만

뉘우쳐
생각을 해도 
사바까지 못 미치는 한"
 --청학



사이공으로 내려오는 길 ~ 퀴논을 1시간 쯤 지났을때
렌트카 기사가 어린애를 살짝 치는 사고가 생겼다.

렌트카 기사가 병원에 갔다가 ~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다 하여
할수 없이 ~ 

사이공 가는 버스를 타는데
베트남 버스엔 ~ 차주가 동승을 하여 ~ 즉각 요금을 챙겼다.

복잡한 와중에도 반갑다고 ~ 같이 포즈를 취해 주었다.



"겨울 삼밭에
묵은 고춧대 당장 거둬내지 않은
농부들의 잔정을 보아라

외로울때 
그 묵은 고춧대 바라보면
삭풍도 거기서는 순해지는 걸
그 누가 알겠느냐



그러면 나는 또 술이 고파
동구 밖 주막집 들러
외상술 몇 잔 들이겨면

때론 함박눈 내리는 날
그 묵은 고춧대 가지마다
눈꽃 눈꽃 피는 것 눈부셔라"
 --고재종



"이 푸른 잎을
제 진심이라 생각지 마시고
이 늘어진 가지를 
제 기쁨이라 생각지 마소서

그대 눈에 마냥 푸른빛 보이려고
그대 마음에
마냥 우거진 행복만을 비추려고

이렇게 흙빛으로 
천갈래 만 갈래 속이 탔습니다"
 --최영철



"저 왔니더 
어머님요
편안들 하셨니껴

십리천
안개 무덤
아버님요 저 왔니더

돌아본 
고향 내성천
갈꽃만은 피지 말아라"
 --청학



"이 불안은 어디서 오는 걸까

햇살 비듬도 성긴 
황혼녘에 앉았으나
바닥 모를 깊이에서 며칠 째
오한이 솟아오른다.

어느새 몸이 아득한
절벽의 둘레에 섰다.



바닥이
안 보이는 끝없는 나락,

천 가닥 파랑마다 
일만 마디의 비명을 일렁이며

반짝이는 것은 햇살인가



내가 지금 이곳에서
무서움으로 끓여내는 죽음의 시간도
살의 한 올이려니, 

썩은 관절로
틈새를 이으려는 온몸이 
또 이렇게 부서지듯 삐걱거린다



눈 시려 내다볼 수 없는
저쪽은 여전한 꽃밭이지만 
늦된 나비, 

거울 안쪽에서 힘겹게 날고
난 반사되어 가는 

늦가을 햇살만 조각조각
날개 위로 내린다"
 --김명인



꽉 찬 좌석을 ---
낯선 따이한을 위해 비워주고도 
환하게 포즈를 취해 주던 

친절하던 베트남 여인들에게 ---

자유와 ~ 평화와 ~ 행복이 넘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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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後 靑龍의 월남 수기 -(24부) - 짜빈동이여 고이 잠드소서.
後 靑龍 

"적은 왜 11중대를 기습 공격해야만 했는가? 

청룡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추라이 지역에서 

적의 주요 공격 표적은 
추라이 비행장과 ~ 청룡 포병 대대의 포진지였다. 

포진지에 접근 하려면 
우선 짜빈동 마을에 위치한 11중대를 필히 공격해야만 했다. 

따라서 후에 밝혀진 것이지만 월맹군 1개 연대는 
단 1시간만에 간단히 청룡11중대를 해치우고 

청룡 포병 대대를 기습한후 
추라이 미 공군기지를 공략코져 했던 것이다. 

그러나 4시간에 걸친 청룡용사들의 혈투로 
적은 지리 멸렬 후퇴하고 말았다. 

만약 11중대가 적에의해 섬멸 되었더라면 
한.미.월군은 적의 본격적인 대공세로 ~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11중대의 중대전술기지는 추라이 남쪽 쾅나이성 손틴군 
짜빈동 마을 북쪽의 약 30m 높이의 언덕에 위치하고 있었다. 

중대의 동쪽 1km 지점에는 한국군이 전력을 다해 방어하던 
베트남 제1번 국도가 지나가고 있었다. 

중대의 북쪽 6km 지점에서 청룡부대 여단본부가 있었다. 
11중대 기지가 위치한 지역은 
당시 해병 청룡부대 주둔 지역의 서남쪽 모퉁이였다"



11중대의 기지는 남북으로는 300m이고 동서로는 200m 정도인 
길쭉하게 찌그러진 타원형에 가까운 모양이었다. 

남쪽과 북쪽에는 약간 높이 솟은 
지형이 있었는데 이곳에 관측소를 설치하였다. 

기지 중앙이 높이가 낮았으므로 중대 중심부에선 
북쪽과 남쪽의 상황을 완전하게 파악할수 없었다. 

이 기지 외곽에는 2중의 단선철조망과 5중의 원형철조망이 있었다. 
대인지뢰는 140발, 크레모아 63발, 조명지뢰 38발이 매설되어 있었다. 

진지와 진지, 소대와 중대 사이에는 모두 교통호를 만들어 
기지 내부의 교통호는 전체 길이가 800m에 달했다. 

개인호의 절반 정도는 포탄에 견딜 수 있도록 유개호로 만들었으며 
각 분대에 2개씩의 위장 진지를 만들어 적의 화력이 분산되도록 했다. 



중대에는 중대 직할 병력 외에도 
4.2인치 박격포 1개 소대와 
81밀리 박격포반 진지도 배치되어 있는 상태였다. 

포병지원을 유도하기 위해 
포병 관측 장교인 김세창 중위도 기지 내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운명의 날인 1966년 2월14일 밤이 되었다. 
3일만 더 버티면 한국 해병대가 선제공격을 감행하게 되는 상태였다. 

적들의 움직임이 수상했지만 기껏해야 
2개 대대급 공격쯤으로 예상했을 뿐 

설마 월맹 정규군 연대급을 초과하는 병력이 
중대전술기지에 공격을 감행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짜빈동 입구의 영웅 묘지말고도 현장에 사당이 지어져있다)

"2월14일 밤 11시20분.
거센 비바람 속에서 3소대 박기창 일병은 수풀을 헤치는 소리를 들었다. 

이윽고 적이 철조망 파괴통으로 
외곽 단선 철조망의 일부를 파괴하는 폭음이 들려왔다. 

청음초는 즉각 중대로 적 발견을 보고했고, 
중대는 박격포로 조명탄을 발사하여 30여명의 적을 확인했다. 

기지 서북쪽을 담당하고 있던 11중대 3소대는 맹렬한 사격을 가했으나, 
적은 1명의 시체를 남긴 체 금방 후퇴해 버렸다. 

그런데 적은 그냥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떠들썩하게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면서 후퇴했다. 

이와 동시에 기지 남쪽의 짜빈동 마을의 불이 일제히 꺼졌다.



11중대장 정경진 대위는 
적의 이상한 행동으로 보아 완전 철수한 것이 아니고 
다시 공격할 것이라고 예상하여 전 병력에게 군화를 벗지 못하게 지시하고, 

1/2병력을 진지에 배치한 상태로 경계를 강화하였다. 

그러나 적은 다음날 새벽이 다되도록 공격해 오지 않았다. 

초긴장 상태로 참호 속에 대기하던 병사들도 하나둘 졸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2월15일 새벽 4시10분, 3소대 청음초였던 
도성룡 일병과 조정남 일병은 베트남 사람 특유의 고약한 체취를 느꼈다. 

거의 동시에 잠에서 갑자기 깬 
이중석 일병은 적을 보고 놀라서 소총을 발사해버렸다. 



해병대는 포병관측장교 김세창 중위의 유도아래 
즉각 105밀리 포대에서 조명탄을 발사하고, 
기지 외곽의 적 부대 후속지점으로 차단사격을 실시했다. 

적들은 4시20분부터 이곳저곳에서 
철조망 파괴통을 이용하여 3소대 외곽의 철조망을 파괴했다. 

이윽고 적의 박격포 지원사격이 끝났다. 

잠시 정적이 흐른 후 적들은 일제히 괴성을 지르면서 3소대 진지로 돌격해 왔다. 



11중대 병사들은 소총으로 최후 저지사격을 펼쳤다. 
그러나 3소대 전방으로 돌격하던 적은 무려 2개 대대 병력이었다. 

결국 4시40분 무렵 11중대 3소대 1분대와 3소대 화기분대가 방어하던 
기지 외곽이 적 2개 대대 병력에 의해 돌파를 당했다. 

애당초 3소대 1분대 지역은 방어정면이 너무 넓어 
3소대장이 전투가 일어나기 전에 11중대장에게 
방어정면을 좁혀주도록 요청했으나 중대장이 묵살한 바 있었다. 

결국 3소대 1분대의 방어망이 뚫려 중대 전체가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



11중대 3소대 1분대장 배장춘 하사는 
총과 무전기를 버리고 곡괭이를 집어 들고 백병전에 뛰어들었다. 

1분대 이학현 상병은 적병 5명이 참호로 돌입한 후 
어둠 속에서 헤매다가 중대 대변 수집통으로 빠져 버리자 
대변 수집통에 수류탄을 던져 적 5명을 대변통 속에서 폭사시켰다. 

이학현 상병은 배장춘 하사에게 달려드는 적을 죽인 후 
오른쪽 발목과 왼쪽 어깨에 총상을 입었다. 

개인호에 뛰어든 적병과 싸우던 조정남 일병은 
중과부적으로 밀리자 수류탄을 터뜨려 자폭했다. 



부상 속에서도 계속 사격하던 이학현 상병도 
개인호 속으로 적이 뛰어들자 수류탄을 터뜨려 적들과 함께 자폭해 버렸다. 

김명덕 일병은 전신에 파편상을 입은 상태에서 
수류탄을 모아 적들에게 계속 투척했다.

이영복 일병은 부상당한 배장춘 하사를 부축하여 2소대 진지로 후퇴했다. 
이영복 일병을 제외하면 나머지 1분대원 전원이 전사하거나 중상을 입었다. (전사 5명, 부상 5명)




(짜빈동 전선의 울산 권용학 선배님)

"같은 시간은 3소대 화기분대도 돌파를 당했다. 

사수 김낙성(김남석) 상병이 전사한 후에는 ~ 부사수 이내수 일병이, 
그 다음에는 1번 탄약수 오태준 일병, 
마지막으로 송영섭 일병이 경기관총을 넘겨받아 
최후까지 사격했으나  결국 화기분대도 돌파당하고 말았다. 

송영섭 일병은 마지막 순간 기관총 총열을 뽑아 물구덩이로 집어던지고 전사했다.

11중대에 배속된 1중대 3소대 소속 병력들도
철조망용 철주를 뽑아들고 백병전으로 적을 상대했다. 

11중대 3소대 외곽 방어망을 돌파한 적들은 
화염방사기 3문을 앞세우고 내곽방어망으로 안쪽으로 돌진해 왔다"



(츄라이 전선의 154기 남상순 선배님)

"11중대장 정경진 대위는 3소대에게 
기지 외곽방어망을 포기하고 철수하도록 명령했다. 

어차피 방어가 뚫린 상태에서 
현 위치에서 무리하게 방어를 펴기보다는 병력을 집결한 후 
집중 반격하는 것이 더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일종의 모험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이 결단이 기지 방어에 결정적 전기가 되었다. 



적들은 해병 청룡부대와 유사한 철모와 위장복을 착용하고 있었으므로 
진지 안에서 병력이 뒤섞이자 피아를 구별할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적은 평소 한국군이 기지 밖에서 매복작전을 할 때 
수풀로 위장한 것을 보고 한국군을 흉내 내기 위해 수풀로 위장을 하고 있었다. 

피아를 구별하기 위해 고심하던 정경진 대위는 
적이 수풀로 위장한 것을 인식하고 
풀이나 나뭇가지를 꽂은 병사는 적이니 사살하라고 지시했다. 

한국군은 기지 내에서는 수풀 위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40여년이 흘렀건만 ~ 아직도 풀한 포기 나지않는 곳이 있다)

"11중대 1소대가 위치한 지역에는 적 1개 대대가 공격해 왔다. 

이곳의 적 1개 대대는 직접 방어망을 돌파하는 것이 임무라기보다는 
11중대 3소대 지역으로 1소대가 지원을 못하게 견제공격을 해온 것이다. 

그러나 대대 vs 소대 간의 병력 차이가 컸으므로 
1소대의 외곽방어망 중의 한곳도 결국 뚫리게 되었다. 

적은 철조망 파괴통을 이용하여 1소대의 철조망을 7m 정도 파괴하였다. 
3소대가 외곽방어망을 포기하고 후퇴할 무렵 
1소대도 진지 안에서 치열한 백병전을 벌이고 있었다"



(유일하게 남은 부대 건물)

"이미 3소대의 외곽방어망이 완전 뚫린 상태였기 때문에 
1소대 방어망도 돌파당하면 중대는 전멸할 위험이 있었다. 

11중대 1소대장 신원배 소위는 11중대 1소대 2분대장 이준재 하사와 함께 
화염방사기를 든 적병을 직접 공격하여 화염방사기 3문(혹은 2문)을 노획하였다. 

1소대장 신원배 소위는 적이 1소대 진지 중에 한곳만 돌파했음을 알고 
조명탄이 터지는 순간에는 1발식 정조준 사격을 하도록 하고, 

조명이 끊기는 순간에는 일제 사격을 돌파구에 집중시켰다. 



"적이 11중대 1소대 방어망을 완전 돌파하지 못하고 
공세가 주춤해진 새벽 6시 무렵, 

1소대 병사들은 전방 100m 지점의 바위 뒤에 적병들이 
대전차포와 척탄통으로 사격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1소대는 적의 대전차포를 공격하기 위해 
수류탄으로 무장한 임시 특공조를 편성했다. 

1소대 선임하사관 김용길 중사와 이진 병장, 
통신병 조용구 상병은 수류탄 2발식을 들고 
진지 밖으로 나가 포복으로 바위에 접근하였다. 

김용길 중사 등 3명은 일제히 수류탄을 투척하여 
적들을 폭사시키고 대전차포 3문을 노획하였다. 

결국 적은 공용화기를 많이 상실하여 
11중대 1소대 지역을 완전히 돌파하지는 못했다"



(짜빈동의 흙 한줌 소중히 퍼 담는 ~ 後 靑龍 -- 해병혼)

"수세에 몰려 방어전을 펼치던 한국군이 
갑자기 괴성을 지르면서 일제히 육탄돌격을 감행하자 
진지 내부로 침투한 월맹 정규군들은 돌파구 쪽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7시20분 무렵 1,2 소대 혼성 병력이 3소대의 돌파구를 완전 차단하자 
기지 내부에 침투한 적들은 완전히 포위되어 버렸다. 

11중대 병사들은 로켓발사기와 수류탄을 동원하여 
잔존한 적들을 완전히 폭사시켜버렸다. 



날이 밝아오자 미 해병대 소속 
AC-47 4대가 출격하여 기지 밖의 적들을 맹폭하였다. 

전투가 끝날 무렵 청룡부대 소속
O-1 관측기가 중대기지 상공에 나타나 
날개를 흔들며 11중대의 승리를 축하해 주었다.

이윽고 청룡부대 2대대 6중대 소속 지원 병력이 
헬기에 탑승하여 기지로 이동해 왔다. 

마침내 혈전이 끝난 것이다. 

적 시체 확인 246명, 추정 사살 60명, 포로가 2명이었다. 
노획품은 대전차포 6문(혹은 3문), 기관총 2정, 기관단총 6정, 
AK-47 자동소총 17정, 소총 12정이었다. 

아군 전사자는 전사 15명, 부상 33명이었고 
전사자의 대부분은 3소대 소속 병사들이었다.



(짜빈동의 신화를 이룩한 정경진 11중대장을 격려하는 주월 한,미 해병 수뇌부)

""작전이 끝난 다음날인 1967년 2월16일에는 
월남군 최고 사령부 참모부장과 
주월 한국군사령부 작전 참모가 부대를 방문했고, 

17일에는 정일권 국무총리를 비롯한 
해병대 사령관 출신의 '김성은' 국방부장관, '신상철' 주월 한국대사가 방문 했다. 

또한 21일에는 월남공화국 국가원수인 티우 대통령과 구엔 카오키 수상 및 
월남군 1군단장인 람장군 일행이 방문, 장병들을 격려해 주었으며, 

특히 월남군과 미군사령부에서는 연구반까지 파견하여 진지 견학과 
방어 전술에 대한 연구를 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월남전 사상 중대단위 부대로선 최대의 전과를 올린 
청룡 11중대 장병 전원에게 일계급 특진이 내려졌고, 

중대장 "정경진" 대위와 1소대장 "신원배" 소위에겐 
태극무공 훈장이 수여되었다. 



또한 "배장춘" 하사, "김용길" 중사에게는 을지무공훈장이, 
"김기홍" 중위 "이영복" 일병, "김성부" 소위등 
특히 수훈을 세운 장병 8명에게는 충무무공훈장이 수여 되었다"

이같이 전 부대장병에게 일계급 특진이 내려진 것은 
대한민국 건군사상 두 번째 일이었다. 

그 첫번째는 6·25당시 진동리 지구전투에서 해병대의 '김성은'부대 
전장병에게 내려졌던 일계급 특진이었다



"살아남은 전 중대원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 자리에 도착한 여단장은 중대장과 소대장, 
그리고 각 병사들의 손을 잡으며, 
목이 맨채 말을 잇지 못했다. 

"참으로 훌륭히 싸웠다" 




생과 사의 기로에서 살아남은 11중대의 전장병과 
중대장은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다. 

한참 말문을 닫고 있던 중대장 정경진 대위는, 
-- 여단장님! 부하들이 전사해서 칭찬 받을 면목조차 없습니다 --

중대장의 보고하는 목소리는 역시 눈물로 끝을 흐리고 있었다. 
이에 여단장 김영상 장군은 중대장의 손을 잡으며 

--전사자가 10명선에서 멈춘 것은 귀관의 탁월한 지휘력과 책임감 때문임을 감사한다. 
전사한 靑龍(청룡)은 軍神(군신)으로서 청사에 빛날 것이다. 

그대들의 공적은 세계만방에 울려 퍼질 것이다 --




181 기 아리랑 선배님은 짜빈동을 지금도 잊지 못하신다.

"2중대 방석에서 황폐한 황무지 벌판너머
가맣게 보이는 열한중대 짜빈동....

월남 신삐 특공중대 엄호조 3번탄약수는 
개인군장에다가 L.M.G 실탄 두통을 양쪽어께에 메고는 
저기 저 들판 어디쯤을 건기의 땡볕아래서 뛰고 기었는데....  

피할 곳도 숨을 곳도 없는 개활지를 철버덕 거리며 
흙먼지속을 뛰고 굴러면서 
안 죽을만한곳에 V.C총알을  한방만 맞고 실려갔으면하고 
간절히 바라기도 했었고....

열한중대 방석아래로 길게뻗은 
벌겋게 녹슨 철뚝길에 배치붙어서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 !!! 

고국의 반공포스터도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울긋불긋 열차가 달리는구만......
너와나 우리모두의 아픈세월을 푸르런 들판에 묻고서는..... 




짜빈동 ~ 짜빈동을 거기에 두고

남으로 남으로 몇 시간을 내려왔는데

거기 또 ~ 짜빈동 -- 그

광고판의 이름만으로도 가슴 뜨겁다.

짜빈동이여 ~ 영원하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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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後 靑龍의 월남수기- (23부)- 아 ~ 짜빈동 ~!!!!
後 靑龍 

"돌격 ~ !!

불바다 초연속에
구름안개 총칼의 밀림을 헤치고,
기어코 올라 가고야 만
멸치않을 젊은이들의 손에
욕된 붉은 기가 꺽이어 넘어지던 그날,

둘러보아도 둘러보아도 그림자 없던
내 조국의 기가
하늘높이 올라간 장엄한 노래속을,

헬리콮타 ~ 가신 영혼을 고이 안고 ~ 애연히 날아갈 때
찢혀져 아픈 그대마음 

목메여 목메여 눈물 아름다웠음을 내 아노라"


짜빈동의 40 고지 방석을 눈 앞에 두고
심신을 가다듬는 後 靑龍은

그날의 ~ 영웅들을 남겨 두고
그날의 ~ 영웅들을 만들어 놓고 

짜빈동에서 산화하신 15분의 청룡 선배님과
짜빈동에서 부상 당하신 33분의 ~ 그 분들께 우선 신고 부터 드렸다.



할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다시 

C - 지점에 도착하니

그 옛날 짜빈동을 오가던 비 포장 길이 나오며
기록상의 지형이 그대로 나타나 
後 靑龍의 가슴은 더욱 뛰기 시작하였다.



C - 지점.

짜빈동 파출소 삼거리가 나오면 

좌 회전을 해 들간다.



지금은 ~ 듬성 듬성 풀이며 나무가 서있지만
사주 경계를 위해 ~ 밀어 버린 황무지 사이로
비 포장 길을 뚫어 우리의 선배님들은 

이 길을 ~ 검은 눈 번쩍이며 ~ 드나드 셨으리 ---



C - 지점 파출소 삼거리에서 3분 정도 들어오면
좌측엔  학교가 있고
우측엔 영웅 묘지가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의 명당엔 무슨 무슨 재벌 빌딩이 자리잡고 있지만

베트남의 양지 바른 명당엔 
어느곳이고 영웅 묘지가 버듯하게 자리잡고있다.

동네 마다 사람들은 나중에 영웅 묘지에
묻히는걸 영광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이러한 영웅 묘지는 큰 전투를 치룬 지역은 물론
군 단위 양지 바른 명당마다 잘 건설하여
철저히 관리되고있다 한다.

이러한 대우가 ~ 전쟁 불패의 신화를 만들고
오늘의 베트남을 지키게 하는 힘이 아니었을까 ?

그리고 짜빈동 외진 곳에 영웅 묘지가 있으니
그날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났는지를 상상케 해준다.



짜빈동 ~ !!

모든 지형의 기록과  ~ 새로운 지명을 대조해

짜빈동 ~ 그 역사의 현장을 찾아내고 말았다.



아 ~ 저기가 짜빈동 40 고지.

야트막한 도랑을 건너 -- 저기가 짜빈동이다.



그래도 확인에 확인을 거듭코져
짜빈동 앞 외딴집 노파를 모시고 현장 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월남 통역과 무슨 말을 주고 받더니
노친이 걸으을 멈춘다.



후 청룡 -- !!

짜빈동의 청룡 선배님들은 
여기 짜빈동에서 얼마나 많은 전과를 올리셨길래

후 청룡이 왔다는 말에

친절하던 노파는 ~ 순식간에 노기띤 얼굴로 

당장이라도 베트콩으로 변할갓 같았다.

그리고는 ~ 홱 돌아서서 가버렸다.

나중에 통역이 하는말이 ~ 자기네 가족을 그리며 이곳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해병대 하면 같이 가기도 겁난다고 -- 가버렸다 한다.



할수 없이 꼬마를 달래서
마침내 짜빈동 그 현장을 찾았다.



아 ~ 짜빈동.

짜빈동에 섰을때 ~ 순간 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 멍해 졌읍니다.

다만 ~ 가버린 노파가 ~ 
다시 쫒아올지 모른다는 가이드의 걱정 소리가 들려왔읍니다.



운명의 날인 1967년 2월14일 밤.

적들의 움직임이 수상했지만 기껏해야 2개 대대급 공격쯤으로 예상했을 뿐 
설마 월맹 정규군 연대급을 초과하는 병력이 1개 중대전술기지에 
공격을 감행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던 ----

역사의 그 밤 ~ 1967년 2월 14일 

그날의 격전지에 서서 ---




보고 부터 드렸다.

마침 우리 후 청룡이 2월 14일 ---

39년 후 ~ 그날 ~ 물어 물어 여기를 찾아 왔노라고 -- 보고 부터 드렸다.



"적은 모두 팔다리를 끊기고 기진 맥진 했다. 
해병의 마지막 힘을 보여줄 때가 왔다. 
전 해병은 후퇴하지 말고 싸워라!" 



전 대원에게 비장한 각오를 갖도록 했다는

런닝샤스에 방탄조끼만을 걸친 
정경진 중대장님의 냉랭한 목소리가 -- 생생히 들려와 ---

그  ~ 생사를 건 ~ 피의 절규가 

나도 모르게 ~ 지상 최고의 존경의 경례를 올리게 하였다. 


"아! 짜빈동이여 고이 잠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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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 靑龍의 월남수기- (22부)- 짜빈동 가는길.

天子峰 

 

 

1953년 6월 1일.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식을 하루 앞둔 영국 왕실에 전보가 날아들었다.

영국 등반대 에베레스트 등정 성공 ~ !!!!

이 소식은 버킹검 궁전은 물론,
여왕의 황금 마차 행렬을 보러나온 시민들을 흥분과 열광속에 빠트렸다.

북극과 남극 정복 이후 ~ 에베레스트는 제 3의 극지이자 ~ 지구상 마지막 목표였다.

그것은 ~ 꿈 ~ 같은 일이었다 ~ !!

지구 최고봉에 오른 영국 원정대의 쾌거를 타전하는
세계 언론은 ~ 일제히 흥분속에 빠졌다.



일본군 2만여명의 자결 옥쇄와,
미 해병대 2만 4천8백명의 사상자를 기록한 제 2차세계대전 최대의 격전지...

해안에 쌓인 시체는 약 육 킬로미터가 넘었고,
2차 세계 대전 중 ~ 전사한 ~ 미국 해병대 전사자 가운데 3분의 1 이 죽음을 당한

최고의 전략 요지 ~ 유황도의 수리비치 산 꼭대기에
성조기 꽂고 만세 부른 

미 해병대의 환희는 ~ 아직도 ~ 제 1강국 미국을 하나로 묶는 힘으로 존재 한다.

짜빈동 ~ !!!

그곳을 찾아가는 後 靑龍의 마음은 

그렇게 ~ 그렇게 고조 되어 있었다.


(154기 이기원 선배님의 츄라이 시절)

늘 커다란 앙카를 세워 놓았던 청룡 사령부.

츄라이 여단 본부 터를 지나면서 ~ 
마음이 부쩍 바빠졌다.



베트콩 패전사에 ~ 치욕으로 간주한다는 
짜빈동 그 전정터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을까 ???

그날의 ~ 긴박한 순간들
그날의 ~ 대 감격의 승전에 함성 소리는 

짜빈동 거기 ~ 아직 남아있을까 ???



수없이 ~ 공부를 하고 왔건만 ~ 
짜빈동 대첩 ~ 35년이 지나니 ~ 묻고  또 물어본다 ~ 길을 묻는다.

짜빈동 가는 길을 묻는다 ~ !!



짜빈동 ~ 거기가 어딘가 ???

1 개 중대의 병력이 ~ 월맹 정규군 연대급 공격을
육탄으로 물리쳐 ~ 전원 1 계급 특진의 영광을 얻은

거기를 짜빈동 이라 한다.



1975년 ~ 월남 공산화 이후
남측 월남의 지명은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국방부 전사 편찬실의 도움으로 ~ 
짜빈동의 바뀐 지명을 펴들고 ~ 묻고 또 묻는다.

짜빈동 가는 길을 묻는다 ~ !!



지성이면 감천인가 ???

드디어 짜빈동을 기억하는 촌노를 만나 
짜빈동 들어가는 입구를 찾았다.



"추라이 남쪽 쾅나이성 손틴군 짜빈동 마을 
짜빈동의 신화를 만든 11 중대의 동쪽 1km 지점에는 
한국군이 전력을 다해 방어하던 베트남 제1번 국도가 지나가고 있었다" ~ 는 ~ 

전사의 기록을 맞추어보고



"중대의 북쪽 6km 지점에서 청룡부대 여단본부가 있었고
11중대 기지가 위치한 지역은 당시 해병 청룡부대 주둔 지역의 서남쪽 모퉁이였다" ~ 는 

기록과도 맞는다.



여기를 잊지않으려 십여장을 찍고 찍는다.
월남의 지명은 바뀌어도 짜빈동의 전설은 바뀌지않아야 한다고 ~ 절규 하면서  ---



B - 지점의 1번 국도에서 1키로쯤 철길을 지나 들어 오면
A - 지점의 저 오래된 고목 나무를 기억해야 한다.

저 나무를 끼고 우회전하여 들어 가다가 ---



다시한번 노친을 만나 

월남 전때 한국군에 월맹군이 대패한 Tra Binh Dong 에 대해
세세히 여쭈니

천만 다행으로 그 당시에도 이곳에서 살았다며
자신있게 가르킨다.



월남인 운전 기사와 무슨 말을 주고 받던 노파가
갑자기 발 걸음이 빨라 지더니

돌아 서서 ~ 목을 따는 시늉을 한다.

-- 한국 해병대 후배들이 짜빈동 전적지를 찾아 왔다고 하니
-- 아직도 해병대가 무섭다고 한단다.

다행히 바삐 가던 길을 멈추고
할머니가 ~ 다시한번 ~ 짜빈동을 가르킨다.



아 ~ 짜빈동 !!

그 ~ 뜨거웠던 육박전의

한국인의 위대한 전서로 길이 빛날 짜빈동이

저기란 말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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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 靑龍의 월남수기- (21부)- 용서하라,그러나 잊지는 마라

後 靑龍 

 

 

그러니까 ~ 몇 년전에 ---
태국으로 가는 방콕행 비행기를 탓다.

떠나는 서울이 겨울인데 ~ 비행기가 점점 실내 온도를 높인다.
현지 기온에 적응을 시키기 위해서란다.

이코노미 좌석 증후군이 첫 번째로 온다는 5시간이 지나간다.
그러고도 한시간 ~ 

후끈한 밤 공항을 나와서 120키로를 달려간다.
무슨 고생인가 ????

거기 ~ 방콕에서 서쪽으로 미얀마 국경 쪽 
거기 ~ 칸차나 부리에 ~ 콰이강의 다리를 보러 갔었다.

전쟁 영화로서는 ~ 서부 전선 이상 없다 ~  이후 
처음으로 아카데미상 7개 부문을 휩쓸었던 ~ 주제곡 

콰이마치의 음률이 ~ 거칠게 흐르는 ~ 강물 따라 흐르는 ~ 그 강 언덕에
30바트를 내면 들어갈수 있는 ~ 콰이강의 다리 기념관이 있다.

수 천명의 생명이 죽어간,콰이강의 다리와 ~ 죽음에 철도 ~ 의 현장 그림이 끝나고
음습한 냄새가 나는 ~ 마지막 벽면에 박힌

굵직한 글씨가 무슨 뜻이냐고 ~ 일행이 나에게 물었다.

"Forgive, But Not Forget" 

거기 인간 고통의 ~ 무한 표현이 끝나는 벽면엔 ~ 그렇게 써있었다.

"Forgive, But Not Forget" ~ "용서하라,그러나 잊지는 마라"



바람불고 ~ 파도치고 ~ 별도 빛나는 
그러고도 ~ 웬지 모를 ~ 무언가에 가슴 저이던 호이안을 떠나면서

월남으로 떠나기 전에 ~ 
자신의 젊은 살점과 핏 자욱이 배어있는 베리아 반도를 보고 와 달라시던
베리아 선배님을 생각하면서 ---

아직도 ~
전쟁의 아픔은 ~ 죽어간 어린 딸이되고 ~ 남편이 된다는 
호이안 풍물 시장의 어느 노파의 주름진 얼굴을 떠올리며 ---

츄라이 ~ 다시 ~ 츄라이 전선 ~ 짜빈동을 찾아가는 길에 ~ 
전쟁과 죽음의 

인간 자의에 의한 전쟁으로 ~ 타의에 의한 죽음에 대해
눈을 시퍼렇게 뜨고는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눈을 감았다.



아들을 보내는 고향의 어머니는
용서 할 일도 ~ 잊어야 할 일도 ~ 생기지 말기를 

오직 ~ 몸 성히 돌아와야 한다고 ~ 아들에게 ~ 단디 ~ 단디 타 이르셨다.

아들아 ~ 용서 할 일도 ~ 잊어야 할 일도 ~ 만들지 말고 무사히만 돌아오거라 



그러나 ~ 전장터에는
용서 못할일도 생기고 ~ 잊지 못할일이 ~ 더 ~ 많이 생겨났고

용서 할수 없는 ~ 잊을수 없는 일들이 ~ 남아있다.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새벽 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노을 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 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아름 다웠다고 말하리라 ....."

천상병 시인은 그런것을 ~ 귀천으로 노래하였고 ----



" ~ ~ ~ ~ ~ ~ 
갈매기로 하여금
구름이 되게 하였다.

기꺼운 듯
푸른 바다의 이름으로
흰 날개를 하늘에 묻어 보내어

이제 파도도
빛나는 가슴도
구름을 따라 먼 너라로 흘렀다" ~ 갈매기로 위로하였다.



"죽은 자가 산 자의 목을 잡고
발목을 잡고
어깨에 매달려 등에 업혀
일년이라 열 두달
편할날 없다 나무라는구나

우리들이 
구지레한 산동네 떠나지 못함은
~ ~ ~ ~ ~ ~ 
원통한 죽음 빚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천년이 백년이 하루 같은
너희 사는 꼴이 안타까워서이니

~ ~ ~ ~
~ ~ ~ ~ 

우리들 훨훨 털고 일어나
구만리라 머나먼 구천 길
편하 가게 하려거든

허구헌 날 굿거리 세마치로 뛰지말고
발고 빛나는 횃불을 들라" -- 신경림 (횃불)



"한 사람의 울음이
온 마을에 울음을 불러 오고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고을에 노래를 몰고 왔다

구름을 몰고 오고
바람과 비를 몰고 왔다
꽃과 춤을 불러 오고
저주와 욕설과 원망을 불러왔다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노래를 몰고 오고
한 사람의 죽음이
온 나라에 죽음을 불러왔지만 ...."-- (신경림 - 그여름)



"빗줄기가 흐느끼며 울고 있다
울면서 진흙 속에 꽂히고 있다
아이들이 빗줄기를 피하고 있다
울면서 강물 속을 떠돌고 있다

강물은 그 울음소리를 잊었을까
총소리와 아우성소리를 잊었을까
조그만 주먹과 맨발들을 잊었을까

바람이 흐느끼며 울고 있다
울면서 강물 위를 맴돌고 있다
아이들이 바람을 따라 헤매고 있다
울면서 빗발 속을 헤매고 있다" -- (신경림 - 江)



"동녁하늘 불붙던
어느 새벽에
내 생면의 계고가 있었다

유성이 튕기는 하늘을 보고
어느 날인가
전대화가 익어가던 날
외상의 창가에서
잊어버린 음성과의 재회

화려한 계절들의 마지막 숨결까지 미소로 다듬어



내 재생의 날엔
무의미의 뜻을 다시는 새기지 말자고
목마름을 참고 달린다

정글은 말이 없는데ㅡ

여기 
십자성이 지던

어느날 아침
내 생면의 계고가 있었다" -- (청룡 상병 윤신행)



"외치고 싶었던 노래가 있습니다
이것이 자유의 노래입니다
우리는 붉게 물들은
이국의 전선에서 자유의 노래를
불러주고 싶었습니다

빛을 잃은 산하에 광명을 주고
퇴색한 대지에 아름다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뛰었습니다
성난 노도와 같이 쉴줄 모르고
뛰었습니다

그리하여 공포와 불안에 헤매는
그들에게 용기와 신념을 주었습니다" -- (병장 강한호) 



로마시대 철학자 ~ 에피 쿠르스는 말했다.

-- 죽음은 우리와 무관하다
-- 왜냐 하면 ~ 우리가 살아있을때 죽음은 존재하지 않고
-- 죽음이 왔을땐 ~ 우리는 존재하지않기 때문이다.



피타고라스와 그의 제자들은 

영원한 것 ~ 그것을 추구하다가 ~ 철학을 내놓았다.
그리고는 영원을 정리하였다.

-- 영원의 세계는 시간이 없다 -- 고 ---



다시는 이 땅에 
이런 일이 없어서 ---



다시는 이땅에
용서 할일도 ~ 잊어야 할일도 없기를 

그렇게 간구 하였다.



"얼룩진 철모에다
첫.......숙원의 울음을 고하고
10여년의 푸른 제복 속에서
커다란 육성보다
조용한 감정으로 울고있는 나!

시원으로부터 쌓여 온
나의 욕망을........

탄식으로 묶여진 한 아름을
잡초로 띄워 보낼 때.......

한숨은 타다남은 잿더미가 된다

모....든.....영광도 부귀도
훨ㅡ훨 내버리고 ---- 

훨 - 훨 내 버리고" -- (중사 유재정)



이럴 줄 알았으면 ~ 이렇게 슬픔을 위로할 일이 많았으면
이쁘니 곱뿐이 ~ 한 눈 안 팔고

서러움도 표현하고 ~ 괴로움도 알아주는 ~ 詩나 몇편 더 외워 올것을 ---

때 늦은 후회의 몸부림에 눈을 뜨고

이국영 선배님이 찾으시던 지큐 마을을 찾아보며
마지막 절규를 토하고 ~ 짜빈동으로 향했다.



"기억하라 !!
해병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라.

남국의 정글은 푸르더냐
청룡으로 가고 청룡으로 죽어간
해병이 나의 이름으로 남는구나.

그리도 그립던 이름
어머니 어머니
그리도 사랑했던 누이 누이
살아서 돌아 가겠다고
전쟁의 참혹을 백지위에 썼던 시절
시절은 갔지만
기억하라
해병의 이름으로 기억하라"


마지막 절규를 토하고 ~ 짜빈동 가는 길을 묻고 또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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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 靑龍의 월남수기- (20부)- 나를 ~ 베리아 라 불러달라.

後 靑龍 

 

 

아리랑  아리랑 ~ 해병 아리랑.

1970년 2월 26일  ~ 포항역.

제 33제대 교대 병력의 어머니께서 부르신 노래는
간절한 ~ 간절한 아리랑 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살아서 돌아오라"

아리랑 ~ 아리랑 ~ 해병 아리랑.



멀어지는 부산 항
그곳의 어머니의 노래도 아리랑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다치지말고 몸 성히만 돌아오라"

아리랑 ~ 아리랑 ~ 청룡 아리랑.



제 33제대 209기 박영준 선배님은 
(특별 소대) ~ 대대장님 전선 시찰시에만 출동하는
안전한 보직을 뿌리치시고

베리아 중대 1 소대로 자원해 전선으로 달려 가셨다.



주월사에서 배워 온 ~ 지뢰 매설을 하며 지내던 차에
귀국 3개월을 남겨 놓고
모든 작전에서 열외되어 ~ 안전을 보장 받고 있었다.




"1970년 11월 18일 ~ !!

소대 본부 상황실을 지키던 박영준 상병은 
1분대장으로 부터 실탄을 보급해 달라는 전통을 받았다.

갓 투입된 일등병 두명이 길을 나서는것이 불안해
귀국 3개월을 남겨 놓고 ~ 
모든 작전에서 열외되어 있으시던 박영준 상병이 따라나섰다.

조심 스레 언덕을 넘던 일등병이

악,내다리 ~ 하는 소리와 함께 폭음이 울렸고
중간에 가던 박 상병은 터지는 폭탄을 가슴으로 안았고
뒤 따라 오던 일등병은 두다리가 절단 되었다.

일등병들이 ~ 내다리 ~ 내 다리를 찾으며 울부짖었다.
박 상병은 ~ 베트콩들이 곧 쫒아 올테니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고
약속된 구조 신호를 허공에 쏘아댔다.

그때 ~ 베트콩들이 세명이 나타났다.
확인 사살을 하려고 하였다.



그때 ~ 미군 헬기가 기적 처럼 나타났다.
베트콩들은 확인 사살을 미쳐 못하고 도망갔다.

생과 사의 긴박한 찰나가 뜨겁게 지나가고
소대장님이 지원 병력을 끌고 와서

판쵸를 피더니 ~ 잘려나간 일등병의 다리를 싸고 있었다.

그때 ~ 박상병은 자신의 내장이 밖으로 나와 있음을 알았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


(소대 본부 벙커가 있었던 근처는 낚시터가 되어있다)

다낭항에 정박 중이던 미 의료함에서 긴급 처치를 하고
필리핀 미군 기지 병원으로 옮겨진 

박영준 선배님은 ~ 조국에서 죽게 해달라고 매일 떼를 쓰셨다.

사지 멀쩡히 부산항을 떠났던 ~ 박 선배님은
찬 바람 쌩썡 부는 김포 공항에 들것에 실려 내리셨다.

조국은 ~ 무슨 무슨 준비가 덜 되었다고
차가운 활주로에 30분을 누워있게 하였다.



대방동 해군 병원에서
길고 긴 투병 생활을 하던 중에
전선에서 같이 있던 213기 후배께서 찾아오셨다.

-- 박 선배님이 살아있을것 같아
-- 박 선배님이 만들어 놓고 ~ 미쳐 가져오지 못한 것 중에
-- 앨범 2권을 혹시나 하여 가지고 귀국 하였다.



그 앨범 
마지막 장에 이렇게 씌여있다.

"나, 청룡은
자유의 월남인이 안정되고 평화롭게 살수 있게 하기 위해서
조국과 민족이 명을 받들어
나의 최선을 다 했다고 ~ 자부 한다.


그 앨범 
마지막 장에 그렇게 씌여있었다.


(합천의 171기 불도자 선배님과 우측의 베리아 선배님)

해병 209기 박영준.

그 분은 ~ 이제 이름을 잊고 사신다.

그날 ~ 베리아 전선 ~ 그 능선에서 ~ 창자를 토해 놓고
베트콩의 확인 사살을 기달릴때 ~ 박영준은 이미 죽었다고 하신다.



지금은 ~ 베리아 ~라 ~ 불러 달라고 하신다.

해병 209기 ~ 그 선배님의 이름은 ~ 

그래서 "베리아 ~ 그래서 ~ 베리아 선배님 이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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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 靑龍의 월남수기- (19부)- 베리아로 가는길.

天子峰 

 

 

Beautiful Facade ~ !!

어찌 ~ 어찌 ~ 적성에 맞지않는 노가다를 배울때

-- 정면으로 보는 건물 외곽을 
-- 그러니까 front view elevation을 ~ Facade 라 ~ 배웠다.



중국 대륙과 프랑스 문화가 공존하고
전쟁과 평화가 공존했던 

호이안 시내를 ~ 아쉬움에 돌고 돌아  ~ 

베리아 반도로 가다 말고
나도 모르게 차를 세웠다.



Beautiful Facade ~ !!

아름 다웠다 ~ !!

베리아 반도는 아름다웠다.



과연 ~ 저 아름다운 섬에서
30 몇 년전에 ~ 무슨일이 있었나 ~ ????

해병 209기 박영준 선배님은 저기서 ~ 

무엇을 위해 ~ 무엇을 하다가 ~ 무엇을 잃으시었나 ???



베리아 전선으로 가다 말고 ---
지점에 차를세우고 베리아 전선을 건너다 보니

내가 ~ 철이 없는 건지 ---

Beautiful Facade ~ 베리아 반도는 아름다웠다.

과연 ~ 저 아름다운 섬에서
30 몇 년전에 ~ 무슨일이 있었나 ~ ??



지나는 길가의 그져 ~ 
평안한 어촌의풍광은 

지극히 ~ 한가 하였다.



베리아 전선 ~ !!

4박 6일이라는 ~ 고단한 스케줄이
아무리 바빠도 ~ 베리아 반도를 가 봐야 한다는 일념은 

오직 ~ 일념을 넘어 ~ 신념 이었다 ~ !!



베리아 반도 ~ 거기엔 
진홍 빛 가득한 ~ 박영준 선배님의 젊은 살점과
뻘겋게 쏟아 부은 ~ 붉은 피 

세월도 ~ 풍상도 ~ 어쩌지 ~ 못하는 ~ 

거기 ~ 베리아 반도 ~ 마의 능선에

진홍 빛 가득한,
박영준 선배님의 젊은 살점과
뻘겋게 쏟아 부은 ~ 붉은 핏 자욱이 아직도 남아있기 떄문이다.


(그 당시의 여단 본부 항공 사진)

1969년 9월 5일 ~ 호이안 청룡 부대장은 ~ 

다낭 남방 30 키로 지점의 ~ 천연 요새 ~ 베리아 반도를 장악한 ~ 

월맹 정규군과 베트콩을 섬멸하여 ~ 억류된 1,900명의 양민 구출을 하기위하여

승룡 15-1 ~ 베리아 상륙작전 개시를 명 하였다.



1969년 9월 5일 부터 ~ 9월 30일까지
인천 상륙 작전 이후 ~ 처음으로 ~ 

월남전 최초의 상륙 작전은 ~ 미 7 함대의 지원아래 감행 성공하였다.

"거칠게 휘도는 바람을 앞세우고,
탁한 회색빛 구름이 바다 쪽에서 몰려 오고 있었다. 

시꺼먼 먹구름은 하늘을 금방금방 삼켰다. 

그리고 그 두껍고 칙칙한 구름덩이들은 
서로 얽히고 설켜 꿈틀대고 뒤척이며 뭉클뭉클 커져가고 있었다. 

순간순간 형상이 변하고 있는 먹구름은 
무슨 살아 있는 괴물처럼 흉물스럽기도 했고, 
무슨 액운을 품고 있는 것처럼 음산하기도 했다. 

그 구름떼는 성난 짐승들의 무리가 내달아 오는 것 같은가 하면, 
총칼을 든 도둑패들이 아우성치며 몰려오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랬다 ~ ~ !!
그랬다 ~ 고 ~ 하신다.

베리아 상륙 작전이 감행 되던날 ~ 그날은,

조정래님의 아라랑에 첫 장면 처럼 ~ 그렇게 하늘이 잔뜩 찌푸려 있었다~ 고 하신다.



"먼 바다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먹정구름 아래로 퍼져내리고 있는 안개구름에 휘감겨 
바다는 하늘 보다 먼저 그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바다는 ~ 구름보다 앞질러 몰려오고 있는 바람에
자신의 흔적을 실어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먹구름의 험상 궂은 기세만큼 바람결도 거칠고 드셌다.
바람은 넓은 들녁을 거칠 것 없이 휩쓸어 대고 있었다.

바람이 휩쓸때 마다 벼들은 초록빛 몸을 옆으로 누이며 시달림을 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 시달림을 당하는 것은 ~ 
몸을 옆으로 누인 초록 빛 ~ 벼 뿐이 아니었다.

35년 전 ~ 박영준 선배님이 흘린 핏 자욱이
35년 후 ~ 아직도 선명 하며는 

나는 ~ 나는 ~ 바람에 휩쓸리는 ~ 초록의 볏 잎보다

나는 ~ 더 ~ 크나 큰 ~ 시달림을 당할것 같았다.
  


그래서 일까 ????

거짓 말 처럼 ~ ~ ~

온 천지가 ~ 갑자기 어두워 졌다.

베리아 전선 ~ 그 마의 능선을 찾아가는 길이

갑자기 컴컴해 졌다.

"거칠게 휘도는 바람을 앞세우고,
탁한 회색빛 구름이 바다 쪽에서 몰려 오고 있었다. 

시꺼먼 먹구름은 하늘을 금방금방 삼켰다. 

그리고 그 두껍고 칙칙한 구름덩이들은 
서로 얽히고 설켜 꿈틀대고 뒤척이며 뭉클뭉클 커져가고 있었다"


그 무섭도록 어두운길을 헤치고 ~ 

헤치고 나서야 ~ 

거기 ~ 베리아 반도 능선을 찾을수 있었다.






추억의 서부영화 주제곡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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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 靑龍의 월남수기- (18부)- 별이 빛나는 호이안의 밤.

天子峰 

 

 

조국을 떠난지 3일이 지났다 ~ !!

35년전 ~ 총알이 빗발 쳤던 ---

이역 만리 월남 땅에 오니 ~ 
고단한 조국을 떠난지 3일만에 ~ 엄청난 향수가 일었다.

--- 고향 산천은 잘있는지 ???
--- 늙으신 부모님은 안녕하신지 ???
--- 사랑하는 마눌과 자식들은 뭘 할까 ???
--- 내 친구며 선,후배님들은 어떻게 지낼까 ???

조국을 떠난지 3일만에 ~ 물음표를 3개씩 찍으면서,

35년전 ~ 총알이 빗발 치는 ~ 이역 만리 월남 전선으로

조국을 떠나 오신지 ~ 30일이나 ~ 되실 무렵의 청룡의 물음표는 몇개 였으며
고향을 두고 오신지 ~ 300일이  ~ 되실 무렵의 청룡의 물음표는 몇개를 찍으셨을까.

海兵 100 년에 ~ 하나 ~ 나올까 말까 ~ 하다는 ~ 나의  구라 통으로도 알수가 없었다.



어려우신 부모님 면회 오실까봐 
몰래 지원해 오신 우태성 선배님에 ~ 파월 30 일 쯤의 물음표는 몇개 였으며


귀국 3개월 전 ~ 그러니까 ~ 파월 300 일이 되실 무렵
터지는 파편에 열흘간이나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신

베리아 선배님의  물음표는 몇개 였을까 ~ ???

수 없는 자문을 하며 ~ 호이안 여단 본부 터를 ~ 빠져나와

유네스코 지정 ~ 베트남의 문화도시 ~ 호이안 시내로 들어서고 있었다.



언제 ~ 어느 때 ~ 전쟁이 있었는지 ---

디엠반이니,

승룡 작전이니,

하미 학살이니 ~ 그런 사실이 있었는지

호이안의 거리는 차분히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



구정 명절을 맞아 ~ 프랑스 문화권인 월남 ~ 특히 호이안 호텔은
연휴를 즐기러 모여든 프랑스 관광객으로 가득차 
잠시 전장터의 고독을 잊을수 있었다.


호이안호텔케페 아오자이입은 여자직원들


땅이 길고 긴 ~ 탓인지 ~ 
호화 호텔이 아니면서도 ~ 넓직한 호텔에 
체육 시설까지 모두 갖추고 ~ 손님을 맞고 있었다



호이안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옛 거리와 건물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전통의 도시 ~  아름다운 해변의 낭만과, 
문화의 거리는 관광객의 오감을 만족 시키기에 충분하다 ~ 고 한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유럽식 주택과 
전통 건축물이 혼합된 거리를 걷다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는다.


(호이안 구도시 실크옷가게 호이안은 실크로유명한도시이도합니다)


호이안의 특산품은 실크맞춤옷이다.
수백 곳의 실크옷 상점이 줄지어 있다.

바지, 셔츠, 원피스 등 어떤 옷이든 원하는옷을 3시간이네에마음든디자인으로 해 입을 수 있다.


(유네스코 지정 문화도시 답게 ~ 그릴과 라이브 카페가 수없이 많다)

서툰 베트남 말로 ~ 이것 저것 물어본다.

빨간색은 -- 마우 도우
하얀색은 -- 마우 짱
노란섹은 -- 마우 바앙
파란색은 -- 마운 싼 비인
검은색은 -- 마우 댄
분홍색은 -- 마우 도오 띠아
회색깔은 -- 마우 싸암.


(호이안 호텔 전용 버스 -- 한국에서 중고차를 수입해 와서 잘 사용코 있다)

한국은 ~ 하안 궉
한국인은 ~ 응으이 하안 궉
중국은 ~ 쭝 궉
중국인은 ~ 응으이 쭝궉
미국은 ~ 느윽 미이
미국인은 ~ 응으이 미이 ~ 라 ~ 배워 왔다.


(500년 전에 일본 인이 건설한 ~ 500년 다리)

안녕하세요 ~ 씬 짜오.
안녕히 주무세요 ~ 쭉 응우 응온
안녕히 계세요 ~ 쭉 어얼 라이마안 쾌애
또 만나요 ~ 핸깝라이
감사합니다 ~ 까암 언
천만에요 ~ 콤 꼬찌



그런 문화의 도시 호이안도 ~ 그때는 무서운 전장의 도시였다.

베리아 상륙을 끝내고
1개 분대 병력이 외출을 나왔다가

1명의 청룡이 화장실을 가면서 총을 놓고 갔다.
파트너 꽁까이가 따라갔다.

그 청룡은 돌아오지 않았다.

비상 사태를 직감하고 ~  화장실로 뛰어가니
청룡은 목이 잘린채 였고 ~ 파트너 꽁까이는 사라졌다.

흥분 하지 말라 ~ 흥분하지 마라  !!

흥분한 청룡들이,
호이안 시내를 쓸어 버릴까봐,

분대장님은 분대원을 달래어 귀대하였다.

죽어간 청룡은 ~ 

전선에서 분대원을 구하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 고 ~ 보고 되었다 ~ 고 ~ 하신다.


(호이안 투본강변의 카페)


콜라로 주세요 ~ 쬬 또이 못 꼬까
날싸가 덥군요 ~ 터이 띠잇 놈
비가 올것 같습니다 ~ 히인 니으 쩌이 므아
지금은 몇시입니까 ~ 버이 져얼 라 머이 져어
오늘은 무슨 요일 입니까 ~ 홈 나이 트 머이
오늘은 몇일 입니까 ~ 홈 나이 응아이 머이


(시클로 천자봉일행을 전적지안내한 참전용사이남원님)

물 좀 주세요 ~ 람 언 쪼 또이 느윽
네 잘 먹었읍니다 ~ 벙 또이 안 응온 을람
담배 있읍니까 ~ 꼬오 투욱 을라아 콤
커피 한잔 주세요 ~ 쪼 또이 못 을리 까 페
이 쪽으로 오세요 ~ 하아이 디 테올 로아 나이


(세계 어디를 가나 ~ 시장은 살아 움직인다 - 호이안 풍물 거리)

화장실 ~ 냐 베씬
비행기 ~ 마이 바이
식당 ~ 나향
식사 ~ 브아 안
밥 ~ 껌 
빵 ~ 바안 미이
게산서 ~ 져이 틴 띠인
재떨이 ~ 갓 딴 투욱
커피 ~ 까 페



구정을 맞아 
향토 시장이 밤을 잊은 채 활발히 움직이고



라이브 카페에선
베트남 젊은 싱어들이 

생생한 원어로 세계의 노래를 불러
발길을 멈추게 하느곳 

여기 호이안은 완전  ~ 다른 세계였다.




30 몇년전 ~ 그 숱하게 쏟아지던 불발탄이
그냥 ~ 아직도 뒹구는
여단 본부가 지척인데 ~ ~ ~ ~ 

그 시절의 아픔에 가슴 저이는 

後 靑龍의 마음을 아는지 ~ 모르느지 ----

호이안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내일은 ~ 드디어 ~ 베리아 ~ !!

해병대 209기 베리아 선배님의 청춘을 찾아,
베리아 상륙을 앞두고 ~ 

밤이 깊도록,
잠 못드는 줄 ~ 아는지 모르는지 ----

그 시절의 아픔에 가슴 저이는 

後 靑龍의 마음을 아는지 ~ 모르느지 ----

호이안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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