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SS FEED
  • <--!테스트-->

    나라를 위해, 가족을 위해...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싸웠다!

  • 아들아! 내 소중한 아들아! 반드시 살아돌아와야 한다.

  • 둘째야! 잘 댕겨오니라~ 건강해야 한다!

  • 파병... 그 힘찬 발걸음!

  • 승리를 위하여...

  • 조국를 위하여...

  • 민주주의를 위하여...

  • 전쟁의 끝을 향하여...

  • 돌아온 사람들...

  •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 베트남전쟁...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잊혀지기전에...

 

위 동영상은 다낭항이 보이는 한국인 식당에서,
 
백형배 춤 제대로 춘다, ㅉㅉㅉ

 

베트남 전적지 탐방 4일 째 되는 날 저녁 식사는 다낭항구가

바라보이는 한국인 식당에서 술잔을 돌리면서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그 옛날 베트남 격전지로 떠날 때 부산항 제3부두에

찾아오셨던 어머니, 아버지 연세보다도 훨씬 더 많은

나이에 다시 다낭항에 상륙한(?) 해병 194기 동기들의 마음속에는

희,비 쌍곡선이 머리를 스쳐가면서 만감이 교차했으리라!

 

반세기 전 다낭항에 처음 상륙했을 때에는 내가 과연

저 항구에서 귀국선을 탈 수 있을까? 아니면 영원히

다시 못 볼 항구로 남을 것인가! 두려움과 갈등으로

전우들의 손을 꼭 잡고 " 우리는 살아서 꼭 귀국선에 오르자"

이렇게 보장없는 약속을 했던 우리들이 아니였던가! 

 

그로부터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이 흘러 다시 찾은 베트남,

며칠간의 격전지를 탐방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생각해보니

 전쟁의 흔적은 간데없고 사상과 이념은 수구세력들만의

골동품으로 남아  옛 이야기로나  들을 수 있을 것 같으며

또한 변화의 속도도 (남북 관계는 빼고) 우리나라 '70년 대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활기 넘치는 거리마다 젊은이들의 일하는 모습에서

전쟁은 까맣게 잊혀져 감을 알 수 있었고 

새롭게 발전하는 모습만 보이는데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하던가!

그래서 우리는 다낭항을 다시 찾은 기념으로

술잔을 기울이며 여흥을 즐겼노라!

 

옛 월남과 월맹을 생각하니 이런말이 생각나네요

" 용서란 과거의 상처가 남은 삶을 지배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진 탁회장 뒤 바다 건너편에 육지가 아련히 보이는데

그 육지 앞
바다가 다낭 외항이다,

부산항에서 떠난 파월장병 수송선은 (업셔호 25,000톤급) 

1주일 만에 이 외항에 도착하는데

해병 장병들은 이곳에서 1박 후 새벽에 다낭항에 상륙한다 

 

탁회장아 사진을 보니 모습이 좀 거시기하다 ㅎㅎㅎ

 

사진 오른쪽이 다낭 시내 방향이고, 보이는 산 왼쪽 끝자락이

그 옛날 우리가 상륙하던 다낭항이다.

우리가 상륙하기 전날 밤에는 계속 함포소리가 들려왔고 

조명탄이 하늘을 밝게했으며,

상륙할 때 하늘에는 굉음을 울리며 전폭기가  날아 다녔는데 ~~

 

위 사진 1매, 아래 사진 7매는  다낭 앞 바다

조명균 부회장님

김두한과 한 판 벌려도 승산 있겠는데 ~~

사진 뒤, 다낭시내 고층 건물들이 보인다.

 

아래 사진 8매

다낭항 왼쪽 모퉁이 해수욕장에서

멀리 다낭항 외항이 보인다.

 

이곳에는 베트남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신고
ⓒ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조회 : 71  

 

 

해병 194기 베트남 전적지 탐방(후에)6

 

동영상에 긴 호수가 나오는데 이 호수는

궁궐에 적이 쳐 들어오지 못하게 궁궐 둘레에 원형으로

연결되었다고한다.  

 

베트남 전적지 탐방 4일 째 되던 날 오전

우리 일행은 베트남의 고도 후에를 향했다,

3일 째 까지는 우리가 주둔했던 지역을 중심으로 최대 격전지

일부를 탐방함으로서 처참했던 그날들의 악몽이 되 살아나

동기들의 마음은 찹찹함을 금할 수 없었지만

이날만은 예외였다, 마치 초등학생이 소풍가는 날처럼

동기들은 희희낙락 거리며 몇시간을 전용버스로 달려도

지루함을 잊은체 농담을 주고받았다. 

우리는 전쟁 때 다낭과 호이안에서만 1년 이상 있으면서 말로만 듣던

"후에"였는데, 이날은 처음 가는 새로운 길이기에 더욱 그러했으리라.

 

그런데 동기 중 고오봉이는 그때에도 민간복을 입고 후에를

왕래했다고 자랑을 늘어 놓으니 전방 부대에서

           박박 긴 동기들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ㅎㅎ           

                                                             

 

위 사진, 빨간기가 달린 베트남 국기 게양대

 

왕궁앞에 설치된 대형 국기 게양대의 모습인데 베트남 전쟁으로 몇번

파괴 되었으며 1969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복원 되었다고한다

게양대 곳곳에는 아직까지 총탄 자국이 남아 있는데 이 자국은

'69년 이후에도 전쟁 중이였는바, 복원 이후의 총탄 상처가 아닐까?

 

어쨌든 그때의 치열했던 전쟁 참상을 묵묵히 증언하고

 있는 듯 해서 바라보는 동기들의 마음은 무겁기만했다.     

 

 

 

 

 

 

, 위 사진 2매

왕궁 성루에 설치되었던 대포인데

1803년에 제작 하였다고 한다, 중국의 오행( 수, 금, 지, 화, 목 )

사상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대포에 천지만물의 힘이 깃들여 있으며

그 힘으로 왕궁을 지킨다고 믿었기 때문에 대포를 만들어 왕궁에 설치

하였다는데, 지금은 궁궐 밖에 옮겨놓고 여행객을 맞고 있었다.  

 

 

 

국기 게양대 뒤에서 단체로 촬영

 

경궁이라 부르는 이곳에는 투득왕과 왕비,

그리고 투득왕의 어머니 위패가 이곳에 모셔져 있다.  

경궁 입구에서 단체로 촬영

 

황제가 정무를 보거나 즉위식, 또는 국빈을 접견하던

태화전 내부 모습인데 훼손 방지를 위하여 사진과 같이 인근에

따로 만들어 놓고 관광객이 기념촬영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단, 3달러를 지불해야 황제복을 입고 왕좌에 앉아 촬영 할 수 있다.

 

베트남 왕권 시대의 마지막 황제 박인데

핏박과 굶주림으로 시달리는 일반 백성들과는 달리

박 황제는 정무를 뒤로한체 맨날 꼬까이들과 음주가무로 소일 하였는바, 

이로 인하여 의자에 앉을 시간이 없었던 중

2014년 2월 25일 14시부터 엄청 긴 세월인 600여 초를

이 왕좌에 앉았다고 자랑하나, 기록은 어디에도 없었다,

왕조가 패망하자 박 황제는 대한민국으로 망명하여

지금은 서울에 살고 있다고 한다 

 잘먹어서인지 배가 나온 모습이지? ㅋㅋㅋ 

  

 

박 황제가 대한민국 해병 194기 동기들과 기념촬영

 

관료들이 황제 접견을 위하여 대기하던 건물이다.

 

전쟁으로 궁궐이 부서진 바닥에서 기념촬영

대한민국과 유네스코 등의 지원으로 복원 중이란다

 

 

 

 

 

 

사진 위, 아래 :궁궐 울타리가 전쟁 때 총탄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왕권시대 적의 침범을 막기 위하여 궁궐 둘레에 이런 호수가 만들어졌다.

 

 

사진 위, 아래 : 궁궐을 돌아보다 잠시 휴식 중임

아래 사진 중 카메라를 메고 있는 사람은

독일에서 여행 온 대한민국 해병대 출신인 후배다. 

 그는 다낭 호텔과 후에에서 우리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는데 독일 해병대전우회에 보관하겠다고 하면서

우리의 만남을 무척 반가워했다.  


 

황제가 정무를 살피고 즉위식을 가질 때

또는 국빈을 접견하던 태화전인데, 넓은 마당에는

 관직에 따라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비석에 표시해 놓았다, 

 




위 사진 1매, 아래 사진 4매

후에에서 베트남 전통 요리로 점심을 먹었는데
맛은 우리나라 음식과 거의 같았다
그래서 나온 음식으 남기지 않고 다 먹어 치웠다,

식당에서 알바하는 젊은이들이 귀여운 짓을
많이해서 동기들이 적지않은 달러를
건네주기도

  

 

 

동영상 : 베트남 초등학생들의 궁궐 관람

재잘거리며 걷는 모습은 우리나라와 똑같다

 

 

                            추신 :   궁궐 관람하면서 보고, 듣고, 자료에 의하여 사진 설명을

                                         올리긴 했으나 기억 부족 등으로 잘못 기재된 부분이 있을

                                         것으로 사료되는바, 다른 데 활용은 가급적 안 하는 것이

                                          좋겠네요,  안다고



안다고 14-03-17 0


신고
ⓒ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조회 : 86  

 

위 동영상은 다낭항이 보이는 한국인 식당에서,
 
백형배 춤 제대로 춘다, ㅉㅉㅉ

 

베트남 전적지 탐방 4일 째 되는 날 저녁 식사는 다낭항구가

바라보이는 한국인 식당에서 술잔을 돌리면서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그 옛날 베트남 격전지로 떠날 때 부산항 제3부두에

찾아오셨던 어머니, 아버지 연세보다도 훨씬 더 많은

나이에 다시 다낭항에 상륙한(?) 해병 194기 동기들의 마음속에는

희,비 쌍곡선이 머리를 스쳐가면서 만감이 교차했으리라!

 

반세기 전 다낭항에 처음 상륙했을 때에는 내가 과연

저 항구에서 귀국선을 탈 수 있을까? 아니면 영원히

다시 못 볼 항구로 남을 것인가! 두려움과 갈등으로

전우들의 손을 꼭 잡고 " 우리는 살아서 꼭 귀국선에 오르자"

이렇게 보장없는 약속을 했던 우리들이 아니였던가! 

 

그로부터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이 흘러 다시 찾은 베트남,

며칠간의 격전지를 탐방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생각해보니

 전쟁의 흔적은 간데없고 사상과 이념은 수구세력들만의

골동품으로 남아  옛 이야기로나  들을 수 있을 것 같으며

또한 변화의 속도도 (남북 관계는 빼고) 우리나라 '70년 대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활기 넘치는 거리마다 젊은이들의 일하는 모습에서

전쟁은 까맣게 잊혀져 감을 알 수 있었고 

새롭게 발전하는 모습만 보이는데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하던가!

그래서 우리는 다낭항을 다시 찾은 기념으로

술잔을 기울이며 여흥을 즐겼노라!

 

옛 월남과 월맹을 생각하니 이런말이 생각나네요

" 용서란 과거의 상처가 남은 삶을 지배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진 탁회장 뒤 바다 건너편에 육지가 아련히 보이는데

그 육지 앞
바다가 다낭 외항이다,

부산항에서 떠난 파월장병 수송선은 (업셔호 25,000톤급) 

1주일 만에 이 외항에 도착하는데

해병 장병들은 이곳에서 1박 후 새벽에 다낭항에 상륙한다 

 

탁회장아 사진을 보니 모습이 좀 거시기하다 ㅎㅎㅎ

 

사진 오른쪽이 다낭 시내 방향이고, 보이는 산 왼쪽 끝자락이

그 옛날 우리가 상륙하던 다낭항이다.

우리가 상륙하기 전날 밤에는 계속 함포소리가 들려왔고 

조명탄이 하늘을 밝게했으며,

상륙할 때 하늘에는 굉음을 울리며 전폭기가  날아 다녔는데 ~~

 

위 사진 1매, 아래 사진 7매는  다낭 앞 바다

조명균 부회장님

김두한과 한 판 벌려도 승산 있겠는데 ~~

사진 뒤, 다낭시내 고층 건물들이 보인다.

 

아래 사진 8매

다낭항 왼쪽 모퉁이 해수욕장에서

멀리 다낭항 외항이 보인다.

 

이곳에는 베트남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신고
ⓒ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큰 지도에서 월남전 한국군 주둔지 및 작전지역 보기






글쓴이 : 안다고
조회 : 68  

 

 

위 동영상 화면에 나오는 지역은 청룡부대가 추라이에서

호이안으로 이동 (1967, 12월) 후, 교대로 1중대 (1969, 1월까지)

 3중대 (1969, 3월까지)

1대대가 (1973, 2월까지)  주둔 하였던 디엔반이다

동영상에 나오는 건물 앞 도로에서 12시 방향 50여 m 지점에

디엔반 군청이 있는데 이번 전적지 탐방팀이 방문코자

하였으나 군청 공무원 중에는 당시 베트콩 또는 월맹군

출신들이 공무원으로 재직 중인바, 사정에 따라서는

봉변을 당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문 앞에서 방문을 

포기해야하는 아쉬움이 ~~,    

 

청룡 6중대 방석

 

                                          위 사진, 디엔반 입구                  

 

                                   위 사진 1매, 아래사진 4매 , 디엔반 군청 앞을 지나는 도로

 

청룡 1중대, 3중대, 1대대가 교대로 주둔하고 있을 때

이 도로는 비포장 1차선으로  차량 교행이 어려울 정도로

협소한 도로였는데 지금은 편도 2차선으로 비교적 깨끗하였지만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차량 통행은 드물었다

안다고 (사진) 가 서 있는 도로 50여 m 뒤에

디엔반 군청이 있음

 

 

 

사진 위 1매 , 아래 1매.  

사진 왼쪽 건물 앞에 청룡 3중대 정문이 있었으며,
 
하천은 그때와 달라지지 않았으나

수량은 그때보다 좀 많은 것 같았다.

경관 조성을 위하여 물 흐름을 억제한 듯

사진 왼쪽으로 건물이 여러체 보이는데 이 자리에 청룡 3중대 1소

대 벙커들이 있었으며, 안다고는 건물 끝 부분에

지하 벙커를 구축하고 그곳에서 생활했다..
  

추 신
1969년 3월초순 사진 뒷쪽 하천 건너편에 대규모 월맹군이
3중대를 기습 공격하고자 접근 중이었는데 우리가  이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고 중무기를 동원 하천건너에서 기다리던 중
이들이 나타나자 일격에 섬멸한 기억이 나는구나
이로 인하여 한 달 동안 적의 시체 썩는 냄새가
3중대 방석으로 날라와 코를 막고 다닐정도 ~

 

위 사진, 다낭 차이나비치

 

다낭 차이나비치 해수욕장은 청룡부대가 호이안으로

이동 후에 휴양지로 활용하였던 곳이다.

안다고도 1968년 10월 1일부터 이곳에서 1주일을 보냈는데

46년 만에 다시 찾은 차이나비치는 카지노, 호텔, 리조트 등

많은 위락 시설이 들어서 있거나 축조 중이었으며

, 그때는 없었던 4차선의
해변 도로가 시원하게

뻗어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었기에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발전하는데  손색이 없었다. 

 

위와 아래 사진

다낭에서 후에로 가는 중간쯤에 위치한 농촌인데

빼어난 경관이 이방인의 발길을 멈추게 하였다.  

 

 

 

아래 사진 4매

다낭 북쪽 후에로 가는 하이반 고갯길에 설치되어 있는

전쟁 때 군시 시설물인데 아직도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이곳에는 미군을 포함한 몇 나라의 군인들이

합동 검문을 실시하던 곳인데, 적의 기습 공격으로

수많은 아군이 전멸하였다는 무시무시한 고갯길

우리가 갔을 때도 그때의 악몽이 서려 있는 듯 음침했다.

 

 

 

 

 


 


신고
ⓒ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큰 지도에서 월남전 한국군 주둔지 및 작전지역 보기
글쓴이 : 안다고
조회 : 61  

 

동영상, 추라이로 가는 중에 전용 차량에서 한마디씩   

 

                        베트남 전적지 탐방 2일 째 뇌는 날 동기들은  전용차량으로 

우리 직전 기수에 가까운 선배들의 격전지였던 추라이로 향했다.

촉박한 시간으로 우리 대선배들의 격전지였던 캄란과 투이호아는

갈 수 없지만, 호이안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추라이

탐방은 시간이 충분하기에 선배들의 발자취를 현장에서 보고자 베트남 1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달렸다. 이동중에 차창밖으로 전개된 베트남은

우리나라 6,70년 대 처럼 고속도로 개설, 마을안길 포장, 주거환경 개선 등

발전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고, 특히 우리나라 기술진과 중장비가

베트남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것에 뿌듯한 감정으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으며,  또한 지난 날에는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민주와 공산 진영으로
나뉘었던  사상과 이념이 사그러지고 이에 걸맞게

대한민국과 베트남이 동반자 적 관계로 발전한다는 것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탐방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래서 안다고는 베트남을 사랑하노라!!!  

 

 

 

                                                                                  사진 위, 아래

                               선배들의 피와 땀이 범벅 되어 진하게 베어있는 추라이에서

 피지도 못한 고귀한 젊은 넋을 위로하고자 제례를 올렸다.

제례상 옆에는 이름모를 한송이 들꽃이 선배들이 환생한 듯 반겨 주었다.

 

 

 

 

 

 

 

사진 위, 추라이 헬기장

  추라이 전투에 참여했던 선배 해병들은 누구나 이 헬기장을 한번 이상은

타고 내렸으리라! 배속받은 중대로 가기 위하여,  선혈이 낭자한 전우가 후송을 위하여,

심하게 다친 전우가 조기 귀국을 위하여, 그리고 불귀의 객이 된 전우의 시신

이송을 위하여 ~~   좁은 헬기장이 지금은 쓸모없이 방치되어 있지만,

 청룡부대가 주둔하고 있을 때에는 (1966년 8월? ~ 1967년 12월 23일)

얼마나 북적댔을까?

고개숙여 그날의 애환을 떠 올려 봅니다.  

 

사진, 위로 5매

추라이 탐방을 마치고 다낭으로 이동 중에

도로 옆 구멍가게에 들려 시원한 야자 열매 물로 음료를 대신했다.

한 개에 500원 정도인데 예상치 못한 이방인 방문으로

수입이 짭짤하자 가게집 딸이 기분이 좋아

함께 사진 찍기로 고마움을 대신했다.

결혼할 때 안내장 보내라 축의금 들고 갈 사람 있다.

누구냐고? 조효선 ㅋㅋㅋ 

 

 

 사진 위,

 이 철도는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호치명(사이공)시로 연결되어 있는 철길이다.

단선 궤도로 선로가 놓여 있어서 기차 교행은 역에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기차 선로에서 5m 도 안 되는 바로 옆에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들은 잠을 제대로 잘 수 있을까?  

   우리나라 같으면 철길 옮기라고 데모와 보상을 요구할 텐데 ~,

 
    잠을 못 자니 아이들은 많겠더라 ㅎㅎㅎ 

    예전의 우리나라도 기찻길 옆 집에는 유독 아이들이 많았다는데~, 
   

 

 

 

 

사진 위, 4매

추라이 탐방을 마치고 다낭으로 향하던 중

중간 쯤에서 도로옆 식당에 들려 점심 식사를 ~ 

메뉴는 베트남 토속적인 식단으로 했는데

약간의 향내가 났지만 현지식으로 먹는다는 거 때문인지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술까지 곁들였다.



신고
ⓒ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큰 지도에서 월남전 한국군 주둔지 및 작전지역 보기










글쓴이 : 안다고
조회 : 63  

 

 

위 동영상 화면에 나오는 지역은 청룡부대가 추라이에서

호이안으로 이동 (1967, 12월) 후, 교대로 1중대 (1969, 1월까지)

 3중대 (1969, 3월까지)

1대대가 (1973, 2월까지)  주둔 하였던 디엔반이다

동영상에 나오는 건물 앞 도로에서 12시 방향 50여 m 지점에

디엔반 군청이 있는데 이번 전적지 탐방팀이 방문코자

하였으나 군청 공무원 중에는 당시 베트콩 또는 월맹군

출신들이 공무원으로 재직 중인바, 사정에 따라서는

봉변을 당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문 앞에서 방문을 

포기해야하는 아쉬움이 ~~,    

 

청룡 6중대 방석

 

                                          위 사진, 디엔반 입구                  

 

                                   위 사진 1매, 아래사진 4매 , 디엔반 군청 앞을 지나는 도로

 

청룡 1중대, 3중대, 1대대가 교대로 주둔하고 있을 때

이 도로는 비포장 1차선으로  차량 교행이 어려울 정도로

협소한 도로였는데 지금은 편도 2차선으로 비교적 깨끗하였지만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차량 통행은 드물었다

안다고 (사진) 가 서 있는 도로 50여 m 뒤에

디엔반 군청이 있음

 

 

 

사진 위 1매 , 아래 1매.  

사진 왼쪽 건물 앞에 청룡 3중대 정문이 있었으며,
 
하천은 그때와 달라지지 않았으나

수량은 그때보다 좀 많은 것 같았다.

경관 조성을 위하여 물 흐름을 억제한 듯

사진 왼쪽으로 건물이 여러체 보이는데 이 자리에 청룡 3중대 1소

대 벙커들이 있었으며, 안다고는 건물 끝 부분에

지하 벙커를 구축하고 그곳에서 생활했다..
  

추 신
1969년 3월초순 사진 뒷쪽 하천 건너편에 대규모 월맹군이
3중대를 기습 공격하고자 접근 중이었는데 우리가  이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고 중무기를 동원 하천건너에서 기다리던 중
이들이 나타나자 일격에 섬멸한 기억이 나는구나
이로 인하여 한 달 동안 적의 시체 썩는 냄새가
3중대 방석으로 날라와 코를 막고 다닐정도 ~

 

위 사진, 다낭 차이나비치

 

다낭 차이나비치 해수욕장은 청룡부대가 호이안으로

이동 후에 휴양지로 활용하였던 곳이다.

안다고도 1968년 10월 1일부터 이곳에서 1주일을 보냈는데

46년 만에 다시 찾은 차이나비치는 카지노, 호텔, 리조트 등

많은 위락 시설이 들어서 있거나 축조 중이었으며

, 그때는 없었던 4차선의
해변 도로가 시원하게

뻗어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었기에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발전하는데  손색이 없었다. 

 

위와 아래 사진

다낭에서 후에로 가는 중간쯤에 위치한 농촌인데

빼어난 경관이 이방인의 발길을 멈추게 하였다.  

 

 

 

아래 사진 4매

다낭 북쪽 후에로 가는 하이반 고갯길에 설치되어 있는

전쟁 때 군시 시설물인데 아직도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이곳에는 미군을 포함한 몇 나라의 군인들이

합동 검문을 실시하던 곳인데, 적의 기습 공격으로

수많은 아군이 전멸하였다는 무시무시한 고갯길

우리가 갔을 때도 그때의 악몽이 서려 있는 듯 음침했다.

 

 

 

 

 


 



신고
ⓒ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