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SS FEED
  • <--!테스트-->

    나라를 위해, 가족을 위해...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싸웠다!

  • 아들아! 내 소중한 아들아! 반드시 살아돌아와야 한다.

  • 둘째야! 잘 댕겨오니라~ 건강해야 한다!

  • 파병... 그 힘찬 발걸음!

  • 승리를 위하여...

  • 조국를 위하여...

  • 민주주의를 위하여...

  • 전쟁의 끝을 향하여...

  • 돌아온 사람들...

  •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 베트남전쟁...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잊혀지기전에...

 

제작일: 1967-02-18

연예 위문단이 월남의 장병들을 찾아가 민요, 가요등의 위문공연을 펼침.
-공보부가 파견한 최정희 여사를 단장으로한 연예 위문단 월남 도착.
-전선의 장병들을 찾아가 격려하는 일행.
-민요, 가요, 코메디 등의 공연을 펼침.
-무대에 같이 올라가서 노래 부르는 장병들.
-즐거워하는 장병들.

저작자 표시
신고
ⓒ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호치민 전쟁 박물관에 가면 미군과 한국군이들이 사용하던 전쟁 무기가 그대로 전시되어있다 당시에 미군과 한국군인이 사용하던 무기들을 찍어 올린다

 

 

 

 

 

 

 

 

 

포탄 파편들도 모아놓고 전시중이다

 

 

 

 

 

 

 

 

 

 

 

 

 

 

 

 

 

고엽제을 잔득 싫은 추럭들이 도착하고있다 저군인 들은 지금씀 어떻게 되었을까?

 

호치민 지금은 유엔이 지정한 건저 맹글로브 숲에 미군비행기로 고엽제을 고엽제을 살포중이다

 

고엽제을 살포한 건저지역 맹글로브 장글이 앙상하게말라죽었다 저꼬마도 지금씀 50대중반은 되엇을턴데 살아있을런지?

 

 

전쟁 박물관에 유일하게 한국 군인 맹호부대 작전사진이 붙어있다 www.vietnamgo.co.kr 베트남갑시다 촬영

 

신고
ⓒ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베트남은 손제주가 좋고 직원들의 임금이 저렴한 곳이다 1급지역 평균임금이 usd150 미만으로 세계유명 상표 옷공장과 신발공장이 베트남에 많이 몰려있다 특히 남부 호치민 지역에 많이 있는데 베트남여행중 이곳에 들려서 유명 나이키 신발과 한국에서 좋게평가받는 노스페이스 잠바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수있다

 

 

 

이곳에 진열된 나이키 신발은 베트남 에서 생산된 나이키 신발로서 한컬레에 한국돈 35.000원- 45.000 사이에 살수있다 이곳 신발은 한국에 태광그룹에서 만든 신발이라  가격도 저렴하고 최신 유행 신발을 골라살수있다

 

 

 

 

이곳은 노스페이스 잠바만 전문으로  도매하는집이다   이곳가게는  대만인과  중국인 일본인이 많이 찿은 곳이다 한국사람들은 알고있는사람들이 많지않다 이곳잠바는 거위털 잠바가 약40.000원  최근에 나온 뉴모델도  40.000원이면 살수있는곳이다

 

www.vietnamgo.co.kr   베트,남갑시다.한국  촬영

신고
ⓒ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해병 6중대가 주둔한 지역은 프랑스가 베트남을 지배할 당시 프랑스군이 주둔했다고 한다 건축물들도 프랑스 군인들이 만들어 놓은것이다
                             www.vietnamgo.co.kr  베트남갑시다.한국 촬영

 

   

 

신고
ⓒ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1967년 베트남 광나이성 짜빈동 해병 11중대 새벽 4시씀 북베트남군 1개여단병력이 11중대을 공격하여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11중대 현제모습  베트남중부지역 광나이성은
지금은 현대 기아 자동차 버스공장및 자동차 조립공장이 들어서있고 한국에서 건축해준 대형 종합병원도 광나이성에 들어서있다
 


해병 11중대가 주둔했던 지역 정상에 4각형 건물이 멀리서보인다 
 


 


 


 


 


4각형 건물 아래 비석에 1967년 전투상항이 설명되어있다 (그들에 승리상항을)
 


11중대가 주둔했던 지역은 심어놓은 나무들이 무성히 자라고있고 당시에 11중대에 있던 바위들은 변함없이 그대로 그자리에 있다
 


 


 


짜빈동 해병 11중대 입구 모습 앞에보이는 빨간 기와집 할머니가 10년전 방문했으때 한국군인에게 딸이 죽었다고 항의 하던 생각이들어서 할머니의 소식을 들으니
몇년전에 돌아가셧다고한다
 


 


 


                                                             www.vietnamgo.co.kr      이남원 촬영

신고
ⓒ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뉴스에듀] 해병대 예비역들이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의 군 납품비리와 인사비리 등 '군피아'에 맞물려 해병대의 완전독립을 촉구해 파장이 예상된다.

6일 전국에서 모인 해병대 원상회복 추진위원회(위원장 김진찬)와 해병대총연합회 50여 명은 다섯가지의 결의문을 채택 발표하고 국방부와 국회국방위에 전달하고 결의문을 담아 청와대에 접수 했다. 

이날 행사는 그 동안 해군에서 벌어진 방산비리와 인사비리 관련 같이 갈 수밖에 없는 해병대의 입장 표명과 명예를 위해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해병대 예비역들은 "해병대가 갖는 특수 전 임무를 생각한다면 해군에 예속 되서는 안 되고, 독립된 부대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해병대는 6·25 당시에 북한군과 지상전투를 벌여 많은 공을 세우고, 월남전에 참전 한국의 위상을 떨친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해병대의 작전 범위는 영토나 영해, 영공 등 모든 지역에 걸쳐있고, 만일의 사태에 즉시 투입되어 전투력의 공백을 없애주는 역할을 해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해병대원상회복 추진을 위한 기자회견


이어 해병대 전우회는 "우리도 미 해병대와 같이, 세계정세의 흐름인 해외 파병임무와 세계 각지에 퍼져있는 각국 공관의 수호와 경비 임무를 맡긴다면, 4군 체제로 편성이 가능하며, 이와 같은 방식이 군의 전문화를 갖춘 미래지향적이고 효율적인 군 운영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런 임무를 수행하는 해병대와는 달리 해군은 요즘 방산비리, 인사비리 등을 일삼고, 집단적 이기주의 그리고 정치군인들과 정치인들의 합작으로 인해 전투력의 근본인 소속감과 자긍심에 큰 상처를 내,전투력의 손실 및 군의 위상을 추락 시켜왔다."고 성토했다.

해병대 전우회는 해병대의 명예와 부대원의 자긍심 재고취와 전투력 강화를 위해 해군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요구했다. 이들은 "해군에서 터지는 비리로 인해 해병대 또한 명예에 타격을 입고, 인사권이 없어 스스로의 성장을 할 수 없다는 것에 큰 자괴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병대 전우회는 해병대 사관학교의 재 개교와 무기의 현대화도 등도 요구 했다.


   
▲ 미 해병대 사령관Frank A.Panter장군과 명예해병 이현숙 위원장
한편 이날 행사에 해병대 예비역 외에 홍일점 이현숙씨는 여성이지만 미 해병대 명예회원인 이현숙씨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으로 평소부터 해병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 씨는 이번 행사에 참석하게 된 동기도 “평소부터 해병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미약한 여자이지만 해병대 전우회를 응원하기 위해 참석했다”고 말했다.


이현숙씨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도 해군성 산하에 해군· 해병대 각자 독립 된 부대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고, 작전이나 훈련 때만 연계하고 있다면서 부대 사기나 능률을 보더라도 해군과 해병대 분리는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해병대 전우회는 3백만 해병대 가족들과 합심해, 해병대의 명예와 현대화를 위해 해병대가 독립적 조직이 될 때까지 노력할 것이라는 말을 전했다.

다음은 <해병대 독립>에 채택된 결의문이다.

하나. 정부와 국방부는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 4군체제로 과감히 전환할 것을 촉구한다.

둘. 해군의 고유작전은 해상작전이며, 해병대의 고유작전은 상륙작전으로의 명확한 임무 구분으로 인사, 방산 비리의 온상인 해군으로부터의 반쪽자리가 아닌 완전독립을 요구한다.

셋. 해병대의 국가 전략 기동부대로서의 교육 훈련체계의 전문화와 현대화된 무기체계를 즉각 도입해 해병대원을 더 이상 희생양으로 만들지 마라.

넷. 해병대를 해외 파병과 각 공관 수호 및 경비임무의 전담으로 재구성해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여라.

다섯. 해병대의 정신을 계승하고, 특수 목적군으로써 전투작전을 수행 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과 전문화 된 해병대 장교 양성 기관 ‘해병 학교’의 재 창설을 촉구한다.

문의 : 1688-8076

사진제공= 해병대 원상회복 추진위원회

신고
ⓒ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Looking for Blue Dragon Marine Vietnam Veterans   

Dear Sirs,

My name is Huong Ly, Vietnamese currently live and work for the British Broadcasting
Corporation in London, United Kingdom. I am writing to you with a personal request
after reaching out to Mr Kim Poong.

I am trying to locate some South Korean Marines of the Blue Dragon Brigade also called
2nd Marine Division, ROK, who were taking part in the Vietnam War and stationed  near or
in Duy Xuyen district of Quang Nam province, central Vietnam,  in early March 1969.

The reason I would like to look for them is because they might have some information
about what happened to my mother, Duong Thi Xuan Quy, a war journalist/writer for
North Vietnam, who was killed on the evening of 8 March, 1969, during a cordon and
search operation by the South Korean Blue Dragon Marine Brigade in Thi Thai hamlet of  
Xuyen Tan village, Duy Xuyen district ( south of Da Nang).  

According to the information we gathered after the war from local paramilitary and Viet Cong
personnel whom my mother was accompanying on 8 March,  1969, she had been in an
underground bunker with  them for a few days hiding since the Blue Dragon Marines moved
into the area around 4 March 1969. They soon realised that it was a cordon and search
operation, and that the marines would stay for days, possibly weeks, assaulting and bulldozing
the area in order to find enemy arms cache and fighters. So between 8 and 9 pm on 8 March,
1969, the group, including my mother, decided to break out of their underground bunker,
attempting to escape.

We were told that one person in the group stumbled on an illumination mine, which exposed
them immediately. The South Korean Marines saw them and chased after them. My mother
with two Viet Congs jumped into a nearby dry well and then got shot from above.
She fell at the foot of one Viet Cong, who then lobbed a grenade to the marines to hold
them off. He then lifted the other Viet Cong who was injured, out of the well and escaped,
leaving my mother behind assuming that she was already dead.  As a journalist, she was
unarmed. The only belonging she had with her was a blue colour notebook and a pen.
We understand that since she was with Vietcongs, it was not necessary that the Blue Dragon
Marines would be able to distinguish her as a journalist.

The Blue Dragons remained in the area for days and when they finally left, a local Viet Cong
paramilitary unit moved in. The head of the unit said he had received information of two people
killed there during the operation, one female journalist (my mother), and the other was a local
Viet Cong official. He and his unit found the grave of the local official straight away because
it was marked with a cross sign made of twigs. They assumed the South Korean marines had
buried the official by the way the grave was done and marked, and also there were no villagers
living in the area at the time. They then searched for my mother. After digging up an area
nearby where they saw human blood abuzz with flies, they found nothing.  

Since the end of the war, my father, my mother’s family and I have come back to the area
numerous times and dug the whole area up with hope to find her remains but we have not
been successful.  We have been trying to access the Northern Vietnamese Army archive but
were told no one knew where the local army archive is or indeed, if there is such a thing.

Therefore I am appealing to you for any infomation. If you know any Blue Drangon Marine
serving in Vietnam at that time ( March 1969), could you please introduce him to me.

I have also written to the US Vietnam War veteran organisations and am pursuing official
routes with the same request, in case anyone might know someone who holds the information
that would help me to establish what actually happened to my mother. Maybe it would also
help me to find her remains one day.

I know this task is extremely difficult and painstaking. And I might not be able ever to find out
the truth. But for now I just would like to give it my best try possible. I will exhaust all avenues
I can find as the doors to people’s memories become closed with time.

I thank you in advance for your help.
Kind regards,

Huong Ly

Senior Broadcast Journalist
Planning Editor
Newsday
New Broadcasting House Zone 3B 3rd Floor
Portland Place
W1A 1AA
Tel: + 44 203 614 1152▶김 풍: 글 올린 베트남 출신 영국 여성 후옹 리 씨는 BBC 방송기획 편집자로 활동 중이며
베트남 전쟁 당시 1969년 3월 8일에 행방불명된 어머니 두옹 티 쑤안 키 여사에 관하여
작은 단서라도 알기 원하여 이 곳을 찾았습니다.

그녀의 가족들은 장기간에 걸쳐 베트남 정부와 미군당국의 관계자들에게 문의하였지만
문서 기록에 전혀 나타나지 않고 마지막으로 직접 관련이 있는 한국군에게 문의 하기로
결심하였습나다.

그분(모친)은 북베트남 편의 전쟁 취재 작가로서 활동했으며 1969년 3월 4일 부터 다낭 남쪽
광남성 두이 쑤엔 지방 쑤엔탄 마을 티 타이 부락에서 지역 차단 및 탐색 작전을 실시한 한국군
청룡에 의해 희생당한 것으로 조사되었읍니다.

며칠 간 지하 벙커에 베트콩들과 함께 숨어 지내던 일행은 3월 8일 밤 8시에서 9시 사이에
탏출을 시도했으나 조명불빛에 노출되어 추격당하던 중 마른 우물에 두명의 베트콩과 함께
말흔 우물에 피신 하였습니다,

그러나 총격을 받고 다른 한명과 그녀는 부상당하였으며 또 다른 한 베트콩은 수류탄을 던져
지연작전을 쓰면서 부상이 심한 어머니는 남겨두고 도망쳤습니다.
작전이 끝나서 한국군이 철수한 후에 베트콩 지역 조직의 조사에서 두명의 희생자가 나왔는데
하나는 지역 베트콩 임원이고 또 하나는 그녀(모친) 이었습니다.
그 베트콩 임원은 한국군이 매장하고 나뭇가지로 십자가 표시를 해 주어서 쉽게 시체를 찾았지만
그녀는 핏자국 외에는 흔적이 없었습니다.

알고 싶은 것은 한국군이 그 지역 어딘가에 매장해 주었는지 아니면 부상당한 몸으로 헤메다니다
어딘가 토굴에 묻혔는지 모두 궁금합니다.
상세한 내용을 한국군이 공식적으로 기록해 남기기는 어려웠겠지만 현장에 있었던 분은
개인적으로 기억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베트콩들과 함께 있었던 여성이 취재 기자(작가)라고 생각했던 분은 없었을 것 같습니다.

이 가족의 불행이 어두운 전쟁의 한 단면을 보여 주어서 가슴이 아픕니다.
이제 화해의 시대에서 함께 살고 있으니 협조할 수 있으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혹시 당시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신 전우나 비슷한 이야기를 들으신 전우가 계시면
010-7629-0275 (김풍)에게 연락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신고

'청룡 > 여단본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68년 작전지도 호이안  (0) 2017.03.30
1966년7월22일 청룡부대 환송식 장면  (0) 2015.05.18
사람을 찾습니다  (0) 2015.04.05
청룡부대 선상에서  (0) 2015.03.31
어느 해병의글  (0) 2015.03.13
어느 해병의 낡은 앨범  (0) 2014.11.23
ⓒ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