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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임영석 전우는 백마부대 29연대로 참전하였다 사회에서부터 운전병의 경력으로 29연대에 배속받고 있던중 1개소대병력이 닌호아에서 60키로 떨어진 보온 마투온

가는 1500미터 고지 산골짜기에 운전병으로 배속받고 참전했다 이지역은 달랏성에 속하는 보온 마투온에 아주큰 미군부대가 있었다고 한다 미군들이 보급품을 운반하기위해서는 오직첩첩산중 길을 구비구비 달려서 1500미터 고지에 올라서면 이곳 부터는 평지가 끝없이 이어지고 산길 주변에는 몬타나 족들만이 마을을 형성하고 살았다

미군들의 보급로을 지키기위해서 매일 아침이면 산길 중간중간에 1개소대 병력을 배치하고 오후 5시면 철수하기을 반복했다고 한다 워낙 깊숙한 산속이라 산에사는 베트공은

많아 보이지않아서 큰위험에 노출 되지는 않았으나 대장글로 이루어진 길옆에는 수백미터 낭떨어지가 많아서 무척 위험한 운전이었다 1개소대원들의 식량과 보급품 탄약까지 임영석 전우가 책임지고 보급품을 산속깊숙히 있는 소대까지 운반하다보니 항시 위험에 노출되었다고한다  이지역은 군대이면서 워낙 멀리 떨어저있는 산속이라 헌병도없고 오직 파견된 소대장이 이지역 대장 노릇을 했다고한다 과연 이곳은 어떻게 변했을까? 주의에 사람이라고는 몬나나 족들의 마을만 있어고 유일하게 1500미터 고지 평지에에 아주큰 주택이한채 있어서 매일 미군부대에서 휴발유을 실고와서 이집에서 하루에도 두번씩 쉬다가곤 했다 당시에 친절하게 대해주던 그집 아주머니는 지금도 살아계신지

궁굼하다 유일 하게 이곳 외딴집에는 당시에도 맥주며 잡동사니을 파는 곳이였다 군대서 나오는 군용품과 휴발유 등도 사고 차량까지 가추고 사는집이였다

 

 

 

닌호아 삼거리에서 달랏방향으로 가다보면 드넓은 닌호아 벌판이나온다 벌판을 약40키로 달리다보면 중간중간에 베트남 군이들이 주둔한 군부대가 두군대 나온다

부대을지나서 들판이 끝나는지점에서부터 산악지역으로 연결된다

 

 

산정상을 올라오면 산속에 더이상 산으로 오르는 길은 끝나고 양쪽이 산이면서 평지길이 나온다 앞에보이는 작은산이 소대가주둔했던지역이다

지금은 몇채에 집들이 들어서있고 산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생필품을 파는 오토바이 아주머니가 길가에 서있다

 

 

 

소대가 주둔했던 산은 울창하게 열대나무가 우거저있고 몬타나 사람들이 살던 집은 버러진채 방치되어있다

 

 

임영석 전우께서 참전당시 수없이 오고가던 길에 서있다

 

 

 

이지역은 전쟁 당시에 몬타나 족이 집단으로 살던지역이다 지금은 베트남정부정책으로 몬타나 족들이 길가옆으로 이전하여 살고있다

전쟁당시에 이곳마을 몬타나 촌장과 주민들에게 서로가 협력하며 지내고했다 당시에 몬타나 족들은어디에서 총을 구햇는지 몰르나 동래을 교대로 총을 들고 지키고있었고 이곳으로 흘르는 작은개울물을 먹고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에마을 자리는 작은 다락논으로 변하여 몬나나 족들의 식량을 보급하는곳으로 변해있다

 

 

부인과 같이 참전지역에 오셨다

 

 

 

 

 

 

 

전쟁당시에 하루에 두번씩 들려서 쉬고가던 산속에 가게는 46년전 집그대로 있고 넓은추차장도 그대로다 그러나 당시에 집주인 아주머니는 없고

빈집에 아주머니에 영정사진만 모셔저있고 주인아들들은 도시에서 살고있다고 주의에 몬타나 주민들이 말해준다

 

 

46년전 주택은 그대론데 보고싶은 아주머니는 없고 주택과 넓은 땅도 방치된채 버려저있다

 

 

 

 

 

소대원을 실고 가던중 베트공의 포공격을 받고 낭떨어지로 차량이 굴러 떨어 졌으나 워낙 숲이 많이 우거저서 단한명의 부상자도없이 살아 난것이 가장 기역에

남는다 그러니 워낙 오래된 세월이고 숲이우거저있어 그지역은 어디인지 기억하지 못 하겠다

www.vietnamgo.o.kr  이남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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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백마승전탑 아래 세멘트 구조물은 승전탑을 세우고 행사을했던 구조물이라고 한다

백마 승전탑을 50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다 아래승전비동판은 닌호아 군청에 보관 하고있다고 한다



백마 사단 사령부 부관부 앞 연병장





백마29연대가 주둔했던 자리는 잡초가우거지고 차량이 다니던 도로는 50년전 아스팔트가 파손된채 그대로 남아있다



백마 29연대 6중대가 주둔했던 산정상에서  당시에 사용하던 잔해물이 남아있다


6중대가 주둔했던 정상에서 바라본 바다쪽 방향 앞쪽은 열대나무로 우거저있다


백마6중대 정상에서 1번국도방향으로 하노이행 화물열차가 달리고있다





백마사령부와 29연대가 사용하던 동하이 휴양소는 지금은 외국관광객이 많이 와서 휴양을 즐기는 관광휴양소로 변해있다






백마 30연대 3대대와 10중대가 주둔했던 산은 지금은 아래가 건축자재을 생산한곳으로 변해있고 산정상 3대대와 10중대터는그대로 남아있다



30연대 9중대 터는 지금은 논이로변해있고 주택이들어서있다


10중대 와 3대대가주둔한 산을 배경으로




나트랑 롱손사 배경으로



백마부대가 처음 이곳 나트랑 해변으로 상륙하여 추럭을 타고 사령부로 갔던지점이다

                                                      www.vietnamgo.co.kr  이남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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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울산 동구 참전전우회 동구지회장 이광남과 이성록 전우가 참전지역을 두번째 방문하여 참전지역방문과 참전지역 불우이웃돕기와 울산지역으로 결혼한 다문화가정을

 방문하여 가족들에게 위로금을 전달하고 69년도 참전 당시 마을우물에서 11중대원들이 마실물을 공급해주던 가정집을 방문하였다 가정집에 도착해서 확인해보니 당시 집주인부부가 아직까지 생존해있다 103세와 97세로 장수하는부부가 그당시그집에서 살고있다

 

이성록 전우가 캄란만 이곳고지뒤에서 경계을서던지역이다 2번이나 베트남전적지여행을 왔으나  근무지는 못보고 귀국했다고한다

 

 

지금캄란해변은 세계유명 호텔 체인들이 고급리죠트을 건설중이고 일부는 영업중인곳도있다

이성록 전우 자신이참전했던 지역을 배경으로 지금은 베트남 정부소유 안테나가 서있다

캄랑해변에 일부호텔이 영업중이라 유렵인들이 캄란해변에서 해수욕을 즐기고 있다

이관남전우가 참전했던 닌호아 마을입구 참전당시이곳 물차을 몰고가다 베트공의 습격을 받고 1번국도로 도망치다가 30연대 소속 중대본부로 피신한적이 있다

이광남전우가 참전했던 백마 3대대11중대 터 일부는 공동묘지고 산을 우거진채 그대로 남아있다

69년도에 찍어떤 중대앞 마을 당시에는 들판에 물소때들이 많았었다

69년도 찍은 장소에서 지금은 논으로 변하고 사당비슷한 건물은 그대로남아있다

69년도에 물을 떠나르던 주인집 어른 올해103세로 살아계신다 10대때부터 담배을 피우고 지금도 담배을 즐겨피우신다

3년전에 와서 보았을때보다 많이 기력이없어 보이신다

어른신에게 담배값하시라고 2백만동을 봉투에넣어서 주니까 고맙다고 하신다

이광남 씨가 매일 들려서 11중대원들의 물을 공급하던 우물도 그대로 남아있다 아마 이우물이 장수우물 인것같다

 

올해97세이신 할머님도 건강하시게 살아계신다 이들부부는 평생동안 병원을 가본 적이없다고한다

이광남 전우가 용동을 주니까 바로 허리밑 주머니속으로 돈을 넣으신다

 

47년전 하루에도 2번씩 들리던 우물이 그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다는것이 신기할뿐이다

 

울산으로 결혼한 다문화 가족집을 차량으로 5시간 달려방문 하여 2집에 위로금 전달해주셨다

 

베트남에서 한국울산으로 시집온 다문화가족 고향집을 방문하여 USD 2.000불을 기부하시고 귀국하셨다 사이공에서 맹호부대 26연대 2대대지역 한국인2세딸과 마을 주민 사이공에서 대학에다니는 학생들6명에게도 장학금을 전달하였다 제가 마침 한국에서 전적지여행 손님이오신날이라 가이드에게 부탁해서 사진으로 남기지못했다

                                 www.vietnamgo.co.kr   베트남갑시다.한국 이남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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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임영석 전우는 백마부대 29연대로 참전하였다 사회에서부터 운전병의 경력으로 29연대에 배속받고 있던중 1개소대병력이 닌호아에서 60키로 떨어진 보온 마투온

가는 1500미터 고지 산골짜기에 운전병으로 배속받고 참전했다 이지역은 달랏성에 속하는 보온 마투온에 아주큰 미군부대가 있었다고 한다 미군들이 보급품을 운반하기위해서는 오직첩첩산중 길을 구비구비 달려서 1500미터 고지에 올라서면 이곳 부터는 평지가 끝없이 이어지고 산길 주변에는 몬타나 족들만이 마을을 형성하고 살았다

미군들의 보급로을 지키기위해서 매일 아침이면 산길 중간중간에 1개소대 병력을 배치하고 오후 5시면 철수하기을 반복했다고 한다 워낙 깊숙한 산속이라 산에사는 베트공은

많아 보이지않아서 큰위험에 노출 되지는 않았으나 대장글로 이루어진 길옆에는 수백미터 낭떨어지가 많아서 무척 위험한 운전이었다 1개소대원들의 식량과 보급품 탄약까지 임영석 전우가 책임지고 보급품을 산속깊숙히 있는 소대까지 운반하다보니 항시 위험에 노출되었다고한다  이지역은 군대이면서 워낙 멀리 떨어저있는 산속이라 헌병도없고 오직 파견된 소대장이 이지역 대장 노릇을 했다고한다 과연 이곳은 어떻게 변했을까? 주의에 사람이라고는 몬나나 족들의 마을만 있어고 유일하게 1500미터 고지 평지에에 아주큰 주택이한채 있어서 매일 미군부대에서 휴발유을 실고와서 이집에서 하루에도 두번씩 쉬다가곤 했다 당시에 친절하게 대해주던 그집 아주머니는 지금도 살아계신지

궁굼하다 유일 하게 이곳 외딴집에는 당시에도 맥주며 잡동사니을 파는 곳이였다 군대서 나오는 군용품과 휴발유 등도 사고 차량까지 가추고 사는집이였다

 

 

 

닌호아 삼거리에서 달랏방향으로 가다보면 드넓은 닌호아 벌판이나온다 벌판을 약40키로 달리다보면 중간중간에 베트남 군이들이 주둔한 군부대가 두군대 나온다

부대을지나서 들판이 끝나는지점에서부터 산악지역으로 연결된다

 

 

산정상을 올라오면 산속에 더이상 산으로 오르는 길은 끝나고 양쪽이 산이면서 평지길이 나온다 앞에보이는 작은산이 소대가주둔했던지역이다

지금은 몇채에 집들이 들어서있고 산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생필품을 파는 오토바이 아주머니가 길가에 서있다

 

 

 

소대가 주둔했던 산은 울창하게 열대나무가 우거저있고 몬타나 사람들이 살던 집은 버러진채 방치되어있다

 

 

임영석 전우께서 참전당시 수없이 오고가던 길에 서있다

 

 

 

이지역은 전쟁 당시에 몬타나 족이 집단으로 살던지역이다 지금은 베트남정부정책으로 몬타나 족들이 길가옆으로 이전하여 살고있다

전쟁당시에 이곳마을 몬타나 촌장과 주민들에게 서로가 협력하며 지내고했다 당시에 몬타나 족들은어디에서 총을 구햇는지 몰르나 동래을 교대로 총을 들고 지키고있었고 이곳으로 흘르는 작은개울물을 먹고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에마을 자리는 작은 다락논으로 변하여 몬나나 족들의 식량을 보급하는곳으로 변해있다

 

 

부인과 같이 참전지역에 오셨다

 

 

 

 

 

 

 

전쟁당시에 하루에 두번씩 들려서 쉬고가던 산속에 가게는 46년전 집그대로 있고 넓은추차장도 그대로다 그러나 당시에 집주인 아주머니는 없고

빈집에 아주머니에 영정사진만 모셔저있고 주인아들들은 도시에서 살고있다고 주의에 몬타나 주민들이 말해준다

 

 

46년전 주택은 그대론데 보고싶은 아주머니는 없고 주택과 넓은 땅도 방치된채 버려저있다

 

 

 

 

 

소대원을 실고 가던중 베트공의 포공격을 받고 낭떨어지로 차량이 굴러 떨어 졌으나 워낙 숲이 많이 우거저서 단한명의 부상자도없이 살아 난것이 가장 기역에

남는다 그러니 워낙 오래된 세월이고 숲이우거저있어 그지역은 어디인지 기억하지 못 하겠다

www.vietnamgo.o.kr  이남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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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협정 발효 1시간전 29연대 1대대장 유재문중령이 적의기습으로 전사한다리

 

 

9사단 29연대 1대대장 류재문 중령은 1973년 1월 28일 아침 파월 한국군의 마지막 전투에서 전사했다

. 그 전날 조인된 베트남평화협정이 발효되기 직전이었다.

그에 앞서 68년부터 시작된 평화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주월사령부는 이미 하달된 철군계획을 1월 27일 12시부로 시행하게 했다.

대부분의 철군 준비는 차질 없이 수행됐다. 그러나 28연대의 뚜이호아 지역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 연대가 공항으로 이동하기 위해 필요한 1번 도로상의 호아선교가 27일 23시쯤 베트콩에 의해 폭파되고 교량을 경계하던 남베트남군 소대진지가 피탈된 것이다.

베트콩의 공격은 “휴전 발효 당시의 지배지역을 휴전 후에도 인정한다”는

협정조항에 따라 지배지역에 해방전선(NLF)의 깃발을 게양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역 책임을 담당하고 있던 류중령은 날이 밝자 3중대에서 차출한 1개 분대(11명)를 자신이 직접 인솔, 현장으로 향했다

. 평화협정 발효가 불과 1시간밖에 남지 않은 오전 7시쯤, 현장에 도착한 류중령은 교량에 꽂혀 있는 해방전선의 기를 발견했다.

“깃발을 뽑아오라”는 대대장의 지시에 따라 교량에 접근한 심재철 중사가 그 중 1개를 뽑아 왔다.

그때 교량 부근에는 베트콩이 매복해 있었다. 베트콩의 매복을 알지 못했던 대대장은 교량 주변 수색을 명령했다.

수색대가 교량을 향해 나가던 7시 40분쯤, 은거하고 있던 베트콩들은 수색대를 향해 기습사격을 퍼부었다.

무방비상태에 있던 지휘부는 대대장을 포함 6명이 전사했다.

수색대의 요청에 따라 포병이 집중포격을 가했으나 동굴 속에서 응사하고 있는 베트콩을 제압하지 못했다. 전사자의 유해 2구도 회수하지 못했다.

그러나 8시부로 평화협정이 발효됨에 따라 “포격을 멈추고 더 이상의 전투도 금지하라”는 상급부대 명령이 접수됐다. 결국 연대장이 나서 장갑차에 설치된 확성기를 이용 베트콩에게 협상안을 제시했다. “아군의 유해가 회수되면 전투를 종료하고 즉각 본국으로 철군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방송과 협상은 2일 동안 계속됐다. 그 결과 29일 오후 백색기를 든 베트콩이 도로 위에 아군의 유해를 가져다 놓고 돌아간 다음 유해를 회수함으로써 상황은 끝났다.

유해가 회수된 후인 2월 1일 남베트남군이 29연대의 지원 하에 수색작전을 계속해 베트콩에 점령된 소대진지를 탈환하고 교량을 복구했다. 그 후 한국군의 철군은 차질 없이 진행됐다. 본대가 3월 14까지, 후발대가 23일 철수를 완료함으로써 8년 6개월간에 걸친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이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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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참전자회 동구회장 이광남전우 닌호아 12중대 근처마을에서 

           봉사할동모습  2013년 1월 
   
 
이광남 전우는 전날 닌호아 백마  12중대 근처 마을 참전당시 추억을 잊지못하고 전날 마을이장한테
부탁해서 동네에 가난하고 못사는집을 추천해달라고 해서 35집을 추천받고
쌀25키로 35포대을주문하고 동래마을회관으로 아침 9시까지 오시라고 연락한 다음  동하이 해수욕장근처 호텔로 갔다

 



전날 닌호아시내에서 주문한 쌀이 마을회관에 배달되어 마을이장이 한명한명 호명으로 쌀을나누어주고있다 

 




 



 나이많은 할머니들은 백마 최고 올해 설날은 푸짐하게보내겠다면서 눈물을글썽이며 이광남전우 
손을 잡고 고마움을 표시 하신다 



무거운 쌀한포대을 받아들고 기뻐하시는 아저씨 


베트남민병대로 참전하신 상이군인 아저씨도 고맙다고 하면서 옆에서 대신쌀을받아준다 이광남전우
 이분한테 무척 안타갑게 생각하며 다음에 다시찿아와서
도와 주시겠다고 한다 



나이많은 할머님을위해 대신 나온 젊은부인







쌀을 다 나누어 주고 가난한 마을 사람들과 기념촬영도 했습니다 


마을 이장한테는 고맙다고 마을 공동자금으로 쓰시라면서 4백만동을 기부하셨습니다
이광남 전우는 현재 울산에서 사업을 하며 살고있으며 순수한 개인돈으로 봉사활동을
하셨습니다 이광남 전우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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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부대 29연대 4중대 방석  

벡마부대 29연대 4중대 방석은 1번국도변 닌호아와 다일란 해변 못미처 오른쪽 방향으로

조그만한 동산에 있엇다 백마부대로 참전하신 변승훈부부가 잠시이곳 4중대에서 포연습을 하던

때을 회상하면 4중대가 주둔했던 지역을 돌아보고있다

백마29연대 4중대가 주둔했던 지역 지금은 일부는 민간인이 사용하고있다 

4중대가 주둔했던 지역에 한가롭게 소가 풀을먹고있다 

베트남전쟁대  해병대로 참전했다는 60대 월남현지인이 친절하게

4중대 방석을 다니면서 안내해주고 있다 

4중대에서 바라본 들판지역 

변승훈전우가 이곳에서 잠시포연습을 했는데 4중대는 맞는데

포대가 있던 자리을 기억을 더듬고있다 

4중대 정상에서 바라본 1번국도변 방향으로 바라본 산 

이곳에서 살고있는 베트남 분에게 포대가 있던지역을 알려달라고 한다 

그러나 자신도 전쟁이 끝나고 이곳으로 와서 살아서 알수가없다고한다

변승훈씨부인도 허리까지 차는 풀숲을 해치고 정상까지 올라와서

남편이 참전했던 지역을 돌아보고있다 

4중대정상에서 바라본 주의에 모습 

4중대에서 바라본들판지역 

초등학교 교사이기도한 부인께서 휴가을내고 변승훈 전우가 참전햇던지역을

보고위해 남편을따라 4중대자리 도착해서 다정하게 사진한장

물이고인곳은 헬리콥타가 착륙하던지역이라고한다 

4중대 정상모습 

당시에 철도받침목으로 지은 벙카 잔해가 풀속에 남아있다 

변승훈 전우가 방카가있던지역 잔해물을 가리키고있다 

올해 만60세되신 베트남현지인께서 하던일을 멈추고 우리일행을 안내해주고

있다 어느지역을 가나 베트남인들은 친절하고 순박하다는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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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백마29연대3대대 12중대 울산동구지회장 이광남전우의추억

이광남 전우는 백마29연대 3대대12중대로 참전하여 수많은전투에 참전하여 보통 1개월에 20일은 이름도몰르는 산속에서 지내면서 전투에참전하였다

귀국3개월을 앞두고 12중대에 물차 운전수가 귀국하는바람에 마침 당시 서울에서 택시운전경험과 운전면허증덕분에 6중대 물차운전을 하게되었다

백마 12중대 물차운전을 하면서 12중대앞 마을 추억을 잊지 못하고 12중대근처마을을 2번째로 찿아왔다

12중대가 주둔했던 닌호아 지역 12중대근처마을에서 이곳집주인이 어린시절 이광남 전우가 가자간 그당시사진을 보고 담배을얻어피던 시절을 기억한다

백마12중대 지역을찿아나선다

어린시절 이광남 전우님에게 담배을얻어피우던 어린이는 지금은 손자을보고 니호아지역 마을에서 살고있다 사진오른쪽

이곳마을에서 물차운전을 하면서 물소때가우글거리는 이곳에서 사진을찍었다 이곳은 지금도있는지궁굼하다

40년전 이곳에서사진을 찍었다 지금은 논으로 변하고 물소때는없고 일반소들만 있다

40년전 집을배경으로 다시한번 그자리에서 추억을남긴다

40년전 물소때는없고 베트남 흰소가 옛날집을지키고있다

40년전 이마을 어린이는 지금도있을까? 부대에서 전우들이 먹지않은 c레이손을 모아서 동래어린들에게 나누어주면 무척좋아했다

40년전 어린이 사진과 마을어른 생일잔치집에서 음식을얻어먹던 사진을 들고 수소문끝에 드디어찿았다

당시에어린꼬마는 중년으로변하고 무척반갑게 맞이해준다 당시어른은 자신에 아버님이라고 지금도 살아계신다고한다

잠시후 어른한분이 방에서나오면서 이광남전우을 맞이해주신다 올해 만99세로 부부가같이 장수하신다고한다

부인할머니는 올해94세 우리나이로 96세이시다 당시사진을 보고 기억하신다

아들이 방으로 들어가서 아버님 신분증을 가저나오면서 보여준다 1914년생 우리나이로 101살이다

그런데 이할아버지가 담배을꺼내서 맛있게 피우신다 그광경을보던 이광남 전우께서 한마디하신다 저것봐라 담배와 수명은 관계가없는것이 증명되고있다

담배애호가신 이광남 전우 말이 웃음이절로나온다

이광남 전우 무척흥분되어 어쩔줄몰른다 같이온 동래사람한테 이동래에서 돈없이 가난하게 사는집을 물어본다 약30-40집 정도 된다고

하니 내일아침 동래책임자와 같이 마을회관으로 다 모이라고하면서 내일아침에 쌀25키로씩 선물하신다고한면서

이광남 전우는 닌호아 시내 쌀도매상에서 베트남인들이 좋아하는 쌀로 875키로 35포대을 주문하고 동하이휴양소에자리잡은 호텔로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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벡마부대 1번국도변 29연대 4중대 터 40년이 지난 지금도 작은 산은 잡초만 우거진 채 그대로 남아 있다

29연대 4중대에서 본 1번국도변과 건너 편 산

 

4중대 방석 잡초만 우거진 채 그대로 방치되어있다

 

 

4중대에서 바라본 건너편산

 

 

혹시 남아 있는 방커가 있을까 찿아 보았으나 열대 지방 잡초가 키 높이까지 자라서

분간을 할 수가 없다

 

중대기지가 있던 아래쪽 평지는 무척 넓다

 

중대기지에서 바라본 건너편 산

 

4중대기지 일부

 

 

 

기지아래 넓은 평지에서 정원용 대형 나무들이 많이 심어 저 있다

베트남 해병대 하사관으로 전역한 베트남인이 자신의 형님 땅 대형 정원수들 관리해주며 살고 있다

 

 

중대 기지 안 평원에서 놀고 있는 베트남 숫 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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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40년만에 찿아가본 백마29연대1대대 혼바산 고개길  

 

2010년 1월18일부터23일까지 백마부대 1대대 1중대로 참전 하신 변승훈 전우가 40년만에 베트남에 도착했다. 부부가 같이 전적지 여행과 베트남 여행을 하고 귀국했다

 

 

캄란.비행장 40년전에는 이 곳 캄란 기지에서 배에서 내려 추럭으로 이동했으나

지금의 캄란 기지는  거의 페허가 된 상태고 미군들이 사용하던 비행장만 수리하여

사용하고 공항도 새로 건축되어 나짱 휴양지의 국제공항으로 이용된다고 한다

 

혼바산 아래 1번국도변 GA HAO SON 역 전쟁 당시에는 총알자국으로

페허가 되었으나 지금도 옛날 건물 그대로 수리해서 역으로 사용 되고 잇다

 

 

혼바산 가기 전 이곳에서 잠시 포연습을 하고 1중대로 배치되어서

4중대자리에 찿아 와서 부인과같이 야자수로 목을 축이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GA HAO SON 역은 아직도 비 포장 그대로 역전만 수리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혼바산 정상고개길 봉로만으로 내려 가는 이정표 앞에서 태풍의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려서 우산을 바치고 서있는 변승훈 전우

 

 

건너편 이 변승훈 전우가 참전했던 지역이나 베트남군인들이 주둔 중이라

멀리서 부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1대대 들어 가는 정문 이곳1대대와 1중대는 혼바산 고개길 정상이라

맑은 날이면 푸른 바다와 혼바산 바위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비가 많이 오는 관계로 그 시절 아름 답던 앞 바다도 혼바산도 보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혼바산 아래로 지나가는 철길 이 곳에서 바로 터널로 연결되어 투이호아

혼바산 아래로 연결된다 

 

1대대 정문 앞에 있던 프랑스군인들이 건설해놓은 빵카 여려 개의 빵카가

있엇으나 숲속에 가려서 길옆에 한 개만 튼튼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유일하게 40년전 부대 정문 앞 빵카가 그대로 위용을 자랑하고 있어서

부대에 못 들어가 본 것을 위안으로 삼아본다

 

다일란 해변은 옛날이나 지금도 한가하고 조용하다 

수많은 어선들이 해변에 정박해 놓은 것만 40년세월이 흘렀음을

실감케 한다

 

 

굿은 날씨로 해변에 파도가 유난이도 세게 몰아 치고 있다 다일란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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