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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장의 베트남전쟁과 남겨진 이야기들...

채명신 사령관님 묘소 표지석 제막식 본문

주월사/채명신사령관

채명신 사령관님 묘소 표지석 제막식

Sergeant Lee 2014. 2. 15. 09:17

시간이 허락되시는 분들께서는

 

많으신 전우분들이 참석을 하기를 학수고대 합니다


02월19일 오후 2시 표지석제막식에

 

저는 오랜만에 사령관님의 행사에 시간이 허락되어 참석하고자 합니다

 
 
 



 

 

장군의 눈물


 

푸른 말의 해 갑오년이 밝았다.

제야의 종소리를 들은 지가 지난 밤 같은데 2014년도 벌써 몇 날이 지나가고 있다

정말 세월은 유수와 같은 것인가 보다.

 

나는 지난 20131125일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영면하신 전 주월한국군사령관 채명신장군을 추념코자 한다. .

 

장군은 풍찬노숙 (風餐露宿)하며 6.25한국전과 베트남전에 참전하여 혁혁한 무공을 세운 한국군 전사의 표상인 동시에 그 누구보다도 드라마틱한 장군의 전공을 넘을 수 없다.

 

장군은 마치 진수의 삼국지에 등장하는 용맹스럽고 지혜로우며 의리를 지키는 관우와 비교하여도 손색이 없는 지장이자 덕장인 것이다.

 

장군은 또한 한국전쟁 당시 수 없이 많은 사선을 넘나들며 혁혁한 전공을 세운 진정한 군인인 동시에 1965년부터 1969년까지 4년여 베트남전을 지휘한 불세출의 전쟁영웅인 것이다.

 

더구나 살아서는 받기가 어렵다는 영광스러운 대한민국 태극무공훈장을 가슴에 달지 않았나 생각한다.

 

살아서는 조국을, 죽어서는 전우와 함께 한 그는 넓은 장군묘역을 마다하고 죽어서도 부하들과 함께 하겠다며 건군사상 처음으로 병사들과 똑 같은 1평짜리 사병 묘역에 묻힌 장군의 행적을 보면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귀감이 될 뿐 아니라 전 국민의 심금을 울린 신선한 충격 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기에 고인의 영결식장에는 백발이 성성한 70이 넘는 초대받지 않은 예비역 장병들이 많았다고 한다.

 

장군은 60년대 그 엄혹한 시절, 잠시 귀국하였을 때에도 어느 곳 보다도 베트남전에서 전사한 부하들이 묻힌 동작동 국립묘지로 달려가 장군으로서의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저것이 진짜 사나이의 눈물 아니 장군의 눈물이구나 하는 진한 감동을 받았다.

 

또한 장군의 군 생활 비하인드 스토리로는 한국전쟁 당시 유격부대인 백골병단으로 활동하던 중, 강원도 인제에서 생포한 김일성의 오른팔이었던 길원팔 노동당 비서를 생포한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특히 적장과의 마지막 약속으로 데려다 키운 아이가 국내 유명대학교를 졸업하고 대기업 중역까지 지냈다는 것도 그가 돌아가시고서야 세상에 알려져 다시 한 번 그의 인간됨됨을 엿보게 되어 새삼 의리의 사나이로 회자되고 있다.

당시 주위에선 진급이나 여러 어려운 일들을 걱정하였으나 장군은 괘념치 않고 적장과의 약속도 끝까지 지킨 모습에서 이것이 참군인 , 진짜사나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베트남전 당시 장교로 참가한 나의 진척되는 분의 말씀 중, 장군께서는 베트남에 처음 진출한 우리나라 회사들의 어려운 형편을 보고 월남에 와 있는 한국인 회사를 군에서 도울 수 있으면 무엇이던 도와주라고 지시하여 당시 한국인 회사들이 필요로 하는 장비와 물품도 상당히 한국군을 통하여 지원하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당시의 한국군 보급물자는 거의 미군을 통하여 지원을 받았으니까 장군은 어떻게 하더라도 달러 한 푼이라도 고국으로 보내자는 신념이었던 것이리라.

 

그러면서 전쟁터에서는 “10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1명의 양민을 해치지 말라는 엄명에 의하여 어렵고 힘든 정치색 짙은 전쟁을 지휘하였다.

 

나는, 바다에는 항공모함, 하늘과 땅에는 최신예 장비로 무장한 미군과 한국군을 주축으로한 베트남전선에서, 폐타이어를 오려 만든 샌들이라는 신발과 AK-47소총 한 자루로 무장한 월맹군에게 패배하는 것을 보면서 전쟁은 우수한 장비보다 강인한 정신력이 승패를 가름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러기에 모택동의 홍군은 11개성을 통과하고 18개 산맥을 넘고 17개의 강을 건너면서 15000Km의 그 유명한 대장정(大長征)을 완수한 최정예부대로서, 부패한 국민당정부군을 대만으로 내 몰게 된 것도 우리에게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군인은 무엇보다 강인한 정신력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채명신 장군의 생전 마지막 말씀 중 후배 군인들도 나라를 사랑한다는 얘기를 입으로 백번 해봐야 소용없다. 애국을 행동으로 실천하라는 말씀은 이제 우리에게는 더 없는 유언으로 영원히 남고 말았다.

 

끝으로 나는 남송(南宋)시절 무신 악비(岳飛)의 어머니가 아들의 등에 문신(文身)으로 새겨주었다는 진충보국(盡忠報國)뜻을 음미하면서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뜨거운 눈물 흘리던 육군중장 채명신장군의 모습을 다시 한 번 회상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어 본다. 충성 !

 

 

대한민국 월남전참전자회 강릉시지회

지회장 최규식


****윗글은 월남전 참전자회에 올린 글을 퍼온 글입니다  http://www.vva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