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후 최초·최대 파병…'살아있는 과거사' 평가 한·베트남, 92년 수교 후 상전벽해 수준 관계발전
한국군의 베트남전 파병이 이뤄진 지 11일로 50주년이 된다.
반세기가 흐른 지금, 전장에서 총부리를 겨눴던 한국과 베트남은 정치적으로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경제적으로는 주요 교역 상대국으로 상전벽해 수준의 관계 발전을 이루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베트남전은 우리에게 풀어야 할 과제가 남아있는 '살아있는 과거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 건국 후 최초·최대 파병…경제발전엔 기여 평가
1964년 9월 11일 제1이동외과병원 및 태권도 교관단 등 140명의 국군 장병을 태운 해군 상륙함(LST)이 베트남으로 출발했다. 부산항에서 떠난 이들은 같은 달 22일 사이공(현 호찌민) 동쪽 붕타우에 상륙했으며 이로써 베트남전 참전이 시작됐다.
한국의 파병은 1965년 8월 전투병으로 확대됐다. 미국의 요청으로 우리 정부는 그해 8월 포항에서 해병 제2여단(청룡부대)을 창설했으며 이들은 10월 베트남 캄란만에 상륙했다.
베트남에서 철수한 1973년 3월까지 8년여 동안 모두 6차례에 걸쳐 총 32만여명의 우리 장병이 파병됐다. 이 중 5천99명이 숨지고 1만1천232명이 부상했다.
당시 파병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 이뤄진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파병이었다.
많은 논란 속에서 이뤄진 베트남전 파병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엇갈리고 있지만 당시 참전과 젊은이들의 희생 대가로 우리가 확보한 '달러'는 한국 경제성장의 중요한 토대를 제공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지난 2005년 베트남전 관련 외교문서 공개시 정부 관계자는 참전의 경제 효과와 관련, 국방부 자료를 인용하며 군사원조 증가분(10억달러)과 미군의 한국군 파병 경비(10억달러), 베트남전 특수(10억달러) 등 모두 50억달러 규모의 외화수입 효과가 있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 한국군 주둔지엔 한국기업 '우뚝'…양국관계, 전방위 발전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이 주둔했던 베트남 중부의 꽝응아이성과 남부의 카잉호아성에는 두산비나와 현대비나조선소가 2007년과 1996년 각각 진출해 있다.
한국군의 주둔지가 한국 기업의 생산 기지로 탈바꿈한 이 모습은 경제를 필두로 다양한 분야에서 급격히 발전한 양국 관계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정치적으로 보면 1992년 수교한 양국 관계는 2001년에 '21세기 포괄적 동반자 관계'로, 2009년에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각각 격상됐다.
우리 정상의 방문이나 베트남 국가주석·당서기장 방한 등 양국간 최고위급 교류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9월 베트남을 방문, 집단지도체제인 베트남의 국가 서열 1∼4위 지도자들과 연쇄 회동했다.
경제적으로 보면 밀착된 양국 관계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베트남은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의 9번째 교역국이자 제4위의 투자대상국이다. 베트남에 대한 지난해 우리나라의 수출과 수입은 각각 210억8천만달러, 71억7천만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양국은 올해 안에 높은 수준의 포괄적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목표로 협상에 속도를 내는 상태다.
양국간 경제 교류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것은 값싸고 양질의 인력을 찾는 한국 기업과 첨단 기술업체를 유치하려는 베트남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평가가 많다.
양국간 사회·문화 교류도 활발하다. 베트남에는 30만명 정도가 회원으로 활동하는 K팝 팬클럽이 30여개나 있다. 베트남 내 해외 방송 프로그램의 70% 이상이 한국 드라마(2012년 기준)라는 분석도 있다.
또 2013년 4월 현재 하노이 인문사회대 등 베트남 주요 대학에서 2천600여명이 한국어학과에 재학하고 있다. 인적 교류로 보면 2012년 70만명의 우리 국민이 베트남을 찾았으며 3만명의 베트남인이 방한했다.
2013년 5월 현재 베트남에는 10만명의 우리 국민이, 한국에는 12만명의 베트남인이 각각 체류하고 있다. 베트남인 12만명 중 5만명은 한국인 남성과 결혼해 이주한 사례로 이런 이유로 베트남에서는 우리나라를 '사돈의 나라'라고 부르고 있다.
◇ 끝나지 않은 '아픔'…정부 행사도 없는 파병 50주년
한·베트남 관계의 괄목할 만한 발전에도 베트남전의 아픔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우선 베트남 정부가 과거사를 문제삼고 있지는 않지만 베트남 국민이 과거를 잊은 것은 아니다는 지적이 있다.
베트남이 수교 때부터 과거사를 거론하지 않는 것은 최우선 과제인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한국과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판단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베트남은 우리의 새마을운동과 산업인력 양성 과정을 도입하는 등 한국의 경제성장 과정을 하나의 모델로 삼고 있다.
베트남에서는 현재도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은 일종의 금기어란 말이 나오고 있다. 베트남 정부도 한국군의 참전과 관련한 발언은 극히 삼가고 있다.
한 베트남의 전직 고위 관리는 "과거보다 미래가 중요하다"면서 "비록 전장에서 만났지만 양국은 수교 이후 어느 나라보다 긴밀한 관계가 됐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 베트남 전문가는 5일 "양국이 미래로 가고 있지만 베트남의 대전제는 과거는 잊지 않는다는 것"이라면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 사안이 더 큰 상처가 되지 않도록 우리가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가 수교 후 베트남에 수차 사과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1998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베트남 방문시 호찌민 묘소를 참배하고 '양국간 불행했던 과거'를 언급했고, 2001년에는 베트남 국가주석의 방한시 이뤄진 정상회담에서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인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2004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베트남 방문시 호찌민 묘소를 참배하고 "마음의 빚이 있다"면서 유감의 뜻을 표시했고, 2009년에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도 베트남 방문시 호찌민 묘소에 헌화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해 호찌민 묘소를 찾았다.
정부는 또 동남아 국가 중 베트남에 가장 많은 공적개발원조(ODA)를 하는 등 진정성을 갖고 베트남에 다가서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올해 정부 주최의 베트남전 파병 50주년 기념 행사가 열리지 않는다는 점은 베트남전 관련 문제를 다루는 우리 정부의 민감성을 상징적으로 확인해 주는 것이다.
정부는 당초 베트남전 파병 50주년을 맞아 정부 주관 행사를 개최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베트남 정부와의 외교적 마찰 등을 우려해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베트남전에 한국군 30여만명이 참전하고 5천여명이 전사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참전 50주년 행사를 정부 주도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예년처럼 참전자 단체가 주최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고 밝혔다.
따라서 올해 베트남 참전 50주년 행사는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주최로 열리게 됐다. 정부는 예년 수준에서 행사비용의 일부를 지원할 방침이나 공식적인 정부 후원행사로 할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전 참전은 국내적으로도 '살아있는 과거'다.
당장 국가보훈처에 등록된 고엽제 후유증 상이등급자는 4만5천여명이나 된다. 여기에 후유의증과 2세 환자, 상이등급 기준에 들지 못한 사람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14만8천명 정도로 늘어난다.
월남전 참전유공자에 대한 보상 문제도 아직 마무리되지 않고 있는 등 베트남전과 관련된 아픔과 논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