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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호 사령부 지도                                                                      

큰 지도에서 월남전 한국군 주둔지 및 작전지역 보기





   맹호사령부 정문(2013년9월4일 촬영)


 

수도사단은 1965년 제1연대와 기갑연대, 1966년에 제26연대를 파병하여 고보이 평야와 바산ㆍ혼헤오산, 송꺼우ㆍ빈케 일대의 작전지역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개요

맹호부대(수도사단)는 비둘기부대의 파병에 뒤이은 전투부대 파병의 제1진으로, 초대사단장 채명신 소장(주월사령관 겸임)의 지휘하에 1965년 10월 22일 남베트남의 퀴논(Quy Nhon)에 상륙하여 퀴논 인근지역에 주둔하였다.

사단은 미 해병 제7연대로부터 1,200㎢의 전술책임지역을 인계 받았으며, 1965년 10월 29일 풍손(Phung Son)마을에서 서전(緖戰)을 장식한 이후 총 175,107회의 전투를 통해 남베트남 정부의 지역평정사업을 지원하였다.

특히 사단은 한국군 특유의 전술기지 운용과 1966년 8월의 두코(Duc Co)전투를 통해 중대단위 전술기지의 유효성을 입증함으로써, 한국군의 용맹성과 우수성을 세계만방에 과시하였다. 뿐만 아니라 주둔지인 퀴논 지역에 문화센터와 학교건설 등의 대민 지원사업을 통해 주민들로부터도 신뢰를 받는 한국군 상(像)을 정립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파병 경과

1965년 2월 비둘기부대의 베트남 파병이후, 월남공화국 정부로부터 2차례에 걸친 전투부대 파병요청이 있었다.

이에 정부는 동년 8월 15일 제52회 임시국회 제11차 본회의에 전투부대 파병안을 상정하여 동의를 얻었으며, 수도사단을 제1진으로 선정하여, 동년 10월 12일 여의도에서 결단 및 환송식을 거행함으로써, 건국이후 최초로 전투부대를 해외에 파병하게 되었다. 파병부대로 지정된 수도사단은 국본 일반명령(육) 제30호(1965. 8. 28)에 의거 부대편성에 착수하는 한편, 4주간의 교육훈련을 완료하였다. 이어서 동년 9월 15일에는 계획단이, 9월 25일에는 선발대가 출국하고, 10월 16일에는 1개 연대를 결한 본대가 부산항을 출발하여 10월 22일 베트남의 중남부 항구도시인 퀴논(Quy Nhon)에 상륙하였다. 한편 후속부대인 제26연대는 1966년 4월 6일 부산항을 출항하여, 동년 4월 16일 퀴논에 상륙함으로써, 수도사단은 완전 편성된 사단편제를 갖추게 되었으며, 본격적인 작전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주요 작전 현황

맹호사단 연도별 주요 작전





맹호부대
(수도사단)       

The Capital Division (Tiger)

수도사단은 비둘기부대 파월에 뒤이어 1965년 6월14일과 6월26일 2차에 걸친 월남공화국 수상의 전투부대지원 요청에 의거, 65년 8월13일 제 52회 임시국회 제 11차 본회의에서 국회의 동의를 얻어 역사상 최초로 전투 부대를 파병하게 되었다. 국내에서 4주간에 걸친 교육훈련을 마치고 1965년 10월12일 여의도 비행장에서 결단 및 환송식을 거행, 1965년10월 22일 맹호부대가 최초로 월남 퀴논에 상륙하였다.
맹호사단은 1965년 11월15일부로 미101공수여단 및 미해병 7연대로부터 1,200평방km의 전술책임지역을 인수받고 거점을 확보하였다. 1965년 10월29일 풍손부락에서 최초로 서전을 장식한 이래 중대수색작전, 대대규모 및 연대규모의 작전을 실시하던 중 1966. 3. 23 ~ 3. 26일간에 "고보이" 지역에서 1연대와 기갑 연대를 투입,
최초의 사단규모작전인 맹호5호작전을 실시하였다. 맹호 5호작전이 끝나자 10여년간 이 지역을 지배하여 오던 베트콩을 소탕하고 사단전술 책임지역을 1,400평방 킬로미터로 확장시켰다.
1966년 4월6일부터 16일간에 맹호26연대가 증파됨으로서 사단편제 부대를 유지하게 되었다. 1966년 7월7일부터 8월22일간에 푸레이크지구 미군 합동작전인 파울리비아 작전에 기갑연대 1개 대대가 참전하였다.
특히 9중대는 캄보디아 국경부근인 둑코지구에서 8월 9일 야간에 증강된 월맹군 1개대대의 공격을 받았으나 6시간의 격전끝에 적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고 격퇴시켜 대승하였으며 전술적인 면에서 중대 전술기지 개념의 우수성을 입증하였다. 세계전사에 새 모습을 드러낸 한국군 고유의 중대 전술기지 운용개념을 확고히 입증한 둑코전투 승리는 월남전의 기적으로써 한국군의 용맹성을 세계만방에 떨쳤다. 월남전에 주둔하고 있는 자유우방의 각 나라 군부대 전술전략 전문가와 지휘관들이 한국군 부대를 직접 방문하여 중대단위 전술기지 운용과 대민사업 활동사항 등을 답습해 가서 교훈을 삼아「무서운 한국군」이란 대명사가 되었고 밀림(정글)의 왕자로서 맹호의 위용을 전 세계에 과시했다. 월남 중동부 해안 Qui Nhon 에 위치한 수도사단은 한국군 전투부대의 핵심부대로서
이곳에 침투하고 있는 월맹군 제 18연대를 중심으로한 지방 VC부대들을 섬멸하는 임무를 수행했고, 그간 많은 작전 중 둑코(Duc Co) 전투, 맹호 6 호 작전,오작교 작전, 맹호 12 호 작전, 혜산진 9호 작전, 비호 23호 작전, 창군기념작전,월계작전, An Khe Pass 작전 등은 맹호 부대가 남긴 혁혁한 작전으로 상승 한국군의 기백을 널리 과시한 것이다.

 

 

파     월 :

1965. 10. 16 부산 3부두를 출발, 1965. 10. 22 월남 퀴논에 상륙

참전기간 :

1965. 10. 22 - 1973. 3. 7

참전군인 :

114,902명 (장교 7,652명, 사병 107,340명)

희     생 :

전사 2,111명 (장교 186명, 사병 1,925명)
부상 4,474명(장교 246명, 사병 4,228명)


전    투 : 175,107회 (대부대 전투 521회,소부대전투 14,586회)

대민사업 :

퀴논 지역에 문화센터, 학교건물, 공원 팔각정을 건축하는 등 많은 대민지원사업을 벌였으며, 1972. 4. 18부터 5. 15까지 약 한달동안 파월 한국군이 가장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던 안케패스전투를 비롯하여 수많은 전투에서 많은 전과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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