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불가능한 일도 우리는 가끔 찾아내기도 하고 ~ 깨닫기도 한다.
세찬 빗 줄기도 강물은 적시지 못한다.
30만 키로미터를 관통한 달빛도 ~ 한 길 연못을 뚫지 못한다.
강산을 변화시킨다는 세월 ~ 10년이 ~ 4번이나 흘러도
촌각으로 생사가 왔다 갔다 하던 ~ 전장터의 기억은 지우지 못한다.
서기 1968년 3월
귀국을 앞둔 호이안 탑 앞의 청룡 선배님
서기 2006년년 3월
정확히 38년만에 찾은 그 자리에서
그날의 그 기억은 몇일전의 일보다 생생하다 ~고
청룡께서는 말씀 하셨다.
전 후 베트남은 남 북 전쟁때의 갈등 치유와 ~ 오랜 전쟁의 후유증으로
지도를 바꿀 만한 대 토목 공사가 없어서 왕자 식당 선배님께서 말씀하신 지점은 쉽게 찾을수 있었읍니다.
다낭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A 지점 삼거리에서 좌회전을 하면 청룡께서 오가시던
호이안 가는 도로는 그 넓이 그대로 이제서야 확 포장을 하느라고 먼지를 풀풀 내고 있었읍니다.
"호이얀 시내로 들어가다 보면 하천과 ~ 다리 직전 삼거리 도로가 나옵니다"
왕자식당 선배님 말씀을 따라
호이안 시내로 들어가는 첫 하천의 다리에 서니
(목다리 쪽에서 반대로 바라본 삼 거리)
나도 모르게
그때 그 시절
지난 40년 추억을 반추하는 ~ 왕자식당 선배님이 되어
마술에 걸린 듯
삼거리 에서 오른쪽 도로를 따라 1대대 1중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 읍니다.
"삼거리에서 오른쪽 도로를 따라 하천 야자수와 마을을 끼고 가다보면 (700~800M) 얼마 안가서 왼편에 붉은 벽돌탑이 도로에서 20~30M 안쪽에서 보이며 ----" -- (왕자 식당 선배님)
"그곳에서 700~800M 더가면 도로 왼쪽에 1대대 1중대의 중대 전술기지(중대방석) 가 있던 곳이며 붉은 벽돌탑에서 안쪽으로 200M 들어가서 주.야간 연속 매복 진지가 있었습니다"
선배님 말씀을 따라 전진 하다가
도로 공사로 길이 막혀 작전 상 후퇴를 하며
아쉬움에 죄스러움에
그 시절
그 자리
몇 번이나 ~ 몇번이나 돌아보 왔다고 보고드립니다.
다시 ~ A 지점 삼거리로 나와
남쪽으로 좌회전을 해서
조금 내려가면 ~ 웬 만한 강이나오고
다리를 건너면서
우측 1시 방향으로 개활지였던 7중대 남풍 마을이 푸른 숲으로 다가 옵니다.
오륙도 ~ !!!
태종대 ~ !!!!
동백섬 ~ !!!!!
백 갈매기 향수 어린 부산 항 ~ 212기 박순갑 선배님께서
이제는 흐린 눈을 비비시면서도 뚫어지게 바라보실 남풍 ~ (남 푸억) 마을은 그렇게 불쑥 나타납니다.
오륙도 선배님께서 정성스레 그려주신 그 시절 약도를 펼쳐들고
7중대를 찾아 내라고
7중대를 찾아 달라고 목이 아리도록
설명을 하니
역사를 지켜온 1961년에 준공된 집 뒤로
7중대 방석과 우물터는
뜨거워야 만 살아 낸다는 ~ 열대 草 만이 무성 했습니다.
고지대 방석에 비해 자취를 찾을 길 없는
남풍 마을 길을
아쉬움이 지나쳐 섭섭한 마음 가시도록
헤매다가 몇번이고 ~ 또 물어 보다가
파랗게 선명한 2대대 방석 자리만
두 눈이 파랗게 멍이 들도록 쳐다 보고
가슴속에 담고 돌아왔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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