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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 에 관한 정보 총 2 개

  1. 2014.01.08 퀴논 맹호 흔적과 고보이 평야
  2. 2013.11.08 (제26부)장한우 해병 참전 수기


퀴논에 호텔에도착해서 늦은점심을먹고 퀴논시내 맹호부대흔적과 고보이평야 맹호부대

퀴논시티 관광으로 안내합니다

맹호부대가 지어서 기증한 맹호부대 광당 퀴논시내 광중중학교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꽝중 중학교에 들어서고있는 맹호부대 수색중대 부부동반 전적지 순례단

                                      맹호부대의흔적 광당 표지석

 퀴논시내 뒤편바다 군대군대 고기을 잡기위해 그물을 처놓고있습니다

퀴논시내 뒤편 바다을 가로질러 약20키로의 새로운도로와 바다가운대로 다리을 놓아있으나

차량이나 오토바이는 한대도보이지않습니다

맹호전우들이 다리중간까지가서 멀리보이는 퀴논시내와 건너편 섬을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바다 건너편섬에 대형 공장이 건설된다합니다

             참파왕국시절에 건립된 탑돌이 관광

                             이상수전우와 안내원 미스쫍의 기념촬영

                 탑돌이 정문앞에서 팔고있는 베트남음식 CHE

                      정문앞에서 우러을 요리해서 팔고있습니다

역전에 맹호용사들 그냥지나치지않고 먹어봐야 직성이풀린다고 한그릇씩 사서 먹고 나서

달콤하고 맛있다고 평가 입니다

고보이평야 들판중간에서 촬영하였으나 한쪽방향은 평야와 하늘이 맡다을 정도로 넓습니다

이상수전우소대원들이 수색정찰나왔다가 들판에서 야영하던중 큰비을 만나서 고보이평야 전채가

물바다로변해서 3일동안 고립된적이 있다고합니다

워낙 많이비가와서 APC2대가 구조에 나왔으나 APC 마저 길을 잘못들어서 떠내려가고 헬리콥터도 많은비로 구조을 못했다고 합니다

이번여행에 수색중대 대원들이 꼭가보고 싶어 했던곳입니다

                                 고보이 평야들판을 흘르는 고보이강

고보이 평야 들판에 있었던 맹호부대 자리 지금은 현대식 성당이 들어서고 뒤쪽은 들판입니다

 맹호전우 부인들뒤쪽에보이는건물은 맹호부대가 사용하던 건물그대로입니다

맹호부대가 사용하던 막사건물 지금도그대로 베트남민간인 주택으로 사용되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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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
後 靑龍의 월남 수기 - (26) - 티우궁의 겨울.
後 靑龍 

인간의 삶 ~ 인생이라는 것이 ----

인생이라는 ~ 인간의 삶에 ~ 
반전이 없다면 ~ 얼마나 지루할까 ?????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슬플때가 있음을 ~ 너무나 고맙게 생각한다
슬플때가 있어야 ~ 기쁠때 기쁨이 더 하기 때문이다.

실패를 해봐야 ~ 성공의 기쁨이 더크고

패전뒤의 승전이 ~ 더욱 값지다고 한다.



後 靑龍 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

우리의 청룡 선배님들이 ~ 조국의 명령이라는 이유로 ~ 
생사를 하늘에 맡긴채 ~ 물설고 ~ 말설은 

월남땅에서 남기신 발 자취가 없어져 간다하여

우리는 ~ 과연 ~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월남 전선 전 지역을 발로 밟으며 ~ 

더 ~ 없어지기 전에
더 ~ 잊혀 지기 전에

님들의 자취를 ~ 보고 ~ 적고 ~느끼고 왔다.



"The mountain is passed,now we shall get on better"

1786년 칠년 전쟁에서 유렵 전체를 상대로 싸우고
전쟁으로 황폐해진 국토를 부흥하는데 
전쟁 이상의 노력을 했던

프로시아의 프리드리히 대왕은

"The mountain is passed,now we shall get on better"

--"산은 넘었다 ~ 이제 부터 쉽게 갈수 있을 것이다" -- 라는 유언을 남겼다.



계절은 2월.

後 靑龍은 2500 키로를  달려
2월 겨울의 티우궁에서 

겨우 

"산을 넘었다" ~ 는 안도와 함께 ~ 피곤한 몸을 잠시 쉬었다.



1975년 4월 30일 오전 7시 55분.

11명의 미 해병 대원이 마지막 성조기를 내리고 ~ 
베트남을 떠난 후 3시간후

반쯤 열린 대통령궁 을 밀치고 들이 닥쳤던 
탱크 2대는 

겨울의 티우궁 우측 ~ 고목 나무밑에

그날을 뽐내며 서있다.



1975년 4월 20일.

이미 월맹군 15개 사단 ~ 15만명이
전의를 상실한 사이공의 포위망을 좁히며

비엔 호아 공군 기지와
캄보디아 국경에서 사이공을 진격할때

쿠엔카오 키 월남 수상은
티우 대통령을 제거할 쿠테타를 준비하는등

이미 전쟁의 승패는 갈려 있었다.



월맹군이 붕타우 항을 점령하고
사이공의 새벽이 화염속에 밝아오고 있을때

쿠엔 카오키 수상과,
미 국방 차관보 그리고 군사 고문 스티분은

미국 대사관에서
무너져 가는 사이공을 바라고 있었다.

그때 ~ 쿠엔 카오 수상은 --

---"미국이 월남의 국민성,지리,문화,전통과 역사를 이해 못하여 패 하였다" -- 고 탄식했다.

그러나 그때 ~ 티우 월남 대통령은 
이미 

가족들을 데리고 ~ 외국으로 도망간 후였다.

  

"호지명 루트 ~!!

하노이의 호치민 군대는 미군의 폭격을 피해
호지명 루트라는 험준한 산길을 통해

남부 전선까지 보급품을 전달했다.

한사람이 쌀 한가마를 지고 떠나면
남부에 도착 할때 쯤엔 

오면서 밥을 해 먹느라 ~ 두홉 정도의 쌀을 전달할수 있었다고 한다.

-- 반면 남쪽의 월남 지도자들은 
-- 세계 각지에서 보내 주는 원조품을 빼내 
-- 개인 비리를 채우는데 ~ 눈이 멀어 있었다 ~ 한다



티우 대통령이 

어두운 돈으로 사들여 타고 다녔다는

고급차가 ~ 지금도 ~ 티우궁에 전시되어있다.



오늘의 베트남 젊은이들은 
그시절의
월남 지도자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



1973년 1월 25일.

우여 곡절 끝에

-- 연합군이 월남에서 완전 철수 한다 -- 는 

파리협정이 조인되었다.



그해 3월 29일.

개입 12년 만에 미군이 완전 철수한 후에도
티우 대통령은 

이미 ~ 도망 갈 궁리에 바쁜 관리들을 이 자리에 모아놓고
새로이 374회의 공중 폭격을 포함해

조금이라도 영역 확대를 닥달 했다.



그러나,

티우궁 지하 벙커의 상황판은 

점점 붉은 선이 좁혀져 그려지고 ---

이미 월맹군에 투항을 결심한 
남부의 월남 공군 폭격기는

1번 국도로 쏟아져 나온 아군을 폭격했다 ~ 고 한다.



1975년 4월 21일.

트란 반 후옹에게 군력을 넘겨주고

축재한 달러를 ~ 커다란 가방 5개에 가득 담아

월남의 티우 대통령은 ~ 티우궁 옥상에서

대만으로 도망가고 말았다.

그때 그가 타고갔던 헬기가 ~ 티우궁 옥상에 엔진을 끊채 서있다.



그렇게 전쟁이 끝난지 ---

종전 30년 ---

이 나라 대통령 ~ 티우가 버리고 떠난 ~ 사이공은 ~ 

호치민으로 이름마져 바꾸고

빠르게 세계 속에 합류 하고자 ~ 노력하고 있다 ~ 고 ~ 한다.



영상 25도 ~ !!

2월 ~ !!

겨울의 티우궁을 떠나 ~ 

후 청룡은 전쟁 기념관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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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tnamwarstory.tistory.com Sergeant Lee Sergeant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