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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봉 장한우해병 베트남전적지 방문수기(제6부)  

後 靑龍의 월남 수기 --(6부) -- 백마 그리고 나짱.
天子峰 







    1905년 11월15일 오후.

    경복궁 함녕전에 마주앉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고종과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는 한 국가를 지키고 빼앗으려는 담판을 벌였다.

    침략자 일본이 ~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 하는 전제 군주 고종을 압박해
    을사 조약을 체결하고자 다그치는것 이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

    "일본이 갑신 정변 ~ 청일전쟁 ~ 러일전쟁을 치르며
    조선의 안위를 지켜주었으니 ~ 아무 소리말고 ~
    "절대 외교권"~ 을 내놓으라"
    ~ 것이었다.

    고종은 순간 괴로운 독백을 하게된다.

    "누가 너희들 보고 청일 전쟁,러일 전쟁 하라고 했는냐"



(캄란에서 나트랑으로 가는 쏘진(so 9) 지역에 한국인 2세가 잘 살고 있다)


    고종은 ~ 역사의 죄인이 되지않으려는 듯
    정부 대신과 협의해야 된다고 ~ 버티다가

    조약 체결의 책임을 ~ 일본 공사와,조선 외부대신에게 떠넘긴다.

    이틀후 ~ 1905년 11월 17일.
    중무장한 일본군이 포위한 경복궁에서 마지막 내각회의가 열렸다.

    총리 대신 한규설이 목숨을 걸고 반대하고
    이완용을 비롯한 나머지 대신들은 ~ 눈치만 살피다 동의한다.

    5년후 ~ 1910년 8월29일 ~ 을사조약이 체결된지 5년 후.
    결국 대한 제국은 세계사에서 사라지니 ~ 훗날 우리는 이날을 ~ 국치일이라 부른다.

    세도 정권으로 무력해진 왕권을 세우고자 부심하던
    비운의 마지막 황제 고종은 ~ 일본의 침략을 세계에 알리려다 폐위되어
    덕수궁에 갇혀 쓸쓸히 지내다 세상을 떠난다.

    1919년 3월1일 ~ 고종의 장례식날.
    수많은 사람들의 쌓인 울분이 터져 ~ 3.1 만세운동이 전국에 메아리 친다.



(한국 사람만 오면 들고나와 보여 주는 백마 출신 한국 인 아버지를 전혀 원망않는다)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 !!

    다시 ~ 또 다시 ~ !!

    일본은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긴다.
    95년이 지난 ~ 울분의 3월 ~ 지금 동해바다 외로운 섬 독도는 ~

    -- 결코 외롭지 않다고 한다 --

    머지않아 해병대 1개 대대 병력이 독도 가까이,
    울릉도에서 ~ 독도를 외롭지 않게 한단다.

    베트남 젊은 학생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처지는 국민소득과 ~ 불편한 생활 환경의 이야기는 거의 하지않는다.

    결론만을 자랑한다. ~ 결국은 이겨 ~ 하나되어 살고있다 ~ 고 ~ 강조 한다.





    무수한 외세의 침략을 버텨내고 ~ 하나된 ~ 베트남의 길고 긴 1번 국도에
    어디하나 불안도 없고 ~ 시샘도 없다 ~ 그져 묵묵히
    주어진 삶에 ~ 여건에 ~ 환경에 감사하는 여유가 ~ 사뭇 신기하기 까지하다.





    캄란의 최초 상륙 지점 동바틴 해변을 군사보호 구역이라
    멀리서 바라보며 월남전  ~ 전,후 ~ 휴양과 사랑의 도시 나짱에 도착하니





    한국 식당이 ~ 배가 고프기도 하려니와 너무 반갑다.
    수교  후 ~ 태권도 사범으로 이민 온 ~ 한국인이 식당으로 성공했다.

    근처에 현대 조선소 베트남 공장과 ~
    관광 휴양도시 ~ 나짱(나트랑)에 온 ~  일본인이 김치를 먹으로 많이 온다.





    70년대 청룡 앨범 속의 나트랑.
    전시였지만 ~
    주월 한국군 야전 사령부와 십자성 사령부가 근처에 위치해
    호황을 누렸던 모습이 빛 바랜 사진으로도 말해 준다.





    개방의 물결은 ~
    나짱을 베트남의 휴양 도시로 변모시켰다.





    주월 한국군에 군수 물자를 보급하던
    십자성 부대 정문도 ~ 잡초 속에 묻혀져 가고 ---





    맹호와 백마의 신병 보충대 였던 산 정상엔
    붉은 베트남 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읍니다.





    호치민(사이공)에서 북쪽으로 약 450 km.
    달리는 오토바이 처럼 시원한 나짱의 해변.





    6km의 고운 모래사장에 야자수와
    노천 카페의 수많은 간판들이 여기가 천국임을 노래한다.





    2004년 서울의 성북구와 자매 결연을 맺은 나트랑은
    풍광 수려한 해변에다 ~
    나트랑을 흐르는 카이 강 하구에 있는 항구에
    파란색과 빨간색 칠을 한 어선이 수백 척이나 모여 장관을 이루는 해산물의 도시다.





    대하와 바다제비, 비둘기를 재료로 하여 만든
    명물 "이엔보우카우" ~ 요리가 지역의 자랑이다.





    그러나 ~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면
    아직도 여려운 ~ 전후의 해변이 아쉬움에 스쳐간다.





    백마 철수후 ~
    월맹군의 점령시에 총탄의 구멍이 숭숭 뚫린채
    세월을 지키고 있는 백마 사령부를 지나

    아 ~ 투이호아 ~ !!

    슬픔의 땅 ~ 투이호아 로 넘어가는

    後 靑龍의 ~ 가슴은 무겁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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