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이병장의 베트남전쟁과 남겨진 이야기들...

백마 28연대 2대대 966포대가는길 본문

백마/966포병대대

백마 28연대 2대대 966포대가는길

Sergeant Lee 2014. 4. 4. 07:37


투이호아 28연대 전적지를 가는길 이지역은 일행중 이경우 씨가 포병으로 966포병 알파 포대에 근무한지역이다

백마사단 사령부에서 투이호아를 갈려면 유명한 접전지역인 혼바산을 넘는다

혼바산(Nui Hon Ba)은 월남의 중심핵인 안남산맥의 남쪽중추로 뻗어 내려온 다비아(Da Via)산과 연결된

천험의 산악지대이다.

앞뒤 급경사 지역에는 온통 화강암으로 되어있는 큰바위가 많고 천연동굴이 끝없이 연결되어 있는 데다가

울창한 관목과 가시덤풀로 뒤덮혀 있는 밀림이 서로 엉켜서 한발자욱 접근조차도 어려운 곳이다.

사이공에서 하노이간 남북으로 이어진 월남에서 제일 중요한 1번도로 및 철도는 여러 험산을 끼고 돌다가

칸호아성 최 북단인 닌호아를 거치면서 백마28연대와 십자성 12군수지원대대가 있는 푸옌성으로 들어서는

이곳 혼바산에서는 그 험준한 산허리를 행중구비구비끼고 직접 넘어야만 했다.

그 아래에는 투이호아 비행장(Air Base) 의 미군들에게 군수물자를 보급하는 붕노(Vung Ro)만 항구 선착장

이 있어서 아군들에게도 너무도 중요한 지역이다.

월맹군 전승탐이 세워젓다 날씨가흐려 청룡바위는 보이지않는다

평화협정 발효 1시간전 29연대 1대대장 유재문중령이 적의기습으로 전사한다리

9사단 29연대 1대대장 류재문 중령은 1973년 1월 28일 아침 파월 한국군의 마지막 전투에서 전사했다

. 그 전날 조인된 베트남평화협정이 발효되기 직전이었다.

그에 앞서 68년부터 시작된 평화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주월사령부는 이미 하달된 철군계획을 1월 27일 12시부로 시행하게 했다.

대부분의 철군 준비는 차질 없이 수행됐다. 그러나 28연대의 뚜이호아 지역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 연대가 공항으로 이동하기 위해 필요한 1번 도로상의 호아선교가 27일 23시쯤 베트콩에 의해 폭파되고 교량을 경계하던 남베트남군 소대진지가 피탈된 것이다.

베트콩의 공격은 “휴전 발효 당시의 지배지역을 휴전 후에도 인정한다”는

협정조항에 따라 지배지역에 해방전선(NLF)의 깃발을 게양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역 책임을 담당하고 있던 류중령은 날이 밝자 3중대에서 차출한 1개 분대(11명)를 자신이 직접 인솔, 현장으로 향했다

. 평화협정 발효가 불과 1시간밖에 남지 않은 오전 7시쯤, 현장에 도착한 류중령은 교량에 꽂혀 있는 해방전선의 기를 발견했다.

“깃발을 뽑아오라”는 대대장의 지시에 따라 교량에 접근한 심재철 중사가 그 중 1개를 뽑아 왔다.

그때 교량 부근에는 베트콩이 매복해 있었다. 베트콩의 매복을 알지 못했던 대대장은 교량 주변 수색을 명령했다.

수색대가 교량을 향해 나가던 7시 40분쯤, 은거하고 있던 베트콩들은 수색대를 향해 기습사격을 퍼부었다.

무방비상태에 있던 지휘부는 대대장을 포함 6명이 전사했다.

수색대의 요청에 따라 포병이 집중포격을 가했으나 동굴 속에서 응사하고 있는 베트콩을 제압하지 못했다. 전사자의 유해 2구도 회수하지 못했다.

그러나 8시부로 평화협정이 발효됨에 따라 “포격을 멈추고 더 이상의 전투도 금지하라”는 상급부대 명령이 접수됐다. 결국 연대장이 나서 장갑차에 설치된 확성기를 이용 베트콩에게 협상안을 제시했다. “아군의 유해가 회수되면 전투를 종료하고 즉각 본국으로 철군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방송과 협상은 2일 동안 계속됐다. 그 결과 29일 오후 백색기를 든 베트콩이 도로 위에 아군의 유해를 가져다 놓고 돌아간 다음 유해를 회수함으로써 상황은 끝났다.

유해가 회수된 후인 2월 1일 남베트남군이 29연대의 지원 하에 수색작전을 계속해 베트콩에 점령된 소대진지를 탈환하고 교량을 복구했다. 그 후 한국군의 철군은 차질 없이 진행됐다. 본대가 3월 14까지, 후발대가 23일 철수를 완료함으로써 8년 6개월간에 걸친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이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백마 28연대 1대대본부와 966포대가위치한 지역에 투이호아 짭짜이산 이보인다

일행중 이경우씨가 근무한 966포대 자리에 ....빈터가 그대로

투이호아 호탤숙소로 가는길 에 짭짜이산 측면 바위산이보인다

당시는 적군지역이라 접근이어려워 이쪽에선처음 본다는 이경우씨 말이다

투이호아 평야지대

혼바산에서 바라본 붕로만

투이호아 시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