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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이병장 (249)
이병장의 베트남전쟁과 남겨진 이야기들...
백규동 병장은 1971년12월 퀴논항으로 입항하여 맹호기갑연대 10중대로 참전했다 처음 몆개월동안은 19번도로 안케고지올라가는 16번다리에 1개소대가 파견되어 16번다리을 지키는임무을 맡았다 1972년 4월9일 안케고지지역과 안케올라가는길 산어디엔가 월맹군 정규군이 장악하여 미군보급헬기을 떨어드리는 사건이 발생하여 맹호기갑연대 10중대는 중대원150명전원이 안케올라가는 길8부능선 오른쪽 방향 산정상에 헬기로 투입되어 10중대본부가 주둔하였다 같은 시기에 6중대 9중대가 건너편 산정상에 주둔했다 4월11일 중대에서 백규동병장과4명이 특공대을 조직하여 19번도로 8부능선 계곡으로 월맹군 주둔지을 탐색하려고 특공대원4명이 16번도로 안케고지올라가는도로 계곡까지 장글을 해치고 내려왔다 우리 아군헬리콥타는 6중대..
베트남전적지 사진 모음(638전승비,봉로만,하오선역 호이안 11지원단 벙커, 꾸멍고개)
2013년가을 운영이래 "이병장의 베트남전쟁과......"누적 방문객 78,051명 돌파했습니다. 매달2,000명이상 방문추세대로라면 이달말에 누적방문객 80,000명이 넘을듯 합니다. 방문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이병장 올림
이병장 방문자 월단위 3,000명 방문 2018년 3월7월8월에 이어 2019년4월26일 현재 3,056명 이상 방문 기록
맹호1연대 재구대대와 11중대 맹호1연대 재구대대 맹호1연대 수색중대 전적지방문 일행 현재 맹호 재구대대 자리 재구대대 연병장 동래 어린이 놀이터로 사용되고있다 이남섭전우 맹호 11중대가 있던 자리 11중대로 들어가는입구 옛날 콩크리트 구조물이 그대로남아 있다 옛날 빵카가 있던 곳으로 맹호 11중대는 중대단위로서는 전사자가 가장 많이 났던 지역이라고 한다 이지역은 현재 밭으로 변해 있으나 콩크리트 구조물은 그대로 남아있다 추억에 잠겨보는 맹호 전우들 이상수전우 빵카를 뒷배경으로 안내를 담당했던 십자성부대 참전 이남원 출처: http://vietnamwarstory.tistory.com/957 [이병장의 베트남전쟁과 남겨진 이야기들...]
사진 위:십자성 106후송병원 입구 50년전 십자성 1단본부중대 식당에서 일하던 아가씨는 어느덧68세라고한다 50년이지났으나 18개월동안 김치배식을 해주던아가씨가 서로가 알아본다 십자성 1지원단 본부 미군헬리콥타 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옛날 위벙소가 그대로남아있다 십자성 1군수지원단으로 들어가는 3거리에서 200미터 떨어져있던 대나무 밭 지금도 대나무밭은그대로다 오후7시씀 당시에는 통행금지가 되었던곳 맹호길에서 삼륜차을 빌려타고 부대로 혼자복귀중에 부대정문은 6.7백미터 남았는데 이곳에다 내려놓고 차을돌려서 도망간다 잠시후 근처에 베트남지방군인들이 나을 향해 총을쏜것같다 죽을힘을 다해 3거리헌병대입구 까지 달려와서 쓰러졌다 나을공격했던 지역 대나무밭이 지금도 그대로다 그당시을 생각하며 흘르는 눈물을 참지..
백인규씨는 1970년에 맹호부대 공병대대로 참전하여 638고지에 승전탑을 세우기위 638고지에 불도저로 10일간 평지작업을 하고 승전탑을 세우기도햇다 수백구의 썩어가는시체을 도자로 밀어서 매장하고 적군인지아군인지몰르는 수백구의시체가 638고지 근처에 그대로방치된채 부페해가고있었다 귀국하여 평생을 638고지에 수백구의 시채썩은 냄새때문에 평생을 잊지못하고 살아오다 교사로 있는 딸의 도움으로 가족이같이 638고지을 찿아왔다 47년만에 찿아와본 638고지은 당시에는 없엇던 소나무가아름드리로 커있고 장글로변해서 길도없는 고지을 현지주민의 안내로 어렵게 올라왔다 (2017년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