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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장의 베트남전쟁과 남겨진 이야기들...

(제17부)장한우 해병 참전 수기 본문

참전수기/참전수기

(제17부)장한우 해병 참전 수기

Sergeant Lee 2013. 11. 3. 17:57

 

 

 

後 靑龍의 월남수기- (17부)- 호이안에 타는 가슴.
天子峰 

언제 다시 오랴만
온다 손 치더라도 ~ 여기 ~ 이자리가 그대로 있을까 싶어-- 

호이안 여단 본부 ~ 그 ~ 청룡들의 눅진 눅진한 추억의 땅을
뒤 돌아 보고 ~ 또 돌아 보며 ~ 그렇게 돌아섰다.


67년 츄라이 전선에서 호이안으로 오자 마자 
68년 베트콩의 드센 구정 공세가 호이안 전선을 붉게 물들였다 ~ 고 ~ 한다.

68년 구정 공세는 호이안 청룡의 가장 큰 시련이었다고 하신다.



월남 전선의 어느 작전이 시련이 아니랴 마는
여러 선배님들의 증언을 통해 ~ 

68년 구정 공세 --- .

그 중에도 여단 방석을 정면으로 노린 베트콩에 맞서
피아간에 엄청난 전투를 치룬 

40 고지 현장을 꼭 찾아 봐달라는 주문이 많으셨다.



40고지로 가는 길이 ~ 하필이면,

청룡 부대가 민간인 학살 마을로 ~ 응어리가 남아있는
하미 마을 가는 길을 통과해야 하는 길이어서

가이드도 머뭇 거리는 길을, 
거기 아직도 님들의 흩어진 잔해가 ~ 아직도 방치되어 있다 하여

묻고 ~ 또 물어 찾아 가니 ~ 



여단 방석을 빤히 내려다는 40고지는
공동 묘지터로 ~ 더욱 ~  기분이 묘하였다.



말 못하는 벙어리는
무슨 말을 듣고 ~ 무슨 말을 하려는지 --

피아간에 커다란 전투가 있었음을 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경계 철저" 

과연 이 묘비의 글씨가 ~ 30 몇년전에 ~ 무슨 의미로 써졌을까 ???

해병혼이나 되는 414기 구봉갑 해병은 한 참을 뚫어지게 쳐다 보았다.



찢어진 쟝글화 ~ !!

이 쟝글화의 주인에 발은 무사했을까 ????



공동 묘지 비석에 
한글로 덧글을 써놓으니

미쳐 수습치 못한 청룡의 시신을 우선 여기다 묻고
옆 묘지의 비석을 뽑아다가

언젠가 다시 모시러 오리라는 ~ 표식으로 

한글로 ~ "안전 제일" ~ 라 써 놓았을 것이라 ~ 결론을 내니 



아직도 얼마나 많은 유품과 유골이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에
참으로 

가슴 이 답답해 져 온다.

이제는 집어던질 시계도 없고 ---



인간은 이 세상에서 여러가지를 남기고 간다.

돈을 남기고 가는 사람 ~ 사업을 남기고 가는사람

다 ~ 부질없는 것이라 한다.

사랑을 남기고 가는 사람 ~ 인격을 남기고 가는 사람 ---

그리고 ~ 군번을 남기고 가는 사람 ~ 사람들 ---



"옛 시인 월명 께서는
죽은 누이
일찍 서방 정토에 보낸 뒤
그 머나먼 10 만억 국토 지나
이승과 저승 사이
서로 혼령의 소식 오고 갔느니
간절 하였느니

3월 배꽃이 밀물진 이승이었느니
달 오르면
남산 밑 호젓이
그이 노래
애 끓이며 하늘까지 닿았느니"




"그럴수 있다면 정녕 그럴수 있다면
갓난 아이로 돌아가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을 때가 왜 없으랴
삶은 저 혼자서
늘 다음의 파도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렇다고 가던 길을 돌아서지 말아야 겠지
그동안 떠돈 세월의 조각들
여기 저기
빨래 처럼 펄럭 이누나

가난할 때는 눈물 마져 모자랐다"




바람아 불어라
바람아 불어라

답답한 마음에 바람 불기만 애원했다.

 

바람아 불어라
바람아 불어라


( 그 당시 호이안 여단 본부 방석 ~ 다녀온 길로 미루어 ~ B지점이 40 고지 쯤으로 현재는 마을이 들어 찼다)

바람아 불어라
바람아 불어라

답답한 마음에 바람 불기만 기다리다 ~ 돌아서 왔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