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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월남전 참전 일지 (751)
이병장의 베트남전쟁과 남겨진 이야기들...
맹호부대 60포대로 참전한 김정수전우 40년만에 60포대를 찾아왔다. 60포대는 지금도 변함없이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다 포대 정문이 굳게 닫친 채 방치 되어 있는 모습 김정수씨가 자신이 근무 했던 포대 안을 들어다 보고 있다 당시에 막사 건물도 그대로고 동내 주민들이 맹호 아저씨들을 구경하려고 나와 있는 모습
빈딩성 빈케지역 맹호부대 기갑연대 현재 모습 빈딩성 1번국도와 19번국도가 갈라지는 삼거리 한국군 헌병초소가 있던 자리을 지나서 19번도로로 20분쯤 달리면 왼쪽으로 빈케 지역 맹호부대 기갑연대가 주둔한 지역이 나온다 기갑연대 정문 옆에는 작은 개천이 흐르고 길 건너 개천 옆에는 맹호부대 기갑연대로 참전한 신근주 하사 아들(신방규군)이 참전 당시 아버님이 지어준 개천가 주택에서 아버님을 그리며 부인과 같이 살고있다 40년세월 기갑 연대 주둔지는 아스팔트가 페인 채 그대로 남아 있다. 1972년도 기갑연대 신근주하사가 아들 신방규를 낳고 부대원들과 같이 기갑연대 정문건너편 개천가에 지어준 신방규집 지금도옛날모습 그대로 아버님을기다리며 살고있다 이곳은 기갑연대 2대대가 연대와 같이 주둔한 지역이다 기갑연대 ..
전적지여행 3일째 백마부대 30연대 3대대가 참전했던 판랑공항 지나치고 닌주 리죠트에서 휴식을취했다 최수진 전우가 1966년 30연대 파월되어 으나 66년도에는 판랑에 3대대가 주둔하지않았고 67년이후 판랑 비행장근처에 3대대가 주둔하여 판랑3대대을 가보지않았다 .백마최초 파월당시 30년대 3대대는 연대본부와 같이있었다 사이공 린주리죠트에 도착하여 아침 건너편 돌산위에 절을 찍어보았다 1966년도 해병대가 캄란에 최초 상륙하여 첫 전투로 유명한 카투산에도착했다 지금도돌산으로 유명한 카투산에서 우리해병대 1개소대가 많은손실을 입었다 캄란에 처음도착하여 첫전투을 돌산으로 천연동굴이 많은 산이라 작전에 실패한것같다 지금은 카투산 바로및에 베트남 판랑지역에서 태어산 베트남 전사군인들의 영웅묘지가 들어서있다 캄란..
청룡 5대대로 참전한 전우들 오행 산여행 1968년 청룡 5대대로 참전한 전우들이 5대대 본부 근처에 있는 오행산을 여행했다 오행산은 42년이나 지난 지금도 옛날 모습 그대 로다 오행산은 산 전체가 대리석 산이고 천연동굴이 많은 곳이다 역사 깊은 절도 이곳 작은 산에 2곳 이나 있다 청룡 5대대 참전 용사들 오행산 정상에서 바라 본 다낭 시내 일부 오행산 정상 대리석 바위로 울퉁 불퉁 해서 무척 위험한 지역이다 절에 있는탑 오행산을 오르려면 계단이 무척 가파르다. 베트남 더운 날씨에 많은 땀을 흘리고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산정상으로 바로 올라 갈 수 있는 야외승강기 공사를 하고 있다 승강기 공사가 완공되면 쉽게 오행산 정상으로 올라갈 것이다 정상에서 바라본 차이나비치 해변 산정상 에서 음료수를 마시고 ..
투이호아 백마 28연대 지역 혼바산 및 백마 2중대가 주둔했던 지역은 지금은 많은 집들이 들어서고 초등학교도 들어서있다 베트남참전 유공자 전우회 전남도지부 서찬규회장 및 회원일행이 이곳 초등학교을 방문하여 한국에서 마련해온 구충제약 및 학용품전달식이 있었다 전교생이 380명이라 시골학교 치고는 큰 학교다 먼나라 한국에서 오신 손님들을 보고 신기한 듯 전우들을 보고 있다 서찬규회장과 통역 김지영씨가 방문목적을 설명 하고 있다 통역 김지영은 한국에서 5년동안 미싱사로 근무하고 베트남으로 와서 살고 있는 베트남 여자다 많은 학생들과 선생님들 주민들이 한국에서 오신 손님들을 구경하고 있다 전남도지부 회원들은 학교에서 마련한 의자에 않아서 행사내용을 듣고 있다 이곳 초등학교는 선생들만 34명이라고한다 서찬규 회장..
투이호아 시내에서 북쪽으로 약5키로미터 1번국도에 맹호와 백마가 합동작전으로 1번국도를 개통 시킨 오작교작전 승전탑이 옛날 모습 그대로 서있다 당시에 한국군의 승전비 비문은 없어지고 베트남이 프랑스에서 해방된 기록이 대신 쓰여 있다 당시에 승전탑 동판은 철거된 채 베트남 어느성에 보관중 이라한다 아래 양쪽 국기와 승전비문 동판도 떨어지고 흔적만 선명히 남아있다 승전탑 위쪽으로 올라가면 저곳 보이는 언덕이 백마 28연대 2대대8중대가 주둔했던 지역이다 수많은 전우들을 이곳에 같이 왔지만 막상 이곳 승전탑 바로 근처에서 참전하신 전우님은 처음이다 67년도에 이곳8중대에서 참전하신 전남도회 전우님 저기 왼쪽으로 보이는 곳이 맹호 중대가 주둔 했다고 한다 1967년도에는 승전탑과 도로가 똑 같은 위치에 있었으나..
1968년 청룡 25중대가 주둔 했던 지역(호이안) 1968년 5월3일 청룡 25중대는 월맹 군 정규군으로 부터 중대본부 전채가 공격을 받는다5월3일전투에서 방기호 중대장은 포탄으로 팔과 다리에 부상을 입고 긴급 후송 되고 소대장 및 해병6명이 전사 했다. 당시에 전투에 참전 했던 해병 중대장과 병사들은 지금도 매월 만나서 전우애를 나눈다고 한다 당시에 2차선 따이한 로는 왕복6차선으로 오행산 입구까지 시원스럽게 뚤려 있다 당시25중대가 주둔했던 지역은 이곳에 대형 공단지역으로 변했다 공단으로 변한 25중대지역을 2일동안 찿앗으나 찿지 못하고3일째되는날 이 지역 부면장님의 안내로 공장지역으로 변한 25중대지역을찿을 수 있었다 부면장님(상이군인)께서 25중대지역을 안내하고 무었인가 열심히 글을쓰고있다 방기..
맹호26연대 2대대는 1번 국도 꾸멍 고개 가는 길목 야자수가 많은 마을 왼쪽 산밑에 있다 지금은 2대대 자리는 가정집과 회사 공장으로 사용되고 옛 날 사용 하던 아스발트 길 흔적만 남아있다 40년전 아스팔트 길과 공장으로 사용 되고 있는 26연대 2대대 주둔지 넓은 지역은 아직도 공터로 남아 있는 곳이 많이 있다 빈 공터로 남아 있는 2대대 주둔지 2대대 정문입구 건너 편에 한국인2세가 어머님이 살던 그 곳에서 살고 있다 2011년 강남지회 2세돕기 행사 때도 가족과 같이 퀴논 호텔에 참석했었다 한국에 아버지는 상사로 전역 후 의정부에서 살다가 2009년도에 사망하였다 내가 처음 만났을 당시에 일찍 아버지를 찿아 보았으면 만나 볼 수 있엇을 터인데 무척 아쉽다 이곳은 맹호 26연대가 주둔 했던 해변가 ..
1969년 일등병으로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신 최일락 전우 42년만에 죽을 고비를 몇 번을 넘기고 귀국하여 강원도 태백시 탄광도시 태벽 시청에서 근무하고 퇴직하여 부인과 같이 살아오다 아들1명과 과 딸2명이 아버님이 1969년도에 참전하신 베트남전쟁 터 참전지역을 여행 같다 오시라며 400만원을 모아주셨다고 한다 요즘 보기 드문 자식들을 둔 최일락 신정남 부부 ..무척 행복해 하시면서 베트남여행을 오셨다 호치민에 도착하여 14시 투이호아행 60인승 프로펠라 비행기을타고 투이호아 땅에 42년만에 도착했다 미군이 전투기공항으로 사용하던 투이호아 공항은 42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그대로다 투이호아 공항 할주로끝에 착륙하여 고물 버스한대가 미군이사용하던 낡은 청사앞까지 실어다 주고 떠나버린다 낡은 투이호아 공항..
맹호기갑연대 참전하신 전우 분들이 전적지 여행에 나셨다 40년만에 또는 45년만에 맹호부대 기갑연대 와1대대와 2대대 참전 지역을 찾아 왔다 맹호기갑연대가 참전한 지역은 전 지역이 붉은 벽돌공장과 기와공장으로 변하고 40여년전 아스발트길만 기갑 연대자리를 증명해준다. 기갑연대가 자리한 뒷산은 지금도 변함 없이 그곳에 있다. 이곳 산정상에 12년전 올라가 보았을 때는 세맨트로 만든 한국지도형상이 남아있었고 세멘트로 만든 방카 흔적도 남아있었다 .산을 다시올라가볼려고 했으나 워낙 많은 가시나무와 잡풀로 우거저서 올라갈 수가 없었다 맹호기갑연대지역은 질 좋은 황토 흙이 많이 나와 붉은 벽돌과 기와공장이 많이 들어서 있다. 사람에 수작업으로 일하는 벽돌공장과 기와공장에 많은 사람들이 필요해서 지금도 많은 베트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