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6월 1일.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식을 하루 앞둔 영국 왕실에 전보가 날아들었다.
영국 등반대 에베레스트 등정 성공 ~ !!!!
이 소식은 버킹검 궁전은 물론, 여왕의 황금 마차 행렬을 보러나온 시민들을 흥분과 열광속에 빠트렸다.
북극과 남극 정복 이후 ~ 에베레스트는 제 3의 극지이자 ~ 지구상 마지막 목표였다.
그것은 ~ 꿈 ~ 같은 일이었다 ~ !!
지구 최고봉에 오른 영국 원정대의 쾌거를 타전하는 세계 언론은 ~ 일제히 흥분속에 빠졌다.
일본군 2만여명의 자결 옥쇄와, 미 해병대 2만 4천8백명의 사상자를 기록한 제 2차세계대전 최대의 격전지...
해안에 쌓인 시체는 약 육 킬로미터가 넘었고, 2차 세계 대전 중 ~ 전사한 ~ 미국 해병대 전사자 가운데 3분의 1 이 죽음을 당한
최고의 전략 요지 ~ 유황도의 수리비치 산 꼭대기에 성조기 꽂고 만세 부른
미 해병대의 환희는 ~ 아직도 ~ 제 1강국 미국을 하나로 묶는 힘으로 존재 한다.
짜빈동 ~ !!!
그곳을 찾아가는 後 靑龍의 마음은
그렇게 ~ 그렇게 고조 되어 있었다.
(154기 이기원 선배님의 츄라이 시절)
늘 커다란 앙카를 세워 놓았던 청룡 사령부.
츄라이 여단 본부 터를 지나면서 ~ 마음이 부쩍 바빠졌다.
베트콩 패전사에 ~ 치욕으로 간주한다는 짜빈동 그 전정터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을까 ???
그날의 ~ 긴박한 순간들 그날의 ~ 대 감격의 승전에 함성 소리는
짜빈동 거기 ~ 아직 남아있을까 ???
수없이 ~ 공부를 하고 왔건만 ~ 짜빈동 대첩 ~ 35년이 지나니 ~ 묻고 또 물어본다 ~ 길을 묻는다.
짜빈동 가는 길을 묻는다 ~ !!
짜빈동 ~ 거기가 어딘가 ???
1 개 중대의 병력이 ~ 월맹 정규군 연대급 공격을 육탄으로 물리쳐 ~ 전원 1 계급 특진의 영광을 얻은
거기를 짜빈동 이라 한다.
1975년 ~ 월남 공산화 이후 남측 월남의 지명은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국방부 전사 편찬실의 도움으로 ~ 짜빈동의 바뀐 지명을 펴들고 ~ 묻고 또 묻는다.
짜빈동 가는 길을 묻는다 ~ !!
지성이면 감천인가 ???
드디어 짜빈동을 기억하는 촌노를 만나 짜빈동 들어가는 입구를 찾았다.
"추라이 남쪽 쾅나이성 손틴군 짜빈동 마을 짜빈동의 신화를 만든 11 중대의 동쪽 1km 지점에는 한국군이 전력을 다해 방어하던 베트남 제1번 국도가 지나가고 있었다" ~ 는 ~
전사의 기록을 맞추어보고
"중대의 북쪽 6km 지점에서 청룡부대 여단본부가 있었고 11중대 기지가 위치한 지역은 당시 해병 청룡부대 주둔 지역의 서남쪽 모퉁이였다" ~ 는
기록과도 맞는다.
여기를 잊지않으려 십여장을 찍고 찍는다. 월남의 지명은 바뀌어도 짜빈동의 전설은 바뀌지않아야 한다고 ~ 절규 하면서 ---
B - 지점의 1번 국도에서 1키로쯤 철길을 지나 들어 오면 A - 지점의 저 오래된 고목 나무를 기억해야 한다.
저 나무를 끼고 우회전하여 들어 가다가 ---
다시한번 노친을 만나
월남 전때 한국군에 월맹군이 대패한 Tra Binh Dong 에 대해 세세히 여쭈니
천만 다행으로 그 당시에도 이곳에서 살았다며 자신있게 가르킨다.
월남인 운전 기사와 무슨 말을 주고 받던 노파가 갑자기 발 걸음이 빨라 지더니
돌아 서서 ~ 목을 따는 시늉을 한다.
-- 한국 해병대 후배들이 짜빈동 전적지를 찾아 왔다고 하니 -- 아직도 해병대가 무섭다고 한단다.
다행히 바삐 가던 길을 멈추고 할머니가 ~ 다시한번 ~ 짜빈동을 가르킨다.
아 ~ 짜빈동 !!
그 ~ 뜨거웠던 육박전의
한국인의 위대한 전서로 길이 빛날 짜빈동이
저기란 말인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