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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호이안 (33)
이병장의 베트남전쟁과 남겨진 이야기들...
後 靑龍의 월남수기- (21부)- 용서하라,그러나 잊지는 마라後 靑龍 그러니까 ~ 몇 년전에 --- 태국으로 가는 방콕행 비행기를 탓다. 떠나는 서울이 겨울인데 ~ 비행기가 점점 실내 온도를 높인다. 현지 기온에 적응을 시키기 위해서란다. 이코노미 좌석 증후군이 첫 번째로 온다는 5시간이 지나간다. 그러고도 한시간 ~ 후끈한 밤 공항을 나와서 120키로를 달려간다. 무슨 고생인가 ???? 거기 ~ 방콕에서 서쪽으로 미얀마 국경 쪽 거기 ~ 칸차나 부리에 ~ 콰이강의 다리를 보러 갔었다. 전쟁 영화로서는 ~ 서부 전선 이상 없다 ~ 이후 처음으로 아카데미상 7개 부문을 휩쓸었던 ~ 주제곡 콰이마치의 음률이 ~ 거칠게 흐르는 ~ 강물 따라 흐르는 ~ 그 강 언덕에 30바트를 내면 들어갈수 있는 ~ 콰이강의 ..
後 靑龍의 월남수기- (18부)- 별이 빛나는 호이안의 밤.天子峰 조국을 떠난지 3일이 지났다 ~ !! 35년전 ~ 총알이 빗발 쳤던 --- 이역 만리 월남 땅에 오니 ~ 고단한 조국을 떠난지 3일만에 ~ 엄청난 향수가 일었다. --- 고향 산천은 잘있는지 ??? --- 늙으신 부모님은 안녕하신지 ??? --- 사랑하는 마눌과 자식들은 뭘 할까 ??? --- 내 친구며 선,후배님들은 어떻게 지낼까 ??? 조국을 떠난지 3일만에 ~ 물음표를 3개씩 찍으면서, 35년전 ~ 총알이 빗발 치는 ~ 이역 만리 월남 전선으로 조국을 떠나 오신지 ~ 30일이나 ~ 되실 무렵의 청룡의 물음표는 몇개 였으며 고향을 두고 오신지 ~ 300일이 ~ 되실 무렵의 청룡의 물음표는 몇개를 찍으셨을까. 海兵 100 년에 ~ 하나 ..
後 靑龍의 월남수기- (17부)- 호이안에 타는 가슴. 天子峰 언제 다시 오랴만 온다 손 치더라도 ~ 여기 ~ 이자리가 그대로 있을까 싶어-- 호이안 여단 본부 ~ 그 ~ 청룡들의 눅진 눅진한 추억의 땅을 뒤 돌아 보고 ~ 또 돌아 보며 ~ 그렇게 돌아섰다. 67년 츄라이 전선에서 호이안으로 오자 마자 68년 베트콩의 드센 구정 공세가 호이안 전선을 붉게 물들였다 ~ 고 ~ 한다. 68년 구정 공세는 호이안 청룡의 가장 큰 시련이었다고 하신다. 월남 전선의 어느 작전이 시련이 아니랴 마는 여러 선배님들의 증언을 통해 ~ 68년 구정 공세 --- . 그 중에도 여단 방석을 정면으로 노린 베트콩에 맞서 피아간에 엄청난 전투를 치룬 40 고지 현장을 꼭 찾아 봐달라는 주문이 많으셨다. 40고지로 가는 길이 ~..
장한우해병 베트남전적지여행(제16부)호이안에남는마음 後 靑龍의 월남수기- (16부)- 호이안에 남는 마음. 天子峰 "저 바다가 저 토록 날이 날마다 조상도 없이 물결치고 있는 것은 오래 하늘이 되고 싶기 때문이리라 그렇지 않고서야 저 하늘이 저토록 어리석은 듯 밤낮으로 그름을 일으키고 구름을 지워버리고 하는것은 바다에 내려오고 싶기 때문이리라" 호이안 여단 본부 터 ~ 동쪽 끝 ~ 바닷가에서 북쪽을 바라보다 ~ 남쪽을 바라보다 ~ 그대로는 연병장을 들어설수 없어서 고은 님에 ~ 시 한절로 신고를 하고 서야 ---- (여단 본부 동쪽 끝 ~ 남쪽으로 본 호이안 해변) 그 ~ 바람부는 ~ 호이안 바닷가에서 ~ 그 ~ 바람부는 ~ 호이안 여단 본부 ~ 연병장으로 다시 들어 설수 있었다. 용궁 작전 ~ 서룡 작..
작전명 ~百年 靑龍 (7부)-가지 못하는 1 대대~찾지 못하는 7중대.後 靑龍 세상에 불가능한 일도 우리는 가끔 찾아내기도 하고 ~ 깨닫기도 한다. 세찬 빗 줄기도 강물은 적시지 못한다. 30만 키로미터를 관통한 달빛도 ~ 한 길 연못을 뚫지 못한다. 강산을 변화시킨다는 세월 ~ 10년이 ~ 4번이나 흘러도 촌각으로 생사가 왔다 갔다 하던 ~ 전장터의 기억은 지우지 못한다. 서기 1968년 3월 귀국을 앞둔 호이안 탑 앞의 청룡 선배님 서기 2006년년 3월 정확히 38년만에 찾은 그 자리에서 그날의 그 기억은 몇일전의 일보다 생생하다 ~고 청룡께서는 말씀 하셨다. 전 후 베트남은 남 북 전쟁때의 갈등 치유와 ~ 오랜 전쟁의 후유증으로 지도를 바꿀 만한 대 토목 공사가 없어서 왕자 식당 선배님께서 말씀하..
여단장 집무실 앞엔 늘 커다란 앙카를 세워 놓았었다. 지금의 여단장 집무실 앞 ~. 앙카는 없어 지고 어지러운 전선이 거미줄처럼 ~ 거미줄이 전선처럼 엉켜있다. 그 당시의 여단 본부 -- 해병 앙카가 있는 곳이 여단장 집무실. 현재의 여단 본부 -- 마방 ~ 말들의 놀이터로 변해있다. 좌측 ~ 그러니까 ~ P 지점은 교회 건물로 추측되며 ~ B ~ 국기 계양대가 선명히 남아있다. (분홍색 빗금친 지점의 병사들) 여단장 집무실을 지나 ~ . 바다 쪽으로 가는길에 아직도 선명히 남아있는 건물들. 천막을 치고 지낸 ~ 초창기의 호이안 시절 ~ 이기원 선배님의 사진첩은 수 십 년을 지나면서도 차마 ~ 차마 바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병사는 비록 허물어 졌지만 ~ 바닷가 쪽을 향해 걸어가는 後 靑龍의 눈에는 지금이..
장한우 해병 베트남전적지 방문수기(제14부)호이안에 부는 바람 後 靑龍의 월남수기- (14부)- 호이안에 부는 바람..天子峰 Agrement ~ !! 오대양 육대주를 내 품에 안고 ~ 작은 조국을 거인으로 만들고 싶었다. 못나게 시리 ~ 이쁜 여학생들 등쌀에 주저앉고 말았지만 --- 내 소년기의 꿈은 외교관이었다. 대사가 부임하기전에 ~ 주재국에 미리 통보하는것을 프랑스 명사로 ~ 아그레망 ~ 이라한다. 내가 외교관은 못되었지만 ~ 아직도 이론엔 충실하다. 이기원 선배님 ~ 이국영 선배님 ~ 아리랑 선배님께서 허허 벌판에 투하되어 여단 본부 방석을 만드시던 호이안 땅에 --- 베리아 선배님~우주인 선배님~우태성 선배님께서 현지 적응 훈련을 받으시던 호이안 여단 본부 ~ 그 옛터에 後 靑龍의 임무를 띄고 ..
다낭 차이나비치 해변과 청용 여단본부앞 해변 다낭 차이나 비치 해수욕장은 다낭해변에서-마블마운틴 (오행산)거처 호이안 1968년에 한국군 해병여단 본부가 자리잡은 해변까지 수십키로 미터달하는 아름다운 해변이 길게 펼처 있다 날씨가 맑은날이면 호이안 여단본부 해변에서 다낭 시내가 육안으로도 보인다 불과 2005년도에 만해도 해변이 이렇게 반듯히 정리되지 않았으나 지금은 세계적인 관광 해변을 만들기 위해 대형카지노장과 하이트호텔 리죠트 세게적이 유명 호텔체인점이 한참공사중이고 또 건설되어 관광객을 받고있다 다낭해변에서 멀리 산밑에 대형 불상이 서있다 지난번 태풍으로 해수욕장이 엉망이였으나 군인들을 동원해서 해변을 치우고 부서진 방파제도 한참보수중에 있다 다낭해변 차이나 비치에서 마불마운틴 산이 선명이 보인다..
호이안 여행 미손 참파 유적지 호이안 미손 참파 유적지는 6세기부터 12세기 까지 베트남중부지방으로 참파족이지배하던 지역이다 12세기에 참파족은 베트족 에게 멸망하고 지금의 참파족은 베트남 소수 민족으로 살아 가고 있다. 6세기부터12세기까지 번성하던 참파.유적이 호이안 미숀.지역 깊은.산속 장글속에 부서진채 그대로 방치되어있다 참파유적지 많은 서양 관광객이 오전 이면 찾아 온다 해병 정찬영 병장 호이안1대대을 방문하고 참파 유적지 관광 미군과 한국해병대가 사용하던 케네디 찝차 유적지 손님을 실어 나른다 운전수에게 물으니 1965년도에 생산 된 것이라고 한다. 내부는 녹이 슬고 고철이다 그리나 아직도 잘 굴러 다닌다고 한다 이곳 산속 다리를 건너야 유적지 입구다. 입구에서부터 또2키로미터을케네디찝차로 실..
호이안 청룡여단본부 2009년1월 현제모습 정찬영 해병은 1969년도에 참전하여 여단본부 포대에서2개월 참전하고 1대대에서 1년동안 참전하고 1971년 귀국하였다. 현재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교직에 있으면서 겨울방학을 이용해서 부인과같이 7박8일동안전적지 여행과 베트남여행을 하고 귀국했다 여단 본부 국기봉과 여단 본부 부속 건물은 방치된 채 40년전그대로이다 청룡여단앞 청룡기지 앵카가 서있던 시멘트 구조물과 정찬영 해병 40십년전 청룡기지앵카 청룡 여단장 집무실 건물은 페가가 된 채 공사장인부들의 임시식당으로 이용되고 있다 현재 여단본부 지역은 대규모 리죠트들이 들어서고 일부는 9홀 골프장으로 개발되었다 40년전의 기억을 더듬고 있는 정찬영 해병 여단본부 앞 바다가 해변 지금은 리죠트가들어서 해변 앞 모래..